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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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10대들의 날 것 그대로의 야생을 보여드립니다!

   솜털이 보송한 소녀가 힘겹게 쇼핑용 카트를 밀면서 고속버스터미널 안에 있는 장애인용 화장실 부스로 들어갑니다. 단단하고 매정하게 조여놓은 복대를 풀자 방신한듯 둥근 배가 아래로 축 처집니다. 몸 속으로부터 양수가 터져 나오고, 엄청난 진통이 시작되더니 아랫배를 찢어대는 듯한 통증과 함께 사라집니다. 그리고 아직 울음도 터뜨리지 못한 핏덩이가 화장실 바닥에 있습니다. 소녀는 아기가 울음을 터트리기 전에 숨을 끊어놓으려고 했지만 아기의 입에서 울음소리가 터져나와 실패하고 맙니다. 기절한 사이 소녀는 병원으로 실려가고 핏덩이는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장사를 하고 있던 '돼지엄마'라는 여자가 데려갑니다. 이 아기가 바로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주인공이 된 '제이' 입니다. 이렇게 주인공은 그 탄생부터 남다른가 봅니다.


   '동규'는 돼지엄마와 제이가 세들어 살던 주인집 아들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입을 닫아버린 '동규'는 오직 '제이'를 통해서만 목소리를 냅니다. '제이'는 동규의 몸짓과 표정만 보고서도 '동규'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알아챌 수 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동규는 제이가 잘못 이해하더라도 제이가 이해한대로 그대로 따르기도 합니다. 태어나자마자 버림 받은 '제이'는 '돼지엄마'에게 두 번째 버림을 받고 시설로 들어가게 되고 그렇게 그들은 헤어지는듯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시설에서 나온 제이가 동규를 찾아오면서 그들은 함께 거리를 방황하게 됩니다.


   "뉴스에서 볼 때는 설마 그런 일들이 있을까 싶었는데."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은 결국 모두 현실이 된대요." (p.273)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방황하는 10대, 즉 거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가출 소년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한번쯤 뉴스를 통해 봤을 법한 일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금의 가출 청소년들의 현실이라고 마주하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던 일들이 펼쳐집니다. "인간의 세계가 아니라 날것 그대로의 야생"(p.98)의 이야기가 쏟아져서 낯설고, 기존에 우리가 알던 세대들의 이야기가 아니라서 낯섭니다. 이렇게도 이 소설이 낯선 이유는, 산문집 『말하다』에서 언급한 것처럼 작가가 멀찍이 떨어져서 그들을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록 불편하더라도 가까이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써내려 가고 있습니다. 


   작가의 윤리는 그가 제시하는 테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소재와 플롯, 인물의 관계를 설정하는 건축술에서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설정에서 예컨대, 거리에서 살아가는 10대들의 야생의 삶을, 마치 지프를 타고 사파리 유람을 하는 관광객의 시선으로 보도록 배치하는 것은 저로서는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그 이야기를 쓰고는 싶지만, 그것을 '현시'하고 싶지는 않을 때, 작가로서는 그 '편안한 거리'를 좁힐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말하다』, p.114)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것은 '광복절 대폭주'입니다. 소설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삼일절, 광복절이 되면 한밤의 '폭주'가 벌어집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그  '폭주'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경찰의 성과만 희미하게 발표될 뿐입니다. 그것은 물론 취재의 어려움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그 '폭주'가 어떻게 리더를 정하고, 어떤 시스템으로 진행되는지 자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저 무질서하게 달린다고만 생각했던 행위가 나름의 규칙과 역할을 정해놓고 달린다는게 신기할 뿐입니다.


   함구증에 걸린 '동규'가 '제이'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냈던 것처럼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아무도 관심가져 주지 않았고, 그저 피하기만 했던 방황하는 10대들의 목소리에도 한번쯤 귀 기울여 달라는 작가의 목소리를 담은게 아닐까요?

Q.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길과 길이 만나는 데"서 태어났다고 하는 소년 제이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제이의 짧은 생애를 서술하는 가운데 빈곤한 10대의 일탈적인 생태에 주의를 집중합니다. 길 위의 젊음 또는 비행과 무숙의 삶을 그렇게 반복해서 다루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비행과 무숙의 서사 계통`이라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될 것 같은데요. 사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가제가 `무숙자 제이의 짧고 숭고한 생애`였거든요. 주변의 의견을 들어봤더니 무숙자라는 말이 낯설고 어렵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질문에 무숙이라는 말이 대뜸 나오는 걸 보니 역시 그 제목이 더 나은게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문득 듭니다. (『말하다』, p.93~94)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언급한, 마술의 전제를 깨고 개입하는 중국의 어린 황제야말로 저의 이런 고민을 회화적으로 상징하는 존재일 겁니다. 깨면 재미없어지는 것을 알면서도 깨지 않을 수 없다는 것. 그런 충동에 사로잡힌다는 것. 이게 저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서사의 윤리와도 관계가 있지만 매끈하게 잘 읽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저의 생래적 거부감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오래된 플롯 전통에 의지해 이야기를 끌고 가다가 돌연 그것을 망가뜨리고 싶은 충동이 제 내부에 있는 거죠. (『말하다』,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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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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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이 겪는 인생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강렬한 것이지만 흔해빠진 '죽음'! 

