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어둠을 밝힌 여성들 - 은자의 나라에 처음 파송된 선교사 이야기
캐서린 안 지음, 김성웅 옮김 / 포이에마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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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어디든 빛과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교회역사도 예외이지 않다. 구한말 조선 땅에 들어 온 선교들은 단지 복음만 전한 건 아니다. 그들이 의료와 교육에 매진하긴 했지만 또 다른 이권에 연루된 것도 사실이다.

미국인 선교사 앨런은 조정 대신의 몸을 고쳐준 뒤 어의(御醫)로 승격되어 광혜원을 세우지만, '을미사변' 전 일본공사가 명성왕후를 만나도록 주선한 인물이기도 하다. 언더우드는 제중원 약제사로서 의학생들을 가르치며 한국어 성경번역에 힘을 쓰지만, 석유와 석탄과 농기구를 수입한 인물이다. 왕실과 가까이 한 다른 굵직한 선교사들도 예외이지는 않다.

그 당시 외국인 선교사들은 대부분 남성들이 주도했다. 그렇다고 여성 선교사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남성 선교사의 아내로서 또는 독신 여성으로서 조선 땅을 밟은 외국인 여성 선교사들은 많았다. 다만 그녀들의 활동은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그늘로 가려 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또 다른 빛과 그림자라 할 수 있다.

미주 1.5세로서 풀러신학교에서 교회사를 강의하고 있는 캐서린 안은 〈조선의 어둠을 밝힌 여성들〉을 통해 1884년부터 1907년까지 조선 땅에 활동한 외국인 여성선교사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앞서 밝힌 것처럼 외국인 여성 선교사들에 관한 빛과 명암을 다루는 책은 아니다. 그저 교육과 의료를 중심으로 한 선교활동의 빛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미국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부 문헌에는 한국 선교 활동에 관한 방대한 정보가 들어 있다. 그러나 이런 공식 기록에도 여성 선교사의 사역이 모두 담겨 있지는 않다. 오히려 여성 선교사들이 쓴 일기나 가족에게 보낸 편지, 여성 선교회와 주고받은 서신 등 개인적인 기록이 이들의 일상과 사역을 훨씬 더 풍부하고 생생하게 들려준다."(들어가는 말)

일례로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은 초창기 개신교인들이 '평양의 오마니'라고 불렀던 미국 여성이라고 한다. 그녀는 44년간 선교사로 일하면서 한국 땅에 병원을 네 개나 세웠고,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학교와 여자 의과대학도 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처럼 1884년부터 1907년까지 한국 땅을 밟은 여성 선교사들은 200여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녀들의 삶이 여태 조명도 받지 못한 채 땅속에 묻혀 온 것이다.

캐서린은 그녀들의 행적을 쫓는 자료가 많지 않았음을 밝혔다. 그렇다고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원 자료의 잡지들을 추적하여 이 책을 엮어냈다. 이른바 북감리교 여성선교회에서 발간한 〈이방 여성의 친구〉, 남감리교 여성선교회에서 발간한 〈여성 선교사의 목소리(Woman's Missionary)〉, 북장로교 여성선교회의 〈여성을 섬기는 여성 사역(Woman's Work for Woman)〉과 〈우리의 선교지(Our Mission Field)〉가 그것이다.

그때 당시 한국 땅을 밟은 여성 선교사들은 어떤 선교사역에 주력했을까? 그녀들은 남성 선교사들처럼 대부분 의료와 교육 사업에 몰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 땅에 선교사로 자처한 여성들은 대부분 외국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자란 중산층 출신이었다고 한다. 그런 학식과 재능을 의료와 교육 쪽에 헌신했던 것이다.

"선교사들은 1900년경 제물포와 서울 사이에 철로가 놓이기 전까지 20년간 나귀와 가마를 타고 이 길을 지났다. 뒤에 온 선교사들은 철도 덕분에 서울까지 두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94쪽)

이는 메리 스크랜턴이 1885년 7월 9일 날 여성해외선교회에 보낸 편지로서, 여성 선교사들이 한국 땅에 제일 먼저 발을 내딛으면서 겪은 고충을 이야기한 바다. 육로로 40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나귀나 가마로 9시간씩 여행해야 했던 여정이 힘들었고, 중간에 일꾼들이 주막에 들리면 갇혀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녀들을 보기 위해 구경꾼들까지 달려들기도 했다고 한다.

