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인가
강영안 지음 / 한길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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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4·11총선도 하나의 문화에 속한다. 문화란 영화나 음악이나 패션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사회전반을 아우르는 까닭이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들의 바람이 문화적인 현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더욱이 문화를 소비하는 취향에 따라 올바른 민주사회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번 선거문화를 어떻게 바라볼까? 본래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를 본받는 이들'이다. 하나님과 동등한 지위를 비우고 죽기까지 복종한 그리스도 예수를 닮아 사는 자들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인들은 이번 4·11총선에서 자기 욕망의 '이기적인 주체'가 되는 것보다는 타인의 짐과 고통을 짊어지는 '이타적인 주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런 흐름이 아닐까? 불의한 쪽에서 의로운 쪽으로, 죽임의 방향에서 살림의 방향으로, 전쟁과 광기의 혼돈속에서 평화와 사랑의 지향점으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는 것 말이다. 그것은 가치중립적인 소극적인 태도보다 적극적인 평가와 선택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강영안 교수의 〈어떻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인가〉는 올바른 기독교 문화의 주체와 한국교회의 윤리적 실천과제를 다룬 책이다. 물론 성서의 언어를 선택하기보다 유럽철학의 개념과 언어를 빗대어 설명한다. 그와 같은 우회로를 택한 것은 교회 안에 국한된 편협한 시각보다 더 많은 대중의 뜻을 담고자 함에 있을 것이다. 

 

"한 개인으로서 좀 더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려고 노력할 뿐만 아니라 좀 더 건강하고 깨끗한 사회를 만들려고 애써 노력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의 잘못된 행위는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또 사회 전체가 잘못될 경우 나 개인뿐만 아니라 우리 자식조차도 피해를 입게 된다."(49쪽)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문화적인 가치를 취하느냐에 따라 사회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인들의 문화는 자기를 위한 이기적인 취향보다는 타인과 사회를 건전하게 세울 수 있는 방향과 선택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칸트의 '공공선'과 레비나스의 '이타성'으로 그걸 설명하고 있는 것도 그런 연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과 '한 개인의 막말'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까? 국민 다수를 쥐어짜는 '사찰'과 개인의 욕망에서 터져 나온 '막말'은 그 경중을 비할 바가 못 된다. 민간인 사찰은 타인과 사회를 건전하게 세워야 할 책임과 도리마저 저버린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번 선거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치중립적일 수 없는 이유다.

 

"일상의 거룩성의 회복, 이것이 제자도를 실천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절실한 요청이다. 다원적 상황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참됨을 증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빛의 열매(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를 맺음으로 거룩성을 회복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285쪽)

 

이는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올바른 기독교 문화의 주체자로 살기 위해서, 한국교회의 윤리적 실천의지를 올바르게 완수하기 위해서 필요한 과제를 제시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른바 착함, 의로움, 진실함과 같은 빛의 열매에 그 해결책이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한국개신교가 직면한 신앙의 문제, 목회 윤리 문제, 대물림되는 교회의 현상, 목사와 장로의 임기제 문제 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울러 이 책에는 초기 한국개신교가 주도한 문화정책들을 상기시킨다. 이른바 병원과 학교를 세우고, 여성들을 교육시키고, 음주와 술을 멀리하게 하고, 계몽운동을 일으킨 게 그것이다. 그로 하여금 국민들로부터 사랑과 지지를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높은 빌딩과 첨탑을 쌓는 바벨탑 문화에 젖어 있고, 더 나아가 높은 권좌에 앉으려는 권력의 문화에 치중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스도 예수가 걸었던 고난의 길보다 오로지 부활의 영광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뜻이다. 분명 그리스도 예수가 추구했던 성전정화 사건을 떠올릴 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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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라, 원자력 (양장) - 독일 탈핵 이야기
염광희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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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물이 흘러 바다로 향한다고 했던가. 후쿠시마 원전의 고농도 방사성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갔다고 한다. 그때 불었던 편서풍은 우리가 입을 피해를 막아줬지만 바다고기는 염려할 단계로 접어들게 됐다. 지금 당장은 그 피해가 없다손 치더라도 몇 세대에 걸쳐 어떤 피해가 나타날지 누가 장담할 수 있으랴?

