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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특이한 아이, 있습니다
모리 히로시 지음, 안소현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고독을 사랑하는 당신에게
초록빛 숲속으로 가만히 들어가면 아름다운 꽃나무에 둘러싸인 그림 같이 예쁜 집 한 채가 나온다. 연못이 있는 드넓은 정원에는 미니철도와 귀여운 인형, 장난감이 놓여 있고 커다란 창고 안에는 비행기와 자동차 모형이 가득하다. 모리 히로시는 일러스트레이터인 아내와 셰틀랜드 쉽독 ‘파스칼’과 함께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아름다운 보금자리에서 살고 있다. 파스칼은 끔찍하게 아끼던 강아지 모리 도마가 2005년 3월 24일에 세상을 떠난 뒤 들어온 새 식구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서 아홉 시간 동안은 연구와 모형 만들기에 열중하고 밤이 되면 서너 시간 정도 소설을 쓰는데,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 하루에 한 끼만 먹고 텔레비전도 안 보고 신문도 안 읽고 전화도 안 걸며 심지어 친구도 안 만나지만 틈틈이 블로그를 꾸려나가고 파스칼이 외롭지 않게, 슬프지 않게, 함께 산책도 하고 놀아주는 자상한 성품의 소유자다.
이 작품과 모리 히로시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블로그로 날아갔다. 그가 소설을 쓰게 된 데에는 몇 가지 계기가 있다. 저자 소개에는 ‘미스터리의 대단함’을 알리기 위해 추리 소설을 썼다고 되어 있지만 속사정은 이렇다. 어린 시절부터 뭐든지 만들기를 좋아했던 그는 대학 시절 모형 비행기와 증기기관차, 전기기관차도 직접 제작했는데 5인치 철도모형의 엔드리스 선로가 너무나도 갖고 싶어졌다. 그런데 ‘정원 철도’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드넓은 터와 자금이 필요했다. 연구자이며 대학교수인 그는 밤에 짬을 내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고민한 끝에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고 뛰어난 집중력을 발휘하여 1995년 여름에 첫 소설 《차가운 밀실과 박사들》을 일주일 만에 완성한다. 하지만 편집자의 권유로 사이카와 소헤이, 니시노소노 모에가 등장하는 S&M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인 《모든 것이 F가 된다》를 데뷔작으로 정하고 1996년 4월, 제1회 메피스토상 수상자로 문단에 화려하게 등장한다. 이 작품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잇달아 내놓은 추리 소설 역시 크게 성공하며 평생 다 쓰지 못할 만큼 어마어마한 인세를 받았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과 무한한 상상력,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는 모리 히로시는 부와 명예를 누리는 인기 추리 소설 작가다. 지금까지 그는 백여 권의 추리 소설과 단편집, 수필집, 시집을 내놓았는데 그때마다 양보하지 않는 원칙이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자신의 영문 이름은 꼭 ‘MORI Hiroshi'라고 표기해달라고 요구한다. 이미 유럽과 동남아에는 그의 작품이 여러 권 번역되어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데 외국인들이 자신의 성과 이름을 바꿔 부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란다. 사생활 침해를 꺼려 전화나 팩스로 하는 원고 의뢰, 취재 요청은 정중히 거절하고 오로지 이메일로만 연락을 주고받는다. 모리 히로시는 자신의 본명은 물론 얼굴과 신상정보를 비밀에 붙이고 있는데 그런 반면 블로그에는 사랑하는 파스칼과 친구들, 정원과 각종 모형이 담긴 사진을 공개하고 소소한 일상과 날씨에 따른 감정 변화 때로는 사회 부조리에 대한 비판과 자기주장을 거침없이 쏟아놓는다. 그의 일기를 모은 수필집은 석 달에 한 권꼴로 나오고 있다.
