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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공선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5월
평점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가장 아프고 슬펐다!
공선옥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처음 접한 것은 문학동네 카페에서 연재되는 소설을 통해서였다. 닉네임처럼 뒤늦게 연재 소식을 들은 나는 1편부터 차곡차곡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것을 싫어해 연재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것들을 원래 싫어하는데다가 모니터를 통해 긴 글 읽는 것은 더더욱 싫어한다. 그래서 한 두 편 읽다가 이내 창을 닫아버리겠지 생각했던 것이, 내용 전개도 빠르고 재밌어서 몇달 동안 연재됐던 이야기들을 단숨에 읽어버리고 내일 연재될 이야기를 손꼽아 기다리게 됐다.
그렇게 재미나게 읽었던 연재소설이 드디어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이미 연재될 때 읽은 소설인지라 다시 읽으면 재미가 덜하겠지만, 그래도 재밌게 읽은 소설이니 종이 책으로 한번 더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역시 소설은 종이책으로 읽어야 한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한다고 해도 모니터 상으로 읽는 소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묘미를 종이책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행간이 드러났고, 빨리 읽을 때와 천천히 읽을 때가 보였고, 소설 속으로의 몰입이 훨씬 쉬웠고, 그래서 읽는 이의 감정도 증폭됐다. 한마디로, 두 번 읽어도 재밌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스무 살이 가장 예쁜 나이라고 말한다. 가장 예쁜 나이 스무 살 때, 우리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예쁘고 즐거운 일들이 가득한 스무 살 때, 그들은 가장 아프고 슬펐다.
1980년의 광주에는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그들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에 들어간 친구가 있는가 하면, 어떤 친구는 취업을 하고, 또 어떤 친구는 재수 준비를 했다. 주인공인 해금이는 대학에 떨어지고 타자 학원엘 다녔다. 그들은 각자의 스무 살을 보내고 있었지만 하나같이 아픔을 겪는다. 대학엘 간 친구들은 노동운동을 하다가 붙잡혀 고문을 당하기도 하고 강제로 군대에 보내지기도 한다.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한 친구는 기술을 배우기는 커녕 월급조차 못 받고, 공장마다 노동 착취를 당하는 노동자들이 즐비했다. 또 어떤 친구는 총에 맞아 죽은 친구 때문에 자살을 하기도 하고, 또 한 친구는 가족의 아픔 때문에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들이 가장 예쁘고 즐거워야 할 때, 그들은 그것을 누릴 수가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릴 수 없었던 것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상처 뿐이다. 그렇게 그들이 가장 예뻐야 할 스무 살의 겨울이 저물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왜 아무렇지 않지? 아무렇지 않은 것이 나는 너무 이상해.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닐까? 혹시 말이야,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물에 뭐든지 빨리 잊어먹게 하는 약이 섞여 있는 게 아닐까? 아니면 누군가 공기중에 누가 죽었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고 살아가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약품을 살포한 것은 아닐까? 나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밥먹고 웃고 결혼하고 사랑하고 애 낳고 그러는 게 이상해. (p76)
그들이 겪은 과거와 지금의 상황이 무엇이 다르겠는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세대들도 지나온 과거를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 시절을 겪지 못한 세대들에게 과거는 재미없는 소재일 수도 있다. 한때 우리 문학은 그런 과거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문학이 그것을 외면해서는 안되겠지만, 꼭 그렇게까지 암울하게 그릴 필요가 있을까 생각될 정도로 무거웠다.
공선옥은 무겁고 암울한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그리고 암울하지 않게 그려냈다. 무겁고 암울한 것의 반대는 가볍고 경쾌한 것이리라. 그러나 절대 가볍고 경쾌한 것은 아니니, 무겁지 않고 암울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재미나게 읽히지만 그것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과거의 아픔이다. 지금의 세대는 겪지 않은 과거지만, 현재가 그 과거와 다른 것이 무엇이겠는가. 아픔과 함께 답답함이 밀려왔다.
그렇게 가슴앓이도 하면서, 이곳저곳으로 떠돌기도 하면서, 바람 앞에 선 들꽃처럼 몸을 잔뜩 움츠리기도 하면서, 그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면서, 그러면서 우리의 청춘은 조금씩 단련되어가리라. (p300)
09-77. 『내가 가장 예뻤을 때』 2009/06/21 by 뒷북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