그래서 그랬을까? 후쿠시마 사고를 목격하던 독일의 메르켈 행정부가 발표한 것 말이다. 독일은 일본을 위로하면서도, 앞으로 2022년까지 원자력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겠다고 결정했다. 그들은 원자력 대신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확대하여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했다. 참으로 위대한 '클린 에너지 정책'이다.

놀라운 건 독일과 이웃한 나라들이다. 스위스는 독일이 즉각적인 핵발전소 폐쇄를 결정하자 2034년까지 5기의 핵발전 시설을 모두 폐쇄하기로 결정했고, 이탈리아에서도 2014년으로 예정된 4기의 핵발전소 건설계획을 전면 취소했다. 핀란드도 현재 건설 중인 핵발전소 이외에 추가적인 신규건설이 없을 것이라고 결정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2011년 5월에 독일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2024년까지 13기를 새롭게 건설할 계획을 변함없이 추진할 태세였고, 아랍에미리트를 시작으로 원자력 발전소 해외수출까지 내다보고 있었다. 시대의 흐름과는 전혀 '엉뚱한 클린 에너지 정책'이지 않던가?

염광희의〈잘가라, 원자력〉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와 같은 재앙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독일이 선택한 탈핵 과정을 상세하게 풀어 쓴 책이다. 그를 통해 깨달을 수 있는 바가 무엇일까? 원자력 발전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소리치는 우리나라도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선진 국가들이 어떻게 원자력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안에너지를 개발하여 사용하는지를 본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은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우선 독일이 처한 상황이 우리와 비슷하다. 에너지 빈국이어서 에너지원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고, 에너지를 많이 사용해야만 하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 반면 독일은 원자력 대신 에너지 효율화와 재생가능에너지 확대를 통해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는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냈다. 2008년부터 시작된 세계금융위기 속에서도 독일이 충격을 덜 받은 것은 재생가능에너지 산업 덕분이라고, 애초 재생가능에지에 비판적이었던 메르켈 정부가 인정할 정도다."(11쪽)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탈핵을 결정토록 하게 했을까? 첫째는 체르노빌 사고로 겪은 독일 국민들의 심리적인 공황과 낙진공포의 경험 때문이고, 둘째는 독일의 반핵-환경운동에 있었고, 셋째로는 냉전의 경험에 있었다고 한다. 그런 상황들이 정부의 원자력정책을 강력하게 저지하고 파기하도록 이끈 주된 요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핵발전에 대해 찬성과 반대가 절반이었던 독일 내 여론은 체르노빌 사고 이후부터 80% 이상 핵발전 반대로 균형의 추가 급격히 기울었다(박란희, 2011). 반핵 시위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사고 한 달이 지난 5월말, 부활절 주일을 맞이한 바이에른 주 바커스도르프에 약 10만 명의 시민들이 모여 이곳에 예정된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시설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69쪽)

그만큼 뭐든 한꺼번에 되는 건 없다. 독일정부도 1970년대부터 반핵평화운동에 뛰어든 시민들과 갈등을 빚었고, 1980년의 녹색당의 창당과 더불어 핵발전소에 관한 문제를 법정 소송까지 가지고 갈 수 있었고, 1986년에 일어난 체르노빌 사고로 독일 전역에서 경험한 방사능 낙진 세례는 전 국민의 80%를 반핵찬성에 동참케 하는 결정적인 계기였던 것이다.

원자력 대신에 그들이 추진하는 재생에너지는 무엇인가? 각 지역을 중심으로 개발하고 있는 태양에너지와 수력발전소와 풍력발전소, 그리고 바이오가스 발전소가 그것이다. 특별히 '윤데 마을의 바이오에너지 시설'과 '펠트하임에 세워진 풍력발전기'는 전 세계인들이 많이 방문하여 배워가는 곳이라고 한다.

물론 그런 흐름은 인근 덴마크와 스웨덴에서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덴마크 정부는 각 지역을 대상으로 에너지 자립에 관한 프로젝트를 공모했고, 그 중 '삼쇠 섬 에너지 독립 프로젝트'는 가장 성공한 케이스라고 한다. 아울러 화석연로 제로를 선언한 스웨덴의 '백셰' 도시는 바이오매스를 이용한 최초의 도시로 손꼽힌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사실 우리는 독일보다 훨씬 풍부한 태양이 내리쬐고 있고, 바람과 바다와, 바이오가스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이다. 그렇다면 그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가져올 원자력발전 대신, 세대를 거듭하여 어떤 질병을 유발시킬지도 모를 원자력발전 대신, 정말로 해가 없는 재생에너지개발에 속히 눈을 떠야 하는 건 아닐까?

