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 한차현 장편소설
한차현 지음 / 문이당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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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최초'라 말하는 이 작가는 누구?!

   한차현, 4권의 장편소설을 쓴 등단 12년차 소설가. 하지만 난 그가 다섯번째 소설 『변신』을 발표하고서야 그의 이름을 접했다. 그의 이름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아님 말구) 누구는 한 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하고도 반짝반짝 빛나는 명성을 얻곤 하는데, 그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아마도 그건, 그가 흔히 주류라 부르는 문학을 쓰는 작가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주류란, 포장마차에서 술 한잔 기울이며 안주 삼아 논할 수 있는 것쯤으로 해두자. 깊이 파고들면 골치 아파 지는 것이 그쪽 세계니까.

   그동안 한차현 작가는 『내가 꾸는 꿈의 잠은 미친 꿈이 잠든 꿈이고 네가 잠든 잠의 꿈은 죽은 잠이 꿈꾼 잠이다』나 『대답해 미친 게 아니라고』, 『사랑이라니 여름 씨는 미친 게 아닐까』 등 제목부터 톡톡 튀는 작품들을 주로 써왔는데, 그에 비하면 『변신』이라는 제목이 주는 첫인상은 다소 약해 보인다. 하지만 감히 "한국 문단 최초! 세계문학사상(아마도)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SF + 성경 + 정신분석 + 음모론"을 이 한 권의 소설을 통해 모두 선보인다고 한다. 도대체 이 작가는 어떤 글을 쓰는걸까?

 

   『변신』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서울에서 목사로 일하고 있는 주인공 '차연'이 어느날 외계 생명체와 접선한 후 그들의 안내를 따라 아내 '소원'과 함께 우주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다. 집사였던 '소원'은 우주에서 '어떤 종교'를 접하고 지구로 돌아오지 않고, 혼자 지구로 돌아온 '차연'은 목사에서 영구제명 당하고 스스로를 이단이라 부르며 '어떤 종교'를 설파하는데 나선다.

   어떤 의미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는지는 모르겠다. 이 정도의 엽기 발랄함과 SF는 이미 박민규 작가가 보여줬던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종교적인 것을 더해서 "최초"라 말했다고 해도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SF와 성경을 접목해서 어떤 종교적인 음모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렇다고 겁 먹을 필요는 없다. 움베르토 에코처럼 머리 아프게 파헤치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작가가 특정 종교를 향해 펜대를 날카롭게 치켜들고 있다는 것도 한눈에 보인다. 비유 등을 통해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과는 달리 우리 문학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의 소설. 그래서 신선하고 재밌다. 그것이 지나치면 안주고 뭐고 다시 집어 넣고 싶을텐데, 딱 적당할만큼 독특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독서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다르다. 만약 나처럼 독서를 통해 재미를 찾길 원한다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내가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일러스트 작가 오기사가 표지 및 본문 일러스트를 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본문에서 일러스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없다. 혹시 나처럼 기대하는 독자가 있을까봐 미리 알려주는 것이다.

 

10-058. 『변신』 2010/06/30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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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이 만드는 세 가지 기적 - 원하는 대로 인생을 바꾸는 마음공부
천명주 지음 / 예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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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성공, 행복, 건강! 긍정이 가져다 준 세 가지 선물, 누구나 가질 수 있다!

   '긍정'의 힘을 보여주는 책들은 아주 많다.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그 유명한 칭찬, 가짜 웃음에도 행복하다고 느끼는 우리 뇌, 천냥 빚도 갚는다는 말 한마디의 힘.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긍정'의 힘을 알고 있지만, 긍정하는 삶의 태도를 가지기란 쉽지 않다. 특히 나는 지극한 현실주의자라 매사를 긍정하는 태도로 대하는 것이 더 힘들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현실은 긍정하기 힘든 세상이니까. 책임지지 못할 긍정의 한마디로 마냥 누군가에게 기대감을 주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가끔씩은 독한 충고를 서슴치 않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 자신이 아니기에 그들에게는 좀 더 관대하게 긍정의 말을 건넬 수 있다. 하지만 누구보다 내 자신을 잘 알기에, 내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긍정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긍정이 만드는 세 가지 기적』의 저자는 20년 이상 몸과 마음을 닦는 수련에만 집중해 온 사람으로, 현재는 작은 수련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의심도 들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수련해 온 사람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긍정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라고, 혹시 자신의 수련법을 홍보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하고 말이다.

