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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사는 공장 - 공장식 축산업 너머의 삶과 좋은 먹거리를 찾아서
니콜렛 한 니먼 지음, 황미영 옮김 / 수이북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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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렸을 적 시골집에서 돼지를 키운 적이 있었죠. 집 마당을 가로질러 측간(厠間) 바로 앞에 돼지우리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녀석은 먹고 자고 싸는 일상을 살았죠. 그때 녀석이 먹었던 주식은 우리집 식구들이 먹고 남은 밥과 김치였습니다. 녀석이 하룻밤 사이에 9마리나 되는 새끼를 날 때가 가장 기뻤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 무렵에는 소도 키웠습니다. 그걸로 자녀들 학자금을 마련코자 하는 아버지 뜻이었지요. 그때 송아지도 네 마리나 사들였고, 저 멀리 산 너머에 큰 산도 하나 사서 철조망을 둘러쳤습니다. 그곳에서 소들이 마음놓고 풀을 뜯어먹고 자라도록 했던 것입니다. 물론 겨울철에는 짚을 차곡차곡 쌓아 놓고, 그것을 한 뭇씩 작두로 잘라 소에게 먹이곤 했지요.

지금은 시골에서 돼지와 소를 한두 마리씩 키우고 있는 집은 없습니다. 세 집 정도만 막사를 지어 돼지와 소를 키우고 있을 뿐이지요. 그렇다고 산에다 방목하는 건 아닙니다. 콘크리트 바닥과 철골 지붕 안에 소를 가둬두고 사료를 먹여서 키우고 있지요. 이른바 '공장식 축산'이라 할 수 있지요.

니콜렛 한 니먼의 〈돼지가 사는 공장〉은 노스캐롤라이나를 중심으로 번성한 공장식 축산이 몰고 오는 환경오염, 그에 따른 인체의 해로운 질병을 야기할 수 있는 건강상의 문제들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본래 그녀는 전미야생돌물 연합의 변호사로 몸담고 있었지만 '워터키퍼 얼라이언스'로 직장을 옮긴 뒤부터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과 피해를 언론과 환경단체 심지어 법원에까지 소장을 제출하여 큰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공장식 축산업계는 정치적 영향력을 휘둘러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과학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연구 결과를 발표하지 못하게끔 막는다. 대형 축산업체들의 운영 방식이 국민들의 건강에 엄청난 위협이 된다는 내용이 알려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논의 자체를 덮어 버리려 하는 축산업계의 시도를 니콜렛과 내가 직접 겪은 적도 있다."('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의 서문 겸 추천사)

그녀는 1980년대 전만 해도 노스캐롤라이나는 소규모 농장에다 다양한 곡식을 재배했고, 돼지도 몇 마리씩 풀어 놓고 키웠다고 합니다. 당시 그 지역의 돼지는 모두 합해 200만 마리가 채 되지 않았다고 하지요. 그만큼 오염이 되지 않았으니 그땐 개울도 맑고 투명했고 물고기와 게도 잡힐 정도로 유명한 지역이었다고 합니다.

헌데 1989년에는 그 돼지 수가 250만 마리로 늘어나더니 2003년에는 1,000만 마리로 급증했다고 합니다. 반면에 같은 기간 내에 그 지역의 돼지 농장은 1만 2,500곳에서 2,800곳으로 줄어들었다고 하지요. 야외에 방목하며 키우던 전통식 농장이 사라지고, 점차 배설물 구덩이를 갖추고 수천 마리의 돼지를 가두고 기르는 기업형 사육시설 들어섰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한 문제점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무엇보다 돼지나 소는 유전자변형 옥수수로 만든 사료와 성장호르몬제를 맞아야 하고, 각종 질병에도 너끈히 견딜 수 있는 항생제를 맞게 된다는 점이지요. 그걸 도살하여 사람들이 사서 먹게 되니, 온전한 사람도 차츰차츰 병에 걸릴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기업형 사육시설에서 내 보내는 여러 오물들이 대지와 하천으로 스며들고, 인근 지역에는 악취를 풍기고, 여러 기생충들과 모기떼들을 불러 모으니, 그 지역 전체가 오염될 수 밖에 없겠지요. 그녀가 공장식 축산에 대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한 게 그 두 가지였습니다.

