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적 메메드 - 상
야샤르 케말 지음, 오은경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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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고통을 느끼는 자들은 신화를 창조함으로써 자신들만의 은신처를 만들어 낸다!

   터키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야사르 케말의 『의적 메메드』는 평범한 청년이 포악한 지주로부터 가족과 연인을 구하기 위해 의적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로,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진짜 '인간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13살 소년 '말라깽이 메메드'는 디켄리 평야의 다섯 마을을 지배하고 있는 지주 압디의 핍박을 견디지 못해 마을을 탈출하지만, 지주 압디에게 붙잡혀 다시 마을로 돌아오고 압디의 핍박은 더욱 심해집니다. 압디는 다섯 마을을 지배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땅을 나눠주고 경작하게 하는데, 추수가 끝나면 수확량의 4분의 3을 거둬가 마을 사람들은 늘 궁핍하게 보낼 수 밖에 없습니다. 식량이 떨어질 즈음이면 사람들은 압디를 찾아가 식량을 빌리곤 하는데, 메메드는 그것 조차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어릴적부터 메메드가 좋아했던 핫체를 압디가 자신의 조카와 결혼시키려고 합니다.

 

   "염소 수염을 한 못된 압디 놈의 마을 말이군. 듣기로는 압디가 지주가 되었다지? 마을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린다던데. 마을 사람들은 굶어 죽기 일보 직전이고 말이야. 겨울이 오면 다 굶어 죽는다면서? 더구나 압디가 허락을 안 하면 결혼도 못 하고, 몽둥이로 두들겨 패서 사람도 죽인다고 하더군. 마을 다섯 개가 압디 놈의 손 안에 있고, 마치 술탄이라도 되는 양 군림한다며? 이 사람, 저 사람, 다 죽이고……. 그런 놈이 지주가 되었다니……. 망할 놈의 압디……. (『의적 메메드』, p90~91)

 

   더이상 참을 수 없었던 메메드는 핫체와 함께 다시 도망가는데, 결국 추적해 온 압디와 그의 조카에게 잡힙니다. 압디는 조카를 총으로 쏴서 죽여버리고, 압디까지 쏴 버립니다. 자신들을 추적하던 두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압디는 핫체를 먼저 마을로 돌려 보내고, 자신은 경찰을 피해 산적들 사이로 숨어버리는데 안타깝게도 압디는 죽지 않았습니다. 압디는 핫체가 자신의 조카를 죽였다고 하며 감옥으로 보내고, 메메드의 어머니는 매질을 해 죽여 버립니다.

   그 사이에 메메드는 산적의 우두머리가 돼 압디 조차 그를 두려워 할 정도가 됐습니다. 메메드 덕분에 마을 사람들은 압디의 핍박에서 벗어나 자신이 경작한 땅에서 나온 것은 자신이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사람들은 메메드를 '영웅'이라 부르기 시작합니다. 뒤늦게 핫체와 어머니의 소식을 들은 메메드는 다른 감옥으로 이송 중인 핫체를 데리고 산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그를 쫓던 경찰에 의해 핫체가 죽고 아이만 남게 되자 메메드는 산으로 내려가 항복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며 항복을 말리자 메메드는 압디를 죽이고 다시 산으로 사라집니다.

 

   계집애 같은 메메드! 온 마을 사람들이 자네를 바라보는 꼴을 좀 보라고! 그래도 항복하러 갈 텐가? 지주 압디가 다시 우리를 괴롭히게 할 심산인가? 데네의 유골이 무덤 속에서 통곡하겠구먼. 아름다운 핫체의 유골도……. (『의적 메메드』, p564)

 

   마을 사람들은 메메드가 압디의 땅을 나눠주고 압디의 핍박으로부터 그들을 지켜주자 메메드를 '영웅'으로 치켜 세웁니다. 그런데, 메메드가 경찰에 항복하려 하자 '계집애 같은 메메드!'라며 온갖 비난을 퍼붓습니다. 메메드가 항복하고 나면 예전처럼 지주 압디가 자신들을 지배하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지주 압디의 핍박을 못 이겨 지주 압디의 편을 든 것처럼 말하지만, 결국 마을 사람들은 메메드를 이용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좀 더 편하게 살려고 말이죠. 하지만 그들을 비난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성'의 본질이 아닐까요.

