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캐럴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21
찰스 디킨스 지음, 홍정호 옮김, 규하 그림 / 인디고(글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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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스크루지 영감을 이해할 수 있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입니다. 고맙게도 달력에 붉게 표시를 해 둔 덕분에 크리스마스는 쉬는 날입니다. 이번 크리스마스가 목요일이 아닌 금요일이었으면 크리스마스 자체가 '선물' 같았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저 출근하지 않는 날이지만, 어릴 때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꼬박꼬박 무언가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를 이야기하자면, 찰스 디킨스의 동화를 직접 대본으로 써 연극을 했던 기억입니다. 그때 제가 맡았던 역할은 동화 속 주인공이 아닌 극작가와 소품담당이었습니다. 대본을 들고 나름 배우들에게 연기에 대해 지적도 하고, 장면마다 필요한 소품들과 배우들의 의상까지 모두 챙겼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대본을 어떻게 각색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볼 때마다 각별한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인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소설이지만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짧은 동화가 아닌 소설로 제대로 읽은 사람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크리스마스 캐럴』이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시리즈'의 21번째 책으로 나왔습니다. 심술 궂은 스크루지 영감이 어떤 모습으로 그려졌을까요?


   『크리스마스 캐럴』의 줄거리는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꿈 속에서 과거, 현재, 미래의 유령을 만난 스크루지 영감이 크리스마스 날 아침부터 착한 사람으로 변한다는 이야기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캐럴』을 다시 읽으면서 예전에는 그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스크루지 영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진정할 수 있겠냐, 멍청이들이 우글거리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데! 메리 크리스마스라니! 망할 메리 크리스마스다! 너 같은 녀석에게 크리스마스란 버는 건 없는데 빚은 갚아야 하고, 벌이가 나아지진 않는데도 나이만 한 살 더 먹는 때일 뿐이지. 넌 지금 즐거워할 것이 아니라 장부를 보며 일 년 열두달 어느 항목에서 적자가 났는지 확인해야 할 시기가 아니냐?" (p.20)


   스크루지 영감이 인정머리는 없어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닙니다. 몸도 마음도 추운 계절, 주변 사람들과 따뜻함을 나누는 건 좋지만 크리스마스 하루를 보내기 위해 능력 밖의 지출을 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으니까요.


   "페치위그 영감은 너희들을 위해서 고작 몇 파운드만 썼을 뿐이야. 기껏해야 서너 파운드쯤 되겠지. 고작 그만한 돈이 이렇게 칭송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나?"

   그 말에 발끈한 스크루지는 그 시절의 자신과 같은 마음으로 돌아갔다.

   "절대 그런 게 아닙니다. 유령님. 페치위그 영감님은 우리들을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일을 덜어줄 수도 있고 혹은 힘들게 해서 괴롭힐 수도 있었지요. 말이나 표정에서 그분의 힘이 이렇게 잘 드러나는데, 물질적으로 사소하고 대단치 않은 게 뭐 어떻습니까? 그분이 주는 행복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매우 귀중한 겁니다." (p.89)


   과거의 유령이 보여준 것처럼, 스크루지도 어릴 때는 달랐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즐길 줄 알았고, 사장의 소소한 베품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바탕이 있었기 때문에, 하루 아침에 변할 수 있었던 거겠죠?

   아무튼, 『크리스마스 캐럴』을 다시 읽으면서 예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이 소설의 디테일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크리스마스 캐럴』 제대로 읽기에 한번 도전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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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보급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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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근원에 대한 명쾌한 해답 제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소개된지 벌써 30년이 지났고, 그가 골수성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지도 10년이 훌쩍 넘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것이 과학 기술인데, 게다가 이후 새롭게 발견된 사실들을 업데이트해 줄 저자도 없는데 아직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코스모스』의 힘은 무엇일까?