살면서 겪은 고충은 어떤 점들이었을까? 집 구조가 너무 작은 것, 수세식 화장실이 없는 것, 고춧가루를 버무린 김치를 먹어야 했던 것들이 힘든 점이었다고 밝힌다. 더욱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휘말린 것과 일제에 강제로 병합당한 것이 가장 큰 고충이었다고 한다. 주권을 잃은 백성들을 선교한다는 게 때로는 생명을 내걸고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애니 엘러스는 오자마자 명성왕후를 돌보는 일을 했다. 호러스 앨런과 헤론은 고종을 돌보았다. 의대를 정식으로 졸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몇 몇 선교사가 탐탁지 않아 했지만, 앨러스는 명성왕후를 잘 치료했다. 그리고 국립병원에서 여성병동도 열었다."(184쪽)

이는 1886년에 한국에 파송된 첫 번째 여성 의료 선교사인 애니 엘러스에 관한 내용이다 그녀는 한국에 온 첫 번째 독신 여성 선교사였는데, 그녀는 마치 제 몸처럼 명성왕후를 잘 돌보고 치료했다고 한다. 물론 그 뒤로 온 다른 여성 선교사들도 다르지 않았는데, 놀라운 건 한국에서 법으로 포교를 금하고 있던 그 때에도 여성 의료선교사들은 명성왕후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왕실과 관련된 선교활동이었다면 왕실 밖 민간인들에게는 어떤 활동을 펼쳤을까? 그 당시 여성 선교사들은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한 여성들에게 '여성 성경반'을 열었고, 주일학교를 꾸려 어린아이들까지도 가르쳤다고 한다. 훗날 그것은 여성 지도자들을 기르는 모판이 되었다고 한다.

캐서린 안의 〈조선의 어둠을 밝힌 여성들〉은 구한말 외국인 여성 선교사들이 펼친 선교활동의 빛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그녀들이 실수한 과오보다는 공적에 치중하고 있다. 그것은 외국인 여성 선교사들이 추구한 선교활동이 남성위주의 발판을 따랐기 때문이고, 그녀들과 관련된 기록물들이 제한돼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앞으로 이 책을 바탕으로 외국인 여성 선교사들이 활동한 반면교사의 삶을 객관적으로 추적한 책들도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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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사는 공장 - 공장식 축산업 너머의 삶과 좋은 먹거리를 찾아서
니콜렛 한 니먼 지음, 황미영 옮김 / 수이북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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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시골집에서 돼지를 키운 적이 있었죠. 집 마당을 가로질러 측간(厠間) 바로 앞에 돼지우리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녀석은 먹고 자고 싸는 일상을 살았죠. 그때 녀석이 먹었던 주식은 우리집 식구들이 먹고 남은 밥과 김치였습니다. 녀석이 하룻밤 사이에 9마리나 되는 새끼를 날 때가 가장 기뻤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 무렵에는 소도 키웠습니다. 그걸로 자녀들 학자금을 마련코자 하는 아버지 뜻이었지요. 그때 송아지도 네 마리나 사들였고, 저 멀리 산 너머에 큰 산도 하나 사서 철조망을 둘러쳤습니다. 그곳에서 소들이 마음놓고 풀을 뜯어먹고 자라도록 했던 것입니다. 물론 겨울철에는 짚을 차곡차곡 쌓아 놓고, 그것을 한 뭇씩 작두로 잘라 소에게 먹이곤 했지요.

지금은 시골에서 돼지와 소를 한두 마리씩 키우고 있는 집은 없습니다. 세 집 정도만 막사를 지어 돼지와 소를 키우고 있을 뿐이지요. 그렇다고 산에다 방목하는 건 아닙니다. 콘크리트 바닥과 철골 지붕 안에 소를 가둬두고 사료를 먹여서 키우고 있지요. 이른바 '공장식 축산'이라 할 수 있지요.