   아마도 이것이 『에브리맨』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의 운명일까요?​ 이미 읽은 책인데 이 소설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주인공도 떠오르지 않고,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Everyman, 즉 '보통 사람'이 겪는 흔해빠진 일이기 때문일까요?


   『에브리맨』은 한 남자의 장례식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황폐한 공동묘지에 있는 무덤 주위에는 그의 옛 동료들과 가까운 가족들이 모여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딸 낸시가 모인 사람들을 향해 이 공동묘지가 가족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아버지를 왜 이 곳에서 묻었는지 설명합니다. 형 하위가 어린 시절의 '그'가 어땠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마지막을 맞이하게 됐는지 추억합니다. 비록 생전에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그의 두 아들들도 그의 무덤에 흙을 보탭니다. 이것으로 끝입니다. 특별한 일이란 없습니다. 보통 장례식이란 이런 풍경으로 진행되는 것이니까요.


   그것으로 끝이었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들이 모두 하고 싶은 말을 했을까? 아니, 그렇지 않았다. 또 물론 그렇기도 했다. 그날 이 주의 북부와 남부에서 이런 장례식, 일상적이고 평범한 장례식이 오백 건은 있었을 것이다. 두 아들 때문에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간 삼십 초, 그리고 죽음이 발명되기 이전에 순수하게 존재했던 세상, 아버지가 창조한 에덴, 구식의 보석상이라는 탈을 쓴 폭 5미터 깊이 12미터밖에 안 되는 크기의낙원에서 이루어지던 영원한 삶을 하위가 아주 공을 들여 정확하게 되살려낸 것 외에는 다른 여느 장례식보다 더 흥미로울 것도 덜 흥미로울 것도 없었다. 그러나 가장 가슴 아린 것, 모든 것을 압도하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한 번 더 각인시킨 것은 바로 그것이 그렇게 흔해빠졌다는 점이다. (p.22~23)


   "모두들 한 번쯤은 백 년이 지나면 지금 지구상에 살아 있는 사람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을"(p.173) 겁니다. 누구나 태어나면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되는 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죽음은 그렇게 흔해빠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눈 앞에 닥치기 전까지는 아무도 실감하지 못합니다.

   주인공인 "그"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병원 신세를 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몇 번의 수술 끝에 그는 심장 옆에 제세동기라는 이물질을 달고 살게 됐습니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여자와 사랑에 빠질만큼 매력적이고 자신감 넘쳤던 그의 남성성도 발산하지 못한지 오래입니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씩 병에 걸리고 세상을 떠나자 그 역시 '죽음'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일은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 진행되었다. 이제 한 해도 입원 없이 지나가지 않았다. 장수한 부모의 아들이고, 토머스 제퍼슨 고등학교에서 공을 들고 뛰던 때와 마찬가지로 변함없이 건강해 보이는 여섯 살 위의 형을 둔 동생이었지만, 그는 아직 육십대에 불과한데도 건강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몸은 늘 위협을 당하는 것 같았다. 그는 세 번 결혼을 했고, 애인들과 자식들과 성공을 안겨준 흥미로운 일자리를 가졌지만, 이제 죽음을 피하는 것이 그의 삶에서 중심적인 일이 되었고 육체의 쇠퇴가 그의 이야기의 전부가 되었다. (p.76)


   그는 별난 사람도 아니었고, 일그러진 사람도 아니었고, 어떤 식으로든 극단적인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합리적이고 인정이 많았으며, 친화력이 있고, 온건하고, 근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은퇴 이후에 그가 맞이한 삶은 상당히 쓸쓸합니다. 갑자기 심장마비가 와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하지 않고 그저 아픈 몸을 기댈 수 있는 가족 하나 없습니다. 언제봐도 사랑스러운 딸 '낸시'와 믿음직스러운 형 '하위'가 있기는 하지만 그들 곁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수술실로 혼자 들어갑니다.


   그는 이른 아침 혼자 차를 몰고 병원으로 가서 수술 층의 유리로 둘러싼 대기실에서 병원 가운을 입은 다른 남자 열인가 열두 명인가와 함께 기다렸다. 모두 그날 같은 시간에 여러 곳에서 진행될 첫 수술을 받을 사람들이었다. 대기실은 아마 오후 네시까지도 이렇게 꽉 찰 터였다. 환자들 대부분은 반대편 끝으로 나오겠지만, 몇 주에 걸쳐 몇 명은 나오지 못할지도 몰랐다. (p.73)


   그렇게 그는 수술을 받았고, 다시 깨어나지 못합니다. 『에브리맨』은 한 남자의 장례식으로부터 시작해 그의 장례식에서 끝납니다. 이야기가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다소 서늘하지만 잔잔하게 흘러갑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현실을 다시 만드는 건 불가능해.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여.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여라. 다른 방법이 없어."(p.83) 그렇습니다. 죽음을 피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저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요.

