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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표적
로이드 존스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199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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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의 원인이 되는 또 다른 이들은 율법의 행위로 되돌아가는 사람입니다그 사람들은 초대교회에 있었던 사람들인데 할례를 받아야 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되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바로 그 이단을 다루었습니다히브리서의 주제도 역시 같습니다마땅한 바대로 그리스도께서 완전 충분하시며 최고로 탁월하시다는 것을 그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했습니다그래서 그들은 옛 유대교를 되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그 사람들은 연합을 깨트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3장을 쓸 때 마음속에 이 유대교주의자들을 두고 있었음에 틀림없었습니다디모데전서 1장을 쓸 때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이 사람들은 언제나 율법 아래로 되돌아가고 싶어했습니다그들은 항상 끊임없는 족보를 의지하고 다른 것들을 의지하여서 구원을 얻으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그러나 구원의 메시지는 오직 하나 뿐입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딤전1:15)”(207)
 
마틴 로이드 존스의 시대의 표적Knowing the Times(CLC·2007)에 나오는 내용입니다기독교가 하나 되지 못한 이유에 대한 이야기 중에 율법의 행위로 돌아가자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또한 거기에는 그리스도에게서 시선을 옮겨 사람을 추종하려는 이들세상 지혜와 철학을 좇으려는 이들성령의 은사 하나면 성경의 교리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주장하는 이들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고 말하죠.
 
이 책은 1938년부터 그가 런던의 웨스트민스터교회에서 설교하면서도 주간에는 복음전도자로서 순회설교사역을 한 강연들때로는 학생선교운동이나 다른 집회 모임에서 한 강연들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100주년 기념연설 등을 묶어 펴낸 설교집입니다이 책은 그 무엇보다도 성경에 대한 바른 관점을 제시해 주고 있고강단사역자들의 말씀사역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그 표본을 제시해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설교는 사로잡힌 사람이고 그는 이 점을 인식합니다저는 말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저는 구경꾼입니다저는 일어나고 있는 일에 깜짝 놀랍니다저는 듣고 있습니다놀라움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왜냐하면 제가 그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내가 사용되고 있다는 의식을 가질 때 그때가 바로 참되게 설교하는 경우입니다저는 단순히 이 모든 것의 도구와 수단과 통로에 불과합니다생각들이 주어지고 표현들이 술술 풀려나오고 아이디어들이 주어지고 영감 어린 상상이 흘러나오고 그것들이 불꽃을 냅니다나는 그리스도인의 사신이고 보내심을 받은 자요이 위대한 책임을 알고 있다.-그러나 좋다그가 은혜가 넘치사 나에게 그 은혜와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나는 그 일을 해낼 수 있다.”(372)
 
설교에 대한 내용이죠이 책을 통해 볼 때 로이드 존스 목사는 가장 영향력 있는 설교자로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와 찰스 스펄전 목사를 손꼽고 있는 것 같습니다그들이야말로 가장 강력하게 성령에 사로잡혀성령의 통로로 쓰임 받은 분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물론 고든(S.D.Gordon)에 대해서는 미국의 설교에 대단한 해를 끼친 인물로 평가합니다그는 강단 웅변설교는 폄하한 채 조용한 대화’ 설교만을 높이 산 까닭이라고 생각하죠.
 
경건주의란 용어는 현재에 와서는 거의 가치가 하락된 용어가 되었고 모독적인 어휘가 되었습니다저는 복음적인 사람들이 경건주의를 공격하는데 아주 신물이 납니다참으로 복음적인 사람은 언제나 경건주의적인 사람이어야 한다고 저는 주장하는 바입니다죽은 정통과 경건한 사람과는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앞에서 저는 유럽에서 일어난 경건주의 기원에 대해 언근한 바 있습니다아른트(Arndt), 스페너(Spener), 프랑케(Francke)와 그를 추종했던 사람들-이들이 주도한 경군주의운동-은 하나의 저항으로 일어났습니다왜냐하면 불행히도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 100년 내에 루터파 교회나 개혁파 사람들이 그만 죽은 정통으로 내려앉고 말았기 때문입니다윌리암 퍼킨스(William Perkins)라고 불리는 사람의 지도를 통해서 영국에서도 똑같은 회복운동이 일어났습니다칼빈 자신도 성령의 신학자라고 알려지고또 그렇게 묘사되고 있었습니다청교도들이나 미국의 조나단 에드워즈 같은 사람들 속에서 발견하듯이 참으로 복음주의적인 사람들의 가르침 속에는 경건주의적인 요소가 매우 뛰어나게 들어 있습니다.”(447)
 
어떤 사람이 복음적인 사람인가를 이야기하면서 경건주의에 대해 다룬 내용입니다종교개혁이 정통으로 내려앉은 동안 그것의 삶을 위해 애쓴 흐름이 경건주의로 태동이 된 것인데복음주의자들이 그것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는 뜻이죠.
 
