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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학교에 간다
오토다케 히로타다 지음, 전경빈 옮김 / 창해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오체불만족으로 유명한 오토다케.  그의 신간이다.  

이 책은 읽기 전부터 감동일 수 밖에 없다.  

팔과 다리가 없는 그가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단다.  

그는 틀림없이 남들보다 불리한 신체특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에겐 팔과 다리를 대신할 강인한 정신력이 있다.  

예전에 나는 TV에서 그에 관한 다큐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물론 그도 그였지만 그를 대하는 가족과 학교, 

친구들의 따뜻한 시선에 큰 감명을 받았다.

   

이 책....  '장애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희망적 수기' 로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며 사지가 멀쩡한데 감사하며 

주어진 각자의 삶을 더 열심히 살아내게 하는 책이리라.  

그런데 이 책의 주된 골자는 오토다케가 말하는 일본의 학교교육이다.  

물론 오토다케라는 이름만으로도 우리에겐 희망이고 

한 편의 성실한 수기임을 한 시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 오토다케는 사뭇 진지하고 예리한 시각으로 일본의 학교에 대해 말한다.  

이 글을 읽으며 그는 참 진취적이기도 하지만 소신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는 '교육의 기회는 균등하고 평등하게 주어져야 하나 교육의 결과까지 반드시 평등 할 필요는 없다.' 라고 말한다.  

등수 없는 달리기를 위해 모두가 나란히 손을 잡고 결승지점으로 달리는 운동회의 풍경이나 

성적을 두 가지 단위로만 평가를 하여 학생들간의 우열의 폭을 좁히는 것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한다. 

그것은 향후 이와 다른 성적 평가에 대한 충격을 무방비로 겪게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사회의 일원이 되었을 때 실패나 실수를 인정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나 역시 그와 같은 생각이다. 

 

오늘날 우리들의 어린 학생들은 실수와 실패를 모르고 자라간다.  아니 용납하지 않으려 한다. 

이렇게 실수와 실패를 모르고 자라는 아이들은 작은 일에도 큰 상처를 받고 결국 '하잘 것 없는 인생' 이라고 절망하며

고층 아파트에서 몸을 던지는 것이다.  이는 그들에게 실패와 좌절을 가르치지 않으려는 부모에게도 적잖은 책임이 있다 하겠다. 

실수와 실패도 단련이 필요한 것이고 '오호라~ 하면 되는구나' 하는 것을 일깨워주면 되는 것이지

부정적 감정을 일부러 경험하지 않도록 보호막을 쳐 줄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이 책은 일본의 학교교육에 대해 구체적으로 들춰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이나 한국이나 역시 입시문제등 학교가 안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는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그런데 동일한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와 그들의 대처방안은 너무나도 틀리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학교를 잠시 생각해보자.  

그곳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에 대해 우리는 어떤 방안이 준비되어 있는가? 

나로서는 '우리나라 교육에 있어 이런 점은 내로라 할만하지 않나요?' 하며 그에 대응할 만한 뾰족한 대답을 찾지 못하겠다. 

그저 '요즘 아이들이란' 이라는 말로 일관하며 속수무책하는 꼴이다.  너무 지나친 폄하일까? 

 

그렇다면 한 예를 들어보자. 

등교를 거부(오토다케는 부등교라는 말을 사용하잖다) 하는 학생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학교에 품에 다시 안을 것인가? 

첫째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담임교사의 전화나 학부모 면담일 것이다. 

둘째 그래도 뾰족한 수가 없다면 정학 혹은 퇴학으로 종결지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에는 '쇠뜨기 교실' 혹은 '슈레' 라는 프로그램이 있단다. 

이 제도는 학교를 매일 다닐지 하루 걸러 다닐지 등을 본인의 의사에 따라 정하여 등교할 수 있단다. 

그렇다고 무작정 학생들에게 교육의 선택권을 주는 것이 아니라 1주일에 1번 미팅을 통하여 상담을 하고

정상적인 학교 등교가 가능하도록 꾸준히 학생을 조력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식으로 학교교육 시스템을 혼란하게 하는 것이 효율적일지 올바른 제도인지 의문이 든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따져보기에 앞서 우리는 이런 문제를 고심하며

'보다 나아지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노력하고 있냐고 자문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저자가 장애인인만큼 그들의 시각과 입장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옮긴이 전경빈씨의 입을 빌자면 한국은 2005년 5월의 법개정으로 전체 교원의 2% 이상 장애인을 고용해야 한단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2년 내지 4년.  합이 14년 혹은 16년이다. 

그러나 나는 한 차례도 장애인 교사를 본 적이 없다.  교정에서건, 강연회에서건. 

