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의 루앙프라방 - 산책과 낮잠과 위로에 대하여
최갑수 지음 / 예담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거듭난다. 그 장소는 오직 길이다!
   루앙프라방, 참 예쁜 이름이다. 써놓은 글자 모양도 예쁘고, 그것을 부르는 소리도 예쁘다. 어느 예쁜 카페의 이름일까? 아니면 유럽의 작은 마을 이름일까? 낯선 이름이 궁금해 표지 속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 본다. 그런데 사진 속 아이들의 피부색은 유럽인의 그것이 아니다. 혹 과거 유럽의 지배하에 있었던 아시아나 남미 지역에 있는 마을일까?
   그랬다. 루앙프라방은 과거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라오스의 유서 깊은 도시라고 한다. 루앙프라방은 왕정이 폐지되기 전까지 라오스 왕국의 수도였단다. 아름다운 메콩 강을 배경으로 라오스 전통 건축물과 프랑스 식민 시대의 건축물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고 한다. 루앙프라방의 왕궁 박물관에는 황금 불상이 있는데, '루앙프라방'은 '큰(루앙) 황금 불상(프라방)'이라는 뜻이란다. 아직 책은 읽지 않았지만, 사전 조사(!)만으로도 어떤 곳일지 가슴이 설렌다. 인터넷 백과사전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 루앙프라방을 저자는 어떻게 소개하고 있을까?   『목요일의 루앙프라방』이라는 큰 제목 아래 '산책과 낮잠과 위로에 대하여'라는 작은 제목이 달려 있다. 목요일은 제목 그대로 산책과 낮잠과 위로가 필요한 요일이다. 주5일 근무제로 바뀌면서 금요일만 버티면 이틀간의 달콤한 휴식이 주어진다. 일주일 중 가장 몸이 힘든 요일이지만, 오늘만 지나면 휴일이라는 생각에 그럭저럭 버틸 힘이 난다. 그러나 목요일은 다르다. 몸은 금요일보다는 덜 지치겠지만, 달콤한 휴일을 맞이하려면 무려 이틀을 버텨야 한다. 적당한 촉매제가 없다면, 몸과 함께 마음까지 지칠 수 있다. 이럴 때 잠깐의 산책과 낮잠, 그리고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하다. 그것들이 있으면 몸과 마음 모두 북돋을 수 있다.

   목요일처럼 몸과 마음에 휴식이 필요할 때, 루앙프라방은 가장 적당한 곳이다. 루앙프라방에는 느림의 미학이 있다. 자신들이 가진 것이 남들보다 적어서 불편하기는 하지만 슬프지는 않은 사람들, 그래서 그들은 욕심내지도 않고 서두르지도 않고 다투지도 않는다. 현재에 만족하며 천천히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그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여유롭게 위로의 말을 던지기도 한다. 여행자들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있는 그들을 천사 같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사업가들은 게으른 사람이라고 한다. 얼굴 가득 번진 그들의 미소를 보고 있으면 전자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 그 미소는 게으른자의 기름진 것이 아닌 진짜 천사만이 지을 수 있는 해맑은 것이기 때문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들의 미소가 담긴 사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보는 이를 저절로 웃게 만드는 저런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왜 사람드은 루앙프라방을 떠나기 아쉬워할까요?"

"아마도 이곳에서 시간의 실체와 마주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언제 시간과 진지하게 마주한 적이 있었을까. 우리는 시간 앞에서 옹졸했고, 급했고, 주저했고, 불안했고, 고독했지." (p33)


   반할 수 밖에 없었던 사진과 함께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루앙프라방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작가의 화법이다. 때론 그는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가 사랑하는 당신이란다. 내용으로 추측해 본다면 헤어진 당신이기도 할 것이다. 여느 때 같으면 웬 사랑 타령이냐며 코웃음을 쳤겠지만, 그의 고백에는 간절함이 묻어난다. 그녀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이야기가 그녀에게까지 닿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 아름다운 도시를 모르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멋진 곳을 소개해 준 그에게 한마디의 응원을 남기며.

   길에서 헤매는 시간을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제 갈 길을 찾기 위해, 더 많은 것들을 보고 경험하기 위해, 여기저기를 헤매는 것인지도 몰라요. 그러니 조바심 내지 마세요. 느긋하게 길을 가면 되요. 어쩌면 길을 잃는다는 것도 행운일 수 있으니까." (p48)

09-83. 『목요일의 루앙프라방』 2009/06/30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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