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옛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누구게?"
누굴까, 잠깐 생각해보니 금방 답이 나왔다. 그 순간,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아, 수학 선생님."
내가 중학교 1학년 때던가, 과외를 받았던 선생님이셨다.
"오, 잘 아는군."
"그런데 이름이 어떻게 되더라, 아니, 성함이..."
한번 허탈하게 웃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건 메마른 이야기였다. 수학, 과외, 고등학교, 그리고 대입에 관한 이야기. 선생님은 많은 질문을 했다. 너무 현실을 찔러오면 나는 대답할 수 없다. 현실로 느껴지지는 않되 현실인 그것을 어떻게 감당해야 좋을지 몰라서, 그래서 대답할 수 없다. 하지만 무슨 말에든 대답을 해야하기에, "글쎄요", "모르겠어요"같은 말들로 어물쩡하니 넘겨버렸다. 그렇지, 현실은 그런가.
선생님은 지금 서울에서, 기억이 확실치는 않지만 아마도 강남이라는 것 같았는데, 아무튼 서울에서 학원 강사를 하고 계신다. "서울 아이들은,"하는 식의 말도 많이 하셨다. 그래서일까, 선생님의 목소리 톤이 낯설었다. 성함은 곧 기억해냈지만 얼굴은 여전히 흐릿했다. 전화란 잔인한 기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 뿐, 말도 낯설고 얼굴도 보이지 않는 그런 상대와 이야기를 해야 한다니. 그것도 그런 무시무시한 주제로. 내가 피하고 싶어하는 주제로. (안다, 마냥 피할 수는 없다. 알고는 있다.)

언제부터인가 눈에서 줄줄, 눈물이 흘렀다. 줄줄, 정말로 줄줄.

전화는 처음과 똑같은 목소리로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수화기너머의 내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정신없이, '이야기'가 끝났다.

내가 왜 운 건지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다. 그냥 사춘기라서, 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생각에, 중학교 1학년 때, 그 때가 너무 가까워보이는데도 벌써 중3으로, 고등학교가 어떠니 대학교가 저쩌니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나 싶지만, 누가 알겠는가.

아무튼 지금은 좀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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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룸 2004-10-29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정답은 없겠지만 꼭 사춘기기때문이라고는 생각안해요, 왜냐면 저도 가끔 비슷한 상태에서 울어버릴때가 있걸랑요....^^;;;;;;;;;;
'내일의 왕님'이란 만화에 보면 도쿄에 상경해서 처음으로 전화를 개통한 여주인공이 시골에계신 아빠와 통화를 해요. 아빠와 새엄마와 이복동생들. 짧은 통화와 그 배경으로 들리는 왁자하고 익숙한 소음에 이런 저런 생각을하고는 전화를 끊고 난 후, 갑자기 텅 비어버린 듯한 기분에 전화가 때로는 사람을 더 외롭게 한다는 생각을 하더군요. 저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음, 쓰고나서 생각해보니 지금 상황이랑 딱 맞아떨어지진 않지만(제가 그렇죠뭐^^a) 그래도 암튼 전화가 주는 느낌이 그래요. 친구랑 한참 수다를 떨고 나서도 공허하달까 외롭달까 갑자기 내가 스스로의 지극히 객관적인 약점까지 까발려 보고있는듯한 쓸쓸함이랄까 뭐 그런 기분들.

明卵 2004-10-29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화는 필요악일지도...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음.


동화적인 환상.
환상 속에 진실.
그리고 또 환상.


어릴 때는 이야기를 듣고
젊어서는 이야기를 만들고
늙어서는 이야기를 곱씹는다.


소통.


영화는 무거웠다.
가벼운 영화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무거워서 놀랐다.
그 무게감이 풍기는 분위기가
이완 맥그리거의 연기를 '너무 가볍게' 만들어버릴 정도.
그가 연기를 못했다는 건 아니다.
에디의 지난 날에서 큰 무게가 느껴져서는 안 된다.
빅 피쉬의 무게 중심은 현재에 있으므로.


여운이 남는 영화라는 것
재밌었다는 것
감동적이었다는 것
몇 번 더 보지 않으면 여전히 뭐라고 해야할지 모를 거라는 것
이것만은 확실함.










그런데 그... (샴)쌍둥이가 나오는 전쟁 이야기에서
에디가 간 곳은 어디인가?
중국?
북한?
알 수가 없다;;
역사를 알면 알 수 있을라나,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됨.