   『에브리맨』의 주인공은 '그'로만 지칭될 뿐 이름이 없습니다. 그저 '보통 사람'일 뿐입니다. 우리처럼요. 그래서 이름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혹시 '그'처럼 잊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언젠가 우리도 『에브리맨』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아니 됩니다. 참 서늘하고 섬뜩한 소설입니다.


   그가 알게 된 것은 삶의 종말이라는 피할 수 없는 맹공격이 가져온 결과 전체와 비교하자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가 긴 직장생활 동안 사귄 모든 사람의 괴로운 사투를 알았다면, 각각의 사람들의 후회와 상실과 인내가 담긴, 공포와 공황과 고립과 두려움이 담긴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알았다면, 이제 그들이 떠냐야 할 것, 한때 그들에게 생명과도 같았던 그 모든 것을 알았다면, 그들이 체계적으로 파괴되어가는 과정을 알았다면, 그는 하루 종일, 또 밤늦도록 계속 전화기를 붙들고, 전화를 적어도 수백 통은 해야 했을 것이다.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 (p.162)


   인생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강렬한 일이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정말 부당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일단 삶을 맛보고 나면 죽음은 전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삶이 끝없이 계속된다고 생각해왔지요. 내심 그렇게 확식했습니다. (p.175)

그가 알게 된 것은 삶의 종말이라는 피할 수 없는 맹공격이 가져온 결과 전체와 비교하자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가 긴 직장생활 동안 사귄 모든 사람의 괴로운 사투를 알았다면, 각각의 사람들의 후회와 상실과 인내가 담긴, 공포와 공황과 고립과 두려움이 담긴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알았다면, 이제 그들이 떠냐야 할 것, 한때 그들에게 생명과도 같았던 그 모든 것을 알았다면, 그들이 체계적으로 파괴되어가는 과정을 알았다면, 그는 하루 종일, 또 밤늦도록 계속 전화기를 붙들고, 전화를 적어도 수백 통은 해야 했을 것이다.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 (p.162)

인생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강렬한 일이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정말 부당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일단 삶을 맛보고 나면 죽음은 전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삶이 끝없이 계속된다고 생각해왔지요. 내심 그렇게 확식했습니다.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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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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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두 가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첫 번째 이야기 입니다. 1970년대 후반 인도 정세가 나빠지자 인도 폰디체리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는 파이의 아버지는 가족들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기로 합니다. 그들은 미국 동물원에 팔 동물들을 화물선에 함께 싣고 태평양을 건넙니다. 그런데 배가 침몰하고 파이 혼자 구명보트에 남게 됩니다.

   배가 가라앉았다. 괴물이 내는 금속성 트림 같은 소리가 났다. 물건이 수면 위로 쏟아져 나오더니 사라졌다. 모든 게 비명을 질러댔다. 바다며 바람, 내 마음까지. 구명보트에서 보니 물속에 뭔가가 있었다.
   나는 소리쳤다.
   "리처드 파커,너니? 잘 보이지 않아. 아, 빗줄기가 멈추었으면! 리처드 파커? 리처드 파커니? 그래, 너구나!"
   그의 머리가 보였다. 리처드 파커는 수면에 떠 있으려고 버둥거렸다.
   "예수님, 성모님, 마호메트님, 비슈누님! 널 만나서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 리처드 파커! 포기하지 마, 제발. 구명보트로 와. 호루라기 소리 들리니? 휘이이! 휘이이! 휘이이! 제대로 들었구나. 헤엄쳐. 헤엄치라구! 넌 헤엄 잘 치잖아. 삼십 미터도 안돼." (p.128)

   바다 위에 떠있는 리처드 파커를 발견한 파이는 반가운 마음에 리처드 파커를 구명보트에 태웁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자마자 이내 좌절합니다. 비록 어릴 때부터 동물원에서 키우긴 했지만 '리처드 파커'는 벵골 호랑이이기 때문입니다. 배가 고프면 언제 맹수의 본성을 드러낼지 모릅니다. 게다가 이 구명보트에는 이들보다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생명체가 있었습니다. 비록 벵골 호랑이보다 덩치는 작지만 좀 더 야비한 하이에나 입니다. 이 구명보트에 아무도 타지 않았던 이유는 이 하이에나가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리가 부러진 얼룩말 한 마리와 오랑우탄도 있습니다. 아무리 30명 이상 탈 수 있는 구명보트라고 하지만, 이렇게 다른 생명체들이 함께 공존하기에는 위험한 곳이긴 합니다.
   호랑이와 하이에나, 두 마리의 맹수 덕분에 파이는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게 됩니다. 비록 지금은 호랑이가 배멀미 때문에 꼼짝도 않고 누워있기는 해도, 당연히 하이에나가 호랑이의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배가 너무나도 고팠던 하이에나는 다리가 부러진 얼룩말을 먼저 공격하고, 그 다음에는 오랑우탄을 해치웁니다. 하지만 결국 호랑이에게 일격을 당해 그 또한 뼈도 못 추리게 됩니다.
   호랑이와 파이 외에는 더이상 먹잇감이 남지 않게 되자 파이는 물고기를 잡아서 호랑이에게 주고, 바닷물을 증류하고 빗물을 받아 호랑이의 갈증을 해결해 줍니다. 호랑이가 힘들어 하는 배멀미까지 적절히 이용해 호랑이를 길들이기 시작합니다. 덕분에 호랑이는 아무리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도 자신에게 먹이를 제공해주는 파이를 건드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파이는 구명보트 안에서 호랑이와 동거하며 227일을 버팁니다. 온갖 죽을고비를 넘기며 겨우 멕시코에 도착하자마자 호랑이는 밀림으로 사라집니다.

