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옛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누구게?"
누굴까, 잠깐 생각해보니 금방 답이 나왔다. 그 순간,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아, 수학 선생님."
내가 중학교 1학년 때던가, 과외를 받았던 선생님이셨다.
"오, 잘 아는군."
"그런데 이름이 어떻게 되더라, 아니, 성함이..."
한번 허탈하게 웃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건 메마른 이야기였다. 수학, 과외, 고등학교, 그리고 대입에 관한 이야기. 선생님은 많은 질문을 했다. 너무 현실을 찔러오면 나는 대답할 수 없다. 현실로 느껴지지는 않되 현실인 그것을 어떻게 감당해야 좋을지 몰라서, 그래서 대답할 수 없다. 하지만 무슨 말에든 대답을 해야하기에, "글쎄요", "모르겠어요"같은 말들로 어물쩡하니 넘겨버렸다. 그렇지, 현실은 그런가.
선생님은 지금 서울에서, 기억이 확실치는 않지만 아마도 강남이라는 것 같았는데, 아무튼 서울에서 학원 강사를 하고 계신다. "서울 아이들은,"하는 식의 말도 많이 하셨다. 그래서일까, 선생님의 목소리 톤이 낯설었다. 성함은 곧 기억해냈지만 얼굴은 여전히 흐릿했다. 전화란 잔인한 기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 뿐, 말도 낯설고 얼굴도 보이지 않는 그런 상대와 이야기를 해야 한다니. 그것도 그런 무시무시한 주제로. 내가 피하고 싶어하는 주제로. (안다, 마냥 피할 수는 없다. 알고는 있다.)
언제부터인가 눈에서 줄줄, 눈물이 흘렀다. 줄줄, 정말로 줄줄.
전화는 처음과 똑같은 목소리로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수화기너머의 내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정신없이, '이야기'가 끝났다.
내가 왜 운 건지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다. 그냥 사춘기라서, 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생각에, 중학교 1학년 때, 그 때가 너무 가까워보이는데도 벌써 중3으로, 고등학교가 어떠니 대학교가 저쩌니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나 싶지만, 누가 알겠는가.
아무튼 지금은 좀 우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