   저자는 오랫동안 수련을 하면서 수련 지도를 해 온 사람들의 구체적인 사례를 들며, 우리가 일상에서 마음을 련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저자가 말하는 마음 수련이란 그리 힘든 일도,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다. 조용히 산책을 하고 단전호흡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정심을 찾고 삶의 태도를 바꿀 수 있다고 한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스스로를 긍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사람들도 이런 마음 수련을 통해 삶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긍정 하나만으로 어떻게 성공과 행복, 건강을 모두 얻을 수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늘 긍정적인 태도로 임하며 웃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는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모든 병의 근원은 마음의 병이라고 한다. 작은 일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성격의 사람이라면 마음의 병을 어찌 아니 얻을 수 있겠는가. 이미 우리는 긍정의 힘을 알고 있지만, 다만 실천하고 있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동안 방법을 몰라서 실천이 어려웠다면 저자가 알려주는 방법을 활용해 보라.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저자는 좋은일 행복한 일만 기도하라고 한다. 대부분은 그런 기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기도는 충분히 행복한 기도는 아니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부정적인 내용을 담아 기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다른 사람들이 행했던 기도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면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이 책의 장점은 바로 이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만 되풀이 하지 않는다. 그것을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주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난 훌륭해. 하지만 이 일은 잘못 처리했어. 괜찮아. 이 일로 ○○○을 배웠잖아. 이 일로 인해 앞으로 모든 일이 더 잘될 거야." (p.190)

 

   그렇다고 저자가 무조건 매사를 긍정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이는 테레사 수녀의 예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테레사 수녀는 전쟁을 없애자는 모임 같은 데는 절대 참석하지 않았다. 오로지 평화를 위한 모임에만 참석했다. 전쟁을 없애기 위해 전쟁의 위험성과 폭력성을 강조하기보다는 평화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평화가 인간에게 주는 행복을 강조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p.63)


 

   그동안 긍정의 힘을 일률적으로 강조하는 이야기에 질렸다면, 그래서 오히려 반감만 들었던 사람이라면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이런 류의 책을 읽으면서 반박하지 않고 편안하게 읽어보기는 처음이다.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을 읽을 때도 긍정의 힘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저자는 자신이 접했던 많은 책들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이 또한 책을 읽으면서 그들의 이야기에 긍정하고 자신의 것으로 흡수시켰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늘 여러 개의 장점보다는 하나의 단점을 더 눈여겨보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이리라.

 

10-047. 『긍정이 만드는 세 가지 기적』 2010/06/02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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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라쉬 브런치 -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윤미나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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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부터 번역하는 여자를 따라 사랑에 빠지기 위한 구실을 만들어 볼까요!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반드시 그곳을 배경으로 한 책이나 영화를 찾아본다. 혹은 책이나 영화를 통해 알게 된 그곳에서 직접 눈도장을 찍고 공감하기 위해 일부러 찾아가기도 한다. 이는 비단 나만이 취하는 행동은 아닌가보다. 강원도의 한 시골 마을에서 살며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 또한 어딘가를 여행하기 전에 그곳을 배경으로 한 책이나 영화로 예행 연습하는 것을 좋아한다.(p.50) 그것이 사랑에 빠지기 위한 구실(p.50)이라는 그녀. 사실 이번 동유럽 여행도 지젝 덕분에  기획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는 슬라예보 지젝의 『이라크 : 빌려온 항아리』를 읽고 중독성 강한 그의 세계에 빠져 그의 책들을 읽기 시작했고, 급기야 그의 나라인 슬로베니아를 여행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그녀는 동유럽 가운데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세 나라의 도시를 둘러본다. 역사가 남긴 상처 때문에 울면서 거리를 헤매고 있는 거인 여자를 만날 것만 같은 체코의 프라하와 베네쇼프 ─ 사실 일정 때문에 베네쇼프는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했다. 그리고 시가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을만큼 아름답고, 주홍빛 지붕과 하얀 빨래들이 멋진 풍경을 만드는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와 자그레브, 시속 8킬로미터로 가는 기차가 있고 오후 9시 이후에는 절대 알코올음료를 팔지 않는 슬로베니아의 류블라냐와 블레드.  