 

   대중들이 과학을 이해하고 과학적 사고를 하길 원했던 칼 세이건은 1976년부터 3년동안 《코스모스》라는 13부작 TV 시리즈 제작에 참여한다. 『코스모스』는 이 TV 시리즈의 연장선상에서 기획된 것으로, TV 시리즈에서 보여주지 못한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 우주는 어떻게 생성되었을까? 우리 인류의 조상은 진짜 원숭이인가? 우주 저 너머에는 또다른 생명체가 살고 있지 않을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이 진짜 신이 만들어 놓은 것일까? 우리가 한 두 번쯤 던져보았을 이 질문에 칼 세이건은 과학적으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가설 혹은 주장에 따르면, 이 우주는 100억에서 200억 년 전에 빅뱅이라고 불리는 대폭발에 의해 생성됐으며, 대폭발 이후 오랫동안 쉬지 않고 팽창을 계속해 오다가 우주에 분포된 어떤 물질들이 중력에 의해 뭉쳐지고 한 덩어리가 돼서 은하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렇게 형성된 수많은 은하들과 행성 혹은 그보다 더 작은 어떤 물질들이 태초에는 불규칙한 움직임을 보였지만, 서로 부딪쳐 폭발하고 소멸하는 과정에서 어떤 규칙적인 회전 운동을 하는 행성들만 살아남아 지금의 형태가 됐다. 즉, 혼돈(Chaos) 속에서 질서(Cosmos)가 성립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다윈의 자연선택설과 같은 것이 우주에서도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구라는 행성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우주의 대폭발과 이후 발생한 여러 사건들에 의해 발생한 잔해들이 서로 결합해 어떤 미생물을 탄생시켰으며, 그 미생물들이 자연 선택을 거쳐 지금의 인간으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와 '우리'라는 지적생명체는 순전히 우연과 자연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와 같은 과정을 거쳐 탄생한 또다른 생명체가 있지 않을까? 20세기 이후 급격히 발달한 기술을 토대로 탐사에 나섰지만 우리 은하 안에서는 아직까지 그 어떤 생명체도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직접 탐사에 나설 수 없을만큼 먼 거리에 있는 또다른 은하에는 생명체가 존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을거라는 상상은 하지 말라고 한다. 왜냐하면 우리 또한 우연과 자연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 또한 그들의 행성에서 생존하기에 적합하도록 진화됐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규명할 수 없는 부분을 신의 영역으로 떠넘기려는 경향이 많다. 이러한 경향은 과학 기술과 문명을 역주행하게 만든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살았던 고대 이오니아인들은 우주에는 내재된 질서가 있으며 그 질서를 과학적으로 이해하려고 했고, 그런 노력으로 지구가 둥글다는 것과 지구의 크기 등 놀라운 우주의 신비들을 알아냈다. 하지만 우리도 알다시피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했던 코페르니쿠스와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했던 갈릴레오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오히려 그것들을 부정하며 신의 영역이라 주장했다. 칼 세이건은 당시 이오니아인들이 이룩했던 과학적 발견과 지구상의 모든 지식들을 수집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불태워진 것을 안타까워 한다. 신의 존재에 대한 규명은 그의 또다른 저서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 신의 존재에 관한 과학자의 견해』에서 보다 깊이있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그는 대량살상무기와 핵무기로 인한 전 지구적 파멸을 우려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보다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로켓과 핵연료를 개발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핵연료의 힘을 빌려 로켓을 우주로 쏘아올리기도 하지만, 이 로켓에 핵무기를 싣고 같은 지구인을 향해 쏘기도 한다. 게다가 무기 개발과 전쟁에 소모되는 예산을 아낀다면 훨씬 더 우주탐사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단다.

   우리는 왜 이토록 우주로 나아가려는 것일까? 우리는 별의 잔해로부터 비롯된 존재이다. 그러므로 우주를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것과도 같으며, 무한한 우주에 대해 알게 되면 자연에 대해 경외심을 가지고 스스로 겸손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쉽고 재밌는 과학 교양서, 꼭 읽어보시길!