복음적인 사람은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 걸까요로이든 존스 목사는 무엇보다도 성경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사람항상 깨어 있는 사람철학적인 이성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성례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부흥에 관심을 가진 사람언제나 설교에 우선권을 기울이는 사람복음전도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 등을 꼽고 있습니다.


"청교도들이나 미국의 조나단 에드워즈 같은 사람들 속에서 발견하듯이 참으로 복음주의적인 사람들의 가르침 속에는 경건주의적인 요소가 매우 뛰어나게 들어 있습니다."(4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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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과 복음
G.F.W윌터 / 컨콜디아사(재단법인한국루터교선교부유지재단) / 199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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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할 때 우리는 청중에게, 천국을 설교하기 전에 먼저 지옥을 설교하여야 합니다. 먼저 율법으로 죽음에 처하도록 한 다음에야 비로소 복음을 통하여 그들을 생명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먼저 그들이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줄을 알게 한 다음, 복음의 위로로 그들을 치료하여야 합니다. 먼저 율법을 통하여 그들의 자칭 의인됨을 폭로하고 그것이 얼마나 추한 의복인지를 보여준 다음, 복음을 통하며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혀 주어야만 합니다.”(126쪽)

G.F.W윌터(Garl Ferdinand Wilhelm Walther,1811-1887)의〈율법과 복음〉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설교자가 회중을 향해 설교할 때, 율법을 먼저 말하고 그 다음에 복음을 설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지옥을 말하고 그 후에 천국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이치죠. 은혜로 인한 죄의 회개가 앞서고 그 뒤에 믿음이 이어지는 설교를 하는 것(행2:37-38)과 같은 차원입니다. 은혜가 먼저요 선행은 그 후라(엡2:8-10)라는 뜻입니다. 그래야 회개, 의인, 성화의 순서를 따르는 복음적인 설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삭개오나 돌아온 탕자를 향해 설교할 때도, 바울이 빌립보 감옥의 간수장이를 향해 설교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고 하죠.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이미 회개할 준비가 돼 있는 이들이었기에 행함보다 복음에 방점을 두었던 것이라고 말이죠. 대신에 자신의 의와 행함을 자랑하고 나섰던 부자 청년을 향해서는 또 다른 행함을 강조하는 율법에 방점을 두고 설교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책은 월터 교수가 미국의 세인트 루이스에 위치한 컨콜디아 신학교 교수로 재직할 당시, 1884년 9월 12일부터1885년 11월 6 일까지, 매주 금요일마다 총 39회에 걸쳐 비공식적인 ‘루터시간 강좌’를 열었는데, 그때의 특강을 엮은 것입니다. 그는 1811년 독일의 색손 지방에 있는 랑겐홀스돌프에서 3대 루터교 목사의 집안에서 12명 중 여덟째로 태어났고, 1829년 슈네베그 김나지움을 마치고 음악전공을 원했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라이프찌히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는데, 지병 속에서도 종교 개혁자 루터의 작품들과 사상 연구에 몰입했고, 1833년 대학을 졸업하여 1837년에 목사안수를 받고 색손 지방 부라운스돌프에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의 지역 교회에 불어 닥친 합리주의의 물결과 루터교의 신앙 고백 노선이 대립하게 되었고, 급기야 그는 1839년 초에 미국으로 가는 색손 이민단에 들어가 함께 이민 길에 올랐고, 2월 19일에는 미국 미시시피 강변에 있는 세인트루이스에 도착하여 그 유명한 알텐불그의 ‘통나무방 대학’을 창설하는데 협력했고 강사로도 봉사했죠. 그 뒤 알텐불그 대학이 세인트루이스로 옮겨와서 컨콜디아 신학교가 되었을 때, 그는 1850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교수와 교장으로 봉직하며 섬겼다고 하죠.

