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 하나

하늘과 땅 사이에
바람 한점 없고 답답하여라
숨이 막히고 가슴이 미어지던 날
친구와 나 제방을 걸으며
돌멩이 하나 되자고 했다
강물 위에 파문 하나 자그많게 내고
이내 가라앉고 말
그런 돌멩이 하나


날 저물어 캄캄한 밤
친구와 나 밤길을 걸으며
불씨 하나 되자고 했다
풀밭에서 개똥벌레즘으로나 깜박이다가
새날이 오면 금세 사라지고 말
그런 불씨 하나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돌에 실릴 역사의 무게 그 얼마일 거냐고
그대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불이 밀어낼 어둠의 영역 그 얼마일 거냐고
죽음 하나 같이할 벗 하나 있음에
나 그것으로 자랑스러웠다              (김남주)

 

   1994년 2월 13일, 시인 김남주가 죽은 날이다. 지금에야 고백하지만 그 때는 시인이자 전사인 김남주를 잘 몰랐다고 해야할 것 같다. 대학 동기가 생일 선물로 준 '솔직히 말하자'를 읽었지만, 내게는 그 당시 흔하디 흔한 전투적인 시인중의 한 명일 뿐이었다. 아마 1994년 오늘도 남다른 허전함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부대에서 휴가 나왔다가 들어가는 길에 서점에서 우연히 눈길이 닿았던 시집이 시인의 유고집인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이었다. 소심했던 나는 김남주라는 이름이 박힌 이 시집을 가방에 넣고 복귀하면서 약간의 마음졸임을 겪었는지도 모르겠다. 부대에서 마음이 답답한 틈틈이 그 시집을 읽었다. 다시 휴가 나와서 사들고 들어간 시집이 '조국은 하나다'인 걸로 기억한다. 내 책장 한 쪽 귀퉁이,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시집 속표지에는 아직도 '검열필'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다.

   그랬다. 나는 김남주의 시를 너무 늦게 알게 되었다. 아니, 아직도 잘 모른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가끔씩 시인의 서늘하게 가슴을 찍어누르는 말의 화살은 가슴에 콱 박혀서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하는 내 자신을 뜨끔하게 만든다.

  


   안치환의 '돌멩이 하나'는 시인 김남주를 위한 안치환의 헌정 앨범인 6.5집에서 자주 들었다. 앨범의 모든 곡이 김남주 시인의 시에다 곡을 붙인 노래들이다. 이 노래와 앨범은 참 자주 들었었다. 학교에서도, 다른 선생님들께도, 아이들에게도... 우리 동기들은 드라이브를 다녀오면서도 차안에 안치환 6.5집을 틀어놓고 다녀서 우리끼리 좋아서 하는 말로 '뭐, 이래 칙칙하노?''우린 역시 안 돼, 놀러가면서도 이런 노래를 듣다니!' 는 투정아닌 투정을 하곤 했다.

   앨범에 수록된 노래는 모두 좋아하는 노래이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돌멩이 하나'라는 노래가 참 마음에 든다. 전에 학교에서 마음이 심란한 날은 이 노래를 들으면서 마음을 다스리고는 했다. 그러면서 내 삶도 돌멩이 하나에 불과하지만, 돌멩이도 존재의 이유는 있을 터! 열심히,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고 애써야겠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던 기억이 새롭다.

   그렇지 않아도, 이 시와 노래를 올릴까 말까 했는데, nrim님의 글을 보고 나도 기억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끄적거려 본다.

 

시인이 죽은 지 10년이 지난, 2004년 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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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im 2004-02-14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래가 안 나오네요... 들어보고 싶은데;;

느티나무 2004-02-14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이 버튼을 누르셔도 안 나온단 말씀입니까? 헐~! 저는 잘 들리는데요? ^^;

nrim 2004-02-14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런가요.. 저는 플레이 버튼이 활성화가 안 되는군요. 집 컴퓨터가 이상할수도..내일 회사가서 다시 시도해봐야겠어요.!

비발~* 2004-02-14 0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한 때 이 시인의 시 하나를 보듬고 살았던 때가 있었던 걸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nrim 2004-02-14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사에서는 노래가 제대로 나오네요.. 이런.. 아무래도 집 컴터를 확 밀어버려야 할듯...
무척 바쁜 주말이 되시겠네요. 즐겁게 즐겁게 보람찬 주말 되시길. ^^
 

   원숭이 수건이 왔다. ㅋㅋ 내심 기다리고 있었는데... 사실 누구 선물로 줄 생각이었으니까. 그리고 오늘 개학을 했다. 모든 게 다 그대로다. 아이들도, 학교도, 모두! 모든 게 그대로인 것에 안심이 된다. 모든 게 그대로인 게 불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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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im 2004-02-12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좀 전에 받았답니다. 덕분에 무지 기분 좋아졌어요.

▶◀소굼 2004-02-12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 맞은편 학교는 오늘 졸업식을 하더군요^^예전 졸업식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더이다.