니콜렛 한 니먼의 〈돼지가 사는 공장〉은 노스캐롤라이나를 중심으로 번성한 공장식 축산이 몰고 오는 환경오염, 그에 따른 인체의 해로운 질병을 야기할 수 있는 건강상의 문제들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본래 그녀는 전미야생돌물 연합의 변호사로 몸담고 있었지만 '워터키퍼 얼라이언스'로 직장을 옮긴 뒤부터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과 피해를 언론과 환경단체 심지어 법원에까지 소장을 제출하여 큰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공장식 축산업계는 정치적 영향력을 휘둘러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과학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연구 결과를 발표하지 못하게끔 막는다. 대형 축산업체들의 운영 방식이 국민들의 건강에 엄청난 위협이 된다는 내용이 알려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논의 자체를 덮어 버리려 하는 축산업계의 시도를 니콜렛과 내가 직접 겪은 적도 있다."('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의 서문 겸 추천사)

그녀는 1980년대 전만 해도 노스캐롤라이나는 소규모 농장에다 다양한 곡식을 재배했고, 돼지도 몇 마리씩 풀어 놓고 키웠다고 합니다. 당시 그 지역의 돼지는 모두 합해 200만 마리가 채 되지 않았다고 하지요. 그만큼 오염이 되지 않았으니 그땐 개울도 맑고 투명했고 물고기와 게도 잡힐 정도로 유명한 지역이었다고 합니다.

헌데 1989년에는 그 돼지 수가 250만 마리로 늘어나더니 2003년에는 1,000만 마리로 급증했다고 합니다. 반면에 같은 기간 내에 그 지역의 돼지 농장은 1만 2,500곳에서 2,800곳으로 줄어들었다고 하지요. 야외에 방목하며 키우던 전통식 농장이 사라지고, 점차 배설물 구덩이를 갖추고 수천 마리의 돼지를 가두고 기르는 기업형 사육시설 들어섰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한 문제점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무엇보다 돼지나 소는 유전자변형 옥수수로 만든 사료와 성장호르몬제를 맞아야 하고, 각종 질병에도 너끈히 견딜 수 있는 항생제를 맞게 된다는 점이지요. 그걸 도살하여 사람들이 사서 먹게 되니, 온전한 사람도 차츰차츰 병에 걸릴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기업형 사육시설에서 내 보내는 여러 오물들이 대지와 하천으로 스며들고, 인근 지역에는 악취를 풍기고, 여러 기생충들과 모기떼들을 불러 모으니, 그 지역 전체가 오염될 수 밖에 없겠지요. 그녀가 공장식 축산에 대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한 게 그 두 가지였습니다.

그것을 세상 언론에 알리고, 여러 환경단체에 호소하고, 심지어 법원에 소장까지 제출하여 큰 성과를 거두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겠지요. 그런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지, 그 소송을 준비하면서 만난 인물 가운데 존 트라볼타 주연의 〈시빌 액션(Civil Action)〉의 실제 주인공인 '잰 슐리츠먼' 변호사와 영화 〈인사이더(The Insider)〉의 실제 주인공으로 담배회사를 상대로 싸웠던 '스티브 보즈먼' 변호사도 발벗고 도와줬다고 합니다.

