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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사랑의 도피, 여섯 가지의 다양한 이야기!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로 작가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줬던 베른하르트 슐링크가 6편의 중단편들을 묶어 소설집 『다른 남자』를 펴냈다. 이 소설집에는 여섯 가지의 다양한 사랑이 존재한다. 남녀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부모 자식간의 사랑도 존재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사랑이 있는 반면에 끝없는 추락을 경험하게 하는 사랑도 있다.
표제작인 「다른 남자」는 아내가 죽은 후 배달된 한 통의 편지로부터 시작된다. 어느날 배달된 편지를 통해 남편은 아내에게 또다른 남자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 남자가 궁금했던 남편은 몇 주 동안 그의 주위를 맴돌며 관찰하며 친분을 쌓는다. 사랑할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고 오히려 사기꾼 기질까지 보였던 그 남자에게서 남편은 한가지 사실을 발견한다. 그에게는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보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기 주변의 것들을 아름답게 말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아름답게 생각했고, 거기서 다른 사람들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왜곡하기만 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p194)
「소녀와 도마뱀」은 어떤 그림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 소년의 아버지는 '소녀와 도마뱀'이 그려져 있는 그림을 애지중지하지만, 소년의 어머니는 이 그림을 싫어한다. 이 그림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 있는 것일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림을 물려받게 된 소년은 그림을 추적하기 시작하고, 결국 그림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은 죄책감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다.
「외도」의 시대적 배경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다. 동서를 뛰어넘어 우정을 나누고 있던 그들 사이에 오해가 생긴다. 그들은 서로의 대답을 듣길 원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오해를 풀기 위해 먼저 나서지는 않는다.
"우리는 기다렸다. 무엇을 기다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우리들 중 누군가가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할 때를 기다리는 걸까? 우리들 중 누군가가 무슨 행동을 할 때를 기다리는 걸가?" (p118)
「청완두」에 등장하는 토마스는 전형적인 바람둥이다. 현재 진행중인 사랑이 지겨워질 때면 또다른 누군가를 찾아 떠난다. 그의 아내는 그것이 4년마다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 여기며 남편의 애정 행각을 눈감아 준다.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서 아이까지 얻은 그는 또다른 사랑을 찾아 두집 살림으로도 모자라 세집 살림을 차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세 여자 모두에게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아들」에는 일에 빠져사는 중년의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이혼 후 자신의 아들조차 만나지 않았지만, 최후의 순간 아들을 그리워하며 후회한다. 개인적으로 6편의 소설 가운데 가장 집중력이 떨어졌던 작품이다.
「주유소의 여인」에서 부부는 식어버린 사랑에 새로운 열정을 지피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여행지에서 낯선 여인을 만난 그는 아내와는 어떤 열정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를 떠나려 한다.
"그는 계속해서 울었다. 그의 꿈 때문에 울었고, 인생이 그에게 기회를 주었으나 스스로 단념하거나 회피해버린 것들 때문에 울었으며, 인생에서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것들과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울었다. 어느 것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으며, 어느 것도 만회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좀더 강력하게 원하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울었으며,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 때문에 울었다." (p325)
이 소설집은 2004년 『사랑의 도피』라는 제목으로 처음 우리에게 소개됐다. 6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왜 그런 제목이 붙었는지 깨닫게 됐다.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모두 '사랑으로부터 도피를 하고 또 사랑을 향해 도피'(p336)를 하기 때문이다.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사랑을 자신만의 화법으로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다음에는 또 어떤 사랑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된다.
09-55. 『다른 남자』2009/05/09 by 뒷북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