 

   나에게 있어서 『의적 메메드』를 쓴다는 것은 단순히 소설을 쓰는 것 이상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를 열고 새로운 형상들을 발견해 내는 것을 의미했다. 또한 나는 인간성의 개념을 찾아냈다. 그것은 이후에 내가 썼던, 또 쓰고 있는 모든 것에 스며들었다. 내가 깨달았던 것은, 인간은 궁지에 처해 있거나 극한의 고통을 느낄 때 자신들의 은신처가 될 신화의 세계를 창조하려 한다는 것이다. 신화를 창조하고 꿈의 세계를 떠올림으로써 인간은 이 세상의 엄청난 고통을 참아낼 수 있다. 또 사랑, 우정, 아름다움, 어쩌면 불사( 不 死)까지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의적 메메드』, 작가의 말, p574~575)

 

   사람들은 왜 신화와 꿈을 창조하여 그곳에서 은신하고 싶어 할까? 사람들은 환희를 유지하고 살아가는 데서 오는 모든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신화와 꿈의 세계를 창조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게 해줄 수가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고통과 질병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파괴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저항하고 있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지만, 그것에도 역시 나름대로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의적 메메드』, 작가의 말, p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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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편집 매뉴얼 2014 - 편집자가 알아야 할 편집의 모든 것
열린책들 편집부 엮음 / 열린책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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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의 행간을 몇 포인트일까요?

책을 읽다보면 '책'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예를들면, 책표지와 내지는 알겠는데 그 사이에 있는 색지(?)는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지, 여러 출판사에서 출판되고 있는 한 소설가의 이름이 왜 모두 다르게 표기되고 있는지, 정말 시시콜콜한 것이지만 궁금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책이 한 권 있어요. 바로, 열린책들 편집부에서 나온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 입니다. 해마다 새로운 버전으로 나오고 있는데, 원래는 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나온 책이긴 하지만 일반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책의 각 부분에도 모두 이름이 있다는 사실. 설마 이런 것에도 이름이 있을까 싶은 정말 사소한 부분에도 명칭이 다 정해져 있습니다. 표지와 내지 사이에 있는 색지(?)의 정식 명칭은 면지였습니다. 그리고 책머리와 책발도 있다는 사실.

 

 

   물론 열린책들만의 외래어 표기법도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서 포털이나 사전에서는 '도스토옙스키' 혹은 '도스토예프스키'로 표기하고 있는 것을 열린책들에서는 '도스또예프스끼'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는 '노통'이라고 표기하고 있는 작가의 이름을 작가의 요청에 의해 '노통브'로 표기하고 있다는 사실.

 

   우리말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기본적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굳이 편집을 하지 않더라도 한번 읽어보면 바른 우리말 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앗! 새로운 사실도 한가지 알았습니다. 외래어 표기법을 살펴보다 보니, 세르보크로아트어라는 언어가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자주 읽는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읽을 때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렇고, 책 좋아하는 이웃님들 중에도 많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다소 답답한 행간 입니다. 개인적으로 포스팅을 할 때도 행간을 250% 정도로 설정합니다. 보통 9pt로 포스팅을 하니, 행간은 22.5pt인 셈이죠. 뿐만아니라 단행본 중에서도 행간이 널널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를 읽을 때마다 항상 궁금했습니다. 행간이 몇 포인트일까? 한글 폰트가 10pt일 때 행간이 15.5pt 였습니다. 즉, 155% 정도 되는 셈인데 보통 200% 이상의 행간에 자주 노출되다 보니 당연히 답답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행간입니다. 그래도 행간 널널하게 해서 페이지 수만 잔뜩 늘려 놓는 편집보다는 의도가 건전하다고 생각되니,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를 사랑하는 독자로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열린책들 책을 읽다가 혹은 평소 편집에 관심이 있으셨다면 한번 찾아보세요. 궁금했던 점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솔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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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21
찰스 디킨스 지음, 류경희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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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신사의 조건'이란 이런 것!

   가난한 소년 '핍'이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아 신사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에단 호크와 기네스 팰트로 주연의 동명의 영화로도 나온 적이 있어서 꽤 유명한 스토리의 『위대한 유산』은 직접 글로 읽을 때 찰스 디킨스의 '위대함'을 비로소 느낄 수 있습니다. 『위대한 유산』은 찰스 디킨스가 편집장을 맡은 주간지 「All The Year Round」에 약 1년에 걸쳐 연재를 한 작품으로, 당시 독자들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특히,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위대한 유산』은 부모 없이 누나와 대장장이이자 매형인 조 가저리와 함께 살고 있는 '핍'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합니다. 매형 조 가저리는 핍에게 한없이 친절하지만, 누나인 가저리 부인은 핍을 구박하고 매도 자주 듭니다. '핍'은 누나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조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나이가 들면 대장장이인 조의 도제가 되기로 합니다.

