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자가 된 기념이라고 하면 웃기는 얘기지만 여튼 얼떨결에 [신데렐라 맨]을 보게 됐다. 이거 일종의 마조히즘인지도 모르겠는데.
연기들은 한결같이 좋다. 론 하워드와 러셀 크로우가 팀웍을 이뤘던 [뷰티풀마인드] 때와는 스타일이 상당히 달라진 연출도 지나침 없이 평균점 이상을 유지하고. 출중한 사운드 디자인이 지원해주는 시합장면에서의 격렬함도 좋다. 스토리도 뭐 망가진 퇴물의 눈물나는 재기전이라는 만고불변의 감동라인을 갖추고 있다. 개봉 당시 미국쪽 비평가들은 찬사 일색이었다. 그리고 거의 모두가 이 눈물 짜내는 영화가 오스카에서 한 자리 해먹을 거라고 예상을 했다. 그리고 망했다.
미국쪽과는 달리 이런 아메리칸 드림류의 영화에 별 감흥을 못 느끼는 듯한 우리나라 비평쪽에선 그저 그렇네 라는 평이 다수였지만. 암튼 모든 것을 갖췄음에도 성공하지 못한 영화라는 건, 시기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소위 이런 감동의 재기스토리를 다룬 영화들은 그 어떤 스타일의 영화보다도 운과 시기에 좌우된다. 왜냐하면 그건 너무나 흔한 이야기니까. 짐 브래독 만큼 인생을 굴러먹은 인간이 리더스 다이제스트나 샘물에 실릴 법한 전형적인 스토리 라인을 돈을 주고 보러 갈 상황이라는 건 어떤 사회적 차원에서의 동일경험에 대한 욕망이 생기지 않는 한엔 힘든 바다. 좋은 연기자, 좋은 연출, 좋은 이야기, 좋은 지원력이 결합되었다고 해도 상업적 성공은 보장되지 않는다. 시장이란 그런 것들만큼 좋은 동네가 아니니까.
필연적으로 비슷할 수밖에 없지만 영 밍숭맹숭했던 [록키 발보아]보다야 훨씬 괜찮은 영화긴 한데, 암튼 퇴물들에게 삶의 희망과 용기를 부여해줄 수도 있는 영화가 내용과는 달리 결국 쫄딱 망했다는 게 역시 현실이란 그런 거야 식의 우울한 진리감을 다시금 선사해 줄 수도. 영화 속에서 브래독이 애들 찾아오려고 벌이는 절절한 구걸씬이 권투장면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