“율법을 거의 설교하지 않는 것이 복음적 설교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잘못된 것입니다. 율법과 복음을 둘 다 설교하지 않으면 복음적 설교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설교자는 기만(歎滿)하는 사람이요 복음의 씨를 마치 싹이 틀 수 없는 바다 가운데 뿌리는 사람과 같습니다. 복음의 천국 씨앗은 오직 상한 심령에서만 싹을 낼 수 있습니다.”(261쪽)

복음만을 설교한다는 명목으로 율법적인 내용을 담지 않는 것은 설교자의 직무유기와 같다는 뜻이죠. 왜냐하면 율법은 인간의 무능함과 연약함을 비추는 거울이자 인간의 죄를 노출시키는 도구요, 복음은 주님의 은혜로 인간을 변화시켜 그 마음속에 사랑을 심고 선을 행하도록 능력을 부어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설교자는 율법폐지론자나 율법무용론자로서 말씀을 선포할 게 아니라 오직 율법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 속에 복음을 전하는 진정한 복음주의 설교자가 되기를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판 설교자들 중에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율법은 구약의 가르침이고 복음은 신약의 가르침이라고 오해하는 경우 말이죠. 하지만 복음은 구약 가운데도 있고 율법은 신약 가운데도 있습니다. 율법과 복음은 결코 상반되는 게 아니라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죠. 다만 율법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될 것인지를 말하지만 그걸 행할 힘을 주지는 않습니다. 오직 복음을 통해서만 우리가 변화될 수 있고, 복음을 통해서만 주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심을 수 있고, 복음을 통해서만 모든 선을 행할 능력을 덧입게 되는 것이죠.

바로 그 점을 이 땅의 설교자들이 갈파하여 설교할 수 있도록 이 책을 펴내게 된 것입니다. 이 땅에서 생명사역을 하는 설교자들이 무생명의 존재로 강단에 서지 않도록 말입니다. 오직 율법과 복음에 관한 바른 교리를 토대로 청중들로 하여금 구원의 복음을 깨닫고 즐거워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래서 설교석상에서 45분간 설교하는 설교자들이 스스로의 구원에도 유익될 뿐만 아니라 청중들의 구원을 이끄는 가장 값진 열매를 누리게 하는, 가장 영예로운 영적 직무가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먼저 율법을 통하여 그들의 자칭 의인됨을 폭로하고 그것이 얼마나 추한 의복인지를 보여준 다음, 복음을 통하며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혀 주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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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에서 찾은 복음
마틴 로이드 존스 지음, 안보현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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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에 복음이 있을까요없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구약성경은 오직 율법에 방점을 찍고 있다고 말예요. 하지만 구약성경 자체가 은혜의 복음입니다. 구약성경의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그 중심에 인간의 죄로 인한 타락과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끊임없이 보여주기 때문이죠.
 
회심을 체험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이전과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압니다그의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그는 자기 위에 표징을 얻게 되었고 새 생명을 갖고 있습니다자기 자신을 강하게 믿던 야곱그 야곱이 사라지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불구의 야곱이스라엘이 다리를 절뚝거립니다.’ 그것이 마지막 특징입니다.”(81
 
마틴 로이즈 존스의 구약에서 찾은 복음에 나오는 내용입니다야곱이 홀로 남아 씨름하던 사건’(32:24)을 토대로 야곱의 회심에 비춰 설교한 것입니다야곱은 그 전에도 부모의 종교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었고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 흥정한 일도 있었고어려울 때 도움을 청한 기도를 드렸지만, 브니엘의 체험이야말로 가장 필요한 회심 사건이라고 설명하죠. 강렬한 개인적인 체험’,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의 체험영원한 변화가 뒤따르는 체험 말입니다.
 
우리가 제삼자의 자세로 성경을 조사하는 단순한 조사원이나 검사관이라면절대 성경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호기심이나 불러일으키는 분 정도로 하나님을 생각한다면우리가 사색하고 추측해 볼 수 있는 분 정도로 생각한다면계속 그 분을 연구하고 조사해 보십시오그러나 진노 말고는 하나님에 대해 절대 알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여러분은 그 분의 생명 밖에 있게 될 것입니다.” (110)
 
모세의 떨기나무 사건’(3:3-5)에 관한 설교로서하나님의 계시는 인간의 지식을 동원하여 관찰하거나 분석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게 아니라는 것입니다복음은 곧 계시의 차원이고모든 계시는 기이하고 놀라운 사건일 수밖에 없고계시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그래서 하나님의 계시를 드러내는 떨기나무와 같은 사건 앞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발에서 신을 벗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하죠.
 
