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방황하는 10대들의 날 것 그대로의 야생을 보여드립니다!

   솜털이 보송한 소녀가 힘겹게 쇼핑용 카트를 밀면서 고속버스터미널 안에 있는 장애인용 화장실 부스로 들어갑니다. 단단하고 매정하게 조여놓은 복대를 풀자 방신한듯 둥근 배가 아래로 축 처집니다. 몸 속으로부터 양수가 터져 나오고, 엄청난 진통이 시작되더니 아랫배를 찢어대는 듯한 통증과 함께 사라집니다. 그리고 아직 울음도 터뜨리지 못한 핏덩이가 화장실 바닥에 있습니다. 소녀는 아기가 울음을 터트리기 전에 숨을 끊어놓으려고 했지만 아기의 입에서 울음소리가 터져나와 실패하고 맙니다. 기절한 사이 소녀는 병원으로 실려가고 핏덩이는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장사를 하고 있던 '돼지엄마'라는 여자가 데려갑니다. 이 아기가 바로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주인공이 된 '제이' 입니다. 이렇게 주인공은 그 탄생부터 남다른가 봅니다.


   '동규'는 돼지엄마와 제이가 세들어 살던 주인집 아들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입을 닫아버린 '동규'는 오직 '제이'를 통해서만 목소리를 냅니다. '제이'는 동규의 몸짓과 표정만 보고서도 '동규'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알아챌 수 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동규는 제이가 잘못 이해하더라도 제이가 이해한대로 그대로 따르기도 합니다. 태어나자마자 버림 받은 '제이'는 '돼지엄마'에게 두 번째 버림을 받고 시설로 들어가게 되고 그렇게 그들은 헤어지는듯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시설에서 나온 제이가 동규를 찾아오면서 그들은 함께 거리를 방황하게 됩니다.


   "뉴스에서 볼 때는 설마 그런 일들이 있을까 싶었는데."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은 결국 모두 현실이 된대요." (p.273)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방황하는 10대, 즉 거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가출 소년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한번쯤 뉴스를 통해 봤을 법한 일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금의 가출 청소년들의 현실이라고 마주하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던 일들이 펼쳐집니다. "인간의 세계가 아니라 날것 그대로의 야생"(p.98)의 이야기가 쏟아져서 낯설고, 기존에 우리가 알던 세대들의 이야기가 아니라서 낯섭니다. 이렇게도 이 소설이 낯선 이유는, 산문집 『말하다』에서 언급한 것처럼 작가가 멀찍이 떨어져서 그들을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록 불편하더라도 가까이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써내려 가고 있습니다. 


   작가의 윤리는 그가 제시하는 테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소재와 플롯, 인물의 관계를 설정하는 건축술에서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설정에서 예컨대, 거리에서 살아가는 10대들의 야생의 삶을, 마치 지프를 타고 사파리 유람을 하는 관광객의 시선으로 보도록 배치하는 것은 저로서는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그 이야기를 쓰고는 싶지만, 그것을 '현시'하고 싶지는 않을 때, 작가로서는 그 '편안한 거리'를 좁힐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말하다』, p.114)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것은 '광복절 대폭주'입니다. 소설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삼일절, 광복절이 되면 한밤의 '폭주'가 벌어집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그  '폭주'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경찰의 성과만 희미하게 발표될 뿐입니다. 그것은 물론 취재의 어려움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그 '폭주'가 어떻게 리더를 정하고, 어떤 시스템으로 진행되는지 자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저 무질서하게 달린다고만 생각했던 행위가 나름의 규칙과 역할을 정해놓고 달린다는게 신기할 뿐입니다.


   함구증에 걸린 '동규'가 '제이'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냈던 것처럼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아무도 관심가져 주지 않았고, 그저 피하기만 했던 방황하는 10대들의 목소리에도 한번쯤 귀 기울여 달라는 작가의 목소리를 담은게 아닐까요?

Q.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길과 길이 만나는 데"서 태어났다고 하는 소년 제이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제이의 짧은 생애를 서술하는 가운데 빈곤한 10대의 일탈적인 생태에 주의를 집중합니다. 길 위의 젊음 또는 비행과 무숙의 삶을 그렇게 반복해서 다루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비행과 무숙의 서사 계통`이라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될 것 같은데요. 사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가제가 `무숙자 제이의 짧고 숭고한 생애`였거든요. 주변의 의견을 들어봤더니 무숙자라는 말이 낯설고 어렵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질문에 무숙이라는 말이 대뜸 나오는 걸 보니 역시 그 제목이 더 나은게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문득 듭니다. (『말하다』, p.93~94)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언급한, 마술의 전제를 깨고 개입하는 중국의 어린 황제야말로 저의 이런 고민을 회화적으로 상징하는 존재일 겁니다. 깨면 재미없어지는 것을 알면서도 깨지 않을 수 없다는 것. 그런 충동에 사로잡힌다는 것. 이게 저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서사의 윤리와도 관계가 있지만 매끈하게 잘 읽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저의 생래적 거부감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오래된 플롯 전통에 의지해 이야기를 끌고 가다가 돌연 그것을 망가뜨리고 싶은 충동이 제 내부에 있는 거죠. (『말하다』,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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