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자리
  -  노선생님의 말

맨 앞에 서진 못하였지만
맨 나중까지 남을 수는 있어요

남보다 뛰어난 논리를 갖추지도 못했고
몇 마디 말로 대중을 휘어잡는 능력 또한 없지만
한번 먹은 마음만은 버리지 않아요

함께 가는 길 뒷자리에 소리 없이 섞여 있지만
옳다고 선택한 길이면 끝까지 가려해요

꽃 지던 그 봄에 이 길에 발 디뎌
그 꽃 다시 살려내고 데려가던 바람이
어느새 앞머리 하얗게 표백해버렸는데

앞에 서서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이들이
참을성 없이 말을 갈아타고
옷 바꿔 입는 것 여러 번 보았지요

따라갈 수 없는 가장 가파른 목소리
내는 사람들 이젠 믿지 않아요

아직도 맨 앞에 설 수 있는 사람 못된다는 걸
잘 알지만 이 세월 속에
드릴 수 있는 말씀은 한가지예요
맨 나중까지 남을 수 있다는      
     /    (도종환)

 

   오늘 '사랑의 유효기간은 있다고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에 나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다시 한 번 곱씹어 생각해 본다.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는가? 물론 어느 누가 사랑이 어떻다고 말해도, 그건 나와 상관 없는 사람들의 생각의 파편일 뿐이다. 다수의 생각에 내 생각을 맞추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도종환선생님의 시 '뒷자리'를 읽는다. 내 사랑도, 내 삶도 저 선생님의 삶을 닮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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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im 2004-01-29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의 유효기간은 있다고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은 별 의미가 없는거 같지만, 도종환님의 시는 큰 울림을 주네요....
퍼갑니다.. ^^

2004-01-30 0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라딘의 나의서재가 나날이 진화하는군! 그 노력과 열정에 경탄을...

1. 몸이 약간 아프다.

   그렇다고 몸을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다. 평소처럼 특기적성을 빙자한 보충수업도 하고 있다. 아픈 이유는 월요일에 너무 과식을 한 탓이지 싶다. 촌놈답게 너무나 맛있는 '회' 앞에서 과욕을 부리다가 속이 탈을 일으켰다. 어제부터 계속 속이 거북하고, 머리에서는 미열이 난다. 그러나 완전히 탈이 난 것은 아닌 것 같은 게, 어제처럼 답답한 경우를 보면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할 정도는 된다.

2. 속상하다.

   몸이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평준화 논란을 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오죽하면 어제 집에 오자마자 혼자서 끙끙대며 평준화에 대한 내 생각을 조잡하게라도 썼을까? 그냥, 터무니 없는 논리로(물론 내가 보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모든 교육 문제의 책임을 평준화에 돌리는, 일부 이상한 신문을 보았으니 순간적으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그렇게라도 쓰고 보니 마음이 좀 가라앉았는지, 몸이 더 힘들었는지 곧바로 쓰러져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어머니께서 챙겨주시는 활명수(참고로, 나는 웬만큼 아파서는 약을 먹지 않는다. 지금까지 크게 아픈 적이 없어서 7-8년 정도는 어떤 약도 먹은 적이 없는 것 같다.)를 억지로 먹고 나서 잠에서 깨었다. 아무튼 평준화 논란을 일으키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정신분열증(이 분열증의 정체는 '사회귀족' 계층은 다른 계층과는 섞이고 싶지 않다는 강박증이 아닐까 싶다.)에 너무 답답해 할 이유도 없는데, 어제는 아팠기 때문에 더욱 예민했던 것 같다.

3. 집들이를 다녀오다.

   지난해 11월 30일에 결혼한 최현옥선생님 댁의 집들이를 다녀왔다. 댁이 창원이라 '모두아름다운아이들' 선생님들이랑 차를 타고 갔었다. 터프한 여자인 최현옥선생님이 차린 저녁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푸짐한 저녁이 나왔다. 참석한 선생님들 모두 감탄을 연발하였다. 모두들, 나와 김의주선생님이 어설프게 부른 축가 장면이 담긴 결혼식 비디오테이프를 보며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리고는 집들이의 하일라이트인 윷놀이를 했다. 때마침 집에 온 신랑이랑 어울려서 윷놀이를 하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윷놀이에 흥미를 더하기 위해서 우리가 개발한 몇 개의 규칙을 적용하면 긴장감과 짜릿한 흥분이 더욱 커진다. 고스톱은 서너명이 칠 수 밖에 없지만,(혹은 서너명씩 몇 개의 판으로 나눌 수도 있겠지만) 윷놀이는 그야말로 참가 인원에 제한이 없다. 두 시간을 집중해서 정신없이 놀고(1판당 천원의 판돈을 걸었는데, 본전이었다), 1시간은 모두 모여서 즐겁게 사는 이야기를 하고 방금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도 학교에 가야해서 약간 부담은 있지만, 그래도 행복하게 사는 최현옥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오니 기분이 무척 좋다. 사진으로만 보던 신랑을 실제로 만나 이야기를 해보니 참 따뜻한 사람인 것 같아서 좋은 사람을 만나고 온 즐거움도 있다.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아갔으면 한다.