문제는 그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그 피해를 직접 겪어보지 않았다는 점 말이다. 후쿠시마 3·11 사고가 일어났을 때 우리에게도 피해가 일어날지 조마조마했고, 그때 우리나라의 원전건설도 검토하자고 소리를 쳤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그 목소리들이 주춤한 상태다. 정말로 우리도 피해를 봐봐야 모두들 독일처럼 원전건설을 중단하자고 소리칠 것인가? 뭐든 평안하고 안전할 때 그 대비를 해야 하는 게 옳은 일이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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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 마음 야생화 마음 - 생존과 번식을 둘러싼 곤충과 야생화의 열정적인 속삭임 정부희 곤충기 3
정부희 지음 / 상상의숲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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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길을 오르다 야생화에 마음을 빼앗긴 적이 많다. 그토록 예쁘던 개망초에 꽃며느리밥풀에 노랑앉은부채에 청노루귀에. 모두 혼을 쏙 빼 놓을 정도로 예뻤고 앙증맞았다. 그런데 녀석들은 어떻게 대를 이어갈까? 무척 그게 궁금했다.

정부희는 〈곤충마음 야생화 마음〉을 통해 야생화가 어떻게 번식하는지를 알려준다. 이른바 '충매화'와 '풍매화'가 그것이다. 꽃들이 대를 잇도록 곤충과 바람이 그 중매쟁이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꽃이 곤충과 바람을 불러들여 서로 다른 포기의 꽃으로 배달시킨다는 게 그것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곤충들이 정말로 밥 먹은 대가를 치르려고 중매를 할까요? 아닙니다. 그건 사람의 해석입니다. 곤충의 맘은 딴 곳에 가 있습니다. 곤충들은 그저 꽃들을 푸짐한 밥상으로 이용할 뿐이고, 꽃들은 그저 곤충들을 불러들이려고 열심히 밥상을 차리고 있을 뿐입니다."(저자의 글)

그야말로 꽃과 곤충의 동상이몽이다. 곤충들이 꽃에 날아드는 것은 허기를 달래려 함이고, 꽃들은 자신들의 대를 잇기 위해 밥상을 차린다고 하니 말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도 있다. 오랜 세월 동안 특정한 식물의 꽃을 정해 놓고 찾는 곤충이 있다는 게 그것이다.

"사실 꽃 모양만 봐도 '나비 전용 꽃'이란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패랭이꽃은 갈래꽃인데도 통꽃처럼 기다란 꽃을 가졌습니다. 정성껏 만든 꽃 꿀은 기다란 꽃잎이 끝나는 가장 깊은 곳에 있습니다. 주둥이가 긴 어른 나비에게만 '꽃 꿀 밥상'을 차려 주겠다는 거지요."(108쪽)

▲ 벌개미취 꽃을 찾아온 곤충들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풀잠자리목 애벌레, 풀색꽃무지와 제거미의 싸움, 네발나비, 남방부전나비, 벌붙이파리류, 무늬독나방애벌레 순이다. 이 책 230쪽에 있다.
ⓒ 상상의 숲
곤충들

풍매화는 어떻게 대를 이을까? 풍매화는 수꽃의 꽃가루가 바람을 타고 떠돌다가 우연히 다른 포기의 암꽃에 앉아 꽃가루받이를 한다고 한다. 그를 위해 할 일은 무엇일까? 엄청나게 많은 꽃가루를 만들면 된단다. 그만큼 수꽃의 꽃가루가 바람에 날리면서 소실되는 양도 많은 까닭이란다.

"쑥은 꽃가루를 날라다 줄 곤충을 기다리기보다 바람에게 꽃가루를 맡기는 쪽으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시 말해 바람의 도움으로 꽃가루받이를 한 개체들이 생존력과 번식력이 더 높았고, 결국 풍매화로 대성공을 거두었기에 오늘날까지 풍매화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388쪽)

▲ 네발나비 원추리 꽃 네발나비가 원추리 꽃을 찾아 와 꽃잎에 앉은 뒤 주둥이로 꽃 꿀을 빨아들이는 모습이다. 이 책 264쪽에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 상상의 숲
야생화

물론 충매화나 풍매화가 아닌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른바 스스로 번식하는 야생화가 그것이다. 과연 어떤 야생화가 그럴까? 목화와 서양민들레가 그렇단다. 특히나 목화 씨앗이 달고 있는 솜털은 종족 번식을 위한 필수품이라고 하니 놀랍기 그지없다.