물론 장애인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며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끔 하는 기반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도 하거니와

우리는 그들에게 '불완전하다' 는 시각으로 비장애인과의 생활 영역에 들여놓지 않는 것은 아닐까? 

오히려 어느 날 갑자기 불의의 사고로 오토다케와 같이 중증장애인이 된 경우는 

속된 말로 멀쩡히 다니던 학교(뿐 아니라 직장을)를 그만둬야 할 판이다.  이건 결코 억측이 아니리라.

 

이 책은 단순히 오토다케의 눈을 통해 학교교육을 엿보는데 만족하게끔 하지 않는다. 

우리네 모습은 어떠한가를 돌아보게 하고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되게끔 한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나 그리고 여러분 우리 모두의 숙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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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네스터를 죽이고 싶어한다
카르멘 포사다스 지음, 권도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처음 받았을 때 맛깔스런 형광빛의 표지가

참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모두가 네스터를 죽이고 싶어한다>는

그 제목만으로도 큰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 책이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완벽한 추리와

셰익스피어의 매혹적인 비극이 만났다! 는 띠지의 글들에

또 한 번 설레이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영하 30도의 냉동실에 한 '네스터 채핀치' 라 불리우는

한 요리사가 갇혀 얼어죽게 된다.

그 죽음을 발단으로 그가 죽기까지의 이야기가 진행이

되는데 소설은 아무런 복선도 던져주지 않는다.

추리소설은 독자가 탐정이 되는 듯할 때

비로소 활기를 띄게 되는 것인데 이 소설은 좀 달랐다.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사망사건이라면 살인사건이 대부분의 경우일 것이다.

그 피해자를 둘러싼 탐정의 수사.  용의자들의 알리바이. 

이 모든 것이 절묘히 숨가쁘게 돌아가는 것이 적어도 내가 본 기존의 추리소설이었다.

학창시절 애거서 크리스티나 에드가 알렌 포우의 추리소설을 여럿 읽었던 기억이 있다.

많은 용의자들 중에서 진짜 살인범을 찾아내는 것은 묘한 재미가 있었다.

게다가 많이 적중한다는 사실은 '내 두뇌가 명석하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까지 불러일으키곤 했다.

 

그런데 이 추리소설은 다르다.  전혀 다르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탐정도 없으며 '네스터를 의도적으로 죽이려한 용의자도 가해자도 없다'

그러나 네스터는 영하 30도의 냉동실에 갇혀 죽는다.  그렇기에 이것은 정말 처절한 비극이다.

한 선량하고 재능있는 요리사는 사람들의 비밀을 많이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죽게 된다.

그러나 그에게 책잡힐 짓을 한 자들은 정작 그를 죽이지 않았다.

이 사건은 우연에서 시작해 우연해서 죽게 되는 아주 기막힌 결과를 가져온다.

 

모든 추리소설은 숨가쁘게 진행이 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이게 추리소설인가 싶은 정도로 더디 진행되고

인물 인물들의 내면 깊이까지 묘사하는데 공을 들인다.

그러다보니 조금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었는데

이야기가 끝을 치닫게 될 수록 추리소설 본연의 모습을 지니게 되는 듯 싶었다.

 

스페인소설은 처음인 듯 하다.

이국적인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책이기도 했으며

'추리소설은 반드시 이래야만 한다' 는 공식을 속시원히 깨버린 새로운 발상의 추리소설이다.

 

당신들은 어떠할 것인가?

치욕스러운 당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그 자의 입을 막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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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발견 - 5,000년의 사랑 이야기
이수현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2007년 이탈리아의 만토바 근처 발다로 유적지에서 

   서로 마주보고 굳어버린 남녀의 화석이 발견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책은 그 화석에서 영감(?)을 얻은 우화소설이다.

  

   이야기의 첫부분을 읽으며 영화 '단적비연수' 가 떠올랐

   다.  바위사람, 물가사람이라 불리는 두 부족. 

   그 부족의 생존과 영역차지를 위한 대립.

   결론은 끝내 사랑의 결실을 이루게 되는 두 종족의 이야기

   다.  전체적인 분위기도 비슷했다.

  

   몇 장 넘기지 않아 '정말 재밌겠는데?' 하고 읽기 시작했다.

   두껍지 않은 탓에 단숨에 읽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매력적인 스토리의 재미는 반감되고 

 

마치 인간관계에 관련된 서적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게 아쉽다.  이야기의 첫느낌을 끝까지 잘 지켰다면 아주 좋은 소설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싶다.

 

그리고 chapter 사이사이의 분홍빛의 종이에 씌여진 글들은

이야기와는 상관없는 사랑에 대한 한담거리들이 주된 내용이었는데

글쎄, 자칫 여성우월주의(?) 적인 발상의 글들이 많았던 것 같다.