   그녀는 각각의 여행지를 책은 물론이고 영화, 음악, 그림, 뮤지컬 등 다양한 문화 장르를 통해 보여준다. 단순히 여행지에서의 감상만을 늘어놓았다면 쉽게 공감하지도, 이만큼 재밌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소개하는 여러 문화 장르 이야기는 굳이 그곳에 가보지 않더라도, 바로 이곳에서 충분히 감상하고 느껴볼 수 있기 때문에 흥미롭다.
   게다가 스무 권 가량의 책을 번역한 출판번역가답게 톡톡 튀는 글솜씨를 자랑하기도 한다. 특히, 감정 표현이 남다르다. 이제 30대에 접어든 젊은 번역가라서 그런지 감정 표현이 젊고 당돌하다.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주화입마(走火入魔)라는 무협 용어를 사용한다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엿 같다'라는 표현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무언가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그녀의 비유법은 머리 숙이고 한 수 배우고 싶을 정도로 감칠맛 난다.  

  『굴라쉬 브런치』라는 제목에서 '굴라쉬'는 체코의 대표적인 전통요리로, 얼큰한 쇠고기 스프다. 얼큰하고 걸쪽한 국물이 우리의 육개장과 비슷해서 한 끼 식사로도 좋고 한국인의 입맛에도 딱이란다. 그녀는 "굴라쉬 브런치"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비록 낯선 동유럽 여행기지만, 그곳에서 직접 눈도장 발도장 찍지 않아도 충분히 맛깔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책 말이다. 그렇다면 성공이다. 충분히 감침맛 나는 이야기니까.

10-030. 『굴라쉬 브런치 :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2010/04/14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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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잘해요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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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지낸 죄의식을 일깨워주고 대신 사과까지 해줍니다!
   2008년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Daum에서 인기리에 연재됐던 이기호의 첫 장편소설이 드디어 책으로 나왔다. 전작에서 '개념 있는' 유쾌함을 보여줬던 그의 첫 장편소설이라 기대는 됐지만, 종이가 아닌 모니터로 그 이야기들을 읽어낼 자신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종이책의 종말론"을 떠들어 냈지만, 나같은 독자가 있다면 절대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으리라. 

   『사과는 잘해요』는 「당신이 잠든 밤에」와 「국기게양대 로망스」에서 엽기 콤비로 맹활약을 했던 진만과 시봉이 다시 등장한다. 그들이 처음 만난 곳은 시설이다. 아마도 그들은 이전에 콤비로 맹활약했다는 것을 모르는가보다. 아무튼 그들이 있는 시설은 때가 되면 약을 주고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폭력을 휘두르는 곳이다. 그들은 알약을 먹지 않거나 복지사들에게 맞지 않을 때는 양말을 포장하거나 비누에 상표를 붙였다. 
   어느날 승합차를 타고 온 구렛나루 아저씨가 자신은 멀짱한데 갇힌 거라며 담장 밖으로 쪽지를 보낸 것에서 사건은 비롯됐다. 진만과 시봉은 구렛나루 아저씨를 돋고 싶어서 양말 상자 안쪽에 '시설의 기둥들'이라는 말까지 덧붙여서 메모를 했다. 얼마 후 경찰과 공무원, 방송사 기자들이 들이닥쳤고 원장과 복지사들을 비롯해 정상인 사람들은 모두 잡혀갔다. '내부고발자'라는 닉네임이 붙은 그들은 다른 시설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결국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 그런데 시봉은 자신의 집을 알았지만 아버지와 함께 시설로 온 진만의 자신의 집을 몰랐다. 뿐만아니라 아버지가 누구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그들은 함께 시봉의 집으로 갔다. 
   시봉의 집에는 동생 시연과 그녀보다 16살이 많은 뿔테 안경 남자가 살고 있었다. 뿔테 안경 남자는 늘 시연에게 돈을 달라고 했다. 시연이 몸을 팔아 번 돈으로 그는 매번 경마장에 가 모두 털리고 돌아왔다. 그것이 안타까웠던지 진만과 시봉은 돈을 벌기 위해 나선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포장하는 것인데 아무도 포장일에 그들을 써주지는 않았다. 다음으로 그들이 찾은 일은 '사과'를 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시설에서 덜 맞기 위해 짓지도 않은 죄를 고백하며 복지사들에게 사과했다. 그러면 복지사들은 아무 죄도 짓지 않았다고 할 때보다 적게 때렸고, 진만과 시봉은 짓지 않은 죄를 먼저 고백하고 그 죄를 행했다. 