그것을 세상 언론에 알리고, 여러 환경단체에 호소하고, 심지어 법원에 소장까지 제출하여 큰 성과를 거두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겠지요. 그런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지, 그 소송을 준비하면서 만난 인물 가운데 존 트라볼타 주연의 〈시빌 액션(Civil Action)〉의 실제 주인공인 '잰 슐리츠먼' 변호사와 영화 〈인사이더(The Insider)〉의 실제 주인공으로 담배회사를 상대로 싸웠던 '스티브 보즈먼' 변호사도 발벗고 도와줬다고 합니다.

물론 축산업계의 반발과 방해공작도 만만치 않았다고 하지요. 그녀와 관련된 여러 환경 단체를 향해서는 '채식주의 운동가들이 활동하는 단체'이자 '축산업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는 동부 출신 변호사들'이 펼치는 주장이라고 매도했다고 합니다. 아울러 미국 정부를 동원하여 축산업 연구원들의 활동까지도 검열토록 했고, 농무부를 향해서도 격하게 항의하는 방해공작을 펼쳤다고 하지요. 하지만 법원은 결국 워터키퍼의 손을 들어줬다고 합니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사무총장과의 갈등으로 그녀는 그 일을 정리해야 했고, 그 즈음 캘리포니아의 니먼 랜치에서 실제 방목을 하고 있는 목장주 '빌 니먼'을 만나 혼인까지 골인하게 되고, 전혀 예상치 않게 남편과 함께 직접 소를 키우며 블루베리도 따는 즐거운 생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변호사로서, 환경단체 직원으로, 그리고 목장 부인으로 살게 된 그녀의 이력과 함께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과 그 피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 꼼꼼히 짚어 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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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의 먹이사슬 -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이득을 보는 사람들
베른하르트 푀터 지음, 정현경 옮김 / 이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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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기후변화의 원인을 보통 온실효과로 생각한다. 기름과 석탄을 땔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가 그 주범으로. 당연히 석유와 화학 에너지를 생산하는 업체들을 공범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덕에 이로운 문명을 누리고 있다면 과연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런데 기후변화의 가해자였던 기업들이 이제는 피해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에너지 가격은 그만큼 상승하고 있고, 원료도 그만큼 부족한 상황이고, 기후변화의 법률들이 점점 더 까다롭게 강화되고 있는 까닭이다.



그에 비하면 원자력 산업은 그야말로 지구온난화와는 거리가 있다. 그야말로 기후변화에 빛을 볼 수 있는 산업이다. 그러나 일본의 지진 여파로 그것 역시 도마 위에 올라 있다. 한 번 터지면 미래 세대까지 위협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베른 하르트 푀터의 <기후변화의 먹이사슬>은 기후변화의 가해자와 피해자, 그 속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을 추적하고, 향후 기후변화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 지 깨닫게 하는 책이다. 기후변화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하기보다 기후변화의 문제에 대해 도덕적이고도 계몽적인 성격으로 써 내려간 것이다.



보통 '지구온난화'하면 과학적으로 규명하기에 급급했다. 지구 온도가 올라가면 그만큼 빙하가 많이 녹아내려 해수면이 급상승한다고 세계 언론은 떠들어댔다. 그런데 그 일이 자연재해에 따른 일이 아니라, 지극히 인재(人災)라는 데에 이 책은 주목하고 있다. 더욱이 기업후원을 받고 있는 과학자들은 기후변화보다는 유해물질 쪽으로 논쟁을 이끈다고 지적한다.



