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의 루앙프라방 - 산책과 낮잠과 위로에 대하여
최갑수 지음 / 예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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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거듭난다. 그 장소는 오직 길이다!
   루앙프라방, 참 예쁜 이름이다. 써놓은 글자 모양도 예쁘고, 그것을 부르는 소리도 예쁘다. 어느 예쁜 카페의 이름일까? 아니면 유럽의 작은 마을 이름일까? 낯선 이름이 궁금해 표지 속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 본다. 그런데 사진 속 아이들의 피부색은 유럽인의 그것이 아니다. 혹 과거 유럽의 지배하에 있었던 아시아나 남미 지역에 있는 마을일까?
   그랬다. 루앙프라방은 과거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라오스의 유서 깊은 도시라고 한다. 루앙프라방은 왕정이 폐지되기 전까지 라오스 왕국의 수도였단다. 아름다운 메콩 강을 배경으로 라오스 전통 건축물과 프랑스 식민 시대의 건축물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고 한다. 루앙프라방의 왕궁 박물관에는 황금 불상이 있는데, '루앙프라방'은 '큰(루앙) 황금 불상(프라방)'이라는 뜻이란다. 아직 책은 읽지 않았지만, 사전 조사(!)만으로도 어떤 곳일지 가슴이 설렌다. 인터넷 백과사전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 루앙프라방을 저자는 어떻게 소개하고 있을까?   『목요일의 루앙프라방』이라는 큰 제목 아래 '산책과 낮잠과 위로에 대하여'라는 작은 제목이 달려 있다. 목요일은 제목 그대로 산책과 낮잠과 위로가 필요한 요일이다. 주5일 근무제로 바뀌면서 금요일만 버티면 이틀간의 달콤한 휴식이 주어진다. 일주일 중 가장 몸이 힘든 요일이지만, 오늘만 지나면 휴일이라는 생각에 그럭저럭 버틸 힘이 난다. 그러나 목요일은 다르다. 몸은 금요일보다는 덜 지치겠지만, 달콤한 휴일을 맞이하려면 무려 이틀을 버텨야 한다. 적당한 촉매제가 없다면, 몸과 함께 마음까지 지칠 수 있다. 이럴 때 잠깐의 산책과 낮잠, 그리고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하다. 그것들이 있으면 몸과 마음 모두 북돋을 수 있다.

   목요일처럼 몸과 마음에 휴식이 필요할 때, 루앙프라방은 가장 적당한 곳이다. 루앙프라방에는 느림의 미학이 있다. 자신들이 가진 것이 남들보다 적어서 불편하기는 하지만 슬프지는 않은 사람들, 그래서 그들은 욕심내지도 않고 서두르지도 않고 다투지도 않는다. 현재에 만족하며 천천히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그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여유롭게 위로의 말을 던지기도 한다. 여행자들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있는 그들을 천사 같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사업가들은 게으른 사람이라고 한다. 얼굴 가득 번진 그들의 미소를 보고 있으면 전자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 그 미소는 게으른자의 기름진 것이 아닌 진짜 천사만이 지을 수 있는 해맑은 것이기 때문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들의 미소가 담긴 사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보는 이를 저절로 웃게 만드는 저런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왜 사람드은 루앙프라방을 떠나기 아쉬워할까요?"

"아마도 이곳에서 시간의 실체와 마주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언제 시간과 진지하게 마주한 적이 있었을까. 우리는 시간 앞에서 옹졸했고, 급했고, 주저했고, 불안했고, 고독했지." (p33)


   반할 수 밖에 없었던 사진과 함께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루앙프라방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작가의 화법이다. 때론 그는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가 사랑하는 당신이란다. 내용으로 추측해 본다면 헤어진 당신이기도 할 것이다. 여느 때 같으면 웬 사랑 타령이냐며 코웃음을 쳤겠지만, 그의 고백에는 간절함이 묻어난다. 그녀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이야기가 그녀에게까지 닿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 아름다운 도시를 모르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멋진 곳을 소개해 준 그에게 한마디의 응원을 남기며.