물론 축산업계의 반발과 방해공작도 만만치 않았다고 하지요. 그녀와 관련된 여러 환경 단체를 향해서는 '채식주의 운동가들이 활동하는 단체'이자 '축산업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는 동부 출신 변호사들'이 펼치는 주장이라고 매도했다고 합니다. 아울러 미국 정부를 동원하여 축산업 연구원들의 활동까지도 검열토록 했고, 농무부를 향해서도 격하게 항의하는 방해공작을 펼쳤다고 하지요. 하지만 법원은 결국 워터키퍼의 손을 들어줬다고 합니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사무총장과의 갈등으로 그녀는 그 일을 정리해야 했고, 그 즈음 캘리포니아의 니먼 랜치에서 실제 방목을 하고 있는 목장주 '빌 니먼'을 만나 혼인까지 골인하게 되고, 전혀 예상치 않게 남편과 함께 직접 소를 키우며 블루베리도 따는 즐거운 생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변호사로서, 환경단체 직원으로, 그리고 목장 부인으로 살게 된 그녀의 이력과 함께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과 그 피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 꼼꼼히 짚어 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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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처럼 생각하라 - 지구와 공존하는 방법
아르네 네스.존 시드 외 지음, 이한중 옮김, 데일런 퓨 삽화 / 소동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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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남한산성을 올라갑니다. 마천동 버스 종점에서 시작하여 산 할아버지 흉상이 있는 다리를 지나, 서문을 통과해 전망대까지 오르지요. 그 위에 서면 서울 시내 전경은 물론이고 한강 너머 저 멀리 남산까지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망원경으로 보면 안전철봉에 가리는 게 많기에 제 눈으로 보는 게 더 많은 대자연을 담을 수 있습니다.

1624년 조선왕조 제 16대 임금인 인조 2년부터 축성하기 시작한 남한산성은 2년 뒤 완공하게 됩니다. 그런데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을 맞은 그 해 12월 14일 임금은 도성을 빠져나와 송파 강나루를 건너 남문으로 피해 들어가지요. 그로부터 47일 만에 임금은 두 사람이 지나기도 어려운 비좁고 어두운 서문으로 그 산성을 걸어 나와야 했습니다.

그 역사의 뒤안길은 수어장대(守禦將臺) 옆 조그만 누각 안에 있는 무망루(無忘樓)라는 현판을 통해 엿볼 수 있지요. 다만 김훈의 〈남한산성〉은 그때의 치욕이 청나라로부터 겪은 일이지만 실은 조정 대신들 간의 다툼이 더 큰 화를 자초했다고 꼬집지요. 어떤 역사든지 뼈아픈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지만, 남한산성이 그 자체로서 좋은 건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 위에 성벽을 얹어 놓은 모습 때문입니다.

2018년에 치러질 평창 동계올림픽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관심거리입니다. 그런데 벌써부터 인근 주변의 땅값이 들썩인다고 하지요. 각종 개발에 따른 여러 이득들을 누리고자 함이겠지요. 하여 1994년도 동계 올림픽 개최지였던 노르웨이의 릴레함메르(Lillehammer)를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들 하지요. 대자연과 조화를 이룬 조립식 건물들이 그것입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건물을 지었으니 땅 투기도 없었을 테고, 경기가 끝나 모든 시설물들을 철수하였으니 막대한 관리비용까지 막을 수 있었겠지요. 그야말로 자연친화적인 동계올림픽이었겠죠.

일상의 산행에서 역사까지, 그리고 머잖아 치를 세계적인 동계 올림픽까지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게 어설픈 조화 같습니다. 하지만 그 중심에 있는 한 가지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 이것 저것 끌어 온 것입니다. '대자연과 동일시하는 인간의 삶' 말이지요. 그건 아르네 네스와 존 시드 외 여럿이서 쓴 〈산처럼 생각하라〉를 읽어봐도 너무나도 타당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반짝이며 흐르는 냇물과 강물은 그냥 물이 아니라 우리 조상의 피입니다. 우리가 백인에게 우리 땅을 팔면 그들은 그것이 신성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그것이 신성한 것임을, 맑은 호수에 비치는 신령한 모든 것들이 우리 생의 사건과 기억을 말해준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흐르는 물소리는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음성입니다."(48쪽)

"땅이 우리 친족들의 생명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식들에게 가르치는 바를, 땅이 우리의 어머니라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땅에 일어나는 일은 땅의 자식에게도 일어납니다. 사람이 땅에 침을 뱉으면 제 얼굴에 침을 뱉는 것입니다."(53쪽)