중학교 시절 영어 선생님 덕에 자신도 영어 선생님이 되는 걸 꿈꿔 영어교육과를 졸업했다던 그녀. 불현 듯 역마살이 끼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유적지에 핀 야생화에 흠뻑 젖어 15년 넘게 그 꽃 속으로, 그리고 그 꽃들과 더불어 사는 곤충들 속으로 빠져들어 지금은 '버섯살이 곤충'을 전념한다는 그녀. 그녀가 소개하는 야생화와 곤충 속으로 찬찬히 빠져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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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 철학, 자본주의를 뒤집다
김상봉 지음 / 꾸리에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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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기업은 국가의 보호 속에서 성장했다. 보이지 않는 정경유착이 그랬다. 이제는 기업이 국가를 조종하는 모습이다. 국가의 통제와 제제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국가의 위에서 군림하는 경향이다. 국가의 수장이 기업 수장의 눈치까지 봐야 하는 상황이 그렇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자본이 지닌 권력은 그렇게 막강하다. 그런 마당이니 경제학자들도 앞 다퉈 따뜻한 자본주의 경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논리에는 자본주의가 깊숙이 박혀 있어서 다들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릴 때가 많다.

길 위의 철학자 김상봉 교수가 펴낸〈기업은 누구의 것인가〉은 다르다. 칸트 철학 전공자인 그는 왜 기업 문제를 다룰까? 칸트가 말한 '유기체의 개념'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공공성의 정신'을 되살리고픈 생각에서다. 함석헌 선생이 이야기한 '너도 나라'고 긍정할 수 있는 '서로 주체성의 관계'를 복원하고픈 생각이 그것이다. 그것이 기업의 경영주권을 노동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기업 경영의 주권이 노동자들에게 돌아간다면 마르크스나 레닌주의자라고 말이다. 허나 김상봉 교수가 주장하는 바는 그것이다. 노동자들을 자본의 억압에서 해방하여 생산 활동의 자유로운 주체로 만든다는 것 말이다. 그것 없이 자본주의를 극복하겠다고 하는 것은, 그래서 다른 체제를 만든다면, 결국 왜곡된 수탈구조로 소수의 관료 자본가들을 양산한 소련과 중국의 신흥 자본가를 양산하는 꼴과 다르지 않다고 한다.

실제로 노동자들이 경영권을 행사한 실례가 있나? 사실 이 지점에서 김성오의〈몬드라곤의 기적〉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 책에서는 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 경영 주권을 행사하고 있는 '협동조합의 이점'을 밝혀준다. 물론 김상봉 교수도 이 책에서 그런 예를 지적한다. 로버트 달(Robert Dahl)이 1985년에 출판한 책에서 말한 '자치 기업'이 그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도 한계가 있음을 밝힌다.

"하지만 나는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를 어떻게 협동조합으로 만들 수 있을지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달은 몬드라곤 협동조합부터(1985년에는 아직 존속하고 있었던 국가인) 유고슬라비아의 노동자 자주관리제도까지 모두 자기가 말하는 자치기업의 범주 속에 포함시켜 논의를 전개시키는 까닭에 나로서는 정확히 어떤 것이 그가 말하는 자치 기업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그랬으니 노동자 자치 기업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에게서 아무런 가르침도 얻지 못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96쪽)

그 같은 한계를 벗어날 길이 있을까? 김상봉 교수는 주식회사에서 그 해법을 찾는다. 주식회사야말로 자본의 결합체인 까닭이다. 이는 자본 출자자와 회사의 경영진이 누구인지의 여부는 주식회사의 실체와 상관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주식회사가 법인의 인격체가 되기 때문에 누구도 사유화 할 수 없는 '공공성의 정신'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일의 노사공동결정제도(Mitbestimmung)에서 그 정신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재벌 해체는 어떨까? 김상봉 교수는 이미 일본은 60여 년 전에 재벌을 해체했다고 말한다. 실로 놀라운 사실 아닌가? 모든 문화까지 뼛속까지 닮으려 했던 우리로서 그걸 뒤쫓지 않았으니 말이다. 물론 그것은 맥아더 사령부가 일본의 군벌과 재벌이 합하여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해체한 것이라고 한다. 강제적인 요소도 없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일본인들의 자발적인 공감이 컸다고 강조한다.

