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훌륭한 배우로 추앙한다. 어떻게 그런 것을 받아들이나.
A. 그냥 극복하게 되더라.
- 2007년 베를린영화제에서의 인터뷰 중에서

 
42년간 71편의 영화에 출연한 그의 경력을 살핌에 있어, 나열법이 아니면 방도가 없다. <대부2>(1974)로 오스카 남우조연상 수상, 2년 뒤 <택시 드라이버>로 주연상 노미네이션, 다시 2년 뒤 <분노의 주먹>으로 남우주연상 수상, 이후 <디어헌터> <케이프 피어> <사랑의 기적>으로 아카데미 주연상 노미네이션. 25살에 브라이언 드 팔마(<그리팅스>), 27살에 로저 코먼(<블러디 마마>), 30살에 마틴 스코시즈(<비열한 거리>), 31살에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대부2>), 33살에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1900>)와 엘리아 카잔(<마지막 쇼군>), 41살에 세르지오 레오네(<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만났음. 1997년 그를 시대를 초월한 최고의 영화스타 100인 중 5위로 선정했던 <엠파이어>는 2004년에 그를 생존한 배우 중 최고로 치켜세웠고, 영국의 <채널4>와 <엔너테인먼트 위클리>는 그를 각각 시대를 초월한 최고 배우 2위(1위는 근소한 차로 앞선 알 파치노)와 34위로 꼽았다. 1983년에는 3인조 여성댄스그룹이 <로버트 드 니로가 기다리고 있어>라는 팝송을 히트시켰고, 이 밖에도 그의 이름을 언급한 팝송은 두곡이 더 존재한다. 명배우, 혹은 유명인사의 대명사이자 흥행과 비평, 상복에서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걸어온 64살 노배우에 대한 첨언은, 그 자체로 새삼스럽다.

그런데 신기하다. 창간 12주년을 맞는 <씨네21>은 여지껏 로버트 드 니로에 대한 인물 기획기사를 한번도 게재한 적이 없다. 새삼스러워서일 수도 있고, 그 많은 전작을 챙겨보는 것이 두려워서일 수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96년 이후 그의 필모그래피에 있다. 12년간 출연한 25편 중 대부분에서 그는 <재키 브라운> <슬리퍼스>처럼 카메오에 가까운 역할을 맡았고, 눈에 띄는 흥행작은 <애널라이즈 디스>와 <애널라이즈 댓> <미트 패어런츠1, 2> 등 코미디였으며, <숨바꼭질> <15분> <갓센드> 등의 스릴러에서는 매너리즘이 엿보였다. 그는 나이를 먹었고, 세상과 영화는 더이상 날것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드 니로 자신은 “정말로 즐길 만한 일을 하는 건 멋진 일이다. 코미디든 드라마든 상관없다”며 심드렁하다. 과연 그럴까. 정답을 알아낼 도리는 없지만, 그래도 궁금하다.

 

창조적이며 성능좋은 ’인간 복사기’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가족을 챙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재능을 낭비하지 말아라.”
-<브롱크스 테일>에서 로렌조가 아들에게

1960년대, 뉴욕의 리틀 이탈리아에서 성장기를 보내는 소년과 그의 두 아버지, 강직하고 성실한 친아버지 로렌조와 소년이 동경한 갱단 두목 소니의 이야기를 담은 <브롱크스 테일>(1993)은 채즈 팔민테리가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완성한 연극을 영화로 옮긴 결과물이다. 팔민테리는 영화화의 조건으로 자신이 소니를 연기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드 니로는 이를 수락했으며, 좀더 효율적인 영화제작을 위해 드 니로는 로렌조를 직접 연기했다. 그는 팔민테리로부터 자신이 연기할 인물의 모델이 된 버스운전기사 아버지를 소개받았다. 애초 그저 보통 사람에 불과한 아버지를 만날 필요없다며 만류했던 팔민테리는 이후 “촬영을 시작하자 밥은 아버지가 했던 대로 버스를 운전하고 아버지처럼 기어를 바꾸고 핸들을 닦았다. 아버지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억했다가 고스란히 재현한 것”이라며 감탄했다.