   진만과 시봉은 누군가가 지은 죄를 대신 사과하며 상대방이 용서할 때까지 맞거나 손목을 비틀곤 했다. 그렇게 번 돈은 고스란히 뿔테 안경 남자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오랫동안 부인과 아들을 버린 남자가 자기 대신 사과해달라고 했을 때, 그의 부인은 대신 죽어줄 수도 있냐고 했다. 무엇이든 해줄 수 있었지만, 그것만은 해 줄 수가 없었다. 둘 다 죽어야 할지, 아니면 둘 중 하나면 죽어야 할지, 하나라면 누가 죽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뿔테 안경 남자가 이미 돈을 받아버려서 그들은 대신 뿔테 안경 남자가 그의 부인에게 사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얼마 후 복지사들이 집행유예로 풀렸났고 그들은 '내부고발자'인 진만과 시봉을 죽이려 한다. 진만과 시봉이 시설의 모든 비밀이 적혀있는 일기장을 갖고 있다고 하자 복지사들은 진만을 풀어주며 그 일기장을 가져오라고 한다. 만약 돌아오지 않으면 시봉을 죽이겠다며. 그러나 진만은 시봉이 죽을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돌아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설에서처럼 시봉이 진만의 몫까지 복지사들에게 사과하면 되니까.
   사실 시설에서 나온 이후 진만은 시봉보다 한 뼘 더 성장하게 된다. 시봉은 모르는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을 알았기 때문이다. 진만은 시연을 사랑한다. 그것이 바로 시봉에게 사과해야 할 일이라고도 생각한다. 그가 시봉에게 돌아가지 않았던 것은 뿔테 안경 남자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던 시연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진만과 시봉을 통해 잊고 지냈던 자신의 죄를 깨우친다. 원장의 말처럼 "죄는 모른 척해야 잊혀지는 법"(p.215)인데, 그들이 자꾸 사과를 하라며 그 죄를 일깨워주니 꺼려질 수 밖에 없다. 자꾸 사과할 것이 없냐고 묻는 그들을 보면서 잊고 지냈던 내 죄는 없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진만과 시봉 콤비를 보고 있자니 영화 《새드무비》에서 이별대행을 해줬던 차태현이 떠올랐다. 이야기는 속도감 있게 잘 읽고 재밌게 썼으나 아쉽게도 웃기지는 않았다. 마치 《개그콘서트》를 팔짱 끼고 방청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난 『최순덕 성령충만기』를 읽지 못해서 직접적인 비교는 할 수 없으나 『최순덕 성령충만기』와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를 읽은 사람들은 입을 모아 전작이 훨씬 좋다고 평했다. 『사과는 잘해요』는 내가 읽은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에 훨씬 못 미치니, 정리하면  『최순덕 성령충만기』가 가장 좋다는 것이다. 
    아무리 인터넷 연재소설로 기획된 것이라고는 하지만 비슷한 경향의 글을 쓰는 박민규는 연재소설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더욱 심도있는 글을 써냈다. 짧은 호흡으로 이뤄진 이야기가 쉽게 읽히기는 하지만, 장편소설을 쓰기에는 부족한 내공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음에는 그의 '개념 있는' 유쾌한 이야기를 다시 맛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09-144. 『사과는 잘해요』 2009/11/27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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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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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것을 향한 사람들의 갈망!
   우리는 늘 금지된 것에 매력을 느끼곤 한다. 얼마전의 일이다. 국방부가 선정한 불온서적 목록이 발표됐고, 출판 관계자들은 즐거움의 비명을 질렀다. 판매량이 저조했던 책들도 불온서적이라는 낙인을 받고 날개 돋친듯 팔리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은 '공공연한 금서'만 존재할 뿐 실제적인 금서는 없지만, 불과 20년 전만해도 달랐다. 우리와 체제와 이념이 다른 곳 혹은 작가의 책은 읽을 수 없었다. 그것은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가까운 나라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반대로 그곳에서는 자유주의 사상이 담겨 있는 책들을 금지했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는 작가 다이 시지에의 자전적인 소설로, 문화대혁명이 있었던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나'와 뤄는 '잘나빠진 지식층의 기득권자들'의 아들이라는 죄로 두메산골인 '하늘긴꼬리닭' 마을로 보내져 재교육을 받게 된다. 말이 재교육이지 사실은 노동이었다. 공부만 하던 학생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뤄에게는 이야기를 재밌게 하는 능력이 있었고, 다행히 마을 촌장이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했다. 촌장은 이야기를 들으려고 영화가 상영되는 곳으로 그들을 보내 영화를 보고 오게 했다. 
   어느날 '나'와 뤄는 바지길이를 늘이기 위해 재봉사의 집을 찾는다. 마침 재봉사는 출장을 가서 그의 딸인 바느질 처녀를 만나게 된다. 재봉사의 딸인 이유로 여느 사람들과는 옷차람이 달랐던 바느질 처녀, 도시 처녀들처럼 세련되고 예쁘지는 않지만 뤄는 그 처녀를 좋아하게 된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곳과 가까운 마을에는 '안경잡이'라는 그들의 친구가 재교육을 받고 있다. 어느날 '안경잡이'를 찾은 그들은 '안경잡이'가 금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을 얻기 위해 그들은 '안경잡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대신 노동을 해주고 그 대가로 발자크의 책 한권을 얻는다.
   발자크의 『위르쉴 미루에』는 지금까지 그들이 알지 못했던 세계를 보여주고, 새로운 감정들을 불러 일으킨다. '나'는 양가죽 점퍼 안쪽에 마음에 드는 구절들을 베껴놓고, 뤄는 바느질 처녀에게 찾아가 매일 밤 책을 읽어준다. 책을 통해 자유와 사랑에 눈 뜬 그들은 '안경잡이'로부터 다른 책들도 훔쳐낸다. '나'는 정신없이 책을 읽어나갔고, 뤄는 바느질 처녀에게 열심히 발자크 작품을 읽어줬다. 그리고 뤄와 바느질 처녀는 사랑에 눈을 뜨게 된다.
   하지만 바느질 처녀는 사랑에만 눈을 뜬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발자크 작품 속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옷을 만들어 입었고, 예쁘기는 하지만 촌스러웠던 그녀가 점점 도시 처녀들처럼 세련돼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바느질 처녀가 떠났다. 뤄는 그동안 애지중지 해왔던 책들을 불사르고 만다. 바느질 처녀가 아버지에게 남기고 떠난 말 때문이다.