   이랬던 '핍'의 일상과 마음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첫번째 사건은 탈옥한 죄수의 협박을 받아 그에게 족쇄를 자를 수 있도록 조의 대장간에서 줄칼과 음식을 가져다 준 일입니다. 이후 핍은 죄수를 도와줬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낍니다. 두번째 사건은 숙부의 도움으로 저택에 살고 있는 미스 해비셤을 찾아가 시간을 보낸 것입니다. 그곳에서 핍은 미스 해비셤의 양녀 에스텔라를 만나게 되는데, 자신에게 항상 차갑기만 한 에스텔라를 첫눈에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에스텔라 때문에 핍은 열패감에 빠지고, 에스텔라에게 어울리는 신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난하고 배운 것 없는 핍이 신사가 된다는 건 1860그저 '꿈'일 뿐입니다.

 

   그날은 내게 기억할 만한 날이었다. 내게 큰 변화를 만들어 준 날이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그건 어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인생에서 하루를 선택하여 삭제한다고 상상해 보고, 그러고 난 후 그 인생행로가 얼마나 달라졌을지 생각해 보라. 이 글을 읽는 독자여, 글 읽기를 멈추고 쇠로 만들어졌건 황금으로 만들어졌건 가시로 만들어졌건 꽃으로 만들어졌건 간에, 당신을 얽어매고 있는 긴 사슬이 만약 그 제일 첫 번째 연결 고리가 어떤 기억할 만한 날 맨 처음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 결코 당신을 꽁꽁 얽어매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잠시 생각해 보라. (『위대한 유산(상)』, p127)

 

   그런데 그저 '꿈'으로만 남을 것 같았던 일이 현실로 실현될 수 있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누군가가 핍에게 엄청난 유산을 물려주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런던으로 가 신사로서의 교육을 받고, 신사에 어울릴만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당시 핍의 누나가 누군가로부터 습격을 받아 제대로 움직일 수도, 생각할 수도 없는 상태였는데 핍은 그런 누나와 조를 멀리하고 바로 런던으로 떠납니다.

   런던에서 핍은 자신의 일을 대신 맡아 줄 변호사 재거스, 어릴적에 미스 해비셤의 저택에서 그와 치고 받았지만 함께 생활하며 단짝 친구가 되는 허버트를 만나게 됩니다. 이미 미스 해비셤의 저택에서 재거스와 허버트를 만난 적이 있는 핍은 자신에게 엄청난 유산을 물려 준 사람이 당연히 '미스 해비셤'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몇 년 후 성인이 된 핍 앞에 진짜 유산을 물려 준 사람이 나타납니다. 그는 다름 아닌 어릴적에 그가 도와준 탈옥수였던 것입니다. 미스 해비셤의 도움으로 신사가 되어 에스텔라와 결혼까지 꿈꾸고 있었던 핍에게는 정말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를 도와준 사람이 미스 해비셤이 아닌 탈옥수라니. 게다가 지금도 그의 신분은 도주한 죄수 입니다.

   매그위치와 함께 지내면서 핍은 매그위치가 왜 범죄를 저지르고 탈옥수가 되었는지, 왜 핍에게 유산을 물려주며 신사가 될 수 있도록 했는지, 미스 해비셤의 어두운 과거와 에스텔라의 비밀, 변호사 재거스와의 관계까지 모두 알게 됩니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게 되면서 핍은 겉보기에만 멀쩡한 신사가 아닌 진짜 '신사'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멀리하려고 했던 조, 배운게 없어서 글자 하나 제대로 읽을 줄 모르는 조가 진정한 '신사'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재판장님,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여기 여러분 앞에 여러분 눈으로 확연히 구분할 수 있는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한 명은 더 젊고 더 교육을 잘 받고 자랐으며, 마땅히 그런 사람으로 대접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다른 한 명은 나이가 더 많고 형편없는 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마땅히 그런 사람으로 대접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더 젋은 사람은 지금 이 불법 거래 사건에서 (혹시 그런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거의 목격되지 않았으며 그저 혐의만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은 그 거래에서 늘 목격되었고 늘 자신의 유죄를 절실히 자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만약 이 사건에 단 한 사람만 연루되어 있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그가 누군지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만약 이 사건에 두 사람이 연루되어 있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이 두 사람 중 누가 더 나쁜 사람인지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위대한 유산(하)』, p174~175)

 

   죄수 매그위치가 수 년 동안 엄청난 노동의 대가로 번 돈을 모두 핍에게 보내며 그를 신사로 키운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실제로 범죄를 계획하고 주동한 진짜 악인은 '신사'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매그위치보다 가벼운 처벌을 받고 그 죄를 모두 매그위치에게 덮어 씌운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어릴적에 자신을 도와준 꼬마 핍을 신사로 키우기로 한 것입니다.