   길에서 헤매는 시간을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제 갈 길을 찾기 위해, 더 많은 것들을 보고 경험하기 위해, 여기저기를 헤매는 것인지도 몰라요. 그러니 조바심 내지 마세요. 느긋하게 길을 가면 되요. 어쩌면 길을 잃는다는 것도 행운일 수 있으니까." (p48)

09-83. 『목요일의 루앙프라방』 2009/06/30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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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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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도전해 보라! 당신이 선택한 범인은 둘 중 누구인가?
   코난 도일에게는 셜록 홈즈가, 애거서 크리스티에게는 포와로가 있었고, 요코미조 세이시에게는 소년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이기도 한 긴다이치 고스케가 있었다. 인기있는 추리 소설가에게는 환상의 짝궁이 있기 마련. 현재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에게도 그런 인물이 있다. 바로 가가 교이치로 형사. 사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동안 캐릭터 사용을 자제해 왔다고 한다. 캐릭터의 성공 여부에 따라 작품의 성패도 따라갈 수 있고, 워낙 쟁쟁한 캐릭터들이 많아 부담도 컸으리라. 가가 형사는 그런 그가 20여년 동안 애정을 쏟으며 키워온 캐릭터다. 
   아마도 여름 시즌을 겨냥했으리라. 이번에 가가 형사 시리즈가 한꺼번에 네 권이 나왔다.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는 가가 형사가 등장하는 세번째 작품이다. 참고로 가가 형사가 처음 등장한 작품은 『졸업』이었다.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의 줄거리는 아주 간단한다. 10년째 도쿄에서 혼자 살고 있던 소노코는 내일 집으로 내려간다며 오빠에게 전화를 건다. 고향에서 교통 지도계 경찰인 오빠 야스마사는 금요일 저녁 소노코의 전화를 받고 그녀를 기다리지만 월요일까지 그녀는 소식도 없고 회사에도 결근을 한다. 느낌이 심상치 않았던 야스마사는 소노코의 아파트로 찾아간다. 그리고 죽어있는 소노코를 발견하게 되는데...
   처음 소노코를 발견했을 때는 자살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 가지 단서를 통해 타살이라는 것을 확신한 야스마사는 타살을 흔적을 지워버린다. 그리고나서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은 당연히 자살이라고 결론 짓지만, 야스마사는 소노코를 죽음에 이르게 한 범인을 찾아 나선다. 그즈음  가가 형사가 나타난다. 가가 형사 또한 야스마사처럼 타살의 흔적을 발견하고 범인을 쫓고 있다. 
   용의자는 초반부터 2명으로 압축된다. 한명은 소노코의 애인이었던 준이치이고, 나머지 한명은 소노코의 친구 가요코다. 준이치와 가요코는 소노코를 배신했다. 소노코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 애인을 빼앗겼던 것이다. 이쯤되면 너무 쉽게 사건이 해결되는 것 같아 김이 샌다. 다른 작품에서 봤던 히가시노 게이고가 아닌 것 같아 실망감도 든다. 그러나 끝까지 사건의 진실은 드러나지 않는다. 분명 둘 중 누군가 소노코를 죽였는데, 확실한 단서를 잡을 수가 없다.

   타살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야스마사는 자신의 손으로 범인을 밝혀내기로 결심했다. 세상에는 내 손으로 해야 할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이건 결코 남의 손에 맡길 일이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에게는 누이의 행복이야말로 인생 최대의 바람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빼앗긴 분함은 범인이 체포되는 정도로는 결코 가라앉힐 수 없었다. (p91)

   『방황하는 칼날』에서 죽은 딸의 복수를 하기 위해 아버지가 직접 범인을 찾아 나서는 것처럼 이 책에서도 오빠 야스마사가 소노코의 복수를 하기 위해 나선다. 한편, 가가 형사는 야스마사의 의도를 눈치채고 그것을 막으려고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용의자 X의 헌신』에서처럼 투톱을 내세워 재미를 더하고 있다. 앞선 작품에서는 사건을 은폐하려는 이와 풀려는 이의 두뇌싸움이 재미를 더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누가 먼저 진실을 밝히는가를 두고 경쟁하고 있다.
   결국 누가 어떻게 진실을 밝혔는가가 궁금할 것이다. 잔인하게도 히가시노 게이고는 끝까지 범인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범인의 정체를 밝히는 열쇠를 고스란히 작품 속에 남겨둔채 독자의 몫으로 돌리고 있다. 책의 끝부분에는 "추리 안내서"라는 것이 봉인돼 있다. 독자들의 추리를 돕자는 것인데, 사실 본문을 제대로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추리할 수 있는 부분이니 유용성은 없다.
   지금 당장 도전해 보라! 당신이 선택한 범인은 둘 중 누구인가?

09-82.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2009/06/29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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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자 - 2009 제17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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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높고(高山子) 외롭고(孤山子) 옛산에의 꿈을 잃지 않았던(古山子) 김정호! 