   앞서도 언급했듯이 출간된지 30년이 지난 과학서지만, 칼 세이건 서거 10주년을 맞이해 2006년 특별판을 내면서 역자 홍승수가 꼼꼼하게 '옮긴이 주'를 달아놓았다. 역자 또한 천문학 박사이기 때문에 그동안 변화된 과학 환경을 놓치지 않았고, 덕분에 독자들은 최신의 과학 기술까지 접할 수 있다.

   칼 세이건의 이력을 잠시 살펴보면 독특한 것이 있다. 천문학과 천체물리학으로 유명한 그는 대학에서는 인문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에는 의과대학 유전학 조교수로 활동한 적도 있다. 그가 여러 과학 분야뿐만이 아니라 인문학을 아우르는 쉽고 재밌는 글쓰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이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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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존재
이석원 지음 / 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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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도 다 외롭다는 사실마저 위로가 되지 않을 때 읽어보세요!

   지금은 음악을 들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언니네 이발관의 '가장 보통의 존재'. 리듬감 있지만 잔잔하게 깔리는 선율을 따라 낮게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와 가사가 참 인상적입니다. "나는 보통의 존재 어디에나 흔하지. 당신의 기억 속에 남겨질 수 없었지. 가장 보통의 존재 별로 쓸모는 없지. 나를 부르는 소리 들려오지 않았지."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보통의 존재』를 쓴 이석원 입니다. 제목과 노란색 표지가 그의 목소리만큼 인상적인 이 책, 노래만 부르던 그가 무슨 하고픈 말들이 많아서 산문집까지 냈을까요? 그의 음악에 귀를 기울였던 것처럼, 이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1996년에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이름으로 첫 앨범을 냈던 그는, 1998년에 결혼을 한 뒤 6년을 함께 지내다가 2004년에 이혼을 합니다. 그리고 신경정신과에 드나든 경험도 있습니다. 이혼 이후 부모님 댁에 들어가서 살다가 형편이 나빠져 아파트에서 주택으로 이사를 하기도 합니다. 조카 5명에게 용돈 만원씩을 주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어느날 후배 셋이 모인 술자리에서 각자 살아온 내력에 대해 털어놓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후배 셋이 자신의 불행이 상대의 불행보다 더하다며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을 때, 그는 이런 이야기를 던지며 그 자리를 정리해 버립니다.


   첫째, 우리집은 신경정신과에 드나든 사람이 가족 중 세 명이고 자살 시도 경험 있는 사람은 네 명이 되며… 여기까지 했더니 아이들은 벌떡 일어나 "형님 잘못 했습니다" 하더라. 사건사고가 유난히 많은 집에 태어난 탓에 별 말 같지 않은 것으로 유세를 하게 되는구나 싶어 마음이 씁쓸했지만 내가 살아온 환경이 그랬다. (p.91)


   이렇게 거침없이 털어놓는 그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후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나마 우리는 '보통의 존재'처럼 살고 있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보다 잘 나가는 누군가 혹은 태어날 때부터 금숟가락을 물고 태어난 사람들을 보며 씁쓸해 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그의 이야기를 들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미안함이 솔솔 올라옵니다.


   『보통의 존재』는 그가 이혼한지 5년이 지난 때에 나온 책입니다. 이쯤되면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것만 같았던 사랑의 상처와 대면할 수 있는가 봅니다.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랑'에 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종종 제목을 '보통의 연애'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참고로, 백영옥 작가가 쓴 『아주 보통의 연애』라는 책이 있는데 이 소설은 2011년에 쓰여진 것입니다.

   '보통의 존재'인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참 사소하고 시시콜콜합니다. 이런 걸 다 책에 쓸까 싶지만, 생각해 보면 그런 것들이 우리와 같은 '보통의 존재'들의 일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공감가는 부분이 참 많습니다. 특히, '꿈'에 대한 이야기가 그랬습니다.


"그럼,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은 어떡하지요?"

   나는 무릎을 쳤다. 그래, 저게 진짜 얘기다. 나도 꿈 같은 건 없던 청소년이었으니까.