아빠가 말씀하시길
"늙으면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그런다. 그게 다 헛소리같아도 진실인 거야. 그러니까 잘 들어줘야 된다는 이야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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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frog 2004-10-25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북한 같죠? 중앙일보였나요? 뭐 그런 글씨가 보였던 거 같기도 하고.. 중국 같기도 하고.. 아마 서양넘들이 동양에 대해 갖는 생각이 저렇게 흐리멍텅 한 덩어리로 뭉뚱그려 생각하나봐요. 하긴 우리도 그렇지만.. 그래도 좀 심하게 무지하죠. 암튼.. 저 아버지, 인상적이었어요.
 

천년여우를 보고, 조금만 생각해보기

14일째 달에는 희망이 없다.
보름달은 야위어가지만 14일째 달에는 내일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좋아한다는 치요코의 사랑(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민권운동가[사상가])의 말은 좀 웃겼다. 곧 찾아올 절망을 알고서 빛나는 '내일'을 바라보는 마음을 과연 희망이라 할 수 있을까.

가장 소중한 것을 여는 열쇠로는 어떤 것도 열 수 없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 열쇠로 무엇을 열 수 있는 건지는 나오지 않는다. 단지 '소중한 것'을 연다고만 할 뿐, 결국 치요코는 그 열쇠를 쓰지 못한 채,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상에서, '소중한 것을 여는 열쇠'는 '아무 것도 못 여는 열쇠'가 되어버린다. 소중한 것이란 없다. 열쇠를 준 남자를 찾아다니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게 된 치요코, 그 자신이 있을 뿐이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이 흘러가는 것.
'나는 너를 증오해, 하지만 너무 사랑스럽다.' 처음 이 물레잣는 노인이 등장했을 때, 이게 뭔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 정체가 드러났을 때, 나는 숨을 죽여야 했다. 그 노인은 시간이었다. 늙어버린 모습을 그에게 보이기 싫었다, 고 말하는 치요코의 눈에 비친 노인의 모습은 더 이상 무서운 요괴가 아니다. 지나가 버린 시간, 그 자체. 자신의 모습이므로. 시간은 흐른다. 그리고, 되돌릴 수 없다.


약속은 야속하다.
제 2차 세계대전 직후였던 것 같다. 폐허가 된 마을의 한 건물 벽 위에 '그 남자'가 남기고 간 약속이 남아 있었다. 치요코의 모습과 함께 쓰인 문구,
 'いつか きっと(언젠가 반드시)'. 이 약속은 너무 야속했다. 언젠가 반드시. 언젠가라는 말은 너무 불확실한 반면, 반드시라는 말은 너무 확고한 것이다. 그 약속을 담은 액자에 비친 늙은 치요코의 모습과,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그림 속의 치요코의 모습이 함께 화면을 메울 때, 그 약속의 야속함에 슬픔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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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卵 2004-10-23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계시네요^^
저도 보고 싶다, 보고 싶다, 하고 있었는데 이쪽에 개봉을 안 한 것 같더군요^^; (게다가 그 때가 시험기간이었고.) 오늘 보니 비디오가 있어서 빌려봤습니다. 그런데 우리말 녹음이더라구요. 흑.. 일어로 듣고 싶었는데..ㅜㅜ (애니메이션은 잘 안 나가면 우리말 녹음밖에 없어요)

明卵 2004-10-23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DVD도 나왔을 거예요^^ (이쪽 대여점엔 없지만ㅜㅜ) 엄마는 재미없다고 중간에 자버렸지만 저는 재밌게 봤어요. 일본사를 알았으면 좀 더 재밌게 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아쉽더군요.

明卵 2004-10-29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처음에는, 정신이 없었어요. 치요코의 극중 모습이랑, 과거의 치요코, 현재의 치요코가 뒤섞여서는.
자막으로 보셨다구요!!ㅠㅠ 정말 좋으시겠어요, 엉엉... 더빙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왠지 치요코의 극중 모습 부분은 좀 말투가 다르지 않을까 싶어서 너무너무 궁금하다구요!!
 