독일 연방 산하의 <세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자문 위원회(WBGU)>는 2030년 페루의 안데스 산맥이 가뭄으로 황폐화 되고, 남아프리카는 2020년부터 식량 생산량이 인구증가율을 따라가지 못하고, 중국은 2025년부터 진주강 일대의 삼각주가 심각한 태풍과 홍수로 황폐해질 것이고, 금세기 중반에 북아프리카의 식량사정이 악화되어 대부분 유럽 쪽으로 인구이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WBGU 전문가들은 그런 묵시록적 예언들이 현실이 안 될 것을 바라고 있다. 모두가 지혜를 모아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을 내놓는다면 가능하다고 한다. 전 세계가 하나의 공동체로 뜻을 모으고, 협력 시나리오를 가동하면 된다는 게 그것이다. 이를 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전 세계적으로 많이 내 품고 있는 미국, 그리고 중국은 그것을 최대한 제한해야 할 것이다. 세계 일류 국가들이 환경국가를 위해, 그리고 가난한 나라들을 위해 애써야 할 이유가 그것임을 밝혀주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 기후변화로 폭염, 식중독, 알레르기 등이 발생하지만, 그로 인한 피해는 당국의 조치로 예방하거나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반면, 빈곤 국가에서는 기후변화가 흉작과 기근, 전염병,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 등에 영향을 미쳐 주민의 생명의 위태롭게 한다. …그러므로 기후변화는 세계적으로 이미 양극화된 공중 보건 분야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기후변화는 본질적으로 서구 선진국 때문에 발생했다. 따라서 가난한 나라 빈곤층이 기후변화에 대한 저항력을 키우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193쪽)



아무쪼록 이 책은 기후변화에 관해 알고 있는 일반적인 상식과 통념을 깨부수고 있다. 기후변화의 가해자였던 기업들이 이제는 피해자가 되고 있다는 지적을 비롯해, 열대우림에서는 조림산업이 지구의 허파 역할을 감당하지만 온대나 냉대 지역에서는 이산화탄소를 내 품는 격이 되고, 스웨덴 같은 곳에서는 조림산업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는 지적 등, 다각적인 시각에서 기후변화의 관계를 밝혀주고 있다.



다만 그가 이야기하듯이, 기후변화로 인해 선진국 투자 회사들이 돈을 긁어모으는 재미를 맛보는 동안 빈곤 국가들은 점점 홍수와 기근과 물 부족 때문에 아사 생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기후변화가 지구 곳곳에서 반정부 시위를 일으키는 핵심 의제가 될 것도 의미심장하다. 결국,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기후 변화에, 온실이 되어 버린 지구 안에, 공의가 살아 숨 쉬게 하려면 정치적인 해법만이 묘책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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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영토, 인구 -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7~78년
미셸 푸코 지음, 오트르망 옮김 / 난장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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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계는 자유주의를 넘어 신자유주의 시대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정리해고, 대량실업, 극심한 빈부격차, 세계적인 전자정부의 통제, 세계인구의 대량 청소 등이 그것이다. 가히 신자유주의 시대의 폭력이 우리사회 곳곳에서 옥죄고 있다.



그것은 자본과 시장질서 속에서 자유롭게 일어나는 경제학적 구조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다. 세계 모든 이들이 주지하듯이, 정치적인 실리관계가 더 확실한 지배체제로 서 있다. 그런 점들을 도외시한 채 단순한 시장접근 방식으로 신자유주의 체제를 이해한다는 것은 뜬구름 잡는 일이다.



미셸푸코의 <안전, 영토, 인구>는 홀로 자립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의 사다리를 부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 담론이다. 그것이 통치성의 개념으로 대두되는 바, 규율권력과 생명관리권력을 종합한 담론서이기도 하다. 감시와 처벌, 그리고 성의 역사를 하나로 통합한 게 그것이다.



푸코는 그런 통치성이 전체화하는 동시에 개별화 전략으로 나타난다고 꼬집는다. 이른바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빌미로 전체적인 감시체계를 발동하고, 그와 동시에 한 개인의 사소한 내용까지도 수시로 침투한다는 게 그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친 이후에는 어느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전면화된 복종의 장'에 다다르게 된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2세기경에 등장한 그리스도교의 사목제도 속에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중심한 16세기의 통치술에도, 중상주의로 대표되는 17세기에도 대두되었다고 평가한다. 물론 시대를 달리하여 색다른 옷을 껴입긴 했지만 그 속에는 언제나 규율과 생명관리라는 통치성이 그 근간이었음을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사목적 통치의 특성은 이렇습니다. 요컨대 전반적으로 사목적이라 할 수 있는 권력이 그리스도교 시대 내내 정치권력과 분리된 채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종교 권력이 개인의 영혼만을 돌보는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와 달리 사목권력은 영혼의 인도가 어떤 개입, 곧 일상의 품행과 생활의 관리에 대한 지속적인 개입, 재산·부·사물에 대한 지속적인 개입을 포함하는 한에서만 개인의 영혼을 돌봅니다."(223쪽)



