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 박상우 산문집
박상우 지음 / 시작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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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일 때 가는 나만의 '그곳'은 없다!

비록 비는다  내리지 않지만 반갑지 않은 태풍 소식에 꼼잡도 할 수 없던 주말 오후, 후덥지근한 날씨 때문에 형광등의 열기조차 짜증이 났던 나는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다른 사람의 여행이나 엿보자 싶었다.
잠깐, 그는 혼자일 때 가는 '그곳'이 있는가본데 나만의 비밀스러운 '그곳'은 어디더라? 주위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여행을 자주하는 탓에 나름 방랑기가 있다고 생각한 나였지만 막상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언제나 나는 혼자인데, 왜 없을까? 사실 혼자서 길을 떠나곤 하지만 그 여행의 목적지에는 항상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떠나는 이유는 사람이 그리워서였고,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지만 온전히 혼자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만의 '그곳'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그곳'을 엿보고 한번 따라해볼까?

그리움과 아쉬움이 가득한 '그곳'
내가 한 곳도 가지지 못한 '그곳'을 무려 10곳이나 가지고 있는 저자는 분명 부자다. 게다가 아주 고마운 사람이다. 이렇게 공개해 버리면 그만의 '그곳'이 될 수 없을텐데 그는 기꺼이 공유하고자 한다. 또 고마운 것은 '그곳'이 모두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 나라 안에 있다는 것이다.
해외 여행지는 멋지기는 하지만 '동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언젠가는 가보게 되겠지, 이 나라 밖을 나서면 꼭 저 곳을 가봐야지, 하며 속으로 다짐은 하지만 아득하기만 하다. 뜬구름처럼. 설혹 가게 되더라도 그 많은 곳을 어떻게 다 가보리. 어딘가는 분명 '동경'으로 남을 것이다.
반면에 이 땅의 '그곳'들은 다르다. 이미 다녀온 곳도 있고, 마음만 먹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갈 수 있는 곳도 있다. 그래서 그리움과 아쉬움이 남는다. '그곳'을 갔던 시절과 함께했던 사람들이 그립고, 미처 내가 보지 못했던 풍경이 아쉽다. 어느날 문득 그 그리움과 아쉬움이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 줄지도 모른다.

그의 여행에 지칠 줄 모른다!
저자가 오랫동안 다녀온 곳을 한번에 따라가려면 지칠 법도 하다.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까? 자신을 따라오는 독자들이 지칠까봐 저자는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두었다. 시원하게 찍힌 사진을 감상할 수도 있고, 머리 식힐 겸 소설을 읽을 수도 있다. '그곳'과 함께한 누군가의 시를 읽을 수도 있고, 그 사연을 들을 수도 있다.
그 쉼 속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법성게' 풀이였다. 오래전 그 뜻도 모른채 무작정 외웠던 '법성게였다. 외운 것이 아까워서라도 언젠가는 그 뜻풀이를 해보리라 마음 먹었었는데 종교서적도 아닌 여행에세이를 통해 해결하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세상에는 땅 부자가 많다. 몇 만 평의 땅을 가진 사람도 있고 몇 십만 평을 가진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소유한 건 그들의 일상영역이 아니다. 오직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부동산일 뿐이다. 반면 개인 소유의 땅은 한 평도 없지만 히말라야를 일상영역으로 만든 사람도 있고 세계를 일상영역으로 만든 사람도 있다. (에필로그, p254)  
   


나의 일상영역은 어디까지일까?
나름 여행 좀 한다는 나의 일상영역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위로는 서울? 아래로는 땅끝마을, 서쪽으로는 태안반도, 동쪽으로는 호미곶 정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니 완벽한 일상영역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온전한 나만의 '그곳'이라고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도 부자가 되고 싶은데, 그렇게 하려면 정말 부지런해져야겠다.
시간은 일몰을 향해 달려가지만 어두컴컴했던 방 안은 맑게 갠 날씨 덕분에 오히려 환해졌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 내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번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소설가가 아닌 여행기를 쓰는 산문가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2008/07/21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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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통행로 - 사유의 유격전을 위한 현대의 교본
발터 벤야민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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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물을 보고도 전혀 다른 깊이로, 전혀 다른 사유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19세기에는 니체가 있었다면 20세기에는 이 사람이 있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발터 벤야민, 그는 베를린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현상학, 프랑크푸르트학파, 하이데거 등과 영향을 주고 받으며 문학, 정치, 영화, 미술, 철학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20세기 사상사에 한 획을 그은 사상가로 꼽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유대인이었다. 1940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가던 중 좌절되자 모르핀을 음독하고 생을 마쳤다.

