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사람을 사랑하는 기술 - 2500년을 뛰어넘는 진보적 삶과 세계에 대한 깊은 지혜와 성찰
이남곡 지음 / 휴(休)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논어는 공자 문하에서 남긴 대화집이다. 일부는 공자가 한 말이고 또 일부는 문하생들이 한 말이다. 예수가 남긴 말도 후대가 남겼듯이 논어도 공자시대엔 경(經)이 될 수 없었다. 공자의 가르침이 성전(聖典)이 된 것은 공자 사후의 일이다. 그것이 이데올로기가 된 것도 그렇다.

논어는 세상을 사는 정치과 교육, 문화와 경영까지도 담고 있다. 논어를 정치학, 기업경영, 학문의 교본으로 삼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논어의 근본 바탕은 사람을 사랑하는데서부터 출발한다. 이남곡 선생의 〈논어, 사람을 사랑하는 기술〉은 그걸 일깨운다.
"성인이 되는 길을 나와 다른 세상의 일로만 어렵게 여길 필요는 없다. 한자로 '성聖'을 풀어 보면 耳와 呈의 합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귀耳를 뜻으로 삼고 정呈을 소리로 삼고 있다. 즉 소통에 막힘이 없는 사람을 말한다. 예수님이나 부처님 같은 성인은 못 되어도 소통의 달인은 한 번 쯤 도전해 볼만하지 않을까. 소통疏通은 인간이 개인화 되고 파편화되고 있는 오늘날 가장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는 화두다. 가정에서부터 국가, 세계에 이르기까지 소통이 절실한 시대라 하겠다."(320쪽)
이는 논어 제 9편 자한 4장을 풀어가면서 한 이야기다. 이른바 '공인'(公人)을 이야기함인데, 공인이란 단순히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중심적인 이익과 욕망을 넘어선 인간이란 뜻이다. 다시 말해 소아(小我)의 존재론적인 자아를 넘어 대아(大我)의 관계론적인 삶으로 나아가는 것 말이다.
그것이 바로 공자를 성인(聖人)으로 추앙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사람을 사랑하는 인(仁)을 주창했고, 참된 소통의 삶을 추구했고, 아집이 없는 대자유인으로 산 까닭 말이다. 물론 시절이 수상하던 춘추전국 시대였으니 무턱대고 무아(無我)와 같은 추상적인 이야기를 한 건 아니었다. 오직 실천적인 언행을 내세웠다.
어쩌면 그런 연유 때문이었을까? 젊은 시절 이남곡이 공자를 보수 우익의 원조로 여긴 것 말이다. 함평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교사운동을 하던 가운데 '남민전'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으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옛 시절의 고전 해설들이 시대 정권을 보좌하는 시녀역할을 자처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한국불교사회연구소 소장직을 맡고, 전북 장수로 귀농한 그는 논어를 달리 읽기 시작했다. 이른바 정치학이나 기업경영 혹은 학문의 교본이라는 시각을 벗어나 참된 인간애를 품고 있는 게 논어의 정수라는 것 말이다. 그것이 이 책에서 보수주의자들과 진보주의를 모두 품고 나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논어 제 2편 위정 14장을 읽어가면서 참된 군자(君子) 상을 밝혀주고 있다. 이른바 무고정(無固定)의 사람, 무아집(無我執)의 인격으로 결코 편파적이지 않고 보편성을 추구하며 그것을 실언하는 인간을 일컫는다. 그것이 주이불비(周而不比)이자 군이불당(群而不黨)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총선과 대선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그야말로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이합집산을 이룰 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곡남 선생은 주이불비(周而不比)의 정신을 살려 개인이나 특정 세력의 이익을 좇기보다 인류 전체의 보편적 이익을 추구하도록 당부한다. 그것이 곧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가치이자, 우리사회가 보다 나은 사회로 진일보 할 수 있는 계기이며, 그것만이 사람을 참되게 사랑하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더욱이 그는 사람을 사랑하는 논어의 관점으로 우리시대의 양극화 해소 방안도 내 놓는다. 물론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에서 나름대로 시각차를 보이지만 중요한 건 현실성 있는 재정대책이다. 이에 대해 그는 '관중의 인(仁)'으로 그 해법을 찾는다. 이른바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에게는 불리할지라도 전체 구성원을 위해서 기꺼이 가진 것을 내어 놓는 것 말이다. 다만 생산 주체의 의욕이 떨어지지 않는 '합리적인 동의'를 이끌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공자 사후 2,500년이 지난 오늘이다. 물질과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누가 뭐래도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하지만 전쟁이 도사리고 있고, 환경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고, 양극화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이러한 때에 진정 필요한 것은 '인간애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남곡 선생이 재해석한 논어를 통해 참된 인간애의 정수를 길어 올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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