 - 몸도 점점 나아지고, 즐거운 일도 있었으니, 이만 잠들어야겠다. 행복한 하루였다. 내일은 화요일에 있었던 우리반 아이들 이야기나 기록해 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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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또 평준화가 문제란다. 정작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학교 밖에서 들려온다. 학교라는 '체제'나 '제도'는 너무나 커다랗기에 바깥에서 봐야 제대로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정작 학교내의 목소리는 아직 '평준화'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는 것 같다.(오늘만 해도 고교 평준화에 대한 여러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신문에 나오는 기사는 거의 믿지 않는다. 따라서 거의 보지도 않는다.)

   처음에는 내 생각을 꼼꼼하게 적어볼 생각도 했으나, 지금은 여러가지 복잡한 사정이 있으므로 평준화에 대해 짧은 생각만 덧붙이기로 한다. 지금의 평준화는 교육의 기회균등에 기여하고 있다. 고등학교 교육이 거의 의무교육이 된 마당에 이러한 기회의 균등을 주는 것마저 포기한다면 심각한 교육불평등 현상이 초래될 것이다. 정말 문제는 최소한의 기회 균등마저 '정신분열증'으로 매도하는 소위 '먹물들'의 삐뚤어진 생각이다. 그런 사람들은 교육이 한 사회의 통합과 계층순환 기능을 수행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평준화야 말로 바로 이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모든 사람에게 숨쉴 수 있는 권리가 공평한 것처럼 의무교육은  모두에게 공평한 것이어야 한다.

   평준화가 학력저하의 원인은 아니다. 만약 평준화가 학력저하의 근거라면 구체적인 근거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막연히 '그럴 것이다'하는 추정말고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근거자료를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평준화 이후에 학력이 올랐다는 연구 결과들은 무수히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한 명의 천재가 수만명을 먹여 살리게 된다는 미래 사회를 위해서 평준화 제도를 바꿔야한다는 주장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일단 그 방향의 옳고 그름을 떠나-그럼, 그 한 명을 위해 나머지는 희생당해야 하는 것인가? 교육이 정말 그런 것인까?- 설령 그렇더라도 평준화 해제가 영재를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인가는 의문이다. 그런 사람은 아주 특수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지금도 영재교육원이나 영재학교를 통해 수만명을 먹여 살릴(?) 그런 천재들은 특수 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냥 '명문' 고등학교에 갈 정도의 실력으로 수만명을 먹여 살릴 천재가 될 수 있을까? 어림 없는 수작이다.

   평준화가 오히려 소득수준에 따른 학력 격차를 가져왔다는 최근의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부모의 소득격차와 교육격차가 가장 적은 국가에 속하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명백한 사실이다.(언론에 소개되지 않으니 모를 수 밖에!) 이번에 나온 언론기사는 특수한 대학의 특수한 학과를 통계를 너무 맹신하고, 언론이 이를 교묘하게 자기 입맛대로 악용한 흔적이 분명하다. 그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마도 전문직 고소득층의 문화자본과 학교에서 요구하는 교육내용의 상동관계를 비교해 보는 것이 더 흥미롭고 의미있는 일이지 싶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가정에서 받은 문화자본이 학교에서 발달시키기를 요구하는 문화자본과 비슷하기 때문에 교육 성취도가 더 높을 수 있다는 연구가 더 개연성이 높을 것 같다.

   평준화가 오히려 사교육비의 증가를 가져왔다는 주장도 무리한 주장이다. 평준화가 사교육비 증가를 불러왔다는 분명한 인과관계가 설명되지 않는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평준화 해제가 사교육비를 가라앉힐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평준화가 해제되면 입시 열풍은 중학교로 내려갈 것이고, 사교육시장은 그만큼 더 확대될 것이다. 그러면 고등학교 사교육시장은 줄어들 것인가? 전혀 아니다.