 

   『위대한 유산』은 분량이 꽤 되는 소설이기는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흥미로워 집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위대한 유산』은 1년 동안 잡지에 연재된 연재 소설이었습니다. 독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흥미를 자극하기 위해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의 후반부에 배치하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 주인공 '핍' 뿐아니라 모든 등장인물들이 나름의 특징이 있어서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합니다. 끊임없이 핍에게 악수를 청했던 숙부 펌블추크, 변호사 사무실과 집에서 상반되는 모습을 보여줬던 웨믹, 사건 때마다 등장하는 올릭 등 누구 하나 심심한 캐릭터가 없습니다. 왜 도스토예프스키가 그토록 찰스 디킨스를 극찬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또, 맨처음 소설이 발표된 이후 『위대한 유산』은 끊임없이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 졌습니다. 1860년대에 발표된 소설이지만 지금 사회에서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고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지금껏 사랑받고 있는 것일테죠.

 

   마지막으로 『위대한 유산』의 표지를 살짝 살펴보면, 상ㆍ하권의 표지 디자인이 살짝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똑바로 자리잡고 있던 의자와 술잔이 뒤로 가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위대한 유산'으로 인해 '핍'의 몸과 마음이 흔들리게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요.

 

   언젠가 내게 주어질 유산에 점점 더 익숙해지면서 나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서서히 그것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그 유산이 나 자신의 성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가능한 한 인식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이라는 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조에 대한 내 행동에 대해선 만성적으로 불편한 상태로 살았다. 내 양심은 비디와 관련해서도 결코 편안하지 않았다. 한밤중에 잠에서 깨면 ─ 마치 커밀라처럼 ─ 기진맥진한 기분으로, 만약 미스 해비셤의 얼굴을 보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옛날의 그 정직한 대장간에서 조와 동업자가 된 걸 만족해하며 어른으로 성장했더라면 틀림없이 지금보다 더 행복하고 더 나았을 거라고 생각하곤 했다.  (『위대한 유산(하)』, p40~41)

2014. 05. 31.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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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거슬러
토마스 에스페달 지음, 손화수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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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없이는 살 수 없소?

   한 사람이 태어나면 하루 하루 나이가 들고 언젠가는 죽게 됩니다. 누군가를 만나 한 순간에 사랑에 빠졌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 시들시들해지고 헤어지게 마련입니다. 죽는 순간까지 사랑했더라도 결국 죽음이 갈라 놓기도 하죠. 보통 인간의 삶이란 그렇게 흘러갑니다. 자연스럽게 말이죠.

   여기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누구나 사랑 없이 살기는 힘듭니다. 사랑하면서 사는게 오히려 더 자연스럽죠. 하지만 이 남자의 사랑은 다소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르쳤던 소녀와 사랑에 빠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그와 소녀의 나이 차이 때문에 그들의 사랑을 반대하곤 합니다. 그들의 사랑이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그는 33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 사랑의 대상이나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 마련인데, 사랑을 대하는 그의 방식은 늘 한결 같습니다. 시간은 흐르는데 변하지 않는다면, 이것 또한 부자연스러운 것이겠죠.

 

   나는 그녀의 젖가슴 위로 얼굴을 가져갔다. 그것은 아마도 본능보다 오래된 동경일 것이다. 나보다도 훨씬 더 오래된 또 다른 나. 나는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매끈매끈하고 하얀 피부가 만들어 내는 완벽한 곡선, 젊은 여인의 완숙한 젖가슴. 나는 난생처음으로 이토록 자연스러운 것에서도 강렬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행복감에 조금씩 죄의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수년이 흐른 뒤였다. 자연을 거스른다는 것……. 33년이 지났건만 나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사람이다. 조금의 변화도 찾아볼 수 없다. 내 얼굴과 몸은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지만, 다른 것들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간 나는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살았고, 여행도 했으며, 결혼을 하고 자식도 보았다. 책을 쓰기도 했고,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대부분의 친구들을 떠나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나를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나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p.53)

 

   이렇게 자신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호언장담하던 그도 나이가 점점 들자 사랑하는 가족들이 떠나고, 더이상 사랑할 대상이 없게 됩니다. 아무리 자연을 거스르려고 해도 시간 앞에서도 그도 어쩔 수 없는 인간입니다.