   내가 쳐다본 그 순간, 리처드 파커는 내 몸 위로 뛰어올랐다. 말할 수 없이 활기찬 그의 몸이 내 머리 위로 쭉 뻡은 모습은, 털 달린 무지개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 그는 물 속에 떨어졌다. 뒷다리를 벌리고 꼬리를 꼿꼿이 세운 채, 물속에서 몇 걸음 뛰어 해안에 닿았다. 그는 왼쪽으로 가서 젖은 모래를 앞발로 파다가 곧 마음을 바꾸어 몸을 휙 돌렸다. 그는 오른쪽에 있는 내 앞으로 똑바로 지나갔다.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몇 미터쯤 해안을 뛰더니 방향을 돌렸다. 균형을 잡지 못해 뒤뚱뒤뚱 걸었다. 리처드 파커는 몇 차례 넘어졌다. 밀림이 시작되는 곳에서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그가 내 쪽으로 방향을 틀 거라고 확신했다. 날 쳐다보겠지. 귀를 납작하게 젖히겠지. 으르렁대겠지. 그렇게 우리의 관계를 매듭지을 거야. 그는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다. 밀림만 똑바로 응시할 뿐이었다. 그러더니 고통스럽고, 끔찍하고, 무서운 일을 함께 겪으면서 날 살게 했던 리처드 파커는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내 삶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p.352~353)

   화물선의 침몰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파이를 찾았던 일본 운수성 사람들은 파이의 이야기를 믿지 않습니다. 좀 더 믿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해서 두 번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여기서부터 다음 *까지는 스포일러 주의구간입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 분들은 다음 *까지 건너뛰어 주세요.
 
   배가 침몰하자 파이는 어머니와 함께 구명보트에 탑니다. 이 구명보트에는 다리를 다친 어린 선원 한 명과 요리사도 있었습니다. 요리사는 그냥 두면 상처가 더 깊어질테니 부상 당한 선원의 다리를 잘라내자고 합니다. 파이와 어머니도 다리를 절단하는 요리사를 도와주게 됩니다. 그런데 선원은 죽고, 요리사는 선원의 상처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선원의 다리를 낚시 미끼로 사용하기 위해 잘라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미끼로 사용하기 위해 발라낸 살점을 먹기까지 합니다. 그 다음에는 당연히 파이와 어머니가 요리사의 타깃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머니는 파이를 살리기 위해 요리사에게 달려들어 죽음을 당하고 파이는 요리사를 죽입니다.

   "그럼 말해보세요. 어느 이야기가 사실이든 여러분으로선 상관없고, 또 어느 이야기가 사실인지 증명할 수도 없지요. 그래서 묻는데요, 어느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나요? 어느 쪽이 더 나은가요?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요. 동물이 안 나오는 이야기요?"
   오카모토 : "그거 흥미로운 질문인군요……."
   치바 :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요."
   오카모토 : "그래, 동물이 나오는 쪽이 더 나은 이야기 같아요."
   파이 파텔 : "고맙습니다. 신에게도 그러길." (p.39)

   두 번째 이야기를 들려주자 너무나도 끔찍한 이야기에 일본 운수성 사람들은 차라리 첫 번째 이야기를 믿겠다고 합니다. 만약 당신이라면 어떤 이야기를 선택하겠습니까? 믿어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인간이 야성이 들끊는 맹수를 길들이며 227일을 견딘 이야기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살기 위해 인간다움까지 저버리며 야만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일본 운수성 사람들은 그래도 인간이 인간답기를 원했을지 모르겠지만, 요즘처럼 하루가 멀다하고 '악'한 사람들이 뉴스에 등장하는 때라면 오히려 두 번째 이야기를 더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파이 이야기』는 '믿음'에 대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사실은 어떤 이야기를 믿느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신을 향한 믿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인도 여행길에서 작가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 노신사도 이렇게 말합니다. "내 이야기를 들으면, 젊은이는 신을 믿게 될 거요."(p.10)라고 말입니다. 부커상 심사위원장도 "믿음이라는 문제를 창의적으로 탐구한 작품으로, 독자로 하여금 신을 믿게 한다"고 평했습니다.
   당신이 어떤 이야기를 믿든, 아니면 신을 믿든 『파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 들일 것인지는 오로지 당신의 몫입니다!