대자연에 흐르는 냇물과 강물이 조상들의 피라니, 그 물소리가 아버지의 음성이라니, 얼마나 놀라운 식견입니까? 대자연의 땅이 어머니라니, 그 땅에 침을 뱉는 게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꼴이라니, 얼마나 깊이 있는 혜안입니까? 그것은 자기 자신을 산과 동일시하며 사는 사람이라야 깨달을 수 있는 진리겠지요. 사실 성경에서도 사람이 대자연의 '흙'으로부터, 아니 티끌과 같은 '먼지'로부터 나왔다고 하니, 인간은 대자연에 속해 있는 존재일 뿐이지요. 인간중심주의라는 말은 결코 옳지 않는 말이겠지요. 그것은 죽어 흙가루가 되어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만으로도 가히 숙연해지는 진리입니다.

정부가 나서서 강정마을의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고 있지요. 멀쩡한 강들도 이미 파헤칠 대로 파헤친 이 정부는 과연 철학과 역사의식이 있기나 한 걸까요? 태곳적으로부터 내려온 대자연의 흐름만 내다보았던들 결코 그런 난개발과 파괴행위는 벌이지 않았겠지요. 그 속에 빈 머리를 맞대며 일하는 참모들도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여 해군기지를 설치한다 한들 우리에게 군사주권이 없는 그 기지이니 미국에게 조공을 바치는 것과 뭐가 다를까요? 그 일에 정부 요원들이 머리를 맞댔으니 어찌 인조 시대의 조정대신들과 다르지 않다 할 수 있겠습니까?

늦게 가더라도, 더디 돌아간다 해도 물처럼 흐르는 것보다 더 좋은 건 없습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상선약수(上善若水)'도 실은 수 천 년의 지혜와 철학과 역사 속에서 품어 나온 잠언이잖습니까? 그만큼 인간중심주의보다 대자연의 흐름에 인간이 내 맡기며 사는 것보다 더 좋은 삶은 없다는 뜻이겠지요. 마지막 임기를 코앞에 두고 있는 대통령과 이 정부를 이끌어가는 참모들은 부디 이 책 〈산처럼 생각하라〉를 탐독해야 할 듯 싶습니다. 그리하여 늦게나마 대자연의 산과 들과 강과 물에 자신들을 동일시하는 마음이 동(動)한다면 역사 앞에 참회하는 시간을 갖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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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사람을 사랑하는 기술 - 2500년을 뛰어넘는 진보적 삶과 세계에 대한 깊은 지혜와 성찰
이남곡 지음 / 휴(休)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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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는 공자 문하에서 남긴 대화집이다. 일부는 공자가 한 말이고 또 일부는 문하생들이 한 말이다. 예수가 남긴 말도 후대가 남겼듯이 논어도 공자시대엔 경(經)이 될 수 없었다. 공자의 가르침이 성전(聖典)이 된 것은 공자 사후의 일이다. 그것이 이데올로기가 된 것도 그렇다.