발터 벤야민의 사유의 세계는 독특, 그 자체이다. 책과 매춘부처럼 어떻게 보면 상당히 이질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물들을 연관짓거나 '아하'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올 정도로 놀라운 비유법을 구사하고 있다.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사유에도 창의성이 얼마나 필요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솔직히 말하면, 그의 사유는 나 같은 내공의 소유자가 단번에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렵다. 그러나 좌절은 금물! 잠시 책에서 눈을 떼고 숨을 몇 번 고르고 나면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으니, 그 순간이 바로 '아하!'하는 소리를 내지를 때다.

라디오PD 정혜윤은 그녀의 저서 『침대와 책』 에서 삶이 휘청거릴 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함께 이 책을 꺼내어 본다고 했다. 그것은 이 책들이 "반성하라고 말하는 대신 성찰하라고 말하기"(p211)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 발터 벤야민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사물들을 통해 삶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힌트들을 찾는 방법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다. 특히 글을 쓰는 사람답게 글쓰기와 비평에 대해서는 끈질긴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의 사유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분야를 넘나든다.
아마 그도 니체의 영향을 받은 사람 중의 한명이리라. 본문 중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터 벤야민의 벽을 넘은 사람이라면 니체에게도 한번 도전해보라. 놀라운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2007년 7월 새물결 출판사에서 나온 것과 같은해 12월에 길 출판사에서 나온 두가지 번역본이 있다. 내가 읽은 새물결 출판사의 책은 번역된 문장 자체가 바르지 못한 것이 많다. 물론 이런 책들의 번역이 까다로운 것도 사실이고, 원문 자체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번역가들이 우리말보다 외국어를 더 가까이 한다는 것도 하나의 사실이다. 그러나 독자들이 더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우리 어법에 맞게 번역하는 것도 번역자의 몫이 아닐까.

2008/07/21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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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숲에 간 호호 아줌마 난 책읽기가 좋아
알프 프로이센 지음, 비에른 베리 그림, 홍연미 옮김 / 비룡소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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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우리 호호 아줌마를 벌써 잊어버린 것은 아니겠죠?
호호 아줌마네 집 뒤에는 낡은 울타리가 있고, 거기에는 문이 하나 있어요. 그 문을 지나가면 마법의 숲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해요. 크리스마스 전날이었어요. 호호 아줌마는 아저씨에게 마법의 숲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로 쓸 나무를 베어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아저씨가 시간이 없다고 하네요. 별 수 있나요? 못하는 것이 없는 우리의 호호 아줌마가 나섰죠. 나무를 베려고 도끼를 드는 순간, 아이쿠 이걸 어째요. 호호 아줌마가 찻숟가락만하게 작아져 버린거예요.
크리스마스 이브에 하얀 눈이 펑펑 내리면 정말 좋겠지만, 찻숟가락만큼 작아진 호호 아줌마에게는 그리 좋은 일이 아니랍니다. 하필이면 이때 또 눈이 내리기 시작하네요. 정말 큰일이네요. 발이 푹푹 빠지는 눈 때문에 꼼짝도 할 수 없게 된 아줌마, 그러나 다행히 아줌마처럼 작은 가족들을 만나게 돼요. 정말 이 숲은 마법의 숲이 맞나봐요.
호호 아줌마가 찻숟가락만큼 작아지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멋진 모험이 펼쳐지는 것 다들 아시죠? 그래서 아줌마가 작아져도 절대 실망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그런데 이번에는 곤란한 일들이 생겨버려요. 사라진 인형 대신 호호 아줌마를 인형극 무대에 세우기도 하구요, 수영을 배우려다가 갑자기 작아지기도 하고, 꼬마 까마귀에게 잡혀가 호되게 당하기도 하고, 감자 도둑을 잡으러 나섰다가 감자 바구니에 빠져 감자와 함께 삶길뻔도 해요.
그래도 항상 적절한 타이밍에서 다시 커지니까 아직까지는 큰 문제가 일어나지는 않았어요.
마지막 세번째 이야기에서는 호호 아줌마가 나들이를 나선다고 해요. 호호 아줌마의 나들이, 정말 기대되지 않나요?