요컨대 그는 성능 좋은 ‘인간 복사기’다. 그것도 아주 창조적인. <굿 셰퍼드>의 맷 데이먼은 “밥(드 니로의 애칭)은 인간 행동의 연구자다. 멀찍이 앉아서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머리에 입력한다. 그의 작품이 그처럼 좋고, 그를 예술가라고 부를 수 있는 건 그 때문”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드 니로가 자신의 모델과 닮기 위해 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 <대부2>의 비토 콜레오네를 소화하려고 시실리로 떠나 사투리를 채집했고, 결국 1편에서 말론 브랜도가 보여준 모든 것을 복사했다. <택시 드라이버>를 위해 실제 택시 운전기사로 손님을 태운 채 뉴욕 시내를 질주했다. 촬영을 위해 스파링 상대였던 조 페시의 옆구리를 가격하여 실제 갈비뼈를 부러뜨렸던 <분노의 주먹>에서 선보였던 살인적인 몸무게 늘리기는 이미 유명하다. 자신의 실제 모델인 라 모타의 집에서 살다시피 하다가 라 모타와 그의 부인이 결별하는 이유가 드 니로 때문이라는 소문까지 돌 정도였다. 아무리 사소한 소품이어도 스스로 고르고 늘 몸에 지녔다. <폴링 인 러브>에서는 한번도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주인공의 명함을 만들어서 가지고 다녔다.


미국인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대사 중 하나인 “나한테 하는 말이야? 나한테 지껄이는 거냐고!”(<택시 드라이버>에서 트래비스가 거울 앞에서 총쏘는 연습을 하는 장면에서 중얼거리는 혼잣말)를 리허설 중 만들어낸 그의 능력은 자신의 인물 안에 투철하게 빠져든 결과물이었다. 연출작 <굿 셰퍼드>라고 다를 리 없다. 1939년부터 61년까지 지금의 CIA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한 남자와 그 가족의 파멸을 그린 이 영화는 드 니로가 8년 동안 품었던 프로젝트다. CIA에서 30년간 근무한 전직 요원을 초빙하여 현장에서도 옆에 둔 것은 물론이고 러시아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을 방문하며 생생한 소재를 찾아다녔다. 대부분의 주요 인물이 실제 모델을 지니고 있는 영화였고, CIA를 실질적으로 창립한 인물로 그가 연기한 설리반 장군도 모델이 있었다. 불행히도 장군의 모델은 1970년대 중반 사망하여 드 니로는 그를 직접 만날 수 없었고, 이를 매우 애석해했다고 한다.

 

철저한 사생활 보호, 단답형의 인터뷰이
“누군가가 나에게, ‘다른 배우들은 시간이 흐르면, 그들의 실제 생활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바비는 대체 평소 뭘하는지 알 수 없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하더라. 무조건 동의했다. 그를 표현하는 아주 적절한 말이라고.”
-맷 데이먼

만일 드 니로가 파파라치와 폰카와 UCC가 성행하는 오늘날 스타로서의 전성기를 누렸다면, 차라리 배우의 길을 포기했을 것이다. <택시 드라이버>가 칸에서 큰 호응을 얻을 무렵. 싸구려 언론이 횡행하는 미국에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유럽에서는 TV 출연도 마다않는 그를 향해 미디어는 ‘가르보의 오만함’을 지녔다며 삐딱한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일과 관련된 것이 아니면 LA에 가지 않을 것” “사람들은 뉴욕이 놀기는 좋아도 살고 싶지 않은 곳이라고 말한다. 나에게는 뉴욕 외의 다른 곳이 그렇다”는 등 그의 극단적인 뉴욕 사랑은 할리우드에 몰려드는 미디어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반영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모두가 인정하는 전성기를 훌쩍 넘겨버린 지금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여전히 대부분의 인터뷰에서 그는 단답으로 일관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인터뷰이의 자포자기한 심정이 드러나는 듯한 기사도 눈에 띄며, 그를 일대일로 대면한 뒤 작성된 글의 도입부에는 그가 얼마나 악명 높은 인터뷰이인지를 설명함으로써 자신이 실패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려는 애절함이 묻어난다. 그와의 만남을 위해 정치, 종교, 가족 등 질문해서는 안 될 항목이 나열된 목록에 동의해야만 했다는 증언도 있다. 드 니로가 일절 도움을 주지 않았고, 오로지 그가 언론을 상대한 빈약한 인터뷰와 주변 취재를 통해 완성한 전기 <언터처블 로버트 드 니로 전기>(Untouchable, 앤디 더간 지음)의 제목은 꽤나 잘 어울린다. 손을 댈 수도 없고, 실체를 확인할 수도 없는. 주변인들은 그를 일컬어 “스스로를 사라지게 만드는 데는 탁월한 재능을 지닌 사람”이라고 말한다. 할리우드 스타의 반열에 오른 뒤에도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그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는 등의 신기한 일화가 인구에 회자되기 일쑤였다.


