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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순례 - 옛 그림과 글씨를 보는 눈 ㅣ 유홍준의 미를 보는 눈 2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3년 11월
평점 :
나는 유홍준 선생을 만나본 적이 없다. 이문열 선생은 강연에서 한 번 본 적이 있지만. 그러나 이 두 분의 책은 많이 읽었던 것 같다. 글 솜씨가 좋고 식견이 풍부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하는 말에 공감이 갔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유홍준의 답사기는 3권까지 읽고 그 이후는 그 때마다 책을 사 두고 독서는 미루어 지금 읽은 책보다 안 읽은 책이 많다.
유홍준 선생이 모두 집필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탐독한 책은 <답사여행의 길잡이>(전15)이다. 내가 답사할 때 먼저 참고하는 책이다. 늘 고마움을 느낀다. 이 책은 우리나라 곳곳을 답사하고 알뜰히 답사지를 인문학적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불교와 시각 자료가 키워드다. 앞으로 책이 나온다면 보이지 않는 문헌자료와 유교 등을 보완하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
산만하게 도록과 책을 보는 것이 요령부득이라는 생각이 들어 지난달 말에 제임스 캐힐의 <중국회화사>(지인의 소개로)와 이 책을 사서 동시에 읽기 시작했는데, <중국회화사>는 시대적인 큰 흐름을 이렇게 잡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 책이 그렇게 썩 대단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에 비해 유홍준의 <명작순례>는 딱딱한 방식이 아니고 에피소드와 저자의 견해가 들어 있는 작품 중심으로 되어 있지만 우리 회화의 연변이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고 서화를 감상하는 중요한 화두들이 많이 제출되어 있다.
총 49편으로 되어 있고 그 중 그림이 32편, 글씨가 9편, 궁중 미술이 8편이다. 도판은 각편의 타이틀 외에 두 세편을 더 넣어 총 100여편 정도 된다. 나는 처음에 글을 몇 편 읽어보고 어디에 연재한 걸 모았나 싶어 서문을 보니, 미술사 강의란 책을 쓰다가 그 책에선 책의 서술 체제상 쓸 수가 없는 것들을 이 책에다 썼다고 한다. 한꺼번에 이런 책을 써 냈다는 것이야말로 이 분이 가진 역량을 잘 입증해 주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어보면 느끼겠지만, 그림 실물을 다 봤을 뿐만 아니라 관련 문헌 자료를 섭렵하고 또 연관된 논문을 두루 읽고 여러 사람과 토론을 해야만 가능한 내용이 많다. 게다가 문장을 구성하고 글을 엮어내는 구성력에다 글을 치고 나가는 기세와 적절히 조절하는 자제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 책에 거의 군더더기가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 나는 신기하게 느껴진다. 웬만한 책들은 내가 읽으면 아, 이런 부분은 이렇게 서술했으면 좋았고 이 부분은 이렇게 짜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점이 왕왕 눈에 띄어 그런 걸 후일에 대비해 옆에 토를 달아 놓는데 이 책은 거의 그런 곳이 없다. 번역도 두어 곳만 이상한 곳을 봤지 전체적으로 어떻게 이렇게 잘했지, 전문가가 한 번 봐 준 것일까, 이런 생각이 날 정도이다.
잘 된 답사기를 읽으면 그 곳에 가보고 싶을 뿐만 아니라 그 글만으로도 몽혼적인 행복감을 느낀다. 소설이나 시는 또 어떤가. 한 참이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 속으로 되새기다 못해 저절로 중얼중얼 나도 모르게 글을 엮어 내게 된다. 또 잘 된 미술 작품의 감상문을 읽으면 몸에서 진액이 나오는 것 같고 가만히 숨을 죽이고 정신을 모아 그 순간의 희열을 맛보며 몸을 떨거나 탄성을 지른다. 이 책에서 언급한 서화가를 나도 조금은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어떤 작가의 작품은 제법 음미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서화를 보는 힘과 안목이 부쩍 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착각인지도 모르겠으나 여하튼 마음만은 그렇다.
나는 이 책에서 북산 김수철의 <밤송이>란 작품을 처음 보았는데, 이런 작품이 19세기 중반에 그려졌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또 고려 사경 <법화경 보탑도> 이걸 글씨로 만들었다는 것에서 인간의 정성이란 이럴 수도 있는가 싶다.
이런 책은 미술학자가 피피티로 만들어 강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난다. 그런데 그 내용을 전달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멋진 강의가 되려면 준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평소의 내공이 충만해서 즉흥적으로 감동적인 말들이 나오고 관람자의 질문에 응수해야 하겠기에.
유홍준은 답사만 많이 한 것이 아니라 작품 감상도 많이 하고 강의도 많이 하고 사람도 많이 만나고 또 문화재를 다루는 관서의 벼슬도 했다. 이런 감상 경험, 학문적 역정, 지위 등이 어우러졌기에 이런 책이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공재가 관아재만 못해 보인 것은 세월의 한계였지 공재의 한계는 아니었다.”
“어떤 면으로 따져도 추사 일파 문인화풍의 대표 작가는 우봉 조희룡이고 19세기 최고의 문인화가 역시 우봉 조희룡이다.”
“북산 김수철은 자신의 감성과 시대감각을 저버리지 않은 화가인 셈이다. 감각에도 천분이 있다면 그는 감성의 천재화가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대강 이런 식으로 자신의 안목으로 평을 해 놓은 것이 마음에 든다. 대개 각 편마다 뚜렷하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있고 그 메시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면서도 역사적 배경, 작품에 얽힌 이야기, 증빙 문헌 자료 등을 소개하고 자신의 감상 경험담을 소개하고 있다.
나는 이런 자연스러움이 좋다. 자신이 알고 느낀 것을 자신이 말하고 싶은 방식으로 편안히 풀어가는 이런 방식, 인문학이란 모름지기 이래야 하는 것 아닌가. 자신이 알고 느낀 것을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것, 인문학이 이런 것 아닐까.
나는 이 책이 참 마음에 들어 <국보순례>를 또 읽는 중인데, 첫 장 물방울 관음과 수월관음도부터 나를 매료시킨다. 자신이 알고 느낀 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풀어가고 있는 그 모습이 너무나 좋고 그걸 읽는 나는 나대로 독서의 쾌락과 행복감에 젖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