논어는 세상을 사는 정치과 교육, 문화와 경영까지도 담고 있다. 논어를 정치학, 기업경영, 학문의 교본으로 삼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논어의 근본 바탕은 사람을 사랑하는데서부터 출발한다. 이남곡 선생의 〈논어, 사람을 사랑하는 기술〉은 그걸 일깨운다.
"성인이 되는 길을 나와 다른 세상의 일로만 어렵게 여길 필요는 없다. 한자로 '성聖'을 풀어 보면 耳와 呈의 합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귀耳를 뜻으로 삼고 정呈을 소리로 삼고 있다. 즉 소통에 막힘이 없는 사람을 말한다. 예수님이나 부처님 같은 성인은 못 되어도 소통의 달인은 한 번 쯤 도전해 볼만하지 않을까. 소통疏通은 인간이 개인화 되고 파편화되고 있는 오늘날 가장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는 화두다. 가정에서부터 국가, 세계에 이르기까지 소통이 절실한 시대라 하겠다."(320쪽)
이는 논어 제 9편 자한 4장을 풀어가면서 한 이야기다. 이른바 '공인'(公人)을 이야기함인데, 공인이란 단순히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중심적인 이익과 욕망을 넘어선 인간이란 뜻이다. 다시 말해 소아(小我)의 존재론적인 자아를 넘어 대아(大我)의 관계론적인 삶으로 나아가는 것 말이다.
그것이 바로 공자를 성인(聖人)으로 추앙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사람을 사랑하는 인(仁)을 주창했고, 참된 소통의 삶을 추구했고, 아집이 없는 대자유인으로 산 까닭 말이다. 물론 시절이 수상하던 춘추전국 시대였으니 무턱대고 무아(無我)와 같은 추상적인 이야기를 한 건 아니었다. 오직 실천적인 언행을 내세웠다.
어쩌면 그런 연유 때문이었을까? 젊은 시절 이남곡이 공자를 보수 우익의 원조로 여긴 것 말이다. 함평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교사운동을 하던 가운데 '남민전'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으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옛 시절의 고전 해설들이 시대 정권을 보좌하는 시녀역할을 자처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한국불교사회연구소 소장직을 맡고, 전북 장수로 귀농한 그는 논어를 달리 읽기 시작했다. 이른바 정치학이나 기업경영 혹은 학문의 교본이라는 시각을 벗어나 참된 인간애를 품고 있는 게 논어의 정수라는 것 말이다. 그것이 이 책에서 보수주의자들과 진보주의를 모두 품고 나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논어 제 2편 위정 14장을 읽어가면서 참된 군자(君子) 상을 밝혀주고 있다. 이른바 무고정(無固定)의 사람, 무아집(無我執)의 인격으로 결코 편파적이지 않고 보편성을 추구하며 그것을 실언하는 인간을 일컫는다. 그것이 주이불비(周而不比)이자 군이불당(群而不黨)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총선과 대선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그야말로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이합집산을 이룰 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곡남 선생은 주이불비(周而不比)의 정신을 살려 개인이나 특정 세력의 이익을 좇기보다 인류 전체의 보편적 이익을 추구하도록 당부한다. 그것이 곧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가치이자, 우리사회가 보다 나은 사회로 진일보 할 수 있는 계기이며, 그것만이 사람을 참되게 사랑하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더욱이 그는 사람을 사랑하는 논어의 관점으로 우리시대의 양극화 해소 방안도 내 놓는다. 물론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에서 나름대로 시각차를 보이지만 중요한 건 현실성 있는 재정대책이다. 이에 대해 그는 '관중의 인(仁)'으로 그 해법을 찾는다. 이른바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에게는 불리할지라도 전체 구성원을 위해서 기꺼이 가진 것을 내어 놓는 것 말이다. 다만 생산 주체의 의욕이 떨어지지 않는 '합리적인 동의'를 이끌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공자 사후 2,500년이 지난 오늘이다. 물질과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누가 뭐래도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하지만 전쟁이 도사리고 있고, 환경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고, 양극화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이러한 때에 진정 필요한 것은 '인간애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남곡 선생이 재해석한 논어를 통해 참된 인간애의 정수를 길어 올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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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와 목사, 두 바보 이야기 - 손석춘.김기석의 대화
김기석.손석춘 지음 / 꽃자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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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교회, 언론인과 목회자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둘은 사실 전혀 다른 기관이고 그 텃밭도 다르다. 언론이 세상 돌아가는 사건을 밝혀주는 '빛'이라면 교회는 세상에 '소금'이기를 자처하는 까닭이다. 물론 둘 다 '사람'이 그 구실을 하는 데는 차이가 없다. 다만 언론인이 정론직필(正論直筆)하고, 목회자가 긍휼과 함께 예언자의 목소리를 갖출 때 자기 본연의 사명을 다할 것이다.

언론인과 목회자. 그들 두 사람이 만나면 무슨 대화를 나눌까? 제 스스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자기반성을 할 것이다. 언론인은 역사 속에서 그 발자취를 더듬어 볼 것이고, 목회자는 성경 속에서 보여준 예수의 삶을 비춰보며 그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물론 둘 다 지향하는 바는 정말로 올바른 사회를 꿈꾸는 일일 것이다.