 

   사랑할 능력도 잃어버렸다.

   모든 것이 시들해져 버렸다. 누구를 다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모든 게 끝나 버렸다.

   나는 끝이라고 말하지만 사랑에는 끝이란 게 없는 것 같다. (p.228)

 

   자연을 거스르고 싶은 사람은 비단 그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연에 맞서고 싶어하지만, 결론은 하나입니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는 인간은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피할 수 없는 진실 말이죠. 『자연을 거슬러』는 토마스 에스페달의 자전적 소설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을 법한 욕망 혹은 바람을 담고 있습니다.

 

   얀네, 수컷 부엉이의 울음소리가 어떤지 기억하고 있소? 언젠가 우리 침실 창문 밖에 자리한 나뭇가지 위에 앉아 밤새도록 울부짖던 그 부엉이 말이오. 우리는 서로를 꼭 부둥켜안고 그 소리를 함께 들었고. 암컷을 찾아 헤매던 그 소리. 이제 그 부엉이는 간 데 없소.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수컷 부엉이의 울음소리를 기억하오.

   부엉이. 그건 바로 나니까.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소.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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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퍼펑크 - 어산지, 감시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다
줄리언 어산지 외 지음, 박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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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에게 프라이버시를, 강자에게 투명성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전체주의가 지배했던 『1984』 속 세계와 다름 없습니다. '텔레스크린'을 통해 사람들을 감시하는 빅 브라더는 더이상 충격적이거나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가 매일, 아니 매순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이 현실 속 '빅 브라더'가 아닐까요? 인터넷은 우리 자신도 잘 모르는 취향, 기억하지 못하는 사건, 거미줄처럼 엮어있는 관계에 대해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항상 지켜보고 저장하고 있기 때문이죠.

 

   '사이퍼펑크(Cypherpunk)'는 이렇게 매순간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 의해 감시 당하고 있는 우리의 프라이버시와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저항 운동의 하나 입니다. 원래 '펑크(punk)'에는 '저항'의 뜻이 담겨 있는데, 사이퍼펑크는 암호(cipher)와 펑크(punk)를 합성한 말로 2006년부터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등재되었다고 합니다. '사이퍼펑크' 운동가들은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특정 정보를 암호화하는 기술을 활용합니다. 이 암호화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얼마전 있었던 개인정보유출 사건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암호화 기술은 적재적소에 쓰여야 합니다. 개인 정보는 철저하게 암호화해서 프라이버시를 지켜줘야 합니다. 반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공유해야 하는 정보도 있습니다. 위키리크스의 편집장인 줄리언 어산지가 공개해서 파장을 불러 일으켰던 정부나 기관의 자료 같은 것들이 있죠. 이런 것들은 한 치의 숨김이나 거짓없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할 것들입니다.

   줄리언 어산지와 동료들은 사이퍼펑크 운동을 통해 약자에게는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고, 강자들은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이퍼펑크』는 줄리언 어산지와 동료 3명의 토론을 담은 책으로 인터넷 세계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들이 우리와 공유하고자 하는 것들, 우리가 맞서야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세계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낯선 용어와 인터페이스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런 것들이 오히려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시스템 속에서 일반적인 사람들이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을 겁니다. 불가능한 일이죠. 물론 어떠한 시스템 안에서도 사람들은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는 없지만,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진화해 온 자유, 그리고 문화적으로 익숙해진 자유마저 대부분 종적을 감추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령 20년 전의 자유를 그대로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은(감시 국가가 이미 대부분의 자유를 없애 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사라들은 자유의 개념마저도 알 수 없을 겁니다) 이러한 시스템의 구조를 치밀하게 공부한 사람들뿐일 것입니다. 즉, 첨단 기술로 무장한 저항 엘리트만이 그러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이 바로 오페라하우스 안을 내달리는 똑똑한 쥐들입니다. (p.208)

 

   개인정보 보호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이미 노출된 정보가 많아서 체념하고 사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사이퍼펑크 운동가들의 모토인 "약자에게 프라이버시를, 강자에게 투명성을."은 우리가 함께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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