이는 이 책의 제 5강부터 9강 전반에 기술하고 있는 사목제도의 권력 기술에 관한 내용이다. 특별히 사목 권력을 '좋은품행'으로 진단한 그의 지적은, 하버마스가 이야기했듯이, 지극히 '소장 보수주의자'의 견해로 비칠 수 있다. 반면에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반종교개혁 진영 안에서조차 '대항품행'이 등장했다고 진단한 것은 그의 진보주의적인 시각도 반영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책의 제 10강부터 13강까지는 국가 이성에 관한 내용을 기술하고 있는데, 그 역시 경제적 통치성과 깊은 연관이 있는 강론이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비용과 수익에 의해 통치당하고 있는 '호모에코노미쿠스'에 대한 견해이기도 하다. 오늘날 국가 운영 전반에 감시와 통제를 적용하는 것도 그 일환임을 알 수 있다. 물론 그에 대한 해체를 위해 기술하려고 했던 '혁명적 주체성의 역사'는 그의 때 이른 죽음으로 빛을 보지 못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도시 문제, 그것은 단순한 안전 공간과 환경 문제 차원으로만 해결하는 게 아니다. 그 밑바탕에는 안전과 환경을 빌미로 한 통제성이 놓여 있음을 갈파해야 한다. 아울러 17-18세기에 대두되었던 식량문제와 천연두 문제가 신자유주의 시대 말미에는 신종 질병과 감염이라는 문제 속에서 쓸모없는 인구의 대량청소라는 명분도 얻게 될 것이다. 생명에 관한 경외와 주체성의 윤리는 뒷전으로 밀려난 채 말이다.



그렇기에 이 시대의 위기 속에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자세는 푸코가 바라봤던 대항품행의 또 다른 형식을 취하는 것, 곧 전면화된 복종의 장을 해체하여 스스로의 주체성을 세워가는 일에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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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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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군 생활. 그건 내 젊은 날의 울창한 숲이다. 전방 철책부대의 '보안69호' 안에서 좋은 책들을 많이 읽은 까닭에. 물론 '보안69호'란 차는 따로 없다. 내가 배차받은 인분차 번호판이 69호일 뿐. 연대 경비병들 조차 냄새나는 차라며 붙잡지 않는 탓에 '보안69호'가 된 거다. 나는 그 차로 3372연대를 중심으로 4개 대대는 물론 멀리 한탄강 헌병초소까지 똥을 푸러 다녔다.  

'보안69호' 안에는 없는 게 없었다. 아니 모든 걸 구비해 놓고 다녔다. 카세트 테잎은 물론이고, 라면 끓여 먹는 냄비와 두꺼운 담요. 거기에 이외수의 〈벽오금학도〉와 〈칼〉, 경요의 〈노을〉과 〈은잔화〉그리고 성경은 필수 항목. 몇 달이 지나면 그때마다 새로운 책들로 갈아넣었지만 내 머릿속엔 그 책들이 그 안에 오래도록 들어 있는 책들이다. 

연애편지. 젊은 시절 그 편지 한 통 안 써본 사람이 있을까. 나는 고등학교 CA반에서 처음 그걸 썼다. 이름하여 펜팔. 미국에 있는 케어리호그리프라는 여학생에게 썼다. 지금은 영어로 이름을 어떻게 쓰는지조차 까마득하다. 기억나는 건 그것뿐. 두 세 차례 펜팔을 쓸 무렵 그녀가 내게 사진을 보내왔고, 나도 그녀에게 사진을 보냈다는 것. 물론 그 뒤로 펜팔은 끊기고 말았다. 씁쓸하고 웃긴 그 추억.

군입대 초창기도 편지를 곧잘 썼다. 고향에 있는 어머니와 형님들에게. 그리고 또 고등학교 3학년 때 만났던 후배에게. 고향 부모님과 형제들이야 대충대충 얼버무렸지만 그 후배에겐 달랐다. 힘든 사연들을 멋진 문장으로 꾸며내야 했기에. 당연히 '보안69'는 그것을 만들어 내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비록 똥냄새 나는 공간이지만.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차 속이기에 그런 문장에 집중할 수 있었던 거다. 물론 지금이야 어긋난 사이가 됐지만.