인간은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피조물이 아닙니다자기 일을 알아서 처리할 수 있는 자치적 피조물이 아닙니다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입니다예루살렘 성이 하나님에 의해 지어진 것처럼 오래 전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존재입니다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입니다따라서 이와 같은 본성의 법에 순종할 때존재의 법에 순종할 때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408)
 
구약의 이사야서를 토대로 하나님께서 앗수르 군대가 쳐들어 올 때 유다 백성들의 눈을 벗겨 준 사건’(22:8-14)을 설교한 것입니다그 당시에 예루살렘 성벽은 앗수르 군대가 쳐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금이 갈라져 있었는데그것은 갑자기 생긴 게 아니라그 백성들의 교만과 탐욕이라는 영적 이기심의 산물이 빚어낸 총체라고 진단하죠.
 
그런데 그들은 금과 구멍들을 자기 가옥을 헐고 그 돌로 성벽 곳곳을 수축코자 했다는 것입니다오늘날의 교육과 철학과 경제력과 정치력과 군사력으로 메우려는 것과 같다는 것이죠하지만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영적인 실체를 직시하지 않는 것이요결국 최후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그런데 그 금과 구멍을 보여준 것 자체가 하나님의 계시로서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인간의 본성이 회복될 수 있다는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책에 실린 설교문은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가 남웨일즈 아베라본의 '샌드필즈'에서 목회하던 기간에 전한 것들입니다이 책에 따르면그가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전한 구약의 본문은 430개로 비율이 약간 낮긴 하지만아베라본에서 사역할 때의 구약 본문은 4분의 3이나 되었다고 하죠.
 
그토록 그가 구약성경 본문을 폭넓게 설교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구약성경을 통해 드러낸 하나님의 계시에 관심을 뒀던 까닭이죠인간의 타락으로 얼룩진 죄와 하나님의 심판을 드러내며그렇기에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그 은혜를 나타내고자 하는 것 말입니다한 마디로 복음 설교를 전하고자 하는 열망 때문이었던 것입니다그래서 아래와 같은 메시지는 모든 설교자들이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복음 설교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 줄 무언가를 하라고 호소하는 것이 아닙니다하나님이 그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주시기 위해 무엇을 행하셨으며 무엇을 행하실지 그들에게 공표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놀라운 사랑의 결과입니다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진수입니다.”(88)

복음 설교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 줄 무언가를 하라고 호소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주시기 위해 무엇을 행하셨으며 무엇을 행하실지 그들에게 공표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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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침체
마틴 로이드 존스 지음, 정상윤 옮김 / 복있는사람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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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는 교회의 부흥이 일어나지 않거나 교인들의 믿음생활에 변화가 없을 때 영적 침체를 겪게 됩니다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할 때시험을 당하거나 기도하던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스스로의 영적 침체에 빠져들죠그럴 때면 그 누구라도 활력을 잃게 되고 믿음생활에 대한 의욕도 상실하게 되죠.
 
“‘내가 이것을 하고 저것을 했다’ 해서 무엇인가를 대가로 받을 것을 기대할 권리가 있다고 논쟁하는 것처럼 잘못된 영은 없습니다저는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주 좋은 복음적인 기독교인들을 알고 있습니다그런데 그들은 만일 우리가 어떤 일들을 위하여 기도한다면 우리는 꼭 그것들을 갖게 된다예를 들면 만일 우리가 부흥을 위해 철야기도를 한다면 우리는 부흥을 하고 말 것이다.”라고 말합니다저는 때때로 이것을 자동판매기 속에 넣는 동전(penny in the slot)사상이라고 묘사합니다.”(190)
 
마틴 로이드 존스의 영적 침체Spiritual Depression(복있는사람·2014)에 나오는 내용입니다목회자나 그리스도인이 영적 침체에 빠져드는 이유 중의 하나인데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매매나 권리의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는 까닭이라고 하죠이른바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19:27) 하는 베드로의 모습처럼 말입니다.
 
