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 조선 선조 10년(1577)
사람의 얼굴은 추한 것을 곱게 바꿀 수 없으며, 힘은 약한 것을 세게 바꿀 수 없으며, 키는 작은 것을 크게 바꿀 수 없으니, 이것은 이미 정해진 분수이므로 고칠 수 없다. 그러나 오직 심지(心地)만은 어리석은 것을 지혜롭게, 어두운 것을 어질게 바꿀 수 있으니, 이것은 마음이란 것이 매우 심령스러워서 타고난 것에만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로 지혜로움보다 훌륭한 것이 없고 어짐보다 귀한 것이 없는데 무엇이 괴로워서 어질고 지혜롭게 되지 못하고 하늘이 내려 준 본성을 손상하랴. 사람이 이 뜻을 유지하고 굳게 물러서지 않으면 어진 이가 될 수 있다.
무릇 사람들이 스스로 뜻을 세웠다고 하면서도 곧 노력하지 않고 머뭇거리며 기다리는 것은 명목상으로는 뜻을 세웠다 하나 실은 배움에 향하는 성의가 없기 때문이다. 진실로 내 뜻을 학문에 두었다면, 인(仁)함이 나에게 있으므로 하려고 하면 될 것인데, 왜 남에게 구하며 왜 뒷날로 미루랴. 뜻을 세움이 귀하다는 것은 곧 공부를 시작하여 생각이 물러서지 않는 까닭인데, 만일 뜻이 정성스럽지 못하여 하는 것 없이 날만 보낸다면 종신(終身)토록 어찌 성취되는 것이 있으랴.
이 글은 요즘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참고서의 읽기 지문이다.(수업을 하다보면 가끔 이런 '재수'가 걸리기도 한다.) 옛날에도 친구가 건네 준 아주 얇은 책자로 '격몽요결'을 읽은 적은 있지만, 글자 하나하나의 의미가 이렇게 머리 속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나 보다. 지금 기억이 가물가물한다. 나는 학문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날마다 마음밭을 갈면 하늘이 내려준 본바탕인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마음에 들어서 기록해 둔다.
한 움큼 손에 쥐었던 모래가 빠져나가듯, 스스륵, 연휴가 지나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