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어둠을 밝힌 여성들 - 은자의 나라에 처음 파송된 선교사 이야기
캐서린 안 지음, 김성웅 옮김 / 포이에마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역사는 어디든 빛과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교회역사도 예외이지 않다. 구한말 조선 땅에 들어 온 선교들은 단지 복음만 전한 건 아니다. 그들이 의료와 교육에 매진하긴 했지만 또 다른 이권에 연루된 것도 사실이다.

미국인 선교사 앨런은 조정 대신의 몸을 고쳐준 뒤 어의(御醫)로 승격되어 광혜원을 세우지만, '을미사변' 전 일본공사가 명성왕후를 만나도록 주선한 인물이기도 하다. 언더우드는 제중원 약제사로서 의학생들을 가르치며 한국어 성경번역에 힘을 쓰지만, 석유와 석탄과 농기구를 수입한 인물이다. 왕실과 가까이 한 다른 굵직한 선교사들도 예외이지는 않다.

그 당시 외국인 선교사들은 대부분 남성들이 주도했다. 그렇다고 여성 선교사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남성 선교사의 아내로서 또는 독신 여성으로서 조선 땅을 밟은 외국인 여성 선교사들은 많았다. 다만 그녀들의 활동은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그늘로 가려 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또 다른 빛과 그림자라 할 수 있다.

미주 1.5세로서 풀러신학교에서 교회사를 강의하고 있는 캐서린 안은 〈조선의 어둠을 밝힌 여성들〉을 통해 1884년부터 1907년까지 조선 땅에 활동한 외국인 여성선교사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앞서 밝힌 것처럼 외국인 여성 선교사들에 관한 빛과 명암을 다루는 책은 아니다. 그저 교육과 의료를 중심으로 한 선교활동의 빛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미국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부 문헌에는 한국 선교 활동에 관한 방대한 정보가 들어 있다. 그러나 이런 공식 기록에도 여성 선교사의 사역이 모두 담겨 있지는 않다. 오히려 여성 선교사들이 쓴 일기나 가족에게 보낸 편지, 여성 선교회와 주고받은 서신 등 개인적인 기록이 이들의 일상과 사역을 훨씬 더 풍부하고 생생하게 들려준다."(들어가는 말)

일례로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은 초창기 개신교인들이 '평양의 오마니'라고 불렀던 미국 여성이라고 한다. 그녀는 44년간 선교사로 일하면서 한국 땅에 병원을 네 개나 세웠고,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학교와 여자 의과대학도 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처럼 1884년부터 1907년까지 한국 땅을 밟은 여성 선교사들은 200여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녀들의 삶이 여태 조명도 받지 못한 채 땅속에 묻혀 온 것이다.

캐서린은 그녀들의 행적을 쫓는 자료가 많지 않았음을 밝혔다. 그렇다고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원 자료의 잡지들을 추적하여 이 책을 엮어냈다. 이른바 북감리교 여성선교회에서 발간한 〈이방 여성의 친구〉, 남감리교 여성선교회에서 발간한 〈여성 선교사의 목소리(Woman's Missionary)〉, 북장로교 여성선교회의 〈여성을 섬기는 여성 사역(Woman's Work for Woman)〉과 〈우리의 선교지(Our Mission Field)〉가 그것이다.

그때 당시 한국 땅을 밟은 여성 선교사들은 어떤 선교사역에 주력했을까? 그녀들은 남성 선교사들처럼 대부분 의료와 교육 사업에 몰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 땅에 선교사로 자처한 여성들은 대부분 외국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자란 중산층 출신이었다고 한다. 그런 학식과 재능을 의료와 교육 쪽에 헌신했던 것이다.

"선교사들은 1900년경 제물포와 서울 사이에 철로가 놓이기 전까지 20년간 나귀와 가마를 타고 이 길을 지났다. 뒤에 온 선교사들은 철도 덕분에 서울까지 두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94쪽)

이는 메리 스크랜턴이 1885년 7월 9일 날 여성해외선교회에 보낸 편지로서, 여성 선교사들이 한국 땅에 제일 먼저 발을 내딛으면서 겪은 고충을 이야기한 바다. 육로로 40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나귀나 가마로 9시간씩 여행해야 했던 여정이 힘들었고, 중간에 일꾼들이 주막에 들리면 갇혀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녀들을 보기 위해 구경꾼들까지 달려들기도 했다고 한다.

살면서 겪은 고충은 어떤 점들이었을까? 집 구조가 너무 작은 것, 수세식 화장실이 없는 것, 고춧가루를 버무린 김치를 먹어야 했던 것들이 힘든 점이었다고 밝힌다. 더욱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휘말린 것과 일제에 강제로 병합당한 것이 가장 큰 고충이었다고 한다. 주권을 잃은 백성들을 선교한다는 게 때로는 생명을 내걸고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애니 엘러스는 오자마자 명성왕후를 돌보는 일을 했다. 호러스 앨런과 헤론은 고종을 돌보았다. 의대를 정식으로 졸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몇 몇 선교사가 탐탁지 않아 했지만, 앨러스는 명성왕후를 잘 치료했다. 그리고 국립병원에서 여성병동도 열었다."(184쪽)

이는 1886년에 한국에 파송된 첫 번째 여성 의료 선교사인 애니 엘러스에 관한 내용이다 그녀는 한국에 온 첫 번째 독신 여성 선교사였는데, 그녀는 마치 제 몸처럼 명성왕후를 잘 돌보고 치료했다고 한다. 물론 그 뒤로 온 다른 여성 선교사들도 다르지 않았는데, 놀라운 건 한국에서 법으로 포교를 금하고 있던 그 때에도 여성 의료선교사들은 명성왕후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왕실과 관련된 선교활동이었다면 왕실 밖 민간인들에게는 어떤 활동을 펼쳤을까? 그 당시 여성 선교사들은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한 여성들에게 '여성 성경반'을 열었고, 주일학교를 꾸려 어린아이들까지도 가르쳤다고 한다. 훗날 그것은 여성 지도자들을 기르는 모판이 되었다고 한다.

캐서린 안의 〈조선의 어둠을 밝힌 여성들〉은 구한말 외국인 여성 선교사들이 펼친 선교활동의 빛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그녀들이 실수한 과오보다는 공적에 치중하고 있다. 그것은 외국인 여성 선교사들이 추구한 선교활동이 남성위주의 발판을 따랐기 때문이고, 그녀들과 관련된 기록물들이 제한돼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앞으로 이 책을 바탕으로 외국인 여성 선교사들이 활동한 반면교사의 삶을 객관적으로 추적한 책들도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