   지금 우리는 사교육시장의 팽창 원인을 잘못 진단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공교육의 부실이 사교육시장을 키운 부분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 가정을 해 보자. 공교육이 만족할 만한 수준에 올라서 자기 아이가 아무리 좋은 성적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상대평가에 따른 입시 제도라면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성적-성적은 곧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지표를 의미하고, 대학은 그 아이의 인생을 좌우할 정도로 강력한 꼬리표가 될 수 있으니까-을 얻기 위해 또다른 방법을 강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평준화 해제로 맞춤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교육 비용이 줄어들 것이라는 논리는 분명히 허구적이다. 평준화 해제는 사교육의 시장의 폭발적인 양적 확대와 사회적 서열화 조장으로 더 강한 사교육 욕구를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평준화 해제는 고등학교의 교육과정 정상화를 망친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가 서열화되면 대학 진학하는데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반영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모든 고등학교마다 수준이 천차만별인데, 그 학생의 생활기록부를 보고 고등학교 생활을 판달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평준화 해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음 단계로 내신성적 반영을 최소화하거나 없애자고 주장할 것이다.(이는 '가정'이지만, 과학고 학생들의 대량 자퇴 사태를 보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나마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지금처럼이라도 운영되고 있는 이유는 미미한 변별력이지만 내신 성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것마저 없어지면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이 어려울 것이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제대로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지 않고 오로지 대입만을 목표로 하는 학사 운영이 될 것이라고 본다.

   평준화 해제는 전형적인 기득권층의 논리이다. 평준화 해제의 목소리를 사회 기득권층에서 아주 강력하다. 그들은 '평준화가 사실은 서민들에게 더 불평등을 강요하는 제도'라고 입에 거품을 문다. 그러나 서민들은 그런 평준화가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교육에서도 효율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 비단 교육제도 뿐만 아니라 어떤 제도라도 효율성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에서 효율성을 강조하는 것은 지나치다. 그것도 국민 모두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인 기본교육(의무교육-사실 돈만 국가가 안 내줄 뿐이지 고등학교 교육도 의무교육과 뭐가 다른가?)에서 효율성을 강조하는 것은 사라져야 한다. 아무 곳에도 효율성이 만병통치약인 것은 아니다. 꼭 필요한 곳에 꼭 필요한 때가 있는 법이다.

- 하고 싶은 말은 너무나 많지만, 오늘은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여기까지만.[사실, 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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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언덕 2004-01-28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아프신가요? 저도 지난번 감기가 아직 다 낳지 않았는데... 조심하시구요.
중학생 딸을 둔 학부모로서 평준화에 대하여 생각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교육의 활황과 공교육의 부실 속에서 평준화 해체는 그 짐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아프신 것 빨리 낳으시구요. 여행계획 잘 세우시구요.

nrim 2004-01-28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많이 아프신가요?? 얼른 나으셔야할텐데;;;
제가 비평준화 고등학교를 나왔거든요.... 고등학교부터 재수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아 정말이지.. 그 시절은 함께한 친구들을 빼면 기억하기 싫은 것 투성이로군요;;;

느티나무 2004-01-29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에도 썼지만 많이 아픈 것은 아니구요. 그냥, 촌놈이 너무 맛난 걸 절제하지 못하고 그만...흑흑흑! 덕분에 기운 짱짱해졌습니다. 다음에는 맛난 걸 앞에 두고도 절제해야죠! 하하하. 재미난 경험이었어요.

2004-02-06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이, 조선 선조 10년(1577)

   사람의 얼굴은 추한 것을 곱게 바꿀 수 없으며, 힘은 약한 것을 세게 바꿀 수 없으며, 키는 작은 것을 크게 바꿀 수 없으니, 이것은 이미 정해진 분수이므로 고칠 수 없다. 그러나 오직 심지(心地)만은 어리석은 것을 지혜롭게, 어두운 것을 어질게 바꿀 수 있으니, 이것은 마음이란 것이 매우 심령스러워서 타고난 것에만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로 지혜로움보다 훌륭한 것이 없고 어짐보다 귀한 것이 없는데 무엇이 괴로워서 어질고 지혜롭게 되지 못하고 하늘이 내려 준 본성을 손상하랴. 사람이 이 뜻을 유지하고 굳게 물러서지 않으면 어진 이가 될 수 있다.

   무릇 사람들이 스스로 뜻을 세웠다고 하면서도 곧 노력하지 않고 머뭇거리며 기다리는 것은 명목상으로는 뜻을 세웠다 하나 실은 배움에 향하는 성의가 없기 때문이다. 진실로 내  뜻을 학문에 두었다면, 인(仁)함이 나에게 있으므로 하려고 하면 될  것인데, 왜 남에게 구하며 왜 뒷날로 미루랴. 뜻을 세움이 귀하다는 것은 곧 공부를 시작하여 생각이 물러서지 않는 까닭인데, 만일 뜻이 정성스럽지 못하여 하는 것 없이 날만 보낸다면 종신(終身)토록 어찌 성취되는 것이 있으랴.