"리처드 파커, 다 끝났다. 우린 살아남았어. 믿을 수 있니? 네게 도저히 말로 표현 못 할 신세를 졌구나. 네가 없었으면 난 버터내지 못했을 거야. 정식으로 인사하고 싶다. 리처드 파커, 고맙다. 내 목숨을 구해줘서 고맙다. 이제 네가 가야 될 곳으로 가렴. 너는 평생을 동물원의 제한된 자유 속에서 살았지. 이제 밀림의 제한된 자유를 알게될 거야. 잘 지내기를 빌게. 인간을 조심해야 한다. 인간은 친구가 아니란다. 하지만 나를 친구로 기억해주면 좋겠구나. 난 널 잊지 않을거야, 그건 분명해. 너는 내 안에, 내 마음속에 언제나 있을 거야. 이 쉿쉿 소리는 뭐니? 아, 우리 배가 모래에 걸렸나 보다. 자, 잘 가, 리처드 파커. 안녕.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p.354~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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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생 때, 너무 많이 읽은 탓에 지금은 흥미가 뚝 떨어져 거의 읽지 않고 있는 영문학들. 사람들이 어떤 작가를 좋아하냐고 물으면 좋아하는 작가 대신 영문학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사라졌던 영문학에 대한 흥미를 다시 일깨워줍니다. 어릴 때 읽었지만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 영문학의 고전들을 다시 읽고 싶게 만듭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25인의 영문학 작가들이 쓴 작품 가운데 꼭 다시 한번 읽고 싶은 책들을 소개합니다.


리뷰보기 ▶ http://heeya1980s.blog.me/220307610609


1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영문학 스캔들- 불꽃 같은 삶, 불멸의 작품
서수경 지음 / 인서트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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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종길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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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그녀의 사후 50여 년이 지난 후부터 『폭풍의 언덕』이 새롭게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먼저 『달과 6펜스』로 유명한 작가 서머싯 몸이 ˝『폭풍의 언덕』은 그 어느 소설과도 비교가 불가능하다. 세계 10대 소설로 꼽을 만하다.˝라는 발언으로 재평가 작업을 시작했다. 버지니아 울프도 `우리가 인간 존재에 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뿌리째 뒤흔든다.`고 평가했으며, 프랑스 작가이자 사상가인 조르주 바타유는 이 소설을 두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책 중의 하나`라고 극찬을 했다. (p.280~281)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지음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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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추종자`라는 단어는 1895년에 처음 만들어졌다. 무조건적으로 제인 오스틴을 숭배하는 사람을 뜻하는데, 그들 말에 따르면 사람들이 제인 오스틴을 그냥 `제인`으로 부르는 것을 매우 흥미로운 일이라고 한다. 아무리 유명해도 셰익스피어를 `윌리엄`이라고 부르거나 헤밍웨이를 `어니스트`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없다는 것이다. 오직 제인 오스틴만이 제인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만큼 독자들이 오스틴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 된다는 주장이다. (p.264)
율리시스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종건 옮김 / 생각의나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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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은 소설, 읽는 내내 계속 읽을 것인지를 갈등하게 하는 소설, 세상에서 가장 많은 논문이 쓰인 소설, 심지어는 『율리시스』가 만들어 낸 문학박사가 『율리시스』를 읽은 독자들보다 더 많을 것이라는 농담까지 있을 정도의 소설이 바로 『율리시스』다. (p.209)

˝나는 『율리시스』 속에 너무나 많은 수수께끼와 퀴즈를 감춰 두었기 때문에 앞으로 수세기 동안 대학 교수들은 내가 뜻하는 바를 거론하기에 분주할 것이다. 이것이 자신의 불멸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다.˝ - 제임스 조이스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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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무진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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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없는 세상과 시간을 '정리'하는 계산법!

단편소설 「강산무진」, 김훈, 『내일을여는작가』 2006년 봄호 

   개인적으로 김훈 작가의 문장과 이력을 좋아해서 필사(筆寫)를 하면서 김훈 작가의 단편소설들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눈으로 읽는 것과 손으로 읽는 것에는 확실히 차이가 있습니다. 7년 전에 「강산무진」을 처음 읽었을 때는 그 느낌을 정리할 수 없었던 탓인지,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았었는데 손으로 좀 더 천천히, 좀 더 깊게 읽은 지금은 기록으로 남길 것들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정리하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강산무진」은 '오십칠 세의 대기업 이사가 어느 날 갑자기 간암 판정을 받고 주변을 정리한 다음 치료차 아들이 있는 미국으로 떠나는 과정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는 작품'(p.365, 해설) 입니다.  

   중저가 의류회사에서 상무로 일하고 있는 주인공 '김창수'는 몸속에서 희미한 구역질 같은 증세가 계속되자 종합검진을 받습니다. 마침 얼마 전에 보험을 가입하면서 받은 검진료 오십 퍼센트 할인권이 있어서 유효기간이 끝나는 날 혈액검사, 소변검사, 허파 MRI 촬영, 위 내시경 검사를 하루 꼬박 걸려서 받고 다음날 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 검사까지 받습니다. PET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신체부위와 장기 안의 암세포뿐 아니라 암으로 발전할 수 있는 악성변종세포를 정밀히 촬영해내는 첨단장비라고 하는데, 이 검사를 통해 간암 판정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의사는 PET는 오진이 없다며, 삼 개월이나 사 개월 후에는 입원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장기투병이 될 수 있으니, 그 안에 주변도 정리하라고 합니다. '우선 일에서 풀려나고, 가족들과 마음을 합치는 것이 가장 중요'(p.318)하다고 덧붙이기도 합니다.

