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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순례 ㅣ 유홍준의 미를 보는 눈 1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1년 8월
평점 :
삼상(三上)이란 말이 있다. 마상(馬上), 침상(寢上), 측상(廁上)으로 생각에 몰두하기 가장 좋은 장소이다. ‘말 등’은 오늘날 전철에서 책 읽기에 비견될 것 같다. 송나라 구양수는 이 말을 하며 자신이 지은 글은 대부분 여기서 이루어졌다 한다.
날이 추워지니 안 그래도 운동을 안 하는 나는 움직이기가 더욱 싫다. 아침에 일어나서 움직이기가 싫으니 이불을 덮은 채 사과를 먹으며 책을 읽고, 밤에 퇴근해 와서 또 이불에 기대 책을 본다. 이런 경우엔 손에 들기에 적당한 크기와 사진이 있어 눈을 시원하게 해 주며 지식과 감성이 적절히 섞인 책이 제격이다.
지난번 <명작순례>의 여파가 고스란히 <국보순례>로 이어진 셈인데, 편폭이 짧고 다소 경직되고 틀에 박힌 구성이라 글의 감칠맛은 덜하지만 국보급 문화재의 사진에서 풍기는 아우라는 내 정신을 압도한다.
이 책에는 총 100점의 그림과 글씨, 공예와 도자, 조각과 건축, 그리고 해외 문화재를 소개하고 있는데 모두 국보로 지정된 것은 아니고 그의 말처럼 ‘나라의 보물을 순례하는 마음’으로 쓴 글이다. 조선일보에 2009년 4월부터 2년간 연재한 걸 모았다 한다. 이 책에서 내가 처음으로 접하며 경이롭기 그지없었던 것은 일본 동대사(東大寺) 정창원(正倉院) 소장 자단목바둑판과 상아바둑알, 미국 시카코 미술관의 청자백조주전자, 샌프란시스코 동양미술관 소장 청자연꽃 장식주전자 등 해외에 있는 우리미술품이다.
저자는 우리미술이 지향한 궁극적인 미적 목표를 삼국사기에서 따와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러워 보이지 않는다.[儉而不陋, 華而不侈]”라는 말로 표현하고 집옥재 상량문과 낙선재 상량문에도 같은 맥락의 내용이 나온다 한다. 매우 공감이 가는 말이다. 이렇게 미술품과 문헌을 연결하는 힘이 놀랍기만 하다. 다만 앞에서 말한 바둑판과 청자 외에도 일본 고류지의 반가사유상, 보스턴미술관의 은제 금도금주전자나 백제금동향로, 동궐도 등을 보면 화이불치(華而不侈)라기보다는 고려와 조선 사람들이 이렇게 집요하게 온갖 정열을 다 바쳐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움의 극점에 가 닿은 느낌마저 든다. 내가 다른 나라 미술품에 무슨 견식이 있는 것이 아니니 그저 주관적인 느낌이 그렇다는 말이다.
편폭이 짧지만 정보가 풍부하고 저자의 견해와 감상이 서로 알맞게 어우러져있다. 저자가 미술에 대한 안목에다 평론 능력을 갖추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정보와 감성, 글의 구성이 어떨 때 가장 대중에게 호소력이 있는지 그 비례를 잘 알고 있는 것만 같다. 영암 쌍사자 석등이 자연배경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점을 실감나게 전달한다든지, 가천 다랑이논을 소개할 때 ‘우리의 논이 사라져 가는 것을 보고서야 논이야말로 국토의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각성이 일어났다.’ 라는 등 임팩트가 강한 구절들이 매 글마다 한 두 곳 박혀 있다. 글을 이렇게 쓰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보물들을 읽어가면서 쌓인 충만한 감정들은 해외의 한국문화재를 읽으며 어떤 아쉬움이랄까 안타까움, 환희, 멀리 시공을 초월해 가 닿은 상념 등으로 변모하면서 강렬한 학습 의욕과 잠자는 성취욕 같은 걸 자극한다. 전문가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나 같은 아마추어가 보기에는 정말로 유익하고 재미난 책이다. 다른 독자들은 이 책을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나는 이제 <유홍준의 한국미술사강의3>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부록에 붙인 <중국 회화사의 흐름> 등 구성이 우선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