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에게 '책'이란?

   책은 많은 사람들을 꿈꾸게 하고, 그 꿈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여기 평생 책과 함께 꿈꾸며 산 사람이 있습니다. 그녀는 평생 여러 곳의 도서관과 서점에서 일하면서 '출판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을 쓰는 꿈을 꾸었습니다. 아마존과 뉴욕타임스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을 써냈으니 그녀의 꿈은 이뤄졌다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녀는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을 쓰면서 건강이 나빠졌고, 조카에게 책을 마무리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녀는 책이 출간되는 것을 보지 못했고, 이 책은 그녀의 유작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나이 75살에 비로소 꿈을 이루게 됐다는 사실을 알고 떠났을까요?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속에는 메리 앤 섀퍼처럼 책을 통해 희망을 키우고, 꿈을 키운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있던 채널 제도의 건지 섬 사람들은 5년 동안 독일군의 지배를 받으며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살아야만 했습니다. '외부 소식 차단령'이라는 이름 하에 라디오는 물론이고 모든 통신이 단절된 상태였기 때문에 영국이 어떻게 되었는지, 전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건지 섬 사람들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전쟁이 장기화되자 독일군들은 건지 섬 사람들의 식량까지 통제하고, 약탈합니다. 그 와중에 돼지 한 마리를 숨기는데 성공한 모저리 부인이 마을 사람들을 초대해 돼지구이 파티를 벌입니다. 이 파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몇몇 사람들이 독일군의 통금시간에 걸리게 되는데, 이때 엘리자베스가 재치를 발휘해 문학회를 하다가 시간이 늦은 줄도 몰랐다고 둘러댑니다. 이 거짓말이 거짓말로 들통날까봐 건지 섬 사람들은 진짜 문학회를 열게 되고, 이렇게 해서 '건지 섬의 감자껍질파이 문학회'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 파티가 건지 섬의 감자껍질파이 문학회 첫 모임인 셈이었으니까요. 당시엔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지만 말입니다. 음식도 좀처럼 맛보기 힘든 진미였지만 사람들은 더더욱 훌륭했습니다. 신나게 먹고 이야기하느라 모두 시간 가는 줄 몰랐지요. 그러다 아멜리아(모저리 부인의 이름입니다)가 9시를 알리는 시계 종소리를 들었습니다. 야간 통금 시간에서 두 시간이나 지난 겁니다. 뭐, 배불리 먹고 배짱이 두둑해진 탓일까요, 엘리자베스 매케너가 밤새 아멜리아의 집에 숨어 있을 게 아니라 당당하게 나가서 각자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을 때 모두가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통금을 어기는 건 범죄 행위였어요. 실제로 수용소로 끌려간 사람들 얘기도 들었으니까요. 하물며 돼지를 숨기는 건 더 큰 범죄였기 때문에, 우리는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들판을 살금살금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존 부커 때문에 그만 일이 틀어졌습니다. 파티에서 음식보다 술을 더 마시더니만 우리가 도로에 닿자마자 정신을 놓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 겁니다! 제가 즉시 그를 붙잡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독일군 순찰 대원 여섯 명이 숲 속에서 튀어나오더니 기관총을 겨누며 고함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통금 시간에 왜 나돌아다녀?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지? 어디로 가는 중이야?

   저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도망가면 그들이 저를 쐈을 겁니다. 그 정도는 분명히 알고 있었지요. 입이 분필처럼 바싹 마르고 머릿속은 텅 비어버렸습니다. 그저 부커를 붙잡은 채 헛된 희망에 기댈 수밖에요.

