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밝은 기분을 느끼고 싶은 분은 이 글을 읽지 않는 게-이 노래를 듣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설날 아침이다. 이른 아침은 아니더라도 일찍 일어나 차례를 드렸다. 부모님과 동생,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서 단촐하다 못해 썰렁한 차례였다(원래는 여동생도 있었으나 시집을 갔으니 시댁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증조부모님 제사에 밥과 국만 바꾸어서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를 모시고, 다시 밥과 국을 바꾸어서 작은아버지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동생과 나는 부모님께 세배를 드렸다. 그리고는 제사 음식과 과일로 아침을 겸해서 먹었다.

   아직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죄로, 아침 설거지는 내 몫이었다. 그리고는 부모님은 안방에, 동생은 밀린 잠을 보충한다며 제 방으로, 나는 커피 한 잔 마시고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아마도 여기에서 좀 놀다가 책을 읽거나 잠을 잘 것이다. 갑자기 지금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몹시 궁금해진다. 

   사실 우리집은 큰집이다. 게다가 15년 전,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큰집답게 집안은 늘 북적였다. 다른 가족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 때 일들이 생생하게 기억나고, 그 때를 생각하면 참 따뜻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께서는 7남매의 맏아들이시다. 10년 전에 작은아버지께서 돌아가셨기에 지금은 6남매만 남았다. 그 중에 세 분은 고모님, 두 분은 작은아버지.

   그러니까 설날인 오늘 아침에 고모님들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작은아버지는 오셔야 할 텐데, 오시지 않았다. 저간의 복잡한 사정이야 말하기 뭣하지만, 아버지 마음이 무척 착잡하실 것만 같다. 예전에는 형제들끼리 친해서 계도 붓고, 여름 휴가도 같이 다녀오곤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만 같다.

   고모님들의 삶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다. 큰고모님과 둘째 고모님은 남편과 사별하셨다. 큰고모님은 큰아들까지 사고로 잃었다. 지금은 당신께서도 몸이 말씀이 아니시다. 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시고, 최근에도 삶과 죽음의 고비를 넘으신 적이 있었다. 둘째 고모님은 밀양에서 시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지으신다. 그나마 사촌들이 크게 속썩이지 않고, 엄마 생각을 많이 해 주는 게 다행이긴 하다. 세째 고모님의 삶도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처음에는 정말 엉망이었다. 고모부만 믿고 없는 집에 시집가서 정말로 고생을 많이 했다. 게다가 큰애가 태어나서부터 아프다가 7년만에 죽고 말았다. 지금에서야 밥은 먹고 살 정도라 아버지 형제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끈 역할을 하고 있으니 무척 고마울 따름이다.

   새해 첫날부터 꿀꿀한 이야기 타령이다. 그러나 '반갑게 맞아 줄 손님 하나 없는데, 까치는 왜 왔는가? 얻어 먹을 것 하나 없는 이곳에 왜 왔느냐?' 고 묻던 시인의 목소리가 이 설날 아침 풍경의 진실한 목소리가 아닌가? 장사익의 '허허바다'를 듣는다.

아버지는 별 말씀이 없으셨다. -허허로우신가?

 

장사익 '허허바다' 노래 듣기

 

              허허바다 정호승 시, 장사익 노래


                      찾아가 보니 찾아온 곳 없네

                      돌아와 보니 돌아온 곳 없네

                      다시 떠나가 보니 떠나온 곳 없네

                      살아도 산 것이 없고

                      죽어도 죽은 것이 없네

                      해미가 깔린 새벽녘

                      태풍이 지나간 허허바다에

                      겨자씨 한 알 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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