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림 - 1994-2005 Travel Notes
이병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기!
어디라도 괜찮아! 답답한 마음에게 싱그러운 바람의 냄새를 맡게 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좋아! 먹먹한 내 가슴에게 위로의 말로 토닥여 줄 수 있다면. 온갖 감정들이 나를 휘몰아치는 날이면 이병률의 『끌림』을 손에 들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기 시작한다.

이병률의 앤솔러지
이병률, 그는 스무 살 되던 해 타자기와 카메라에 매혹당했다. 그래서 그는 시인이 됐고,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끌림』은 그를 매혹시킨 타자기와 카메라의 절묘한 만남의 산물로, 지난 10여 년간 50개국의 200백여 도시를 여행하면서 그가 만난 풍경과 사람, 소소한 일상들의 기록이다.
그러나 여느 여행에세이를 떠올린다면 당신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이병률은 이미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는 시집을 펴낸 시인으로, 『끌림』 또한 산문집의 탈을 쓴 시집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아니 시집보다는 '앤솔러지'가 더 적당한 표현이라고 해야겠다.
'앤솔러지'에는 '꽃을 따서 모은 것'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그는 여행길에서 딴 꽃들을 카메라에 담고, 그 향기를 글로 적어냈다. 비록 그의 여정과 함께하지 못했지만, 그의 발자취를 따라 가보지도 못했지만 그의 글에서 풍겨져 나오는 진한 향기를 맡을 수 있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내가 걸어온 길이 아름다워 보일 때까지 난 돌아오지 않을 거야." ─ 이병률
그는 다시 또 어딘가로 가기 위해 밤낮없이 지도 위에서 서성대고 있는 중이란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많은 나라들을 여행한 그가 여전히 서성이고 있다는 것은, 그의 말처럼 아직도 그가 걸어온 길이 아름다워 보이지 않아서일까? 그렇다면 충분히 아름답다고, 그래서 그 여행에서 돌아오지 말고 좀 더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다고 살짝 귀뜸해 주고 싶다. 이렇게 나처럼 끌리는대로 몸을 맡길 수 없는 사람이 아무때나 펼쳐볼 수 있도록 말이다.

[덧붙이는 말] 이 책에는 페이지 표시가 없다. 다만, 글들이 1부터 71까지 넘버링 돼 있을 뿐이다. 페이지에 집착하지 않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

   
 

열정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맡겨 흐르는 것이다. (#001)

사랑을 하면 마음이 엉키죠. 하지만 그대로 놔두면 돼요. 마음이 엉키면 그게 바로 사랑이죠. (#009)

사랑은 그런 의미에서 기차다.
함께 타지 않으면 같은 풍경을 나란히 볼 수 없는 것.
나란히 표를 끊지 않으면 따로 앉을 수밖에 없는 것.
서로 마음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같은 역에 내릴 수도 없는 것.
그 후로 영원히 영영 어긋나고 마는 것. (#018)

상대를 일방적으로 생각하지 않기 위한 방법은,
완전히 이해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됐다면 아무리 늦었다 해도,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그건 분명 사랑인 거다. (#045)

떠나는 누군가를 붙잡기 위해 너무 오래 매달리다 보면
내가 붙잡으려는 것이 누군가가 아니라, 대상이 아니라
과연 내가 붙잡을 수 있는가, 없는가의 게임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게임은 오기로 연장된다. (#046)

언제나 한 가지 대답이면 된다.
닥치는 대로……. / 될 대로 되라. / 난 겁내지 않는다. / 이것도 운명이다.
이 모든 걸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존재한다.
라틴어 '케 세라 세라(Que Sers Sers)' (#67)

 

 
   