   고산자(古山子) 김정호. 그는 우리 역사상 가장 정확하고 정밀한 지도인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 그는 전국을 두 발로 누비며 지형과 거리를 실측해 표시했으며, 정확한 축적은 물론이고 글 대신 기호를 사용해 보기 쉽게 했다. 또 이전에는 필사본이 대부분이라 백성들이 쉽게 지도를 구할 수 없었던 것을 안타깝게 여겨 목판본을 만들어 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가치있는 《대동여지도》를 만든 그였지만, 우리 역사는 그를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어느 해 어느 곳에서 태어났는지도 불분명하고 어떻게 죽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어떤 이들은 흥선대원군이 그가 바친 《대동여지도》를 보고 국가기밀이 누설될까봐 염려해 옥에 가뒀다고도 전했다. 그러나 뒤에서 그를 후원했던 사람들이 처벌을 받았다는 기록이 없어 신빙성이 없다고 한다. 고산자(古山子) 김정호,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일찍이 제 나라 강토를 깊이깊이 사랑한 나머지, 그것의 시작과 끝, 그것의 지난날과 앞날, 그것의 형상과 효용, 그것의 요긴한 곳과 위태로운 곳을 그리는 데 오로지 생애를 바쳐 마침내 그 모든 걸 품어안은 이가 있었던 바, 그가 바로 고산자라 했다. 평생 산을 그리워했으되 그 산 중에서도 옛산을 닮고, 옛산에 기대어 살고 싶은 꿈이 있어 스스로 고산자라 불렀다고 했다. (p.9)


   위대한 지도를 만들었지만 역사가 그를 제대로 기록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던 것일까. 소설가 박범신이 문학의 세계를 통해 고산자 김정호의 삶을 복원해냈다. 어쩌면 그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박범신이 소설가로서의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그는 김정호가 왜 평생을 한발 한발 내디디며 지도 그리는데 온힘을 다했는지를 설명해 준다. 김정호의 아버지는 홍경래가 일으킨 난을 진압하러 23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가던 중 죽음을 맞이했다. 김정호는 관에서 내 준 지도 때문에 아버지와 사람들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잘못 그려진 지도를 믿고 길을 나섰던 아버지와 사람들은 산 중에서 길을 잃고 추위와 배고픔에 떨다가 죽은 것이다. 제대로 그려진 지도만 있었더라면 아버지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지도는 필사본이 많았던 탓에 잘못된 것을 또 잘못 그린 것이 많았고, 그나마도 지도는 나라에서 관리하는 것으로 일반 백성들은 쉽게 얻을 수도 없었다. 지도는 높은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여기 저기로 장사를 떠나고, 이동할 일이 많은 백성들에게도 꼭 필요한 물건이다. 정확한 지도만 있다면 아버지처럼 죽는 백성도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김정호는 지도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고산자의 대동여지도는 그런 면에서 획기적이라 할 것이네. 축척과 방위가 놀랄 만큼 정확하고 실증적이라 그 말일세. 게다가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은 알아보기 쉬운 그 기호들 좀 봐. 놀랍게 과학적인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어. 실학정신의 기본이란 이런 것일세. (p.195)


   그 어느 지도보다 정확하고 정밀한 《대동여지도》, 분첩이 가능하고 목판 인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정확한 지도를 가질 수 있었으며 쉽게 휴대할 수도 있었다. 이렇게 위대한 지도지만, 《대동여지도》에는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바로 '독도'가 없다는 것이다. 이전에 만들어진 다른 지도에는 있는 '독도'가 가장 정확하다는 《대동여지도》에는 없는 것이다. 박범신은 이 또한 아쉬웠으리라. 그래서 나름대로의 답을 찾아 적고 있다.

   울릉도는 열다섯번째 첩의 가장 오른쪽 절로 배치된바, 만약 우산도를 새기려면 울릉도에서 우산도가 이백 리는 안 된다고 쳐도 최소한 팔십 리 간격의 절이 두 세 개가 더 필요해진다. 그중에서도 두 절은 바다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축척을 무시하고 다른 지도들이 그렇듯 울릉도에 바짝 붙여서 그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새기는 것도 불편하거니와, 아무것도 없는 빈 목판을 끼워맞춰 지도를 찍어내는 것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더구나 우산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다.