   하지만 황정민은 거듭 주장했다. '그렇지 않다'고. '누구나 하고 싶은 게 있는 법'이라고. 그러자 강호동은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자기는 어렸을 때 하고 싶은 게 없었다고. 다만 부모의 권유로 운동을 시작했을 뿐이라고.

   꿈에 관한 둘의 이야기가 어떤 결론을 맺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난 꿈이라는 게 누구에게나 쉽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내가 알기로는 꿈이 없어서 고민하고, 꿈을 찾으려 애쓰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 내가 가졌던 의문도 학교라는 곳은 왜 꿈과 재능이 있는 사람만을 위한 곳일까, 하는 점이었다. 꿈도 재능도 없는 평범한 아이들도 살아갈 방편을 가르쳐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 (p.36~37)


   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가 글을 쓴 이유를, 아니 쓸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늦은 새벽, 모든 사람들이 잠든 시간에 작은 스탠드의 불빛에 의지해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정말 외로움이 휘몰아쳐서 당장이라도 책장을 덮게 만듭니다. 그저 막연하게 외롭다고 느낄 때 한번 읽어보세요. 정말 미치도록 외로워질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밤엔 여러분들도 그의 이야기에 귀를 한번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요? 노래만큼 감성적이고 매력적인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남들도 다 외롭다는 사실마저 위로가 되지 않을 땐 책을 읽어봐. 조금은 나아질 거야.' (p.224)


   감정이 글을 압도하게 되면 정작 표현하고 싶은 감정을 담아낼 수 없게 된다.

   글은 현실과 달라서 눈물의 양이나 표정의 절박함, 울음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드러내주는 진정성 등을 확인시켜줄 수 없기 때문에 슬프다, 슬퍼죽겠다, 라고 되뇌는 것만으로는 감정의 울림을 갖기 어려운 탓이다. (p.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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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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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치밀함에 욕이 나올 뻔한 이야기! 예감은 한번도 맞은 적이 없다!

   줄리언 반스의 말처럼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마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진 않았지만 ─ 그러지 않으려고 정말 정성들여 읽었습니다  ─  그 순간 욕이 튀어 나올 뻔 했습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전혀요. 예감은 완전히 빗나가 버렸습니다. 속된 말로 우리는 제목에 낚인 겁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영국 문학의 제왕이라 불리는 줄리언 반스의 장편소설로,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2011년 맨부커 상을 수상합니다. 원문으로는 150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 이 소설의 분량을 두고 당시 약간의 말이 오갔지만, 반스는 이렇게 반격했다고 합니다. '수많은 독자들이 나에게 책을 다 읽자마자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고 말했다. 고로 나는 이 작품이 삼백 페이지짜리라고 생각한다.'(p.261)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1960년대에 함께 고등학교를 다닌 네 친구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합니다. 주인공 토니 웹스터, 그의 패거리인 앨릭스와 콜린, 그리고 총기 넘치는 전학생 에이드리언 핀. 당시 그들이 다녔던 학교에는 자살한 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그 친구가 여자친구를 임신시켰기 때문에 자살했다는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하지만 유서도, 일기도, 그 어떤 기록도 없었기 때문에 진실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대학생이 된 그들은 각각 대학교로 진학했는데, 당연히 총기 넘쳤던 에이드리언 핀은 명문대에 입학합니다. 친구들은 서로 에이드리언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합니다. 그즈음 토니는 베로니카를 만나 사귀게 되고, 여자친구의 집까지 방문하게 됩니다. 베로니카가 아버지, 오빠와 함께 아침 일찍 산책을 나가고 토니 혼자 남게 되자 베로니카의 어머니는 토니에게 "베로니카에게 너무 많은 걸 내주지 마"(p.54)라고 합니다. 보통의 어머니가 딸의 남자친구에게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러고나서 베로니카는 토니의 친구들도 만나게 되지만, 둘은 결국 헤어지고 맙니다.