뭐 여성우월주의하고까지 명명하긴 뭣하지만

남자들의 정서적 수준을 폄하하는 글들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장담컨대, 필시 이 글들에 발끈하는 남자들이 있으리라.

뭐 그것도 그다지 과잉반응이라 볼 수는 없을 듯 하다.

 

사랑에 대한 모호하고 주관적인 영역을 무 자르듯 제법 단호하게 쓴데 있어서는

'이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들었다.

내가 생각기에는 그 이야기들 대부분이 사실과는 차이가 있고

일반화 시킬 수 없는 것들이었다.

오히려 이 분홍빛 종이의 글들 때문에 이 책이 우스워진 것은 아닐까 싶다.

작가의 편협한 생각들을 단정짓듯 해버린 것은 실수인 듯 하다.

이 때문에 선물용 책다운 느낌마져 상실해 버렸다.

 

그리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유적지에서 발굴된 화석을

모티브로 쓴 이야기라고 보기에는 작가의 상상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두 연인의 절절한 사랑이야기나 화석이 되기까지의 사연들을 더 담아내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첫느낌은 참 좋았는데 여러모로 아쉬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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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현대시 100년, 사상 최고의 시인
김소월 지음, 백시나 엮음 / 천케이(구 티알씨)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시가 아닌 시집을 읽은 것은 얼마만의 일일까? 

그러고 보니 시는 너무 등한시 하고 있는 것 같다.

 

김소월 시집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나 '초혼' '엄마야 누나야' 는

글자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알 정도로 유명한 시다.

물론 나도 김소월의 시는 그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시집은 그의 숨은 시를 더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참 좋았던 것 같다.

 

이 시집의 표지를 처음 보았을 때 참 의아했다.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들었냐면 시인이 아닌 엮은이의 사진을

표지로 장식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사실, 여지껏 그런 책은 보지 못했고 이 책이 처음이다.

이 시집을 다 읽은 후에야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집은 역시 김소월의 시집이다.  그런데 시집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보아야 할게다.

맨 마지막 6 chapter '시인 김소월' 이야말로 이 책의 핵심이다.

이 책이 다시 엮은이를 통해 출판하게 된 이유인 셈이다.

왜 그런가 하면 그간 알려진 김소월의 사진(더 정확히 말하면 초상화)은

진위논란이 항상 있어왔는데 이제서야 비로소 김소월의 생전 얼굴사진이 공개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서 그것을 처음으로 공개하는 것이기에 시집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하겠다.

 

그 뿐 아니라 김소월의 사인은 자살이었다는 사실도 밝혀냈단다.

책은 김소월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추적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별로 기술된 바가 없어서

이리 쉽게(?) 밝혀질 사실이 그간 물음표를 띄우고 있었다는 것이 조금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김소월의 자살에 관해서는 북한에 살고있는 가족의 증언에 의해서란다.

그렇다면 비교적 쉽게 알 수 있었을 듯 한데 왜 지금까지 몰라왔던 것일까?

어쩌면 그의 시만 줄줄이 읊었을 뿐이지

정작 시인에 대해서 알고자 열심을 내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짐작이다. 

 

짐작과는 반대로 그에 관해 열띤 연구가 있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 낸것이라면

이 책은 문학사적으로도 아주 가치로운 책임이 분명할 것 같다.

 

김소월의 글을 보자면 평안도 사투리가 멋스럽게 녹아있다.

이런 걸 보면 지방마다의 특색을 담은 방언이나 사투리를 무시못 할 일이다.

뭐 이런 얘기를 하니 말인데 나는 '표준어' 에 대한 정의가 항상 미심쩍게 여겨진다.

'...(생략)...우리나라에서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

물론 표준어 사용을 반대한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의라고 내세운 것이

자칭 교양 있다는 사람들의 편협한 사고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는 얘기다.

 

그건 그렇고, 김소월의 시는 역시나 잘 알려진 시가 구성지게 느껴졌다.

그리고 김소월의 시론 '시혼'은 시에 관한 그의 관점을 잘 드러낸 글이라 참 재미나게 읽었다.

시인의 산문을 읽는다는 것도 참 흥미로운 일인데 시혼을 서술한 그의 문체는 참 단아하다.

이런 느낌은 비단 시혼 뿐만 아니라 그의 시 전반에 배어있는 것 같은데 

마치 갸냘픈 한 여인의 시와 같은 느낌을 갖게한다. 

그리고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시 중에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이 있었는데 

'옛낯' 이라는 시다.  그 시를 옮겨봄으로 마침표를 찍어야 겠다.

 

옛낯

 

생각의 끝에는 졸음이 오고

그리움 끝에는 잊음이 오나니,

그대여, 말을 말어라, 이후부터,

우리는 옛낯 없는 설움을 모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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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사랑 - 다섯 영혼의 몽환적 사랑 이야기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만화책 같은 표지하며 '새빨간 사랑'이라는 표제는 솔직히 유치했다.  