사실 이 책은 로이드 존스 목사의 21편의 설교를 엮은 것입니다그가 목회한 영국의 웨스트민스터교회에서 약 1,200여명의 성도들을 위해 주일날 설교한 메시지죠그 당시에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과 그에 따른 사회적인 격변으로 인해 침체된 그리스도인들이 많았다고 합니다그런 그리스도인들을 보면서 의사로서의 자기 경험과 탁월한 성경해석을 바탕으로 영적 침체의 근본 원인을 파헤치고그에 따른 치료법도 제시해 주고 있죠.
 
그렇다고 영적 침체의 근본원인을 정신병리나 사회 심리학적인 접근 방법에서 찾고 있는 게 아닙니다오직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 대한 교리적인 차원의 접근다시 말해 성경 말씀에 따른 복음적인 접근 방법으로 그 문제점을 파헤쳐 줍니다더욱이 그 치료법마저도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의 빛을 깨달을 때에 진정으로 해소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영적 침체를 고치는 특효약은 성경의 교리 곧 기독교 교리에 대한 지식입니다집회에서 생겨진 감정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원리를 아는 것이며 교리를 알고 이해하는 것입니다그것이 성경의 방법이요그것이 그리스도 자신의 방법이며또한 마찬가지로 사도들의 방법인 것입니다침체 상태의 치료제는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가지는 일입니다여러분은 그것을 그의 말씀에서 얻습니다여러분은 그것을 배우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232)
 
이 책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이 영적 침체에 빠지는 몇 가지 특징적인 모습들이 있다고 밝혀줍니다이른바 죄의 문제로 인한 갈등 때문에 겪는 영적 침체지식과 감정과 의지의 균형 잡힌 신앙생활보다 한쪽에 치우친 믿음 생활로 인해서 겪는 영적 침체사탄이 그리스도인의 구원과 기쁨을 강탈하고자 할 때 그것을 이겨내지 못함으로 인해 겪는 영적 침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어떤 모양으로든 자아를 만족시키고 기쁘게 하려고 일을 하고 있다면 그 결국은 항상 피곤과 무기력으로 끝나버릴 것입니다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있어서의 동기를 스스로 물어보는 것이 참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296)
 
이른바 그리스도인이 구원받은 기쁨은 누리고 있지만 그 속에 있는 자기 자아로 인해 겪는 갈등과 욕심과 자랑으로 인해그것을 내려놓지 못할 때 겪는 영적 침체가 있다는 것입니다목회자도 마찬가지죠뭔가 의도적인 메시지를 갖고 설교하면 성도들이 은혜받고 변화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전혀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때 그때 영적인 무기력과 침체 상태에 빠진다는 것입니다그럴 때면 그 본질과 동기마저도 놓치거나 흔들릴 때가 많다는 것이죠.
 
그리고 또 다른 영적 침체 원인이 있는데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발생한다고 하죠아무리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나 신실한 목회자라 할지라도미래의 불투명한 일이 닥칠 때 마치 중생 전의 사람처럼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게 그렇다는 뜻입니다하나님께서는 분명코 당신의 자녀들에게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8:38-39)고 약속해 주셨는데도 말이죠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죠.
 
이상과 같이 그리스도인이나 목회자나 모든 신앙인들이 때때로 혹은 긴 터널처럼 영적 침체를 겪는다는 것입니다이런 현상은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가 목회하던 시대는 물론이요주님의 제자들도그리고 그토록 영적이었던 엘리야도 마찬가지였죠그렇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두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그렇기에 이 책에 나온 것처럼 우리 안에 일어나고 있는 영적인 침체의 원인들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깨닫고 그에 따른 치유책도 강구했으면 합니다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모든 영적 침체의 원인은 외부세계나 정신병리 혹은 사회심리학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었습니다그리스도인의 교리의 부재곧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나 확고한 신뢰의 결핍에서 발생하는 것들입니다그렇기에 이 책을 통해 바로 그 지점부터 새롭게 확립했으면 하는 바랍니다그때 그 치유책은 자연스레 뒤따를 것입니다.

영적 침체를 고치는 특효약은 성경의 교리 곧 기독교 교리에 대한 지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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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이냐 은혜냐
M. R. 드 한 지음, 이용화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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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늘날 구원에 있어서 율법과 은혜의 역할에 대해 세 가지 견해를 지니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율법을 지키고 계명을 준수해야 한다는 견해은혜로 구원받기 때문에 어떤 행동을 하든 상관없이 자유롭게 살아도 된다는 견해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주님의 은혜로 구원은 받았지만 여전히 율법 조항들은 지켜야 구원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견해 말이죠.
 