   바로 그때 엘리자베스가 심호흡을 하더니 앞으로 나섰습니다. 엘리자베스는 키가 작아요. 그래서 총구가 그녀의 눈앞에 늘어서 있었는데도 그녀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습니다. 마치 총을 전혀 보지 못한 듯 행동했습니다. 그녀는 순찰대 대장에게 다가가서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빨간 거짓말이었지요. 통행금지령을 어겨서 정말 죄송합니다, 건지 섬 문학회 모임이 있었어요, 오늘은 『엘리자베스와 그녀의 독일식 정원』에 대해 토론했는데 정말 유쾌하 시간을 보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책이죠, 혹시 읽어보셨나요? (p.50~51)

 

   전쟁 중에 '이지 비커스태프, 전장에 가다'라는 글을 쓰며 유명세를 떨친 줄리엣은 건지 섬에 살고 있는 도시의 편지를 통해 우연히 건지 섬의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습니다. 글의 소재를 찾던 줄리엣은 건지 섬 사람들과 북클럽에 대해 글을 쓰기로 하고, 건지 섬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 받기 시작합니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런던에 살고 있는 줄리엣과 건지 섬 사람들이 주고 받은 편지로 쓰여진 서간문 형식의 소설입니다. 비록 곤란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한 거짓말 때문에 탄생한 북클럽이었지만, 사람들은 이 북클럽을 통해 책을 읽고 흥미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책을 통해, 사람들을 통해 5년의 시간을 버텨냅니다.

 

   이 소설에는 찰스 램이라는 작가가 등장합니다. 맨처음 도시가 줄리엣에게 편지를 쓰게 된 이유도 바로 찰스 램이라는 작가의 또다른 작품을 구하기 위해서 입니다. 어떻게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실례를 무릅쓰고 편지를 쓸 수 있는지, 그리고 성가심에도 불구하고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지,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친애하는 애슈턴 양,

   제 이름은 도시 애덤스입니다. 건지 섬 세인트마틴스 교구에서 농장을 운영하고 있지요. 제가 당신을 어떻게 아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예전에 당신이 갖고 있던 찰스 램의 『엘리아 수필 선집』이 지금 저한테 있습니다. 앞표지 안쪽에 당신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더군요.

   돌려 말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전 찰스 램의 열렬한 팬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책 제목이 '선집'인 걸로 짐작건대 작가의 다른 글들도 나와 있다는 얘기 같아서요. 다른 작품이 있다면 당연히 읽고 싶은데, 독일군은 건지 섬을 떠났지만 남아 있는 서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부탁드립니다. 런던에 있는 서점 이름과 주소를 좀 보내주시겠습니까? 찰스 램의 작품을 우편으로 주문하려 합니다. 그리고 혹시 그의 전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있다면 서점에 한 권 구해달라고 얘기해주시겠습니까? 그의 유쾌하고 기지 넘치는 글을 읽다 보니 찰스 램이 인생에서 엄청난 슬픔을 겪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일군 점령하에서도 저는 찰스 램 덕분에 웃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돼지구이에 관한 글이 압권이지요. 우리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도 독일군에게는 비밀로 해야 했던 돼지구이 때문에 탄생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찰스 램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성가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찰스 램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보다는 실례를 무릅쓰는 편이 나을 것 같았습니다. 그의 글을 읽다 보니 찰스 램과 친구가 된 것 같거든요.

폐가 되지 않기를 희망하며, 도시 애덤스 (p.18~19)

 

   도시가 편지에서도 언급했듯이, 찰스 램은 실제로 인생에서 엄청나게 슬픈 일을 겪었습니다. 그녀의 누이가 부모님을 칼로 찔러 죽였지만, 찰스 램은 평생 그녀의 뒷바라지를 하며 그녀를 보살폈습니다. 그리고 『엘리아 수필 선집』을 써냈습니다. 줄리엣은 '책 속의 작은 것 하나가 관심을 끌고, 그 작은 것이 다른 책으로 이어지고, 거기서 발견한 또 하나의 단편으로 다시 새로운 책'(p.22)을 찾는 걸 좋아한다고 합니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도 찰스 램이라는 작가를 언급하며 그런 재미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도시가 그토록 사랑한 작가 찰스 램의 글이 문득 궁금해 집니다. 정말 그의 글에서 슬픔이 느껴지는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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