 

   회사 인사부에 전화를 걸어서 퇴직에 관련된 정산사항들을 알아보았다. 겨울용 수출물량이 모두 선적되어 출항했기 때문에 업무상 인계사항은 없었다. 수출대금은 한 달 후에 회사 법인통장으로 온라인 입금될 것이었고, 미수금 독촉은 경리부장의 소관이었다. 회사를 여러 번 옮겨다녀서 내 근무연속은 칠년에 불과했다. 퇴직금은 오천만원 정도였다. 회사에서는 명예퇴직제도를 시행중이었다. 정년이 오 년 미만인 고액 봉급자들이 사표를 제출하면 근속연수에 따른 퇴직금 이외에 정년 때까지의 잔여금여의 반액을 위로금으로 지급하는 제도였다. 말이 좋아서 명예퇴직이지, 고액 봉급자들의 사직을 권고하는 제도였다. 나는 정년까지 이 년이 남았으므로 명예퇴직을 신청하면 위로금 액수는 팔천사백만원 정도였다.

   회사는 8월 말에 전 사원에 대해서 정기 신체검사를 실시했다 회사가 지정한 종합병원에 가서 정밀진단을 받아야 하는데, 거기서 업무를 추진하기 어려울 정도의 질환이 발견된 사원들은 육 개월간의 대기기간을 거쳐서 해직되었다. 명예퇴직 위로금을 받으려면 정기 신체검사 전인 8월 중순쯤에 사표를 제출해야 했다.

   회사는 연말에 한 번씩 보너스를 지급했는데, 10월 1일 이후에 퇴사하는 사원들은 연말까지 근무한 것으로 인정해서 일 년치 보너스 전액을 퇴직시에 지급했다. 내 일 년치 보너스는 천오백만원 정도였다. 8월 중순에 명예퇴직을 신청하면 일 년치 보너스는 천오백만원 정도였다. 8월 중순에 명예퇴직을 신청하면 일 년치 보너스 천오백만원을 포기하는 대신 명예퇴직 위로금 팔천사백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8월 말 회사 신체검사에서 암이 적발되면 대기발령 상태에서 연말 보너스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명예퇴직 대상자에서는 제외될 것이었다. 8월 중순까지는 두 주일이 남아 있었다. (P.321~323)

 

   간암 판정을 받은 후 주인공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회사로부터 받을 수 있는 퇴직금을 계산하는 일이었습니다. 죽음이 눈 앞에 성큼 다가왔는데, 혹자들 같으면 우울이나 좌절에 빠져 무기력하게 하루를 흘러보낼 수도 있었을텐데 주인공은 그럴 겨를도 없이 '돈' 계산부터 합니다. 그 다음에는, 적금을 해약한 다음 사년 전에 아내와 이혼하면서 미처 다 지급하지 못한 위자료 오천만원을 송금해 줍니다. 증권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주식도 처분합니다. 가능하면 손해를 덜 보는 방향으로 말이죠. 주인공이 죽으면 더이상 돌볼 사람이 없는 어머니의 산소도 없앱니다.

 

   점심 식후 삼십 분에 물약을 먹고 나서 은행에 가서 적금을 해약했다. 내년 3월이면 만기가 되어서 일억원을 받게 되어있는 적금이었다 금년 겨울 전에 입원을 하게 되면 병실에서 적립금을 내기가 번거로울 것이었다. 12월치까지 사 개월분 적립금 이백오십만원을 일시불로 미리 지급하고 12월 31일자로 해약했다. 사 개월치 이백오십만원을 일단 서류상으로 적립했다가 12월 31일자로 해약하면 이자를 제하더라도 지급총액이 오십만원쯤 더 많아진다고 창구 여직원이 계산기를 눌러가며 설명해주었는데, 복잡해서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내년 1, 2, 3월치 적립금과 이자를 제하면 지급총액은 구천육백오십만원이었다. (p.328)

 

   사 년 전에 이혼한 아내의 은행 계좌번호를 적어둔 메모를 잃어버렸다. 지난 봄에 제 어머니의 계좌번호가 바뀌었다고 결혼한 딸아이가 전화를 걸어왔는데, 그때 써놓은 쪽지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아내와 헤어질 때 아파트는 내 소유로 하는 대신 위자료를 삼억에 합의했었다. 그때, 잔금 사천만원을 지급하지 못했다. 나는 사 년 만기 적금을 들었고, 사 년 후에 만기가 되면 이자를 합쳐서 오천만원을 주겠다고 아내에게 제안했었다. 아내는 내가 차용증서를 써주는 조건으로 동의했다. 메모 쪽지를 찾지 못하면, 딸을 불러서 오천만원짜리 수표를 보내주어야 할 것이었다. (p.329)