   얼마 후 토니는 에이드리언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습니다. 그는 편지에서 베로니카와 데이트를 해도 되냐고 물었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토니의 심정을 어땠을까요? 왜 하필 이 시점에서, 왜 하필 그의 친구여야만 하는 걸까요? 몇 주 후 그는 에이드리언에게 답장을 보냅니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와 베로니카가 공동으로 느낄 윤리적 가책을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꽤 많은 얘기를 했다. 또 나는 베로니카가 오래전에 받은 괴로운 상처가 있다고 봤기 때문에 그에게 신중할 것을 권했다. 그런 다음 그에게 행운을 빌었고, 그의 편지를 텅 빈 벽난로 속 쇠살대에 넣고 태운 후(신파조라고? 동의하는 바다. 그러나 청춘이었음을 참작해주기를 바란다), 이제부터 그 두 사람을 내 인생에서 영원히 내치기로 결심했다. (p.78)


   그 이후로 에이드리언과의 연락을 끊었던 토니는 한참 후에 에이드리언의 자살 소식을 듣습니다. 에이드리언은 그 옛날 친구와는 달리, 자신이 왜 죽으려고 하는지 편지를 남겼지만 실제로 그가 어떤 상태에서, 어떤 마음으로 자살을 했는지는 더이상 기록이 없기 때문에 알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에서 그는 검시관에게 자신의 자살 이유를 설명해놓았다. 그는 삶이 바란 적이 없음에도 받게 된 선물이며, 사유하는 자는 삶의 본질과 그 삶에 딸린 조건 모두를 시험할 철학적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만약 바란 적이 없는 그 선물을 포기하겠다고 결정했다면, 결정대로 행동을 취할 윤리적, 인간적 의무가 있다는 것이었다. 결론 부분은 실질적으로 자신의 논지가 타당함을 알리고자 하는 내용이었다. 에이드리언은 검시관에게 자신의 주장을 공표해줄 것을 부탁했고, 검시관은 그의 말대로 했다. (p.88)


   그 사건으로부터 40년이 훌쩍 지나고, 토니는 이제 60대 노인이 됐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내던 토니는 어느 날 한 장의 편지를 받습니다. 베로니카의 어머니가 죽으면서 그에게 500파운드와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500파운드는 당장 지급될 수 있지만,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은 그녀의 딸인 베로니카가 거부하고 있어서 당장은 집행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베로니카의 어머니가 그에게 500파운드를 남겼고, 또 어떻게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요?

   토니는 의문을 풀기 위해 베로니카를 만나지만, 베로니카는 그 어떤 대답도 해주지 않은채 그 옛날 토니가 에이드리언에게 보냈던 편지 한 장만을 보여줍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앞서 토니가 기억하고 있던 것과는 상당히 달랐습니다. 토니는 정말 격정적으로 편지를 썼고, 그 편지 속에는 베로니카를 향한 온갖 저주와 경멸이 담겨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그 옛날 친구가 여자친구를 임신시켰듯이 에이드리언에게도 베로니카를 임신시켜 보라고 했습니다.


   각자의 기억은 그의 사적인 문학 ─ 올더스 헉슬리 (p.263)


   이 시점에서부터 이야기는 휘몰아치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토니가 자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나열했던 모든 이야기들이 사실일까? 하는 의심이 생깁니다. 맨 첫 페이지에 등장했던 문장처럼, 결국 기억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본 것과 언제나 똑같지는 않은 법(p.11)이니까요.

   토니가 편지를 받고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자 베로니카는 또다른 힌트를 던져 줍니다. 하지만 토니는 그것이 힌트라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토니의 기억과 시선을 따라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독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도대체 어떤 것에 대한 힌트일까요?

   모든 비밀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밝혀집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감했던 모든 것들이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아닙니다. 예감은 한번도 맞았던 적이 없습니다. 이쯤되면 독자는 줄리언 반스의 치밀함에 무릎을 치며 욕을 하게 됩니다. 줄리언 반스는 이 장면의 반전을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그토독 치밀하게 이야기를 짜놓았던 것입니다. 그 말 많던 부커상 심사위원들이 한마디의 이견도 없이 이 소설을 만장일치로 선정해 버린 이유를 알겠습니다.