철두철미하게 사생활을 지키는 이 사내도 40여년간의 할리우드 생활 앞에서는 별 도리가 없었다. 12년 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했던 배우 겸 가수 다이앤 에보트, 그녀와의 결혼이 유지되고 있던 중에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었던 가수 헬레나 리잔드렐로, 이후 모델 질리언 드터빌과 도로시 투키 스미스, 나오미 캠벨, 그리고 1997년부터 현재까지 함께하고 있는 부인 그레이스 하이타워 정도가 그간 밝혀진 드 니로의 여인들이다. 이중 두명으로부터 각각 한명의 아들을 얻었고, 또 다른 한명이 자신의 딸을 드 니로의 자식이라고 주장한 바 있으며, 또 다른 한명과는 쌍둥이 딸을 낳았다. 팬들에게 과도한 반응을 보여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고, 어쩔 수 없는 염문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정도면 양호한 편이긴 하다.

그의 사생활과 관련해서 언론이 촉각을 곤두세웠던 부분은 유년 시절이다. 초기작에서 연기한 불안하고 자기 파멸적인 캐릭터들은, 평소 그의 연기방식을 생각할 때, 어떤 식으로든 본인의 실제 유년기와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추측 때문이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알려진 그의 성장배경은 미술가였던 부모가 두살 때 이혼한 것을 제외하면 비교적 유복하고 평범한 편이다. 그에게 풀네임을 물려준 로버트 마리오 드 니로 1세는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꽤나 유명한 추상표현주의 화가였고, 이혼 뒤에도 아버지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었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풍부한 문화적 소양을 쌓고 많은 문화인사를 만날 수 있었다. 병적인 그의 완벽주의는 드 니로 부자가 공유한 유전자라고 한다. 그 역시 아버지의 영향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조만간 포르투갈, 베니스 등지에서 아버지의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 계획을 밝히기도 했고, 샌프란시스코에서 그가 경영하는 레스토랑에는 아버지의 작품이 걸려 있다.

 

투철한 완벽주의가 드러나는 연출방식
“이탈리아인에겐 가족과 신앙이 있소. 아일랜드인에겐 고국, 유대인에겐 전통, 흑인에겐 음악이 있지. 당신들에겐 뭐가 있소?”
“미국에 대한 애국심이오. 이민자에겐 없는.”
-<굿 셰퍼드> 중에서

조디 포스터 등 함께 공연한 어린 여배우들은 하나같이 로버트 드 니로를 친절하고 자상한 보호자로 회상한다. 그는 첫 번째 부인과는 다른 관계를 맺으면서도 결혼관계를 유지하려 했고, 결혼하지 않았지만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여인과는 시험관 시술을 통해서라도 아이를 얻었으며, 부인이 전남편과 가진 딸을 입양하여 차이없이 보살피기도 했다. 깊은 곳에 감춰진 뿌리깊은 책임감, 혹은 자신의 울타리를 끝내 지키려는 욕망. 이는 그의 비밀스런 사생활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대중에게 스스로를 각인시킨 <대부2>에서의 모습, 투철하고 완벽한 가부장의 이미지는 썩 잘 어울린다.