"맥아더 사령부는 일본의 재벌을 지배하는 가문들로부터 모든 주식을 강제로 양수받아 그것을 매각했다. 그 주식의 총수는 1억 5천만 주, 총액은 68억 엔이었다 한다. 이 과정에서 과거 재벌 가문이 주식을 다시 매입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그런 후에 주식 판매 대금을 돌려주기는 하였으나 이마저도 고율의 세금을 매겨 실질적으로 그들에게 돌아간 금액은 소액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재벌 계열회사에 재직하고 있던 재벌 가문의 직원들을 모두 해고하여 재벌가문의 지배력을 인적으로도 완벽하게 청산했던 것이다."(226쪽)

우리나라는 어떨까? 만약 그랬다간 사회적인 혼란이 오지 않을까? 더욱이 빨갱이로 내 몰려 매장되지 않을까? 김상봉 교수가 주식회사의 틀 내에서 바람직한 이상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주주에게는 배당금을, 노동자들에겐 경영권을 돌려주는 것 말이다. 그것이 본래 주식회사가 갖고 있는 법률적인 근거라고 말한다.

그를 위해 실천할 수 있는 대안도 몇 가지 제시한다. 앞서 말한 독일의 노사공동결정제도나 일본의 종업원 중심의 회사 운영이 그것이다. 물론 그런 유형은 단순히 법을 통해 강제된 제도가 아니라 그들의 사고방식 속에서 전통적으로 뿌리내려온 제도라고 한다. 그만큼 공공성의 정신을 강조한 예라는 뜻이다.

다만 우리도 몇 몇 곳에서 그걸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 공기업의 사장 선출권을 노동자들에게 위임하고, 법인이 운영하는 기관도 종업원들이 기관장을 선출토록 하는 게 그것이다. KBS나 MBC도 사장 선출권을 노동자들에게 위임하면 충분하다고 한다. 그런 흐름이 사회 전반에 걸쳐 바뀌면 머잖아 우리나라도 독일이나 일본 못지않는 궁극적인 주식회사, 곧 노동자들에게 경영권이 돌아가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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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H.카 평전 - 사회적 통념을 거부한 역사가
조너선 해슬럼 지음, 박원용 옮김 / 삼천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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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핼릿 카(Edward Hallet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역사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널리 알려진 책이다. 모든 역사란 과거에만 얽매여 있는 게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밝혀주는 까닭이다. 그만큼 그 책은 카의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E.H.카는 처음부터 역사학자로서 인생을 산 게 아니었다. 그가 학자로서 길을 걷기 전 영국의 외교관으로 일을 했고,〈타임스〉의 부편집인으로서 언론계에 종사한 적도 있다. 더욱이 도스토옙스키나 바쿠닌의 전기를 비롯해 게르첸과 같은 러시아 사상가들을 다룬 저작들도 많다. 외교관으로 재직할 당시 자본주의와는 다른 노선을 걸은 러시아에 흠뻑 젖어든 까닭이다.

외교관을 떠나 학자로서의 삶을 살 때 처음 관심을 둔 분야는 국제관계학이었다. 애버리스크위스의 '우드로 윌슨 기금교수'직에 임명된 그는 일본의 침략행위와 히틀러의 베르사유조약 폐기, 그리고 이탈리아의 아비시니아 침공과 같은 복합적인 국제연맹의 질서들을 파헤쳤다.

그로부터 출발한 1939년의 초기 저작인 〈20년간의 위기, 1919-1939〉는 양차대전 사이의 국제관계에 대한 탁월한 분석서로 호평을 받는다. 물론 그것은 1차 세계대전과 같은 참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한 국제 질서의 필요성을 제시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한편 1944년 52살에 집필하여 33년이 지난 65살에 완성한 14권의〈소비에트 러시아사〉는 그의 위대한 역작으로 손꼽힌다.