   대동여지도를 그릴 때 그의 뜻은 지도로써 사람살이를 이롭게 하자는 것에 두었으니, 목판본으로 제작하면서 사람이 살지 않는 모든 작은 섬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조리 새겨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럴 필요성도 없다. 필사본과는 사정이 이렇게 다르다. 대동여지도는 펼쳐놓으면 동서로 대략 스물두 척이나 되는데다가 목판만 해도 앞뒤를 다 이용한다고 해도 육십이 넘는다. 판각 자체의 어려움 때문에, 그가 스스로 그렸던 동여도에 수록된 지명을 대동여지도에서 오히려 오천여 곳이나 뺀 것도 그렇거니와, 그러저러한 제작과정의 어려움이나 효용성 때문에 우산도를 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잘했다는 건 아니다. 효용성 때문이라 해도 다 새겨넣지 못한 게 마음 아픈 일임엔 틀림없다.   (p202~203)


   만약 오늘날 일본이 독도를 두고 자기네 영토라고 우기는 망언을 퍼붓는 것을 김정호가 알게 된다면, 어느 누구보다 독도를 그려넣지 못한 것을 가슴 아파하지 않을까. 
   《대동여지도》는 모두 22첩의 목판으로 제작됐으나, 아쉽게도 현존하는 것은 12첩에 불과하다. 그것을 만든 김정호처럼 또 어느 산천을 소리없이 떠돌고 있을까. 

09-80. 『고산자』 2009/06/28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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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 집을 나가다 - 가족 밖에서 꿈꾸는 새로운 삶 스물여덟 가지
언니네트워크 엮음 / 에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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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이라고 모두 같은 미혼은 아니랍니다!
   며칠전 나이 한 살을 더 먹었다. 예전 같으면 생일이라고 동네방네 다 소문내고 다녔겠지만, 이젠 해마다 돌아오는 생일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나이라는 것이 디지털 시계처럼 정각 0시가 될 때마다 먹는 것이 아니라 시나브로 먹어가는 것이지만, 나 이외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 반갑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요즘엔 내 나이를 물어 보고는 꼭 한마디씩 던진다. 애인은 없는지, 결혼은 언제 할 것인지, 아직 없다면 소개까지 시켜준단다. 친구들을 만나고 친척들을 만날 때마다 듣는 소리다. 하물며 입사하기 위해 면접을 볼 때 조차.
   난 독신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꼭 결혼을 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하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결혼하는 것이고, 혼자서는 도저히 외로워서 못 살 것 같으면 적당한 사람을 소개 받아 결혼하면 되는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까지는 좋아하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혼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내는 것이 더 좋다. 그러니까 내가 아직 미혼인 것은 내 의사가 적극적으로 반영된 것이지, 누군가가 혀를 찰만큼 안타까운 일은 아닌 것이다. 이런 내 생각을 말한들 무엇하랴. 그저 미혼인 사람의 변명으로만 치부할 뿐인데.

결혼 반대? No! 결혼만이 유일한 길이 아니다!
   알아주는 이 하나 없어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는지 모른다. 마치 이런 내 심정을 대변이라도 해주려는듯 언니네트워크에서 새로운 책이 나왔다. 예전부터 언니네트워크에 관심은 있었지만 그다지 끌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출간된 『언니들, 집을 나가다』는 '가족 밖에서 꿈꾸는 새로운 삶 스물 여덟 가지'라는 부제가 책을 읽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 책은 이른바 언니라고 불리는 스물 여덟 명의 여성들이 가족 밖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참, 남성도 한명 있다. '제1부 눈물 흘리지 않고 가족과 이별하기'에서는 유독 힘들다는 언니들의 독립 이야기를, '제2부 이토록 다양한, 결혼하지 않고 잘 살기'에서는 자신의 의사에 따라 결혼하지 않는 비혼(非婚) 이야기를, '제3부 뻔한 질문 따윈 두렵지 않아'에서는 혼자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일들에 대처하는 방법을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자신의 의사에 따라 결혼하지 않는 것을 '비혼'이라고 부른다는 것과 그것을 선택하거나 선언하는 사람들이 유별나게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혼'이라고 하면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결혼 못한 사람'이라고 치부해 버리기 마련이다. 의미는 가져다 붙이기 나름이지만, 스스로 선택했다는 뜻의 '비혼'이라는 말이 얼마나 듣기 좋은가. 또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을 유별나게 묘사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책 속에 등장하는 언니들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만약 같은 여건이 주어졌다면, 나 또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흔히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라면 해보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반대로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라면 귀찮게 돈 들여가며 해볼 이유도 없는게 아닌가. 결론은, 요즘 TV 광고에도 자주 등장하던데 생각대로 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고 싶을 때 하면 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고.