   작가가 이토록 치밀하게 이야기를 짜놓은 것처럼 독자 또한 치밀하게 읽지 않으면, 작가의 말처럼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마자 다시 처음부터 읽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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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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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책'이란?

   책은 많은 사람들을 꿈꾸게 하고, 그 꿈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여기 평생 책과 함께 꿈꾸며 산 사람이 있습니다. 그녀는 평생 여러 곳의 도서관과 서점에서 일하면서 '출판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을 쓰는 꿈을 꾸었습니다. 아마존과 뉴욕타임스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을 써냈으니 그녀의 꿈은 이뤄졌다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녀는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을 쓰면서 건강이 나빠졌고, 조카에게 책을 마무리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녀는 책이 출간되는 것을 보지 못했고, 이 책은 그녀의 유작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나이 75살에 비로소 꿈을 이루게 됐다는 사실을 알고 떠났을까요?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속에는 메리 앤 섀퍼처럼 책을 통해 희망을 키우고, 꿈을 키운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있던 채널 제도의 건지 섬 사람들은 5년 동안 독일군의 지배를 받으며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살아야만 했습니다. '외부 소식 차단령'이라는 이름 하에 라디오는 물론이고 모든 통신이 단절된 상태였기 때문에 영국이 어떻게 되었는지, 전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건지 섬 사람들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전쟁이 장기화되자 독일군들은 건지 섬 사람들의 식량까지 통제하고, 약탈합니다. 그 와중에 돼지 한 마리를 숨기는데 성공한 모저리 부인이 마을 사람들을 초대해 돼지구이 파티를 벌입니다. 이 파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몇몇 사람들이 독일군의 통금시간에 걸리게 되는데, 이때 엘리자베스가 재치를 발휘해 문학회를 하다가 시간이 늦은 줄도 몰랐다고 둘러댑니다. 이 거짓말이 거짓말로 들통날까봐 건지 섬 사람들은 진짜 문학회를 열게 되고, 이렇게 해서 '건지 섬의 감자껍질파이 문학회'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 파티가 건지 섬의 감자껍질파이 문학회 첫 모임인 셈이었으니까요. 당시엔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지만 말입니다. 음식도 좀처럼 맛보기 힘든 진미였지만 사람들은 더더욱 훌륭했습니다. 신나게 먹고 이야기하느라 모두 시간 가는 줄 몰랐지요. 그러다 아멜리아(모저리 부인의 이름입니다)가 9시를 알리는 시계 종소리를 들었습니다. 야간 통금 시간에서 두 시간이나 지난 겁니다. 뭐, 배불리 먹고 배짱이 두둑해진 탓일까요, 엘리자베스 매케너가 밤새 아멜리아의 집에 숨어 있을 게 아니라 당당하게 나가서 각자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을 때 모두가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통금을 어기는 건 범죄 행위였어요. 실제로 수용소로 끌려간 사람들 얘기도 들었으니까요. 하물며 돼지를 숨기는 건 더 큰 범죄였기 때문에, 우리는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들판을 살금살금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존 부커 때문에 그만 일이 틀어졌습니다. 파티에서 음식보다 술을 더 마시더니만 우리가 도로에 닿자마자 정신을 놓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 겁니다! 제가 즉시 그를 붙잡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독일군 순찰 대원 여섯 명이 숲 속에서 튀어나오더니 기관총을 겨누며 고함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통금 시간에 왜 나돌아다녀?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지? 어디로 가는 중이야?

   저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도망가면 그들이 저를 쐈을 겁니다. 그 정도는 분명히 알고 있었지요. 입이 분필처럼 바싹 마르고 머릿속은 텅 비어버렸습니다. 그저 부커를 붙잡은 채 헛된 희망에 기댈 수밖에요.