  시험 결과가 나왔다. 예상대로 형편없는 등수, 전교 23등. 이 빌어먹을 등수는 꾸준히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왜? 내가 노력을 안 해서? 맞다. 나는 지독히 노력을 안 하는 인간이다. 스스로를 통제할 줄도 모르고, 뭐든지 대충대충. 사실 이런 등수마저도 엄마가 없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성격은 타고나는 걸까, 만들어지는 걸까? 엄마가 '애 성격 나빠져요,'라는 말을 자주 하시는 걸로 보아 만들어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내 성격은 왜 이렇게 생겨먹었을까. 당연히, 그렇게 살아도 지금껏 잘했기 때문이겠지. 죽도록 노력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윗대가리에서 놀 수 있었으니까. 어쩌면 머리가 좋다는 것(그렇다. 나는 머리가 좋은 편이다. 물론 '좋다'에도 등급이 있으므로 천재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꽤나 쓸만한 이해력과 적용능력을 가진 머리라, 지금껏 학습 활동에 있어서 크게 힘든 바를 느껴본 적은 없다.)과, 나보다 훌륭한 두뇌의 위협을 못 느껴본 것, 이 두가지가 내 성격의 형성에 있어서 무시무시한 맹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덕분에(인지 아닌지 분간은 잘 안 되지만) 나는 성적에 있어서, '될대로 되라'식의 사고를 가지고 있다. (매우 다행스러운 일로, 성적 문제를 제외하면 나도 다른 악바리들과 똑같이 '오기' 혹은 '애살'이라고 부르는 것을 많이 드러낸다. 거기다 그, 나조차 감당못할 '완벽주의'까지.) 그 사고가 얼마나 뿌리가 깊어졌느냐 하면, 나는 등수가 23등까지 내려가도 크게 기분이 나쁜 걸 모르겠다.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정말 공부는 하기 싫다.

  그렇구나. 나는 '공부가 하기 싫다.' 바로 이게 가장 큰 원인인 것 같다. 결국 다 성격 문제로 모아지는 이야기이긴 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는 열의를 드러내지만 흥미를 잃으면 지지리 하기 싫어하는 이 극단적인 성격이 문제다. (솔직히 다들 그렇지 않나 생각하지만.)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내가 '공부'를 싫어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공부'를 매우 사랑한다. 공부가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존 M.피니의 'It's such a pleasure for me to learn'이란 말은 나에게도 해당된다. 다만 문제는 그 '배움'의 대상이 너무 한정적이라는 데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 공부'와 '필요에 의한 공부'. 불행하게도 학교 '시험'공부는 둘 중 어느 쪽에도 못 낀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 공부'는 또 두 가지로 나뉘는데, '매우 흥미를 느끼는 공부'와 '어느 정도 흥미를 느끼는 공부가 있다. 그러면 '매우 흥미를 느끼는 공부'를 살펴보겠다. 국어, 영어, 일어, 한문, 역사, 독서를 통한 지식의 습득 등이 있다. 다음은 '어느 정도 흥미를 느끼는 공부' : 중국어, 과학, 수학, 기술. 마지막으로, '필요에 의한 공부'에 들어가는 것들이다. 이것들은 언제든지 '흥미를 느끼는 공부'와 호환된다. 음악(부르는 걸 '공부'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음악사다.), 미술(감상을 말한다. 수업시간에 작품을 만드는 건 '공부'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다지 내 흥미를 끌지 못한다.), 가정(아무튼 살아가는 데 유용하니까 필요하다. 단, 나는 아주 싫어한다.),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 매체를 통한 지식의 습득 등이 있다.
  그러면 이렇게 분류를 했을 때, 각각의 특성은 어떻게 다를까. 먼저 '매우 흥미를 느끼는 공부'의 원소들같은 경우에, 나는 <유혹하는 글쓰기>의 한 부분에서 스티븐 킹이 강조하듯, '즐거움'을 가지고 몰두할 수 있다. 따라서 내가 배움을 구한다. 그 다음, '어느 정도 흥미를 느끼는 공부'에는, 하면 재미가 있기에 몰두한다. 따라서 배움이 있으면 즐긴다. 마지막, '필요에 의한 공부'는 뒤죽박죽이라 뭐라 말할 수가 없다.
  그런데, 위에 적혀있는 원소들에는 교과 과정의 대부분 과목이 포함되어 있다. 국어, 영어, 한문, 사회, 과학, 수학, 기술·가정, 음악, 미술. (내 도덕, 체육, 환경 점수가 대체로 늘 더러운 것은 얘네들은 어느 축에도 못 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면 당연히 내 시험 성적은 무지 좋아야 되는 게 아닌가? 아니다. '시험 공부'를 안 하면 '시험'은 못치게 마련이다. 이처럼 내가 배우기를 즐거워하는 과목은 많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시험 공부'는 어느 쪽에도 못 들어가기에, 시험 공부는 고역이다. 결과도 안 좋다.