09-78. 『언니들, 집을 나가다』 2009/06/25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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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공선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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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예뻤을 때 가장 아프고 슬펐다!
   공선옥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처음 접한 것은 문학동네 카페에서 연재되는 소설을 통해서였다. 닉네임처럼 뒤늦게 연재 소식을 들은 나는 1편부터 차곡차곡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것을 싫어해 연재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것들을 원래 싫어하는데다가 모니터를 통해 긴 글 읽는 것은 더더욱 싫어한다. 그래서 한 두 편 읽다가 이내 창을 닫아버리겠지 생각했던 것이, 내용 전개도 빠르고 재밌어서 몇달 동안 연재됐던 이야기들을 단숨에 읽어버리고 내일 연재될 이야기를 손꼽아 기다리게 됐다. 

   그렇게 재미나게 읽었던 연재소설이 드디어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이미 연재될 때 읽은 소설인지라 다시 읽으면 재미가 덜하겠지만, 그래도 재밌게 읽은 소설이니 종이 책으로 한번 더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역시 소설은 종이책으로 읽어야 한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한다고 해도 모니터 상으로 읽는 소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묘미를 종이책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행간이 드러났고, 빨리 읽을 때와 천천히 읽을 때가 보였고, 소설 속으로의 몰입이 훨씬 쉬웠고, 그래서 읽는 이의 감정도 증폭됐다. 한마디로, 두 번 읽어도 재밌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스무 살이 가장 예쁜 나이라고 말한다. 가장 예쁜 나이 스무 살 때, 우리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예쁘고 즐거운 일들이 가득한 스무 살 때, 그들은 가장 아프고 슬펐다.
   1980년의 광주에는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그들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에 들어간 친구가 있는가 하면, 어떤 친구는 취업을 하고, 또 어떤 친구는 재수 준비를 했다. 주인공인 해금이는 대학에 떨어지고 타자 학원엘 다녔다. 그들은 각자의 스무 살을 보내고 있었지만 하나같이 아픔을 겪는다. 대학엘 간 친구들은 노동운동을 하다가 붙잡혀 고문을 당하기도 하고 강제로 군대에 보내지기도 한다.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한 친구는 기술을 배우기는 커녕 월급조차 못 받고, 공장마다 노동 착취를 당하는 노동자들이 즐비했다. 또 어떤 친구는 총에 맞아 죽은 친구 때문에 자살을 하기도 하고, 또 한 친구는 가족의 아픔 때문에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들이 가장 예쁘고 즐거워야 할 때, 그들은 그것을 누릴 수가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릴 수 없었던 것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상처 뿐이다. 그렇게 그들이 가장 예뻐야 할 스무 살의 겨울이 저물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왜 아무렇지 않지? 아무렇지 않은 것이 나는 너무 이상해.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닐까? 혹시 말이야,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물에 뭐든지 빨리 잊어먹게 하는 약이 섞여 있는 게 아닐까? 아니면 누군가 공기중에 누가 죽었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고 살아가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약품을 살포한 것은 아닐까? 나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밥먹고 웃고 결혼하고 사랑하고 애 낳고 그러는 게 이상해. (p76)


그들이 겪은 과거와 지금의 상황이 무엇이 다르겠는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세대들도 지나온 과거를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 시절을 겪지 못한 세대들에게 과거는 재미없는 소재일 수도 있다. 한때 우리 문학은 그런 과거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문학이 그것을 외면해서는 안되겠지만, 꼭 그렇게까지 암울하게 그릴 필요가 있을까 생각될 정도로 무거웠다.  

   공선옥은 무겁고 암울한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그리고 암울하지 않게 그려냈다. 무겁고 암울한 것의 반대는 가볍고 경쾌한 것이리라. 그러나 절대 가볍고 경쾌한 것은 아니니, 무겁지 않고 암울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재미나게 읽히지만 그것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과거의 아픔이다. 지금의 세대는 겪지 않은 과거지만, 현재가 그 과거와 다른 것이 무엇이겠는가. 아픔과 함께 답답함이 밀려왔다.

그렇게 가슴앓이도 하면서, 이곳저곳으로 떠돌기도 하면서, 바람 앞에 선 들꽃처럼 몸을 잔뜩 움츠리기도 하면서, 그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면서, 그러면서 우리의 청춘은 조금씩 단련되어가리라. (p300)


09-77. 『내가 가장 예뻤을 때』 2009/06/21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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