   바로 그때 엘리자베스가 심호흡을 하더니 앞으로 나섰습니다. 엘리자베스는 키가 작아요. 그래서 총구가 그녀의 눈앞에 늘어서 있었는데도 그녀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습니다. 마치 총을 전혀 보지 못한 듯 행동했습니다. 그녀는 순찰대 대장에게 다가가서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빨간 거짓말이었지요. 통행금지령을 어겨서 정말 죄송합니다, 건지 섬 문학회 모임이 있었어요, 오늘은 『엘리자베스와 그녀의 독일식 정원』에 대해 토론했는데 정말 유쾌하 시간을 보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책이죠, 혹시 읽어보셨나요? (p.50~51)

 

   전쟁 중에 '이지 비커스태프, 전장에 가다'라는 글을 쓰며 유명세를 떨친 줄리엣은 건지 섬에 살고 있는 도시의 편지를 통해 우연히 건지 섬의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습니다. 글의 소재를 찾던 줄리엣은 건지 섬 사람들과 북클럽에 대해 글을 쓰기로 하고, 건지 섬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 받기 시작합니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런던에 살고 있는 줄리엣과 건지 섬 사람들이 주고 받은 편지로 쓰여진 서간문 형식의 소설입니다. 비록 곤란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한 거짓말 때문에 탄생한 북클럽이었지만, 사람들은 이 북클럽을 통해 책을 읽고 흥미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책을 통해, 사람들을 통해 5년의 시간을 버텨냅니다.

 

   이 소설에는 찰스 램이라는 작가가 등장합니다. 맨처음 도시가 줄리엣에게 편지를 쓰게 된 이유도 바로 찰스 램이라는 작가의 또다른 작품을 구하기 위해서 입니다. 어떻게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실례를 무릅쓰고 편지를 쓸 수 있는지, 그리고 성가심에도 불구하고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지,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친애하는 애슈턴 양,

   제 이름은 도시 애덤스입니다. 건지 섬 세인트마틴스 교구에서 농장을 운영하고 있지요. 제가 당신을 어떻게 아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예전에 당신이 갖고 있던 찰스 램의 『엘리아 수필 선집』이 지금 저한테 있습니다. 앞표지 안쪽에 당신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더군요.

   돌려 말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전 찰스 램의 열렬한 팬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책 제목이 '선집'인 걸로 짐작건대 작가의 다른 글들도 나와 있다는 얘기 같아서요. 다른 작품이 있다면 당연히 읽고 싶은데, 독일군은 건지 섬을 떠났지만 남아 있는 서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부탁드립니다. 런던에 있는 서점 이름과 주소를 좀 보내주시겠습니까? 찰스 램의 작품을 우편으로 주문하려 합니다. 그리고 혹시 그의 전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있다면 서점에 한 권 구해달라고 얘기해주시겠습니까? 그의 유쾌하고 기지 넘치는 글을 읽다 보니 찰스 램이 인생에서 엄청난 슬픔을 겪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일군 점령하에서도 저는 찰스 램 덕분에 웃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돼지구이에 관한 글이 압권이지요. 우리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도 독일군에게는 비밀로 해야 했던 돼지구이 때문에 탄생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찰스 램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성가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찰스 램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보다는 실례를 무릅쓰는 편이 나을 것 같았습니다. 그의 글을 읽다 보니 찰스 램과 친구가 된 것 같거든요.

폐가 되지 않기를 희망하며, 도시 애덤스 (p.18~19)

 

   도시가 편지에서도 언급했듯이, 찰스 램은 실제로 인생에서 엄청나게 슬픈 일을 겪었습니다. 그녀의 누이가 부모님을 칼로 찔러 죽였지만, 찰스 램은 평생 그녀의 뒷바라지를 하며 그녀를 보살폈습니다. 그리고 『엘리아 수필 선집』을 써냈습니다. 줄리엣은 '책 속의 작은 것 하나가 관심을 끌고, 그 작은 것이 다른 책으로 이어지고, 거기서 발견한 또 하나의 단편으로 다시 새로운 책'(p.22)을 찾는 걸 좋아한다고 합니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도 찰스 램이라는 작가를 언급하며 그런 재미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도시가 그토록 사랑한 작가 찰스 램의 글이 문득 궁금해 집니다. 정말 그의 글에서 슬픔이 느껴지는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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