  중학교에서 왜 우리는 열 개가 넘는 과목을 배울까. 다 필요해서일 것이다. 이 정도는 알아야지! 하고 생각하기에 넣어놓은 내용일 것이다. 그 점은 나도 동감한다. 비록 살면서 난층운이 형성되는 원리 따위를 써먹을 일은 희박하겠지만, 그만한 지식을 갖고 산다고 나쁠 것도 없다. 이만큼 쓰고보니 어쩌면 내 성적하락의 원인은 목표의식의 상실이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통역을 하려면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 되어야겠지, 하고 생각은 하지만 그렇게 먼 목표(어머, 그리 멀지도 않나?)는 내 시력으로는 너무 흐릿하게 보인다.

  그래, 나도 안다.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겠는가. 학교만 다녀도 그것은 명백한 사실로 드러난다. 학교에 다니면 내가 아무리 하기 싫어도 왁스 청소를 해야 하고, 선생님이 시키면 좋다고 대답해야 하고, (지난 여름방학의 그 악몽같던 독서신문의 경우처럼) 뭔가를 제출했을 때 '다시 해 오라'는 청천벽력같은 요구도 웃는 얼굴로 받아들여야 한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어떤 축소판이 있을 때, 원판이 그보다 더 큰 것은 당연한 이치이므로,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진짜 사회에 나가면 더 지독할 거라는 정도의 결론은 쉽게 내릴 수 있다. 그러니까, 나는 시험 공부가 싫어서 공부를 안 하겠다는 식의 모난 성격을 계속 유지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안다. 잘 안다. 그런데, 못 바꾸겠다. 그게 문제다. 뭘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막막할 뿐이다.

  요즘 머리가 이쪽으로밖에 안 돌아가기에 또 다시 떠오르는데, 내 성격은 내가 국제고를 가려고 하는 이유와도 연관이 있다. 위기감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안 하는 쪼다이기에, 분명 나보다 잘하는 친구들이 많을 곳으로 가려는 것이다. 학원에서 좋은 성적을 내며 반을 올라갈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 있겠지, 위기감에. 지금껏 튀어왔기 때문에, 나는 튀어야 하는데, 내가 제일 잘 하지 않으면 튀지 않기 때문에 거기에서 위기감을 느끼고, 그 위기감을 원동력 삼아 달린다. (글쎄, 민사고에 간 박원희가 느낀 정도의 위기감은 아직 안 느껴봐서, 지긋지긋할 만큼 끔찍한 위기감이 나를 어떻게 몰아갈 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에게는 적당한 위기감이 항상 기폭제가 되어왔다.)

  아까 아빠가 들어오셔서 '엄마한테 보여주기 위한 것을 치지 마라. 네 생각을 적어라.'라고 말씀하셨다. 물론이다. 만약 엄마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쓰고 있었다면 좀 더 신중을 기해서(참회의 빛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며) 썼을 것이다. 나는 그저 내 생각을 갈겼다. 그저 생각의 흐름만 따라서 쓴 것이다. 그래서 일관성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이 생각 저 생각, 잡생각이 많은 게 나니까.

  뜬금없지만 결론은, '나도 잘 모르겠다' 이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길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종류의 느낌을 '방황'이라고 쓰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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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4-10-18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민하는 중학생이시군요. 우리반 애들도 명란님같은 고민을 많이많이 했으면하고 바랍니다. 아직은 1학년이라...3학년이 되면 달라지겠지만, 지금 봐서는 앞날이 깜깜하기만 하군요.

물만두 2004-10-19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란님이 중학생이었다구요? 이런 전 대학생인줄 알았습니다^^ 죄송^^

superfrog 2004-10-19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럴 때마다 명란님의 나이가 의심된다니까요..^^ '난층운이 형성되는 원리 따위를 써먹을 일은 희박하겠지만' 사고하는 방식이나 다른 학문을 이해하는 데 바탕이 되는 건 분명할 거에요. 제 경우는 물론 아니고 일반론이죠..^^ 학교 교육이 아무리 망가졌어도 배워서 남 주겠어요..ㅎㅎ 명란님, 지금 조금만 힘들어하시고 좀더 커서 님이 하고 싶은 공부 많이 하실 수 있길 바랄게요. 힘내세요!! 이쁜 명란님..^^

