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밀라님께 받은 책. 받은 날 다 읽었는데 이제야 기록장에 올린다. 정감가고 친숙한 그림체와 오롱조롱 매달린 박광수라는 인물, 그리고 사회의 생각이 묻어나는 내용이 가득했다. 좋았다. 나의 생각과 비교해 보기도 하고 만약 내가 이 문제에 대해 만화로 표현했더라면, 하고 생각해보기도 하면서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다만 나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을 때와 비슷한 불쾌감을 느꼈다. 나는 어쩌면 자신에게 자신있는 이를 시기하는지도 모르겠다. 박광수가 그런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매번 읽을 때마다 사고싶다고 생각하지만, 책을 덮고 일주일쯤 지나면 그 마음을 접는 책. 문제가 되는 것은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아직 결말을 몰라서이고 또 하나는 돈이 없어서이다. 따지고보면 첫번째 이유는 결말이 마음에 안 들면 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두가지는 결국 '돈'문제로 축소된다. 그러니, 내게 아무 생각없이 써도 안 아까울만큼 금전적인 여우가 생기면 덥썩 사 버릴지 모르겠다. 그런 날이 올지는 의문이다. Let 다이는 알라딘에서 '만화→순정만화→그 남자들의 사랑'으로 분류된다. 동성애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란 말이다. 하지만 이 만화가 고작 그 한가지 분류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내 생각일 뿐이지만, Let 다이는 제희와 다이의 사랑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그 주변 인물들까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자신이 처한 상황과 환경에 맞서며 풋풋하지만 애처롭고 격렬한 싸움을 하는 모습을 담은 만화이다. 소년만화→청소년 성장만화로 분류되기에는 너무 칙칙한가? 아무튼, 제희와 다이의 관계를 그저 숨 막히는 청소년기의 일탈과 같이 처리해 마무리짓는 작품이 되지는 않았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앞으로 계속 기대할 것이다.
Let 다이가 읽을 때마다 사고 싶어지는 작품이라면 월하의 그대는 겐지 이야기를 읽어보고 싶게 하는 작품이다. 그 지리지리하게 두껍고 긴, 읽다가 내가 지칠 게 분명한 책이 마구 읽고 싶어진다. (오죽했으면 이 게으른 내가 서점에서 겐지 이야기를 찾기까지 했을까. 책에 심히 압박스런 오오라가 풍겨서 그냥 뒀지만.) 일본 고전을 즐기지는 않지만, 언젠가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시마키 아코를 제대로 된 단행본으로 처음 만난 것은 무지막지 좋아해라는 작품을 통해서 였던 것 같다. 수많은 해적판 만화책들 부록으로 그녀의 단편이 들어가 있었다든가 하는 일이 많았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확실하지 않으므로 패스. 이 작가 만화의 스토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림은 정말로 좋아한다. 깔끔하면서도 매끄럽고 차가운 느낌은 주지 않는 선의 사용이 정갈한 느낌을 줘서일까. 내가 사랑해마지않는 시미즈 레이코의 섬세함과는 다른 섬세함을 지닌 컬러링도 마음에 든다. 글쎄, 스토리는 뭐... 답답하다.

이 만화책에 대해서 한마디 하자면, 표지가 진짜 구리다!! 이렇게까지 말할 수준은 아니지만서도, 나는 이름도 없는 출판사에서 대충 나온 이상한 만화책일 거라고 생각했었다.(알고 있다, 출판사 선입견인 거.) 제목도 정말 읽고싶은 마음이 안 이는 만화에다 표지라도 잘 붙여야지, 뭐하는 짓인가. 1권은 무슨 뽑기구슬, 2권은 뱃지가 컨셉인지. 배경색도 상당히 독특한 색을 썼는데, 그 색이 좀 많이 유치뽀롱하다. 책을 꺼내들고 표지를 찬찬히 보기 전에는 여신후보생, D.N.Angel등을 그려낸 유키루 스기사키의 작품이라는 생각을 전혀 못 했었다. 만약 그 생각을 못 했더라면 나는 여전히 라군엔진을 읽지 않은 채 였을 것이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많은 초등학교 남학생들이 첫눈에 이 책을 뽑아들 수도 있다, 워낙 표지가 그들을 끌어당기게 생겼으니까. 하지만 초등학교 남학생들은 십중팔구 책을 도로 놓을 것이다. 자기들 취향이랑은 약간 안 맞으니까. 그러면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을 살펴볼까? 이네들 역시 라군엔진을 뽑아들었다가도 되돌려놓을 것이다. 전자는 속, 후자는 겉이 문제다. 그러면 둘 다 맞춰야 하나? 하지만 내용은 바꿀 수 없으므로 라군엔진이 주로 공략해야 하는 상대는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이라는 말이 된다. 그런데 이게 뭐냐고요. 재미있다. 전작들의 이름만 들어도 웬만한 중학교 여학생들은 바로 볼 그런 책이다. 그러고나면 욕이 아닌 "역시 웃기더라""귀엽더라"소리 들을 책이다. 그런데 이 표지가 초치고 앉았으니, 쯔쯔. 라군엔진. 작품성은 모르겠지만 표지만 빼면 흥행성은 충분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너무 잠와서 더 이상 못 적겠다. 라군엔진 횡설수설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