2008/07/20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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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고래
김형경 지음 / 창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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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소설가를 단지 그가 쓴 한 편의 산문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영구제명 시켜버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평소 심리 운운하는 것은 그 주체가 무엇이든 싫어하지 않았던가. 혹여 또 심리를 운운하더라도 적어도 소설로 그를 판단해야 정당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얼마전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열입곱살 소녀 니은은 부모님의 고향인 장승포로 내려간다. 딱히 그곳에 그녀를 보살펴 줄 일가친척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부모님이 늘 입버릇처럼 말하던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그곳은 처용과 황옥의 이야기가 신화처럼 내려오는 곳이고, 고래잡이로 유명했던 곳이다.
장포수 할아버지는 장승포에서도 알아주는 고래잡이였다. 할아버지가 바다로 나가면 고래들이 할아버지를 따르는듯 했고, 할아버지도 고래들과 대화를 나누는듯 했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별명도 '대왕고래'다. 포경이 금지된 이후, 할아버지는 다시 바다로 나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왕고래집 할머니는 오랫동안 장승포에서 식당을 하며 살았다. 할머니는 다치거나 길 잃은 생명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할머니에게 니은도 그런 존재였다. 얼마전부터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할머니는 니은에게 숙제를 확인 받고, 니은은 할머니의 숙제를 통해 할머니의 지나온 삶을 엿보게 된다.
열일곱살 때 배를 탄 할아버지와 열다섯살 때 이미 결혼한 할머니처럼 니은도 어른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니은은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어릴적 수영하며 놀던 푸른 바다를 잃어버린 아빠, 어릴적 자신이 키우던 강아지가 죽임을 당한 엄마, 평생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고래잡이를 할 수 없게 된 할아버지,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버린 할머니.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상실을 경험했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다른 사람과 다르게 변해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픈만큼 성장한다고 정말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어른이 된 것일까? 내가 어른이 된 것은 언제였을까? 사실 우리의 삶은 아날로그 시계처럼 그 경계가 모호할 수 밖에 없다. 어느 한 시점을 계기로 가속도가 붙을 수는 있겠지만 그 시점부터 어른이 되었다고 단정짓지는 못할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난 아직도 어른이 되기 위해 성장 중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어른이 된다는 건 자기 고집 속에 갇히게 된다는 뜻일까? (p77)

고아라는 말은 나이가 더 적은 어린애에게나 어울렸다. 고아 청소년이라는 말은 없었다. 열일곱살에 부모를 잃으면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고아보다는 어른이 되기로 했어." (p90)

아무렇지도 않고 아무것도 아닌 기억이란 없었다. (p97)

어른들이 잃어버린 것들 때문에 이상해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잃어버린 것을 슬퍼하느라 이상해지는 것 같다. 나도 이제 나만의 슬퍼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이상한 방법을. (p157)

나도 기억하는 방법을 몰라서 저 물건들을 오래 붙잡고 있었다. 내 인생을 낡은 물건들을 쌓아두는 창고로 만든 셈이지. 잘 떠나보내고서 기억하고 있으면 되는걸. (p236)

 
   


고래는 왜 신화처럼 숨을 쉴까?
"고래사냥"이라는 옛날 노래가 있다. 그 노래 속에는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라는 가사가 등장한다. 신화처럼 숨을 쉰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니은도 의문만 덩그러니 품은채 그 답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보통 우리가 신화라고 하는 것은 100%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진실에 어느 정도의 상징적인 의미가 가미된 것을 말하는데, 장승포 사람들에게도 처용이나 황옥 신화처럼 고래가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고래가 작살을 맞으면 쉽게 죽지 않고 도망치면서 물속에 숨었다 숨쉬러 나왔다 하거든. 그러면서 두 시간, 세 시간씩 고래배를 끌고 다닌다. 그러다가 고래가 지치면 배를 고래 가까이 붙이고 정확하게 급소에 작살을 꽂는다. 급소를 맞은 고래는 죽기 전에 마지막 숨을 내뿜는데, 그 숨에는 피가 뿜어져나온다. 핏빛 물뿜기가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온 바다 가득 퍼진다. 그걸 꽃핀다 한다. (p103)

 
   