그런데 이 책에 끌린 것은 확실했다.

호러틱한 로맨스라니.... 

그 하나만으로 확실히 읽고 싶었던 책이다. 

뭔가 색다를 것 같은 기대감.

 

근데 책을 읽고 난 지금 너무 혼란스럽다.

과연 이런것을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건 뭐랄까?  어떤 기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음....  적절치 않은 예일지도 모르겠다만 한 가지 들어보자면,

도저히 문학가라는 칭호를 붙이고 싶지 않고 오히려

국어를 훼손시키는데 일조하는 '귀여니' 에게 느끼는

경멸과 비웃음보다 더 큰 것을 느꼈다.

솔직히 이런 책을 읽었다는 것 자체에 구토가 일 지경이다. 

  

이런 것을 감히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비상식적인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저질스런 이야기 덩어리' 도 오로지 책으로 출판되었기에

서점의 책장 한 켠에 얹혀있다는 이유만으로 문학이라고 불러주어야 할까?

 

나는 정상적, 비정상적이라는 통념으로 무언가를 구분짓는 일은 좋아하지 않는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그것을 인식하는 각 자의 아주 주관적인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크로토모필리아. 

이것은 팔, 다리가 없거나 사지가 절단된 사람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일종의 성도착등 환자들을 일컫는 말이란다. 

아크로토모필리아인 연인에게 하나의 존재가 되기 위해 멀쩡한 팔을 잘라내는 여주인공.

내가 이해하는 것은 상식이고 그 밖의 것은 비상식적인 것으로 매도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건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속이 메슥거린다.

 

이 책은 5편의 단편모음집인데 모두 저질적이며 변태적인 이야기들이다.

혼외정사, 사지절단, 도벽, 매춘 뿐만 아니라 시간(姦)에 대해서도 거침없다.

호러틱 로맨스?  말이 좋아 호러틱 로맨스지 화장실 벽에 남겨진 음담패설보다

더 가치없는 너저분한 삼류 작가의 정상적이지 못한 얼룩진 이야기일 뿐이다.

 

이야기 뿐만 아니라 책 또한 얼마나 무성의하게 만들어졌는지 기가 찼다.

교열작업도 제대로 안되있다.  찾을려고 쌍심지를 켠 것도 아니고 건성으로 훑어도 4개다.

아니, 그 이상이겠지.  교열작업에 발견되지 않은 채 버젓이 책으로 발간될 때까지

버틴 몇개의 표기 오류나 띄어쓰기도 아주 기본적이라는 것에 아연실색했다.   

대체 교열작업을 하긴 했나??  그마져도 의심스럽다. 

 

서평을 약속으로 무상으로 받은 책이라고 해서 아첨하는 글로 판매고를 올려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쓰다보니 너무 혹평을 한 듯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온유하게 쓰고 싶지는 않다.

결론은 어이가 없는 이야기의 어이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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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기오류]

p. 71       밑에서 세번째 줄

하루기에게 능욕을 당하고 있는 여자는 유리카였다.

하루키에게 능욕을 당하고 있는 여자는 유리카였다.

    (외국어 표기라 문제될 건 없지만 하루키로 칭하기로 했다면 통일해야지.  명백한 오타로 보임)

 

[조사사용 오류]

p. 108      밑에서 일곱번째 줄

언젠가 그런 사람을 만나면 유령소녀 주리 달라고 부탁해 볼 생각이야.

┗ 언젠가 그런 사람을 만나면 유령소녀 주리 달라고 부탁해 볼 생각이야.

 

[띄어쓰기 오류]

p. 214      위에서 네번째 줄

나 같은 여자랑 이야기를 하려고 그만 한 돈을 쓰려고 했으니까요.

┗ 나 같은 여자랑 이야기를 하려고 그만한 돈을 쓰려고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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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ciel 2007-05-25 0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기 오류 가운데 맞는 게 하나 있네요. 47쪽 '찾아봬서'가 맞습니다. '찾아뵈어서'를 줄인 말이거든요. '찾아뵈어'도 맞고요. '찾아뵈서'는 틀린 말입니다. ^_^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매우맑음 2007-06-06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수정했습니다 ^^

loveciel 2007-06-06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명록에 글 올리셨다 지우셨나 봐요.. ^_^ 알림 메일이 왔어요.. 고맙습니다.. 기분 좋은 하루 보내세요.. ^_^

매우맑음 2007-06-06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 님께 좀 더 자세히 알려달라고 썼었는데
다른 분께 여쭤봐서 정확히 알게 되었어요 ^^
그래서 지웠답니당. 고맙습니다~
님두 즐거운 휴일 잘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