김훈의 〈내 젊은 날의 숲〉에도 전방 GP의 상황이 그려진다. 그건 내가 연대수송부에 파견되기 전의 GOP 안의 GP와 같다. 북한과 제일 붙어 있는 곳이 그곳 GP였으니까. 나는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GOP에서 밤낮없이 근무에 근무를 일삼았다. 적어도 연대운전병에 파견되기 3개월 전까지. 그곳에서의 낙은 잠자는 것, 그것 뿐이다. 아니면 1시간 걸어서 교회에 나가는 것. 그래야 고참들의 눈길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이 책은 그런 상황을 담고 있진 않다. 그림을 전공한 젊은 처녀가 민통선 안의 수목원 임시계약직으로 식물들의 세밀화를 그리면서 겪는 군부대 이야기다. 그렇다고 군대 이야기만 난무하는 건 아니다. 군대와 세상을 오가며 느끼는 여러 풍경들, 공무원 비리로 교도소에 수감된 아버지와 그 상부 조직들의 얽히고설킨 인간관계도 담아낸다. 더욱이 만주벌판을 누볐다던 그녀의 할아버지와 그의 '좆내논' 말 이야기는 정말로 코믹하다.  

교도소에 수감된 아버지에게 쓰는 편지. 중소건설업체의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을 때도 그녀는 몇 차례 손을 댔다. 수목원에서 일하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때마다 몇 자 그적이다 손을 떼고 만다. 세상의 불의와 등을 진 아버지에게 세상의 끈을 다시금 연결시켜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 아버지를 생각하는 딸의 마음이 짠하게 와 닿는 부분이다.

헌데 GOP와 GP의 상황은 다른 걸까. 읽는 내내 그게 궁금했다. GOP에 근무할때도 그렇고 연대수송부에서 근무할 때도 그랬다. 모두들 장교들이 차를 직접 모는 건 아니라는 것. 운전병이 차를 몰고 그 옆에 선탑자들이 타는 게 일반적이다. 헌데 이 책에선 김민수 중위가 직접 차를 몰고 그녀를 안내하지 않던가. 과연 김훈은 군생활을 했을까? 의문의 꼬리가 이어진 건 그 때문이다. 그래도 내 젊은 날의 울창한 숲과 같은 '보안69호'를 떠올려준 책이니, 그가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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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인의 책마을 - 책세이와 책수다로 만난 439권의 책
김용찬.김보일 외 지음 / 리더스가이드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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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과 인터넷 카페에서 리뷰어로 활동하는 이들이 있다. 나도 그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그곳 주인장들은 다양한 리뷰어들을 불러 모은다. 리뷰어들이 책을 읽고 쓴 글들을 통해 다양한 소통 양식을 찾으려는 이유다. 당연히 종이책이 살아 남을 수 있는 길과 그 판매량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그것이 갖는 한계가 있다. 단순한 책 홍보 수준에 그치는 게 그것이다. 그 때문에 책에 대해 칭찬일변도로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 바로 그것을 고민하고 극복하고자 시도한 책이 나왔다. 도서포털 사이트 리더스가이드(readersguide.co.kr)가 기획하고 김보일·김용찬 외 여러 아마추어 책벌레들이 쓴〈100인의 책마을〉이다.

이 책은 틀에 박힌 서평을 뛰어넘는다. 책에 대한 지식과 자기 삶에 관한 에세이로서 '책세이'(Book-essay)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책에 대한 100자평의 촌철살인도 들어가 있다. 이른바 '책수다'(Book-talk)라 할 수 있다. 그만큼 기존의 리뷰가 주는 식상함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웹 2.0의 형태에 어울리는 책 소개라 할 수 있을까? 