明卵 2004-10-19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NY님, 안녕하세요^^ 네... 고민하고 있습니다. 흑... 선생님이신가봐요? 2년은 금방이더라구요.ㅇ

새벽별님, 풀어내는 건 할 수 있는 데 정리는 잘 안 되네요^^;; 그래도 칭찬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합니다.^^

물만두님, 그거, 농담이세요? 아님 진짜로?;;

금붕어님, 저는 제가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너 참 예쁘다', '정말 네가 좋다'같은 말을 많이 해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예쁘다'는 얼굴이 예쁘다는 것 말고도 많은 것을 의미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이쁜 명란님'이라는 금붕어님의 표현이 참 좋네요^^
 

한 여자의 일기를 통해 이라크를 느껴보았다. 새롭게 다가오는, 낯선 이라크의 문화. 그리고 이라크의 절망.

어떠한 경우에도 '전쟁'이라는 이름은 너무 아프다. 이 책을 읽으며 울음이 터져나온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전쟁. 내가 겪어본 적 없는 슬픔과 불안을 안은 단어. 나는 계속 그로부터 멀리 있고 싶다. 글만으로도 전쟁은 너무 아프니까. 이건 이기적인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바라는 것이다.

세계는 하나라고 한다. 지구촌이니, 세계화니 해서, 요즘에는 정보 교환이 쉽다고. 안방에 앉아서 전 세계에 일어나는 일들을 알 수 있다고. 그런 세상에 살면서도, 내가 보는 세계는 너무 한정적이었다. 내가 지금껏 본 세계가 과연 그 '하나'의 십분의 일이나 될 수 있을까. 내가 관심두지 않았던 여러 나라들의 이야기가 더, 더 많이 알고 싶어 진다.

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정부가 바그다드 시내에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기름을 계속 태우기 때문이야. 기름이 타면서 검은 구름을 내뿜으면 미군의 미사일이 공격 목표를 제대로 잡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기름을 태우기로 했대. 정부는 1991년에도 똑같은 짓을 했지. 다만 그때는 기름 대신 고물 타이어를 태웠지만. (66쪽, 2003년 3월 26일 수요일 일기. '검게 오염된 세상')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큰 차도를 지나오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데, 이런 공기 속에서 어떻게 숨을 쉬고 사는 걸까.

해가 지고나면 다음 날 아침까지는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돼. 집도 아빠도, 올라와 엄마도 마찬가지야. 모두 진이 빠져서 꼼짝 못하고 걱정만 해. 무얼 어떻게 해야 할 지 전혀 모르겠어. 어떤 때는 양초를 어디다 두었는지 잊어버려서 찾느라 한참 고생을 하고, 양초를 찾으면 이번에는 또 성냥을 찾느라 야단법석을 떨어야 해. 겨우 촛불을 켜고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면, 비로소 우리는 함께 모여 앉아서 미사일 폭우가 쏟아지기를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 그리고 미사일 폭우가 우리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면, 우리는 이 폭우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며 희미한 불빛 속에 앉아 있는 거야. (98쪽, 2003년 4월 2일 수요일 일기. '집 위로 날아가는 미사일')

모두가 지쳤어.
내가 늘 하는 질문 - 이 전쟁은 언제 끝이 날까?
그리고 내 마음 속으로 하는 걱정 -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135쪽, 2003년 4월 7일 월요일~4월 8일 화요일 일기. '이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바그다드는 함락됐을지 몰라도 삶은 계속되는 거야. (146쪽, 2003년 4월 11일 금요일 일기. '나쁜 상황을 잊어버리는 방법)

"내 아들은 용감했어요. 그런데 그 망할 놈의 폭탄이 떨어져 우리 아들을 데려갔어요!"
아이다 아줌마가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을 때 우리들도 모두 울어버리고 말았어. (173쪽, 2003년 4월 23일 수요일 일기. '친구의 죽음')

사람들은 '민주주의'나 '자유'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것 같아. 그저 자기네들 마음대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법을 어기고, 종교도 전통도 무시한 채 심지어 사람까지 죽일 수 있는 게 자유라고 착각하고 있어.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자유는 그런 게 아니야.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길은 서로를 도와주고 좋은 일을 하도록 서로 북돋아주는 거야. 지금 사람들은 '자유'라는 말의 뜻을 망쳐놓고 있어. (176쪽, 2003년 4월 24일 목요일~4월 25일 금요일 일기. '진정한 자유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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