2008/07/20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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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의 연애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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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나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데뷔한 작가 심윤경은 『달의 제단(2004)』, 『이현의 연애(2006)』, 『서라벌 사람들(2008)』 등 2년마다 한 편씩 장편소설을 선보이며 이름을 떨쳤다. 그녀의 데뷔작을 읽고 완전 반해버린 나는 『서라벌 사람들』, 『달의 제단』을 거쳐 마지막으로 『이현의 연애』를 읽게 됐다.
그리 많은 작품을 써낸 것도 아니고, 책과 책 사이의 간격이 큰 편도 아니어서 어느 것을 먼저 읽든 상관은 없어 보이지만 왜 하필이면 이 작품이 마지막이었을까? 사실은 제목 탓이다. 적어도 그동안 내가 보아온 심윤경은 시시한 연애 이야기를 할 사람이 아니다. 매 작품마다 남녀간의 사랑이 빠지지 않았지만, 그것이 그녀가 하고자하는 주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런데 대문짝만하게 '연애' 이야기를 하겠다고 하지 않는가. 그녀를 향한 무조건적인 믿음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현의 노래』와 같은 '현(絃)'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잖아, 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재경경제부에서 일하는 이현은 어느날 매점에서 일하고 있는 한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 그녀는 이현이 여섯 살 때 부모님과 함께 결혼식장에 갔다가 첫눈에 반해버렸던 신부, 그러니까 그의 첫사랑이었다. 여전히 그녀에게서는 살구향이 났고, 그녀를 감싸고 있는 눈부신 외모는 남자들을 매점으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어릴적 함께 찍었던 결혼식 사진을 들고 이현을 찾아가자 그녀는 사진 속 신부가 자신의 어머니라고 했다. 마흔이 넘도록 간직해왔던 첫사랑인데 이번에는 절대 그녀를 놓칠 수 없다.
그녀의 이름은 이진, 영혼을 기록한단다. 영혼이라면 귀신? 그렇다면 그녀는 무당처럼 신내림이라도 받은 것이란 말인가? 그런데 그것도 아니란다. 그녀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의 영혼, 그러니까 생령을 기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령들은 그녀를 끊임없이 찾아오고, 그녀는 생령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생령이 되어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단다. 그녀의 아버지는 한때 시인으로 이름을 날렸던 왕실 혈통의 이생 공. 굳이 그녀가 매점에서 일하지 않아도 될만큼 이생 공은 부유하지만, 영혼을 기록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한 딸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해줄 수 없다고 한다. 매점 일을 하느라, 그녀를 끊임없이 찾아오는 영혼을 상대하느라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그녀에게 이현이 스폰서가 되어주겠다고 제의한다. 3년 동안 자신과 결혼해서 살아준다면 3년 후에는 그녀가 평생 영혼을 기록하며 살 수 있을만큼의 위자료를 주겠다는 것이다.
일명 계약결혼인데, 이건 너무 이현에게 불리한 조건이 아닌가? 사실 이현에게는 세 번의 이혼이라는 화려한 경력이 있다. 그가 굳이 3년이라고 명시한 것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이 3년을 넘긴 적이 없기 때문이다. 3년이 지나면 이내 상대에게 싫증을 느끼는 그를 솔직하다고 해야할까? 아님 바람둥이라고 해야할까? 흔히 우리가 하는 이야기 중에 결혼하면 남녀간의 사랑은 3년 이상 가지 못한다고 한다. 그 시기가 지나면 그저 자식 바라보며 산다고 하는데, 적어도 이현은 자신의 감정에는 솔직하지 않은가.
그런 이현에게 이생 공은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와 결혼하면 행복할 수 없을거라며 그를 말린다. 아무리 그래도 이진은 자신의 딸인데 이생 공은 왜 그리도 싫어하는 것일까?

기록되지 못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평범한 사람들을 기록하는 이진, 덕분에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녀 자신의 존재감은? 그녀는 단지 기록하기 위해서 존재할 뿐이다. 그녀는 기록을 멈출 수 없고, 그녀의 생활은 기록하는 일에 맞춰져 있다. 이현이 그녀의 노트를 찢어버리고, 더이상 기록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녀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자신이 미처 다하지 못한 기록을 이어가기 위해 또다른 자신을 잉태하고, 그 숙명이 얼마나 오랫동안 되풀이 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진은 그녀의 어머니처럼 그 존재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다. 이현이 찢어버린 노트에다가 그녀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은 그녀의 노트를 읽고 찢어버린 자신의 배덕 행위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느 '연애'담처럼 달콤하지도 않고, 행복한 결말도 없지만 이야기 자체는 독특하다.

『이현의 연애』는 이현과 이진의 이야기 사이에 '이진의 기록' 네 편이 어우러져 있다. 네 편 중 두 편은 이미 써놓은 것이고, 두 편은 새롭게 쓴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앞의 두 편은 완전히 독립적인 단편처럼 읽혀지지만, 뒤의 두 편은 이진의 기록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장편소설로 데뷔한 심윤경은 지금까지 줄곧 장편만 고집해 왔다. 그러나 그녀의 장편들을 읽다보면 어쩌면 다음에는 단편집을 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달의 제단』에서는 서간의 형태로 살짝 선보였고, 이 작품에서는 '이진의 기록'이라는 이름을 빌려, 그리고 『서라벌 사람들』에서는 연작소설의 형태를 빌려 쓰고 있다.

과연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존재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귀신이라고 말하니까 조금 이상하네요. 세상 사람들이 부르는 귀신이라는 이름에는 아무래도 경멸적이거나 적대적인 어감이 섞여 있어요. 귀신보다는 영혼이라고 하는 게 좋겠어요. 그래요, 영혼이지요. 죽은 사람의 영혼일 때도 있지만 대개는 살아 있는 사람의 영혼이에요. (p30)  
   

2008/07/20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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