2004-02-12 2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2-12 2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랑하게 되면

나 그대가 보고파서
오늘도 이렇게 잠 못 드는데
창가에 머무는 부드런 바람소리
그대가 보내준 노랠까
*보고파서 보고파서
저 하늘 넘어 그댈 부르면
내 작은 어깨에 하얀 날개를 달고
그대 곁으로 날아오르네

훨훨 훨훨 날아가자
내 사랑이 숨쉬는 곳으로
훨~훨 훨훨 이 밤을 날아서
그댈 품에 안고 편히 쉬고파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사람아* (안치환)

 

 

   나는 내가 하고 싶으면 아이들이 부탁하지 않아도 노래를 부른다. 벌써 2번이나 수업에 들어가자마자 '내가 노래 한 곡 불러도 될까?'하고 물어보고 좋다면 노래를 부른 반도 있다. 이번 겨울 방학을 시작하기 전에 어느 반 아이들이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는데,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안 불렀다. 아마도 가사를 끝까지 아는 노래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 안치환의 '사랑하게 되면'을 듣고 있으니, 문득 이 노래를 불러 보고 싶다. 과연 교실에서 이 노래를 부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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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12 1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개학이다.

   항상 겨울 방학이 끝나기 전날 밤은 싱숭생숭해진다. 내일이면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반가운 얼굴을 만나면 좋기도 할테고, 새롭게 시작하려니 마음가짐도 새로울 텐데 항상 착잡하고 긴장된 마음이 앞선다. 내일, 첫날부터 아이들에게 큰소리라도 치게 되면 어쩌지?하는 불안감도 있고, 모든 것이 덜 정돈된 상태일 것인데 모든 것을 일상적으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도 무척 어려운 일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은 오늘밤 무슨 생각을 하며 잠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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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im 2004-02-12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생때는 개학해서 좋았던 적이 한번도 없었던거 같네요...^^;;
초등학교 교사를 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개학을 해서 아이들을 보니 너무너무 좋다고 하더군요. 선생님들 마음은 그런건가 봅니다...

느티나무 2004-02-12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오늘 개학하고 이제 곧 마칠 시간입니다. 휴!~ 오늘 하루 힘들었어요. 근데, 아이들에게 잔소리는 별로 안 했답니다. 역시 마음의 여유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 마음이 좀 오래가야 할 텐데요.오늘은 많이 피곤하니 집에 가서 쉬어야 하는데, 공부방에 가는 날이라...아마도 귀가가 늦겠지요? 그냥 저 혼자 하는 소리였습니다. 우리반에는 별다른 사고 없이 다 왔네요. ^^
 

토마스 고든 지음, 김홍옥 옮김, 양철북, 2003

   몇 살을 먹었든 간에 학생은 모두 인간이며, 교사가 자신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좋은 관계일 수도 있고 좋지 않은 관계일 수도 있는 인간 관계를 교사들과 맺는 존재들이라는 것이 우리의 신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인종, 출신지, 지능 지수, 재능, 사회경제적 배경 등 학생들 사이의 차이도 지나치게 부각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학생들을 나누고 테스트하고 평가하고 꼬리표를 달고 전형화하는 것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해롭기까지 하다. 교사들은 의사가 환자를 알레르기 환자, 심장 환자, 궤양 환자, 과민 결장 환자 등으로 나누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학생을 취급한다. 즉, 학생을 사람이 아니라 어떤 익명의 사례로 생각하는 것이다. 열등생, 재능이 있는 아이, 학습 장애아, 문화적으로 소외된 아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 지능이 높은 아이, 지능이 낮은 아이, 과잉 활동아, 정서 불안아, 잠재력이 있는 아이, 없는 아이, 지진아 등등. 이런 식으로 학생을 진단하고 분류하는 것이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는 연구를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분류는 학생들의 자신감을 손상시킬 뿐 아니라 교사가 편견을 가지고 학생을 대하게 만들어 교육의 질도 떨어 뜨린다는 것이 연구 조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학생들 사이에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은 모두 사람이다. 사람의 특징과 감정과 반응을 가지는 것이다. 아이는 누구나 무언가를 진짜로 배울 때에는 집중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지루해 한다. 또 무언가를 잘 못했거나 실패했을 때 야단을 맞으면 낙심한다. 아이들은 모두 교사의 권위 행사에 대처하기 위해 대응 기제를 발달시킨다. 아이는 모두 의존적인 경향이 있지만 한편으론 자립하기 위해 애를 쓰기도 한다. 또 화가 나서 앙갚음을 하고 싶은 마음을 갖기도 한다.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에는 자신감을 얻지만 성취한 것이 충분하지 않다는 평을 들었을 때에는 자신감을 잃는다. 아이들은 누구나 자신의 욕구를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고 한다.

 

   읽어보면 너무나 평범한 사실 아닌가? 그러나 함정은 여기에 있다. 너무나 평범하기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이 사실이야 말로 내가 늘 외우고, 몸에 익혀야 할 법칙이 아닌가? 모르고 못 하는 건 용서가 되어도 알면서도 안 하는 건...

   이제 곧 새학기다. 교사로써 여섯 번째 해를 맞는다. 아직은 올곧게 지켜가야 할 그 무엇이 나에게는 더 많다고 생각한다. 뚜벅뚜벅, 묵묵하게 내가 가야할 길을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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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11 1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느티나무 2004-02-11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워요, 선생님! 개학하셨죠? 학교는 어디로 옮기시게 되었는지요? 댁에도 별다른 일은 없으시죠? 제 서재에 놀러오셨군요. ㅋㅋ 저는 그냥 이렇게 살고 있답니다. 내일이 개학인데, 학생들 볼 생각을 하면 여러가지 생각이 엇갈리는군요. 앞으로도 생각나시면 가끔 놀러오셔서 말씀 남겨 주세요 ^^ 그럼! (선생님께선 비공개로 하셔서 다른 사람에게 글이 안 보이니까, 제 혼자 코멘트를 남기는 거겠네요. 조금 웃기겠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