2008/07/28 by 뒷북소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혜초 1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누구나 혜초하면 '왕오천축국전'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을테지만 그가 어떤 여정으로 어떻게 그것을 썼는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 여정이 마르코 폴로의 여정과 견줄만한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그 기록을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일단 소설의 내용은 접어두더라도 역사 소설을 쓰는 작가라면 이런 사실을 환기시켜 주는 것만으로도 그의 역할을 어느 정도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우리 역사를 이야기했던 그가 이번에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들고 나왔다. 정수일이 번역한 『왕오천축국전』이 있기는 하지만 읽기가 녹녹치 않아 김탁환의 『혜초』가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혜초』는 이전에 김탁환이 써냈던 다른 역사소설들과는 다른 인상을 준다. 이전에 그가 써낸 작품들을 읽을 때면 '역사소설을 읽고 있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 반면에 『혜초』는 비록 고구려 출신의 당나라 장수 고선지와 신라의 승려 혜초를 데려왔지만 역사소설이라는 느낌보다는 판타지라는 느낌이 강하다. 백탑파 시리즈에서 보여줬던 그의 역사관은 전혀 보이지 않고, 철저하게 혜초의 여정만 따라가고 있다. 실크로드를 따라 간 여정의 기록이니 당연히 정치적인 대립이나 쟁점은 있을 수 없고, 역사관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 긴 여정을 두 발로 내딛으며 기록한 혜초는 과연 이것도 인간세계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괴이한 일들을 경험하며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다. 그만큼 그의 여정이 험난했다는 것이다.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여정, 그래서 판타지 같다는 것이다. 아마 작가는 혜초 스님의 여정이 얼마나 위대한 것이었는가를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의 것이지만 우리가 가까이 할 수 없는 문화유산들. 책의 출간과 함께 『왕오천축국전』의 반환 운동도 함께 진행한다고 한다. 부디 한때의 이벤트성 운동으로 전락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는 머물러 경전을 파기보다 그 경전이 만들어진 자리를 손과 발과 몸으로 만지고 싶었습니다. 언어가 지닌 미망을 걷어 내고 깨달음 중에서도 가장 크고 아름다운 깨달음의 자리에 앉는 날! (1권, p.94)

제 여행 이야기, 이야기 여행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소멸만이 남았고 다시는 여행을 떠나지 않을 것이며 기(記)와 록(錄)에 매달리지 않을 겁니다. 항하의 한 알 모래 알갱이로 돌아가겠습니다. (2권, p.339)

그립다 하여 모두 돌아간다면 그리움은 사라지고 말 것이옵니다. 때로는 가지 않고 그리움만으로 간직하고픈 일들도 있사옵니다. (2권, p.367)

 
   

2008/08/06 by 뒷북소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휴가 일정이 잡히고 책에서 본 곳으로 휴가지를 잡고 짐 싸는 일만 남았다. 어떤 책을 가져갈까. 현장 독서를 위해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를 가져갈까? 아니다. 책에 등장하는 그곳은 겨울이었고, 지금은 여름이다.
결국 시원한 물 속에 발 담그고 졸졸 흐르는 물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소금강에서 읽은 책은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였다. 왠지 그녀의 책은 침대에서 읽어야 할 것 같았지만, 이렇게 자연에 파묻혀 작은 전등 하나 켜놓고 희미한 불빛 아래서 읽는 것도 나름 운치가 있어 좋았다.

『침대와 책』에서 자신의 독서기를 이야기했던 그녀가 이번에는 매혹적인 독서가들을 만나 그들의 독서기를 들려준다. 책과 가장 친해 보이는 작가들은 물론이고 쉽게 들을 수 없었던 영화감독 임순례, 배우 문소리의 독서기까지 만나볼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즐거움은 '책 속의 책'을 찾아보는 즐거움일 것이다. 앞서 『침대와 책』에서도 나는 그녀가 소개한 책들을 읽어보며 그녀의 감정을 함께 공유하려 애썼다. 이번 책도 마찬가지다. 내가 읽은 책을 만나기라도 하면 여간 반가운게 아니었다. 같은 텍스트를 읽고도 나는 아무것도 읽어내지 못했고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았는데, 그들에게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도 신기했다. 아마 그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아직까지 읽지 못한 책들은 찾아볼지도 모른다.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서술한 것이었다면 지루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인터뷰 형식을 빌려 끊임없이 그들의 독서기에 개입하고 있다. 덕분에 한 권의 책을 두고 적어도 두 사람─인터뷰를 하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의 생각을 엿볼 수 있어 재미있다. 만약 내가 읽은 책이라면 세 사람이 될테지만.
솔직히 그녀의 독서기가 부러울 따름이다. 자신이 읽은 책을 이렇게 책으로 엮어 내는 것도 신기하고, 그때의 그 감정들을 기억하고 있는 것도 놀랍다. 안타깝게도 내게는 결정적인 영향을 준 책도 없고, 만약 있었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씩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할지 고민스럽다. 물론 그 고민의 끝에는 적당한 답이 없다는 것도 고민이다. 마치 「바벨의 도서관」처럼 나만의 한권의 책을 찾으러 끊임없이 헤맬지도 모르겠다.