치밀하고 탄탄한 구성과 숨 막힐 듯한 긴장감, 허를 찌르는 교묘한 장치와 알쏭달쏭한 복선이 깔린 정통 추리 소설을 발표하던 그가 2006년 8월, 색다른 작품을 내놓았다. 그것이 바로 《조금 특이한 아이, 있습니다》이다. 모리 히로시는 이 작품에 상당한 애착을 느낀다고 말했다. 문예춘추 별책 부록에 연재한 단편들이 단행본으로 나와 무척 기쁘고, 부끄럽지 않은 글을 썼다는 자부심과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 중에 가장 문학성이 있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이런 분야에 계속 도전하고 싶다고 한다. 그동안 그는 아름다운 문장보다는 아픈 곳을 찌르는 솔직하고 진지한 문장을 주로 써 왔다. 그리고 여기에는 여덟 편의 짧은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지만 단편집이나 연작 소설집이 아니라 하나의 장편 소설이라고 밝혔다. 모리 히로시는 자신을 ‘연구자로서의 모리’ ‘교육자로서의 모리’ ‘기술자로서의 모리’ ‘소설가로서의 모리’로 규정한다. 이 작품에는 연구자와 교육자로서의 삶이 부각되어 있고 그의 고뇌와 갈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꿈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려왔고 이제는 돈 걱정을 전혀 하지 않을 만큼 풍족해졌지만 가슴 속에는 쓸쓸하고 외롭고 서늘한 바람이 휘몰아친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걸까? 아니 그보다는 잠시 숨 돌릴 만한 여유가 간절했던 걸까?
추리 소설의 경우 상세한 줄거리나 복선, 장치, 결론을 옮긴이의 말에 무심코 소개했다가는 예민한 독자의 원성을 사기 십상이다. 더구나 모리 히로시는 자신의 작품에 덧붙여지는 이런 저런 해설이나 비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일종의 모독이라 여기며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름으로 느끼고 이해하길 바란다고 한다. 그는 12월의 어느 일기에 한국 출판사 몇 곳이 《조금 특이한 아이, 있습니다》의 출간을 원하고 있는데 좀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쪽과 계약이 성사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어렴풋한 설렘을 써 놓았다. 훗날 그 글을 발견하고 느꼈던 기분이란.
모리 히로시는 블로그에 또 이런 글을 써 놓았다.
“현실에는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이 일어나고 그런 문제와 수수께끼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원인이 명확하지 않으므로 해명을 한다고 해도 단순히 수긍할 만한 추론에 그칠 때가 많다. 범죄 역시 동기가 뚜렷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결하려고 발 벗고 나서도 재판에서 뒤집히거나 범인이 끝끝내 밝혀지지 않는 일도 적잖다. 현실이 그러하니 하다못해 소설에는 단순하고 상쾌한 기분을 맛볼 수 있도록 확실히 매듭을 지어주는 게 관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좀 더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우며 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원한다. 나의 철학은 무엇이든 지나치게 동경하지도 그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고 천천히 자유롭게 살아가고 멀리만 내다보지 않고 때로는 발밑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자극적이고 강렬하고 명쾌하며 마음이 조급해지는 흥미진진한 추리 소설을 기대했다면 이 책을 읽고 아마도 실망할지 모른다. 《조금 특이한 아이, 있습니다》는 그런 책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 대화와 교감, 이해와 존중, 조용함과 여유로움, 호기심과 탐구심, 그리움과 동경, 순수함과 동화, 꿈과 환상, 동심과 추억의 소중함이 담긴 판타지 추리 소설이다. 혼자라는 외로움, 이해받지 못하거나 사랑받지 못한다는 안타까움과 애달픔,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답답함과 괴로움, 이 모든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따스한 마음을 지닌 이의 손을 붙잡고 그 어깨에 머리를 살며시 기대어 달콤한 꿈을 꾸고 싶은 낭만적인 사람이라면 좋아할 만한 작품이다.
아무런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도 마음속에는 갈등과 번민, 불안함이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한숨 돌리는 순간 자기 혼자 한없이 뒤처지거나 어쩌면 저 나락으로 떨어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말이다. 모두 잠들어 있는 고요한 새벽에 홀로 깨어 있을 때 삶의 허무함과 외로움에 사로잡혀 죽음을 선택하는 이의 심정을 이해하며 한숨을 내쉬어본 일은 없는가. 사람은 대부분 고독하다. 혼자 있어도 함께 있어도 고독한 건 마찬가지다. 고독이 숙명이라면 그 고독을 사랑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까만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모리 히로시의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 조금 특이한 아이는 지금 내 옆에, 당신 곁에,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나에게,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 특이한 아이인지도 모른다. 다정한 눈빛으로 조용히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때로는 상처를 보듬어주고 때로는 살며시 웃음 짓게 만드는 특별하고 고귀한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화들짝 놀라며 반가워하는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