두편에 달하는 드 니로의 연출작은 이를 뒷받침한다. 변명하지 않는 아버지가 있고, 갈등하는 아들이 있다. 아버지는 자신의 일에 성실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심지어 드 니로의 연출 방식 역시 이와 통하는 면이 있다. 절대적인 사실성을 우선시하는 그는 <브롱크스 테일>의 캐스팅 조건으로 얼굴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배우, 가능하다면 실제 그곳에서 생활하는 비전문 배우를 내걸었다. <굿 셰퍼드>에서는 가족과 소통하지 못한 채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다가 정작 중요한 것을 잃게 되는 주인공 에드워드를 연기한 맷 데이먼이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일반인의 그것과 같아져야 함을 강조했다. <대부2>를 연상시키는 비장한 주제가 담긴 167분짜리 대작이 밋밋하고 단순하게 느껴진다면 이는 아마도 감독의 그러한 완벽주의, 모든 디테일과 모든 장면을 포기하지 못하는 지나친 세심함이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브롱크스 테일>과 <굿 셰퍼드>의 소재며 주제,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다. 전자의 주인공 소년은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고 성장하지만, 후자의 주인공 아버지는 끝내 이해받지 못한 채 홀로 남는다. 전자의 인물들은 서로에게 감사하지만, 후자의 인물들은 죽거나, 미워하거나, 자신을 지탱하던 애초의 그 무엇인가로 회귀하지 못한 채 살아남기 위해 냉혈한이 된다. 그러나 두 영화는 공히 가족멜로드라마를 표방한다. 많은 이들은 9·11을 경유하여, 만들어진 <굿 셰퍼드>를 통해 드 니로의 정치적 발언을 유추하려 애쓰지만, 그는 계속해서 이에 대한 대답을 유보하고, 미국의 가치를 옹호한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대사로 위에 인용한 부분을 꼽는다.


90년대 중반 이후 그의 행보에 대해 호사가들은 그가 통장잔고에만 신경을 쓴다며 볼멘소리를 일삼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통장잔고는 본인의 화려한 생활이 아니라, 또 다른 영화제작을 위한 것이었다. 1990년 뉴욕 트라이베카 지역을 지키기 위해 구입한 건물에서 출발한 제작사 트라이베카 프로덕션은 1991년부터 37편의 영화제작에 관여해왔다. 그는 두편의 연출작을 알뜰하게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굿 셰퍼드>에서는 연출료를 받지 않았다. 드 니로는 <굿 셰퍼드>를 연출하기 위해 30년지기 마틴 스코시즈의 <디파티드>에 프랭크 코스텔로로 출연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는 여전히 마티(스코시즈의 애칭)와 함께 적어도 두편의 영화를 함께하여 둘의 공동 필모를 10편까지 채우겠다고 말하지만, 죽을 때까지 다섯 편의 연출작을 만든다면 행복할 거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남은 연출작 중 한편은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고 무너지기까지를 배경으로 하는 <굿 셰퍼드2>가 될 것이 유력하다. 유난히 말주변이 없었던 청년은 다른 사람의 모습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식을 익혔고, 모든 것을 감독과 논의하며 결정하는 작업이 익숙하여 한때 몇몇 감독(베르톨로치, 레오네 등)과 불화를 빚기도 했다는 노배우는 이제 카메라 뒤에 서는 것으로 대중에게 말을 거는 것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 신화로 박제되는 것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위해 성실한 가장이자 현실적인 책임자가 되는 것을 택한 이 남자. 앞으로 그에게 더이상의 <택시 드라이버>나 <분노의 주먹>이 없더라도, 걸작으로 인정받는 연출작을 만들지 못하더라도, 그의 노년은 행복하게 유지될 듯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로버트 드 니로] 위대한 배우, 믿음직한 아버지, 투철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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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의 낯선 회고에서처럼, 로버트 드니로의 영화는 어디에나 퍼져있지만 정작 개인적인 이야기로서의 그를 아는 이는 거의 없다(보아하니 가족들마저도 그런 모양이다). 그토록 사람들의 삶에 밀접하게 접촉함과 동시에 배우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명성을 가진 이가 그정도로 알려진 바가 없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가부장적 은폐주의와 스스로를 지우는 연기자로서의 태도가 그대로 반영된 그의 삶은 자신이 맡은 역의 배우와 완벽하게 일치하려 하는 그의 노력과 기묘하게 일치된다. 즉, 배우로서의 삶과 로버트 드니로로서의 삶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어쩌면 정말로 할 얘기가 없어서 그저 단답형으로 툭툭 말을 던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머릿속에 들어오는 생각이란 나오미 캠벨이랑 떡쳐서 부럽다는 거....



