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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과 탐정들 ㅣ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26
에리히 캐스트너 글, 발터 트리어 그림, 장영은 옮김 / 시공주니어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에밀은 레알슐레 학생으로 나온다. 실업학교 정도로 번역이 되는데, 아마 우리로 치면 실업중학교 정도 되겠다. 독일은 직업과 학문의 길을 일찍 갈라놓는 전통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지방출신 학생인데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없는 에밀은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어머니는 미용사다. 어렵게 마련한 돈을 모아서 에밀에게 120마르크라는 큰 돈을 맡겨 베를린에 사시는 외할머니에게 전해드리라고 한다. 에밀은 기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 그 돈을 도둑맞고 만다. 베를린에 도착한 순간부터 에밀이 도둑을 잡아서 자기 돈을 찾는 순간까지의 이야기가 손에 땀을 쥐듯이 전개된다.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추리소설에 버금가는 속도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베를린에 사는 에밀의 또래 소년들은 에밀의 사정을 알아차리고 적극 도와준다.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게 소년들은 조직적으로 에밀을 돕는다. 여기에 어른들은 별 역할이 없다. 모든 일은 소년들의 힘으로 이루어진다.
에밀이라는 소년의 개성이 선명하고, 인품도 훌륭하게 나온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도 애틋하다. 개구쟁이지만 어머니의 희생을 생각해서 스스로 선택해서 모범생이 되는 에밀은 여러모로 아이들이 본받을 만한 요소가 많다. 에밀의 사촌으로 나오는 여자아이 포니 휘트헨과 베를린의 소년들인 교수(별명), 구스타브, 딘스탁 같은 등장인물들도 생생한 면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모범적이다. 작가인 케스트너는 어쩌면 이렇게 어린이들의 심리를 잘 알아채고 있는지. 어린시절의 심정을 잊지 않고 있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어린이들과 늘 이야기하고, 놀고, 교제하는 생활을 유지한 것은 아닌지. 케스트너라는 작가의 개성이 궁금해진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방정환의 <칠칠단의 비밀>이라는 책을 자꾸 떠올리게 되었다. 비슷한 요소가 참 많았다. 소년들이 떼로 나와서 도둑을 잡는다는 설정도 방정환의 이야기에 나온다. 혹시 방정환의 동화에 케스트너의 작품이 영향을 준 것은 아닐까 싶은 의문을 가졌다. 책의 속표지를 보니 이 책은 1929년에 초판이 나온 것으로 되어 있다. 1929년 대공황이 닥치기 전에 나온 책일까? 그 이후에 나왔다면 독일이 얼마나 사정이 어려워졌는지 짐작이 갈 텐데. 1933년에 나찌당이 집권할 정도로 1929년의 대공황은 독일 민주주의에 심대한 타격을 가했던 것인데. 어떻든, 방정환의 작품과 비교해보면 그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찌보면 이야기 솜씨는 방정환이 더 나은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워낙에 방정환이 이야기꾼이다보니 책을 손에서 내려놓기 싫을 정도로 긴박한 흐름을 가지고 있었거든. <칠칠단의 비밀>을 한번 더 읽어보아야겠다. 참고로, 방정환의 <동생을 찾아서>는 1925년, <칠칠단의 비밀>은 1926년에 나온 것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