손석춘과 김기석의 〈기자와 목사, 두 바보 이야기〉는 그런 자기반성과 함께 우리사회가 올곧게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한 편지 모음집이다. 지난 2년간〈기독교사상〉이란 잡지에 연재했던 편지를 한데 묶은 것이다. 손석춘 교수가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을 주도하며 고운 우리말을 살려 쓰는 정론직필의 언론인이라면, 김기석 목사는 교리로 박제된 초월적인 예수보다 이 땅 낮은 자들을 품는 목회자다. 둘이 주고 받은 편지 행간 행간에 각자의 '번민과 울림'이 전해지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설교자의 가장 큰 번민은 입을 다물고 싶을 때조차도 무엇인가를 말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자기 삶을 통해 뒷받침되지 못하는 말의 부박함이 떠오를 때면 어딘가로 달아나고 싶어집니다. 듣는 이들을 고려하여 자기 검열을 하고 있는 저 자신과 마주칠 때면 그런 심정은 더욱 깊어집니다."(236쪽)

이는 김기석 목사가 쓴 편지로서 설교자로서 겪는 고충을 담은 글이다. 목회자가 여러 가지가 일을 하지만 설교에 가장 비중을 두고 있고, 설교를 작성할 때 교인들을 고려치 않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 지점에서 자기 삶의 이중성이 드러나고, 교인들을 바르게 이끌고자하는 예언자적 통찰력과 외침을 상실하면, 그때부터 그는 체제안정과 번영복음에 갇혀버린다는 뜻이다.

"자기중심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영적인 존재로서 인간의 재발견, 아니 자기 자신의 성찰이 저는 지금 보수든 진보든 절실한 과제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물론, 그런 생각에 곧이어 따라오는 자기 경계도 있지요. 엄연히 고칠 수 있는 정치경제적 문제를 두고 모든 것을 영성을 환원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주의 기도'가 해석의 여지없이 명확하게 밝혔듯이 예수는 단순한 영성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실천하라고, 자기중심주의와 탐욕을 벗어나 빚을 탕감해 주라고 가르쳤지요. 거듭남과 더불어 그 거듭남을 구체적 이웃 사랑으로 구현해나가라는 가르침으로 저는 읽었습니다."(293쪽)

이는 손석춘 교수가 쓴 편지로서 그가 이해한 '주기도문'이다. 현실을 떠난 영성은 결국은 자기 도피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예수의 피가 인간을 구원하는 것도 인간이 그 피로 고쳐져 예수적 존재로 거듭날 때에만 가능하다는 뜻이다. 예수가 바라 본 하나님 나라도 죽어 가는 저 세상이 아니라 이 땅에 실현해야 할 공의로운 나라라는 의미다. 언론인들도 그를 실현코자 정론직필해야 하지만 곳곳의 '당근과 채찍'에 놀아나고 있고, 심할 경우 종교의 빛마저 어둠으로 가리기를 서슴지 않는다는 꼬집는다.

문제는 그런 하나님의 나라, 공의로운 나라를 실현하는 과제다. 과연 둘은 어떤 방향성을 찾고 있을까? 손석춘 교수는 효율적인 싸움을 위해 진보세력들이 하나로 합쳐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말하고, 김기석 목사는 폭력은 강자들이 약자를 굴복시키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약자들이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선택하는 수단이기에 예수의 비폭력을 따라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전태일이나 이소선 어머니를 통해 예수와 그 어머니를 바라보는 관점은 둘 다 다르지 않았다.

언론인 손석춘, 종교인 김기석. 그 들 둘이 나눈 번민과 울림의 편지는 현실과 성경의 만남이자 예수님이 걸어간 길을 되짚은 일이기도 하다. 그가 꿈꾼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그 나라를 이루기 위한 현실 대안은 무엇인지 하는 것들 말이다. 아무쪼록 둘의 번민과 울림을 통해 한국교회가 높은 돔 한복판에 새긴 판토크라토르(Pantocrator, 전능의 주)처럼 '박제된 예수'를 내세우기보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둘러메는 '살아 있는 예수'를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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