특히 '책수다'는 어느 리뷰에서나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리더스가이드가 오랫동안 누적한 도서 콘텐츠만의 결실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서평 속에 흐르는 소통의 고리를 하나의 주제로 연결한 것이다. 결국 여러 사람이 하나의 소통 창구로 모여들어 여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셈이 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책 속에서 가장 많은 책을 언급해 놓고 있는 게 다치바나 다카시의 <지의 정원>으로 알려져 있다. 누군가 410권 정도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100인의 책마을〉에서는 그보다 20권 이상 더 많이 등장한다. 그 모두가 국내에서 출판된 책이라고 하니, 나름대로 자부심도 있을 것이다. '100'이라는 숫자가 나름대로 상징성을 갖는다면 이 책은 100인 100색의 토크(talk)라 할 수 있다.


"'책을 말하되 책만을 말하지 않는다. 잘나지 않은 평범한 나도 책을 소개할 수 있다. 내가 빠져든 특정 분야에 대한 경험을 말한다. 독서는 곧 생활이므로, 내 삶과 독서 경험을 잘 버무린다.' 이런 원칙들을 바탕으로 이 책은 만들어졌다. 어쩌면 위의 원칙을 모두 충족시키는 글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마추어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저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이 돼서 덤비는 것이 아니라 즐거워서 덤비는 것이다. 그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려는 것이 진정한 아마추어리즘이다."(책머리에)

〈나는 상식이 불편하다〉와 〈14살 인생멘토〉를 쓴 배문고등학교 김보일 선생은 한 때 친척의 빚보증으로 인해 황폐해졌다고 한다. 살도 찌고, 스타일도 구겨지고, 체력도 고갈될 때로 고갈되었다고 한다. 그때 인생의 탈출구로 삼았던 게 바로 마라톤이었다 한다. 

그토록 힘든 시절을 통과한 그에게 조지 쉬언의 〈달리기와 존재하기〉와 요쉬카 피셔의〈나는 달린다〉는 어떤 책으로 다가왔을까? 단순히 체력 증진서였을까? 결코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들은 김보일 선생에게 고통을 이겨내도록 힘을 북돋아준 인생동반자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책세이가 끝나는 지점을 잇고 있는 책수다의 주제도 '고통을 이겨 낸 삶의 에세이'로 잡고 있는 것이다.

"〈운명이다〉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자서전이다. 이 책은 '사후 자서전'이란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노대통령이 서거하기 전 자서전을 쓸 요량으로 조금씩 썼던 것을, 사후에 엮어 낸 것이다. 그 분은 이 책에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의 자서전'이라고 밝히고 있다. 물론 한 나라의 국가 원수를 지낸 분의 '성공하지 못한'이라는 표현이 그다지 적당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 즉 국가 원수든, 농부든, 환경미화원이든 그 사람이 성공하고 안 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세상에 들려줄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자서전을 쓸 수 있으냐 없느냐를 결정한다."(87쪽)

이는 '삶이 어떻게 책이 되는가'에 나오는 한 대목 글이다. 리더스가이드에서 stella09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여장부가 쓴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일기장을 쓰고 있다는 그녀는, 나를 비롯한 세상 여러 독자들에게, 자기만의 가치 있는 스토리를 쓸 것을 부추긴다. 

그것이〈운명이다〉를 읽고서 그녀 스스로 '눈물로 읽은 자서전'이었다고 밝힌 이유였을까? 그리고 그것을 안대회의 〈정조의 비밀편지〉에 견주고 있는 것일까? 아마추어 책벌레인 그녀가 한 시대를 책임졌던 분들의 일기와 편지를 비교하여 자기 생각을 곧추 세운 이유가 뭘까? 자기 삶을 가치 있게 건져 올린 자만이 이유 있는 자서전을 쓸 수 있다는 까닭일 것이다.

아무쪼록 여러 책에 대한 비평과 함께 자기 자신의 삶과 가치판단을 함께 농축시키고 있는 〈100인의 책마을〉을 통해 더 많은 독자들이 함께 호흡하고 함께 소통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이 책을 통해, 이 책의 각 꼭지마다 이야기하고 있듯이, 책이 삶을 변주하고, 책이 세상과 관계 맺고, 책이 아름다운 문화와 과학과 대화할 수 있는 여러 갈래의 길들을 추적해 봤으면 좋겠다. 웹 2.0의 형태의 책세이와 책수다는 거기에서부터 기초를 다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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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6 12: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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