   "발자크 때문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는 거야. 여자의 아름다움은 비할 데 없을 만큼 값진 보물이라는걸." (p252)


   그러던 어느날 바느질 처녀가 사라졌고, 뤄는 아끼던 책들을 모두 불사르기 시작한다.

    결국 '나'와 뤄, 바느질 처녀는 발자크를 통해 중국 사회가 그토록 경계하고 금지된 것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분서를 하고 갱유를 해도 금지된 것을 향한 사람들의 갈망 때문에 완벽하게 막을 수가 없다. 오히려 그것을 부추길뿐.
   당시의 중국 사회는 엄청나게 잔인하다. 단지 아픈 이들을 치료해주는 의사일 뿐인데, 인민의 적이라는 이유로 매질을 가하고 어린 학생들에게는 재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노동을 요구한다. 부모의 지위가 높을수록 그들은 그 노동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또 그들의 무지함은 몸서리치게 만든다. 사람이 아픈 것은 악귀가 들었기 때문이라며 사람이 다 죽어가는데도 매질을 가하거나 무당을 부르는게 고작이다. 그 시절을 고스란히 겪었던 다이 시지에는 신기하게도 그것을 오히려 즐겁게 그려내고 있다. 마치 아이가 어른이 되려면 당연히 겪어야 하는 성장통처럼 말이다.

   다이 시지에는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를 내놓게 된 동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체험했던 삶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늘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었지요. 지금까지는 시나리오만 써왔어요. 하지만 이 이야기만큼은 영화로 다루고 싶지 않았지요. 
   발자크는 우리에게 다른 세계를 보여주었지요. 작중인물들의 욕구, 욕망, '비열한 짓들'을 사실적으로 폭로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발자크가 묘사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날마다 보는 이웃사람들처럼 느껴졌습니다. 그건 정말 문화적 충격이었어요. 중국문학에서는 감정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작중 인물들에게 전형적인 성격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발자크는 잠자리를 하지 않은 여자를 위해서도 죽을 수 있는 기사도 정신이 무엇인지도 가르쳐주었지요.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죠." (p255~256)

   그러면서 오히려 금지가 풀린 지금은 모두들 TV를 보느라 책을 읽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책을 읽게 하려면 금서 목록을 만들어야 한단말인가.

09-117.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2009/08/30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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