"카는 전기 작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남기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다. 엄청난 양의 출판물 말고는, 1925년부터 1960년까지 쓴 비망록과(그 이후 기록들의 행방을 우리는 알 수 없다) 얼마 되지 않은 육필 기록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런 형편은 카의 삶을 백지 상태에서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을 완성하는 데 1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던 까닭이기도 하다."(10쪽)

이는 조너선 해슬럼의 〈E.H.카 평전〉에 나오는 머리글이다. 카에 대한 일대기를 그려나가는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토로한 것이다. 그만큼 그가 쓴 책들과 몇 몇 비망록 이외에는 그의 인생을 전반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 자료들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해슬럼이 그를 아는 친인척들을 비롯해 그의 수업을 들은 학생들까지 직접 찾아다니면서 그에 관한 사항들을 들으려 했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1918년 4월, 이제 카는 확실히 러시아 전문가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다른 외무부 직원들처럼 러시아어에 능통하지 못했기 때문에 암거래 단속국에서 러시아와 인접 국가들과의 관계를 다루는 북유럽과로 부서를 이동했다. 그곳에서 그는 세 사람으로 구성된 팀의 막내로서 정치적 차원에서 볼 때 볼셰비키 혁명이 만들어 낸 문제들을 처음으로 다루게 되었다. 나무지 두 사람은 '보통의 외무부 직원'이었다."(57쪽)

이는 캠브리지를 졸업한 카가 영국의 외교관에 임시적으로 발탁돼 수행한 일을 밝혀주는 내용이다. 물론 그로부터 20년 동안이나 외무부에서 일하게 될지는 카로서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때 카는 러시아의 물자가 외국으로 흘러가는 공급경로를 보호하고 있었다.이른바 경제전쟁을 수행하는 '암거래단속국(Contraband Department)'의 직원이 그의 일이었다. 물론 그가 수행하는 탁월함에 비해 러시아어가 뒤떨어져 결국 북유럽과로 옮겨가는 설움도 겪는다.

그러나 리트비아의 수도 리가의 영국 공사관에서 근무할 땐 달랐다. 그는 전 남편에게서 세 자녀를 얻고 있던 '앤'을 만나 혼인하고, 막내아들 존까지도 새로 얻는다. 그 시절 그는공사관의 따분한 업무보다 러시아어를 배우는데 힘을 기울였고, 그것을 계기로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푸시킨, 그리고 도스토옙스키 등의 작품을 읽어나간다. 1929년 4월 런던의 외무부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도스토옙스키〉평전을 본격적으로 써 나간다.

"카는 이 자리에서 트레벨리언 강연을 되풀이하듯 다음과 같이 강조햇다. "역사가가 무엇인가를 중요하다고 여길 때, 그 기준은 ……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필연적으로 현재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역사는 움직이고 있고 학문의 대상으로 멈춰 있을 수만은 없었다. "현재 이 대학 강의 내용은 대부분 1914년 이전의 역사이다. 이런 강의는 지금도 여전히 서유럽, 특히 대영제국을 역사의 주인이라고 간주한다. 이런 상황은 말이 되지 않는다."(398쪽)

이는 63살의 카가 모교인 캠브리지 대학 트리니칼리지에서 역사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개혁파교수들과 함께 '교과과정 개편'에 관한 제안서를 이사회에 제출한 내용이다. 그만큼 그는 그 당시의 사회적 통념을 거부한 학자였던 셈이다. 그걸 계기로 대학 당국은 미국학 연구를 비롯한 많은 근현대 연구자들을 충원했다고 밝힌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카의 인지도가 가장 급부상하게 된 배경이 아닐까?

사실 〈역사란 무엇인가〉가 책으로 나오기 전, 1961년 1월부터 3월까지 강연한 캠브리지 밀레인의 '트레벨리언 강좌'와, 그 강연 내용을 논쟁의 장으로 끌어들인 '이사야 벌린'의 공격은 카의 인지도를 끌어올리는데 한 몫 톡톡히 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그 전과는 확실하게 다른 대학당국의 개혁바람이 카의 인지도를 실제적으로 끌어 올린 배경일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한 박원용 교수는 이 책이 카의 개인사에 너무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는 아쉬움을 드러낸다. 그의 역작인〈소비에트 러시아사〉가 담고 있는 그 의미와 비중에는 약하다는 뜻이다. 러시아사를 전공한 학자로서 보는 당연한 안목이지 않을까?

다만 나 같은 문외한에게는 카의 인생역정을 비롯해,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으로 점철된 국제질서, 그리고 카를 중심으로 다룬 아놀드 토인비와 루이스 네이미어와 아이작 도이처와 이사야 벌린 등의 사상적 논쟁을 읽어나가는데 너무나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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