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초 1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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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누구나 혜초하면 '왕오천축국전'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을테지만 그가 어떤 여정으로 어떻게 그것을 썼는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 여정이 마르코 폴로의 여정과 견줄만한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그 기록을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일단 소설의 내용은 접어두더라도 역사 소설을 쓰는 작가라면 이런 사실을 환기시켜 주는 것만으로도 그의 역할을 어느 정도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우리 역사를 이야기했던 그가 이번에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들고 나왔다. 정수일이 번역한 『왕오천축국전』이 있기는 하지만 읽기가 녹녹치 않아 김탁환의 『혜초』가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혜초』는 이전에 김탁환이 써냈던 다른 역사소설들과는 다른 인상을 준다. 이전에 그가 써낸 작품들을 읽을 때면 '역사소설을 읽고 있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 반면에 『혜초』는 비록 고구려 출신의 당나라 장수 고선지와 신라의 승려 혜초를 데려왔지만 역사소설이라는 느낌보다는 판타지라는 느낌이 강하다. 백탑파 시리즈에서 보여줬던 그의 역사관은 전혀 보이지 않고, 철저하게 혜초의 여정만 따라가고 있다. 실크로드를 따라 간 여정의 기록이니 당연히 정치적인 대립이나 쟁점은 있을 수 없고, 역사관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 긴 여정을 두 발로 내딛으며 기록한 혜초는 과연 이것도 인간세계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괴이한 일들을 경험하며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다. 그만큼 그의 여정이 험난했다는 것이다.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여정, 그래서 판타지 같다는 것이다. 아마 작가는 혜초 스님의 여정이 얼마나 위대한 것이었는가를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의 것이지만 우리가 가까이 할 수 없는 문화유산들. 책의 출간과 함께 『왕오천축국전』의 반환 운동도 함께 진행한다고 한다. 부디 한때의 이벤트성 운동으로 전락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는 머물러 경전을 파기보다 그 경전이 만들어진 자리를 손과 발과 몸으로 만지고 싶었습니다. 언어가 지닌 미망을 걷어 내고 깨달음 중에서도 가장 크고 아름다운 깨달음의 자리에 앉는 날! (1권, p.94)

제 여행 이야기, 이야기 여행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소멸만이 남았고 다시는 여행을 떠나지 않을 것이며 기(記)와 록(錄)에 매달리지 않을 겁니다. 항하의 한 알 모래 알갱이로 돌아가겠습니다. (2권, p.339)

그립다 하여 모두 돌아간다면 그리움은 사라지고 말 것이옵니다. 때로는 가지 않고 그리움만으로 간직하고픈 일들도 있사옵니다. (2권, p.367)

 
   

2008/08/06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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