 

   이 글은 요즘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참고서의 읽기 지문이다.(수업을 하다보면 가끔 이런 '재수'가 걸리기도 한다.) 옛날에도 친구가 건네 준 아주 얇은 책자로 '격몽요결'을 읽은 적은 있지만, 글자 하나하나의 의미가 이렇게 머리 속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나 보다. 지금 기억이 가물가물한다. 나는 학문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날마다 마음밭을 갈면 하늘이 내려준 본바탕인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마음에 들어서 기록해 둔다.

  한 움큼 손에 쥐었던 모래가 빠져나가듯, 스스륵, 연휴가 지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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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밝은 기분을 느끼고 싶은 분은 이 글을 읽지 않는 게-이 노래를 듣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설날 아침이다. 이른 아침은 아니더라도 일찍 일어나 차례를 드렸다. 부모님과 동생,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서 단촐하다 못해 썰렁한 차례였다(원래는 여동생도 있었으나 시집을 갔으니 시댁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증조부모님 제사에 밥과 국만 바꾸어서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를 모시고, 다시 밥과 국을 바꾸어서 작은아버지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동생과 나는 부모님께 세배를 드렸다. 그리고는 제사 음식과 과일로 아침을 겸해서 먹었다.

   아직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죄로, 아침 설거지는 내 몫이었다. 그리고는 부모님은 안방에, 동생은 밀린 잠을 보충한다며 제 방으로, 나는 커피 한 잔 마시고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아마도 여기에서 좀 놀다가 책을 읽거나 잠을 잘 것이다. 갑자기 지금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몹시 궁금해진다. 

   사실 우리집은 큰집이다. 게다가 15년 전,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큰집답게 집안은 늘 북적였다. 다른 가족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 때 일들이 생생하게 기억나고, 그 때를 생각하면 참 따뜻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께서는 7남매의 맏아들이시다. 10년 전에 작은아버지께서 돌아가셨기에 지금은 6남매만 남았다. 그 중에 세 분은 고모님, 두 분은 작은아버지.

   그러니까 설날인 오늘 아침에 고모님들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작은아버지는 오셔야 할 텐데, 오시지 않았다. 저간의 복잡한 사정이야 말하기 뭣하지만, 아버지 마음이 무척 착잡하실 것만 같다. 예전에는 형제들끼리 친해서 계도 붓고, 여름 휴가도 같이 다녀오곤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만 같다.

   고모님들의 삶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다. 큰고모님과 둘째 고모님은 남편과 사별하셨다. 큰고모님은 큰아들까지 사고로 잃었다. 지금은 당신께서도 몸이 말씀이 아니시다. 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시고, 최근에도 삶과 죽음의 고비를 넘으신 적이 있었다. 둘째 고모님은 밀양에서 시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지으신다. 그나마 사촌들이 크게 속썩이지 않고, 엄마 생각을 많이 해 주는 게 다행이긴 하다. 세째 고모님의 삶도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처음에는 정말 엉망이었다. 고모부만 믿고 없는 집에 시집가서 정말로 고생을 많이 했다. 게다가 큰애가 태어나서부터 아프다가 7년만에 죽고 말았다. 지금에서야 밥은 먹고 살 정도라 아버지 형제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끈 역할을 하고 있으니 무척 고마울 따름이다.

   새해 첫날부터 꿀꿀한 이야기 타령이다. 그러나 '반갑게 맞아 줄 손님 하나 없는데, 까치는 왜 왔는가? 얻어 먹을 것 하나 없는 이곳에 왜 왔느냐?' 고 묻던 시인의 목소리가 이 설날 아침 풍경의 진실한 목소리가 아닌가? 장사익의 '허허바다'를 듣는다.

아버지는 별 말씀이 없으셨다. -허허로우신가?

 

장사익 '허허바다' 노래 듣기

 

              허허바다 정호승 시, 장사익 노래


                      찾아가 보니 찾아온 곳 없네

                      돌아와 보니 돌아온 곳 없네

                      다시 떠나가 보니 떠나온 곳 없네

                      살아도 산 것이 없고

                      죽어도 죽은 것이 없네

                      해미가 깔린 새벽녘

                      태풍이 지나간 허허바다에

                      겨자씨 한 알 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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