   
  '도서관'의 모든 사람들처럼 나는 젊은 시절 여행을 했다. 나는 한 권의 책, 아니 아마 책 목록에 대한 목록을 찾아 방황을 했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바벨의 도서관」(p.21)

책은 견디기 힘든 시간들을 지나게 해줘요. ─ 문소리 (p.235)
 
   

2008/08/03 by 뒷북소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 - 행복한 오기사의 스페인 체류기
오영욱 지음 / 예담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즐겨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홈페이지를 예쁘게 꾸며준 오기사. 어느날 그 프로그램을 통해 오기사의 책 두 권을 선물로 보내준다고 했다. 휴가 때 읽고 싶다고 냉큼 손을 들었는데 운 좋게도 내게로 왔다. 그런데 나는 뜻하지 않게 거짓말을 하게 됐다. 휴가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 그만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읽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곳을 잠시 스친 여행자와 그곳이 일상이 되어버린 자의 시선은 다르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그는 건설 역군으로 일하면서 해외 도피 자금을 마련해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바르셀로나로 훌쩍 떠났다. 왜 하필 바로셀로나였냐고? 그곳에는 가우디가 있다. 딱히 건축 공부를 하러 떠난 것은 아니었지만 그로 인해 어느 정도의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을테니까. 그가 이미 스페인 '여행기'가 아니라 '체류기'라고 했듯이 바르셀로나로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었다. 딱히 공부를 하기 위함도 아닌데, 그는 왜 떠났을까?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도피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한번쯤 낯선 곳에서 마음껏 즐기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떠남은 도피가 될 수 있었지만 떠나 있음은 또 다른 삶의 연속이었다."(p156) 그곳에서도 그는 서울에서와 마찬가지로 일상을 살아가야만 했다. 새로운 면도 없지 않았지만, 여전히 그는 늦잠을 잤고 청소를 미뤄뒀다.
그곳을 잠시 스친 여행자와 그곳이 일상이 되어버린 자의 시선은 다르다. 그는 그곳에서 보낸 자신의 일상을 들려주고 있다. 바르셀로나에 가면 꼭 들러야 할 명소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한번 보면 절대 잊지 못할 화려한 명소가 아니라 그곳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바르셀로나하면 축구가 먼저 떠올랐는데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하는 모습은 일상적인 모습이 아니라는 것, 그들도 우리처럼 아픈 역사를 품고 산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그가 너무 부지런하고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의 그림이 너무 화려하거나 섬세하지 않아서 좋다. 마치 이웃집 총각의 앨범 혹은 일기장을 엿보는 친근한 느낌이랄까. 그가 1년여간의 도피 생활을 접고 드디어 본격적으로 건축 공부를 하려고 한다. 이어질 그의 이야기들도 그런 친근한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아무런 기대 없이 그냥 편하게 스쳐 가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는 것이다. (p97)

오랜 친구와 함께하는 바다는 여유롭고 새로운 친구와 함께하는 바다는 설렌다. (p111)

떠남은 도피가 될 수 있었지만 떠나 있음은 또 다른 삶의 연속이었다. (p156)

여행을 떠나는 입장이라면 조금 더 마음을 열어도 좋을 것 같다. 멀리까지 해외여행을 가서 낯선 문화와 부딪치며 줄곧 '한국이라면 이랬을텐데……' 구시렁대는 것보다는, '이곳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구나'하고 인정하면 여행이 더 즐거울 수 있다는 말이다. (p375)
 
   

2008/08/03 by 뒷북소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cm
김은주 지음, 김재연 그림 / 생각의나무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에겐 1cm만큼의 센스가 더 필요하다!
아무래도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읽기에는 이야기의 호흡이 짧은 것이 좋다. 다음 이야기까지 호흡이 긴 것들은 내려야 할 역에서 엉덩이를 떼는 것이 싶지 않다. 중간에 맥이 끊겨버려 읽었던 부분을 몇 장 거슬러 올라가야하는 불상사까지 생기곤 한다.


『1cm』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책이다. 각 장마다 비교적 짧은 글들과 발랄한 그림들이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 안이 너무 소란스러워 책에 집중할 수 없게 되어도 문제 없다. 그럴 땐 잠시 책에서 눈을 떼고 나의 1cm를 찾으면 된다. 간혹 무심결에 '피식'하고 웃을 수도 있으니, 너무 크게 웃지 않도록 미리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녀들은 우리에게 1cm만큼 필요한 것으로 사랑, 열린 마음, 열린 생각, 쉼, 발전 등을 꼽는다. 그녀들의 글과 그림을 모두 보고 내가 내린 결론은 "우리에겐 1cm만큼의 센스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센스 하나면 그녀들이 꼽고 있는 그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지 않을까?


1cm, 어떻게 보면 상당히 작은 크기다. 그러나 키가 169cm인 사람에게는 그 1cm가 엄청나게 큰 차이가 될 수도 있다. 1cm만 더 크면 170cm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데, 그 작은 1cm는 영원히 극복할 수 없는 1cm가 되기도 한다.


1cm만큼의 센스를 가지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일 수도 있지만, 키 1cm를 키우는 것보다는 쉽고 가능성도 있다. 겨우 1cm 가지고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지만 그 1cm로 자신감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럼, 한번 도전해볼까? 나만의 1cm를 키우는 프로젝트에!

2008/08/03 by 뒷북소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