'in the closet' 때 보고 뻑 갔었음. 어이쿠 그게 대체 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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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4분기 일본 TV 신작 애니메이션들의 달리기가 시작됐습니다.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신작들의 홍수 속에서 눈에 띄는 것은 상당히 고퀄리티를 지향하는 애니들이 다른 때에 비해서 다수 포진하고 있다는 건데 대체적으로 고른 완성도를 보이고 있는 초반이라 여느 때보다 전반적인 만족도가 높은 듯 합니다.

[나노하] 3기와 [하야테처럼]이 시작되서 사방에서 씹덕씹덕중이지만 마법변신소녀 따위는 [에스카레이어]로 날려버렸고 [하야테처럼]은 애초에 관심밖이었으니 뭐 패스.



일단 가장 기대했던 것은 곤조에서 만드는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는데, 뭐 워낙 쟁쟁한 스텝들이 대거 낑겨 들어간데다 1화 만큼은 최강인 곤조인지라 일단 그럭저럭. 캐플릿 집안을 제거하고 공중도시 베로나를 장악한 몬태규 조폭과 남장한 의적 줄리엣,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한 면상의 로미오가 에쿠우스 타고 등장하는, 곤조의 전작인 [암굴왕]과 궤를 같이 하는 고전 컨버전 애니. 나쁘진 않은데 생각외로 너무 심심해서 그냥 안 볼까 합니다. 곤조는 무슨 공장 찍어내듯 만들어대는군요 현재 진행중인 것만 해도 몇개더라.... 꿰냐 이름을 걸고 나온 레나팍 박정현이 부른 주제가는 일본인이 아닌 제가 듣기에도 뭔가 액센트가 강하게 찍히곤 하는... 암튼 외국인이 일본어로 노래 부른다는 걸 팍팍 느끼게 해줬음. 좋긴 좋네요.

 



언제나 기본은 해주는 본즈의 이능력자들 이야기. [흑의 계약자]도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어떤 조건을 수행함으로써 특정한 능력을 가지게 된 이들과 그를 사냥하는 이들, 그리고 그 사이에 낀 보통인간들의 이야기. 튼실한 작화와 적당한 긴장감을 수반하면서 진행되는 중인데, 뭐 워낙 뻔한 패턴이긴 해도 볼만은 하다는 생각입니다. 음악은 칸노 요코가 맡았는데 별 존재감이 안 느껴짐.

 

 

사실상 4월 최대어였던 건 [럭키스타]입니다. 4컷만화였던 원작이 2006년 애니업계를 하루히 하나로 말아먹은 교토애니에서 만든다는 것만으로도 프리미엄이 붙어버려서, 예전에 북박스에서 오퍼를 넣었던 것으로 기억하나 현재 판권은 대원에서 소유중(카도카와 계열이라는 메리트도 작용했을 듯), 4월 내로 단행본이 나온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올해 교토애니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꽉 찬 스케줄(카논-럭키스타-클라나드)을 짜놓고 진행중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교토애니답게 월등한 작화 퀄리티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소라빵을 위쪽부터 먹을 것인지 아랫쪽부터 먹을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하며 관련된 수다를 떠는 걸로 전체의 50% 가량을 소비합니다. 본편보다 파일럿으로 들어가있는 럭키채널이 훨씬 재밌음. 사실 정말 공감도 안되고 재미도 별로 없었던 원작을 보고선 교토애니에선 이걸 무슨 생각으로 만드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만.... 공들인 티가 나긴 하지만 4컷만화 포맷을 옮겨왔기 때문에 전작들에 비해 화려함보다는 소박함에 맞춰져 있는 소품인 느낌이라, 일단은 후속작인 [클라나드]를 준비하기 위한 쉼터라고 보입니다.