 

   저녁때 주식을 처분했다. 전자주와 자동차주였는데, 성장 가능성이 있는 우량주들이었다. 인터넷에 들어가서 시세차트를 검색했다. 지난 두 달 동안 다소간의 등락이 있기는 했지만 시세는 꾸준히 올랐고 거래물량도 늘고 있었다. 전망이 좋은 주식들이어서 당장 처분하기는 아까웠지만 연말이 되면 어떨지 불안했다. 연말까지는 십팔 주가 남아 있었다. 증권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상담을 요청했다. 주식 총액을 열여덟 덩어리로 나누어서 매주 한 덩어리씩 처분하면 시세의 등락에 따른 위험을 탄력 있게 피해가면서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상담원은 말했다. 나는 상담원이 제시한 방법으로 매각을 의뢰했다. 상담원은 매주 주식을 매각하는 요일과 시간을 증권회사의 판단에 맡겨줄 것을 요청했고 나는 수락했다. 매주 매각시점으로부터 사십팔 시간 이내에 대금을 온라인으로 송금하겠다고 상담원은 말했다. 연말 안에 주식은 매주의 시세에 따라서 저절로 처분될 것이었다. (p.329~330)

 

   추석 전에 어머니의 산소를 없앴다. (……) 어머니의 묘소는 공원묘지 맨 위쪽의 여덟 평이었다. 공원묘지에는 소유권 등기가 없었다. 매장할 때 묘지 관리사무소와 임대계약을 맺었다. 임대보증금 천만원에 한 달치 사용료가 삼만원이었다. 사용료는 일 년치를 한꺼번에 온라인으로 보냈다.

   내년 봄 한식까지는 육 개월이 남아 있었는데, 한식 때는 성묘 올 수가 없을 것이었고 결혼한 딸에게 묘지 관리를 맡길 수도 없었다. 유골을 파서 화장하고 묘지는 반납하겠다고 전화했더니 관리사무소에서 화장에 따른 절차를 알선해주었다.

   (……) 돌아올 때 관리사무소에 들러서 묘지값을 정산했다. 임대보증금 천만원 중에서 화장비용과 인부들 노임 이백만원을 제하고 팔백만원을 돌려받았다. 팔백만원에 대한 영수증을 써주었다. 사무소 직원이 매장 때 작성한 임대계약서에 '파기'라는 고무도장을 찍고 영수증을 첨부했다. (p.343~345)

 

   「강산무진」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주인공을 따라서 '돈' 계산을 하게 됩니다. 작가가 디테일하게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주인공이 받을 수 있는 퇴직금으로 역계산해서 한 달 급여가 얼마인지, 한 달에 적립금을 얼마나 넣어야 4년 동안 1억을 모을 수 있는지. 굳이 읽는 이가 계산하지 않아도 알 수 있도록 모두 적혀있는데도 말입니다.

   주인공의 소식을 딸로부터 전해 들은 미국에 있는 아들이 주인공에게 편지를 보내 오는데, 그 편지 속에도 그만의 계산법이 담겨져 있습니다.

 

   산소에서 돌아온 날 저녁에 아들의 편지가 도착해 있었다. 편지의 요점은 퇴직금으로 받은 돈과 주식과 아파트를 처분한 돈을 모두 가지고 LA로 와서 미국의 요양시설에 입원하라는 것이었다. 아들은 미국 시민권자이므로 직계가족을 초청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미국의 요양시설은 정부의 지원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환경도 좋을 뿐 아니라 한국에서보다 비용도 싸다고 아들은 설명했다. 또 하루 오십 달러 정도면 한국인 간병부를 고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서류를 갖추어 초청 수속을 하는 데 시간이 걸리므로 내가 빨리 결정해줄 것을 아들은 요구하고 있었다. 출국 전에 아파트가 팔린다면 내가 미국으로 가져갈 수 있는 돌은 칠억오천만원쯤이었고 LA에서 주정부가 운영하는 공공요양시설에 입원하게 된다면 그 돈은 결국 아들의 몫이 될 것이었다. 서울에서 입원하면 간병부를 고용한다 하더라도 결혼한 딸은 나의 남은 시간들을 힘들어할 것이므로, 내가 미국으로 가고 돈이 아들의 몫으로 돌아가는 일은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p.346)

 