바울 당시에 있었던 율법의 역할에 간한 세 번째 오류는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 외에 신학적인 용어로 갈라디아주의’(Galatianism)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이 명칭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에게 가장 널리 퍼져 있던 사상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입니다.”(73)
 
엠 알 디한(Martin Ralph De Haan)의 율법이냐 은혜냐에 나오는 내용이죠그는 구원에 있어서 율법주의’, ‘반율법주의’, 그리고 갈라디아주의가 있다고 설명합니다그래서 그는 구원이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3:28) 알도록 하기 위해 바울이 로마서를 썼고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은 사랑의 법에 의해 행함의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해 야고보서를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후에도 율법의 행위를 지켜야 한다는 거짓 교사들이 판을 치고 있어서 갈라디아서를 썼다고 말하죠.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근본적인 목적이 무엇이었을까요디한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다고 말하죠이른바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통해 값없이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이죠율법을 주신 것은 그로부터 출애굽한 지 3개월째 되는 날 곧 50일이 되는 날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주신 것이었다고 밝힙니다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거울이자 잣대, ‘지침서’ 격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시내산에서 주신 율법은 돌 판에 새긴 십계명을 비롯해절기와 성일과 희생과 제사와 음식에 관한 법과 민법과 성막의 모형도까지 함께 주셨다고 하죠디한은 그것을 도덕적인 율법의 계명’(20:1-26), ‘재판’(민법)(21:1-24) 그리고 의식’(儀式)(24-31등의 세 부류로 구분하죠그것이 출애굽기 2031장까지 나온 율법의 총체적인 내용이라고 하죠.
 
더욱이 그는 그 율법에 대해 아담 이후 2,500년 동안 율법 없이 살아왔다가 시대적인 상황에서 주신 것이고이스라엘의 민족적인 차원에서 그들이 죄의 근성을 드러내는 율법을 온전하게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입증해 보이기 위한 본보기로 주신 것이요그로 인해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이 있음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위해 주신 것이라고 밝히죠
 
그만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 율법을 주실 때에는 그들이 율법을 지킬 수 있어서 주신 게 아니라지킬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주셨다는 뜻입니다바꿔 말해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는 길은 율법의 행위에서 기인하는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더 깊이 자각하도록 하기 위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이것을 행하라고 명하나 은혜는 이것은 이루었다고 말합니다율법은 가장 선한 사람도 정죄하지만은혜는 가장 악한 사람도 구원합니다율법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지만 은혜는 하나님의 은사는 영생이라고 합니다율법은 죄짓는 영혼은 죽는다고 하지만 은혜는 믿으면 살 것이라고 말합니다율법은 죄를 드러내지만 은혜는 죄를 속량합니다율법은 복종을 요구하나 은혜는 순종하는 능력을 줍니다율법은 속박하지만 은혜는 자유하게 합니다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지만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입니다.”(116)
 
이는 율법과 은혜에 관한 대칭되는 부분을 기록한 것입니다본래 이 책에는 19가지가 나와 있는데 그 중에 몇 가지만 간추린 것이죠물론 그 밖에 얼마든지 더 소개할 수 있다고 하는데그가 진정으로 강조하는 것은 그것입니다이제부터라도 인간적인 행위에서 믿음으로 나아가도록자기 자신에게서 그리스도로 돌이키도록 말입니다바꿔 말해 인간의 의지나 행위나 자기 자아를 강조하는 것 자체도 실은 율법주의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사랑이 통치하는 곳에는 율법이 필요 없습니다전에 고용인으로 데리고 있던 여인의 남편이 부인에게 계속해서 책임을 다하라고 부엌 벽에 십계명을 써 붙여 놓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습니까이 부인이 매일 아침 부엌에 붙여 놓은 율법을 보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200)
 
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야 하는지그에 대한 쉬운 예화를 하나 소개한 것입니다이전의 고용주 앞에서 근로 계약서를 쓰고 일한 여성이 그 고용주의 아내가 되는 순간부터 사랑의 법’ 아래에서 일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죠그것이 율법에 매여 있는 사람과 구원의 은혜 아래 자유하는 사람의 차이라고 하죠구원받은 사람에게 선한 열매가 맺혀야 하는 것도 율법 조문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오직 사랑의 은혜가 열매를 맺게 하는 동인(動因)이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가장 선한 사람도 정죄하지만, 은혜는 가장 악한 사람도 구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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