   이렇게 「강산무진」에는 금전적인 '정리'는 나오지만 감정적인 '정리'는 나오지 않습니다. 일곱 개비가 남은 담배를 보며 주인공이 잠깐 지나간 모든 담배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정리'에 해당하지는 않을 것(p.321)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관계에 대한 '정리'도 나오지 않습니다. 의사는 가족들과 마음을 합치는 것이 중요(p.318)하다고 했지만, 가족들은 주인공이 금전적인 '정리'를 하는데만 머리를 합칠 뿐입니다. 아버지의 간암 소식을 들은 아들은 전화 한 통 없이 편지 한 통만 달랑 보내올 뿐이고, 미국으로 떠나기 전 아내는 딸을 통해 공항으로 나가겠다고 전해올 뿐입니다. 공항으로 나온 아내는 여러 교인들과 함께 멀찌감치 떨어져서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합니다. 그들이 이혼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아내의 종교 때문이었을 수도 있는데, 그런 주인공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꼽 만큼도 없이 "주여, 불쌍한 김창수의 죄를 사하여주시고 그의 앞길을 인도"(p.351)하라며 기도를 합니다. 마치 자기 마음만 편하면 된다는 식으로 말이죠. 그나마 딸은 마지막 순간에 "아빠"(p.352)를 부르며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닦습니다. 이렇게 「강산무진」은 담담하게 끝이 납니다.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있는데, 이렇게 담담하게 주변을 '정리' 할 수 있을까요? 그것도 온통 돈 계산 뿐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절박한 '정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죽음을 앞둔 자신을 위해서도, 남게 될 가족을 위해서도 말이죠.

 

 

   조선후기 회화 특별전은 제1전시실에서 열리고 있었다. 거기에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라는 산수화가 걸려 있었다. 가로 길이가 팔 미터가 넘는, 긴 그림이었다. 특별전을 위해서 다른 미술관의 소장품을 빌려온 것인데, 그림이 길어서 전시실 칸막이를 걷어냈다고 설명문에 적혀 있었다.

   화가 이인문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림의 제목처럼 팔 미터가 넘는 긴 가로 화폭을 따라서 강산은 끝이 없이 펼쳐져 있었다. 눈으로 본 강산과 꿈에 본 강산, 꿈에도 보지 못한 강산들이 포개지고 잇닿으면서 출렁거렸다. 산들이 잦아지는 골짜기마다 마을이 들어섰고, 마을이 끝나는 곳에서 들이 펼쳐졌고, 들판 가장자리에서 다시 산맥이 일어섰다. 윤곽선을 풀어헤친 산맥은 연기처럼 엉키고 또 흩어지면서 허공 속을 흘러갔고, 기진해서 소멸해가는 산맥들이 하늘 속으로 빨려드는 잔영 너머에서 바다는 시작되고 있었다. 바다가 뿜어내는 안개가 먼 잔산들의 밑동을 휘감았고, 그 안개 속에는 내가 모르는 시간의 입자들이 태어나서 자라고 번창했다.

   미열이 올라와서 따스해진 몸이 추웠다. 전시실 안 소파에 앉아서 맞은편 벽에 걸린 그림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훑어보았다. 강산은 피어나서 잦아들고, 또 일어서서 끝이 없었다. 산수화를 눈여겨보기는 처음이었다.

   화가가 이 세상의 강산을 그린 것인지, 제 어미의 태 속에서 잠들 때 그 태어나지 않은 꿈속의 강산을 그린 것인지, 먹을 찍어서 그림을 그린 것인지 종이 위에 숨결을 뿜어낸 것인지 알 수 없는 거기가, 내가 혼자서 가야 할 가없는 세상과 시간의 풍경인 것처럼 보였다. (p.337~339)

 

   비행기는 정시에 이륙했다. 아득하고 가없는 산과 강들이 눈 아래로 흘러갔다. 비행기가 동해에 가까워지자 산과 강이 끝나는 저쪽에서 안개처럼 뿌연 바다가 보였다. 날이 흐려서 바다는 잿빛이었고, 구름을 뚫고 쏟아지는 빛의 다발이 눈 덮인 먼 산들 위에 얼룩무늬를 드리우고 있었다. <강산무진도>는 살아 있는 내 눈 아래 펼쳐져 있었고 그 화폭 위쪽, 산들이 잔영으로 스러지고 바다가 시작되는 언저리에서 새빨간 럭키스트라이크 담뱃갑이 바람에 날리는 환영이 보여싸. (p.352)

 

   금전적인 '정리'를 하면서 주인공은 의사의 권유에 따라 가벼운 산책을 나가곤 하는데, 그때 박물관에 걸려 있는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라는 산수화를 보게 됩니다. 가로 길이가 팔 미터가 넘는, 두루마리 그림으로는 가장 긴 그림인데 화가의 시선이 천지간을 정처없이 떠돌며 시간과 공간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면서 끝없는 산천의 전개와 운동, 시간의 운행 사이사이에 해운 어로 하역 농경 주거의 풍경을 묘사(p.338)한 것이라고 각주가 달려 있습니다. 그 <강산무진도>를 보면서 주인공은 깊은 감동을 받고, 앞으로 자신이 혼자 가야 할 가없는 세상과 시간의 풍경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앞두고 있는 그가 '가없는' 세상과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강산무진」은 허탈하고 비정합니다. 세상과 시간은 '가없는'데 그의 세계에서는 그 끝이 보입니다. 그동안 열심히 벌고 모았는데, 결국 가족들에게 고스란히 넘겨주어야 합니다. 익숙한 공간에서 낯선 공간으로 혼자 버려지게 될 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생각만해도 마치가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눈앞이 캄캄한데, 주인공은 오히려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어서 더 슬프고 허무하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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