 



4월의 복병. 가이낙스가 드디어 한 건 터뜨렸습니다. 프로모션 포스터만 보고선 가이낙스도 이제 막장이군 이란 생각이 들게 만든 [천원돌파 그렌라간]. 정말 반포기한 기분으로 접했는데, 이건 뭐 정말 화끈하군요. 퀄리티도 TV판이라곤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출중. 전개는 시원시원. 방황하는 소년과 갇힌 세계에서의 탈출, 그리고 성장이라는 가이낙스 전통의 방향성이 [프리크리] 이후 각이 잡힌 특유의 활극형 연출과 더불어 그랑죠 디자인을 떠올리게 만드는 메카닉과 삭막한 지구에서의 모험이라는 고전적인 틀을 갖추고 나타나자 저 진부한 이미지들을 모조리 날려버리는 즐거움을 선사해주고 있습니다.

스폰서로 소니뮤직과 코나미, 그리고 저 'M'이 붙어있다는 점에서도, 빠방한 자금력을 앞세워 퀄리티가 저하될 가능성은 낮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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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7-04-10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화 정도는 몽땅 구해서 봐야겠네요. 흠.

iamX 2007-04-11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도날드 아침 셋트는 3천원돌파! (그나저나 빨간머리 언니에게 하악하악, 계속 그런 복장으로 가는 거야!)
농담입니다. 자러가야죠. 슬슬…

hallonin 2007-04-11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엔 하루히의 독식이었지만 올해는 춘추전국이랄까요... 그러고보니 벌써 일년이네 넨장.

간만에 보는 정신 똑바로 잡힌 건강 미소녀 언니 타입. 시원시원합니다.
 

바빌론의 탑은 그 자체로 상징적이다. 테드 창은 여기서부터 읽기 시작하라고 한다. 그 결말을 생각해보건데, 이 작품은 확실히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대한 일종의 초석과도 같다. 탑을 올라가기 직전 스쳐지나가듯 볼 수 있었던 그 무언가의 돌덩어리. 이해는 여기에 실린 작품들 중 최고였다. 장르적으로 소설에서나 가능한 몇 안되는 기술적 독자성을 보여주는 이 이야기의 짜임은 정밀하고 세심하며 그 모든 의도된 장치들이 예정된 목적을 향해 예리하게 파고들어오지만 중심부에 자리한 것은 인간 감정에 대한 인문학적인 이해다. 영으로 나누면은 일종의 공포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단 하나, 축의 붕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그 두려움은 숫자가 바탕이 되어 구축된 모든 학문이 지닐 수 있는 무의식적인 심연일 것이리라. 네 인생의 이야기는 구조적인 면에서 어떤 탁월하고도 아름다운 경지를 보여준다. 닫힌 경험의 소유자라면 쉬이 다다를 수 없는 영역인 동시에 이 이야기는 테드 창의 설명에 더해져 커트 보네것이 그 인지적으로 더없이 잔인한 자신의 작품세계에도 불구하고 노구를 이끌고 이라크 반전 집회에 참석하며 마냥 회의론자이지 않을 수 있는 이유를 우회해서 알려준다. 일흔 두 글자가 보장하는 풍부한 함의들이 상대적으로 그토록 짧은 분량에서도 온전하게 살아있다는 걸 알게 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기호가 승리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인류과학의 진화는 [네이쳐]에 실렸다는 것으로 그 자체적인 함의의 기능을 수행한다. 이것은 소설이며 동시에 선언문이고 또한 위로이자 희망에 대한 이야기다. 지옥은 신의 부재는 아우구스티누스적 개념의 확장판이다. 허점이 아닌 응용할 부분으로서의 여력이 많이 보이지만 그것이 이 소설이 재미없다는 소리는 아니다. 천사의 강림이란 소재의 신선함은 이 이야기의 영화 시나리오화를 강력하게 욕구케 만든다.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소고 : 다큐멘터리는 올리버 스톤이 만들면 딱일 듯 싶다. 잘 들여다보면 사회파 드라마만이 아닌 온갖가지 장르를 다 만들어온(멜로, 서사, 스포츠, 스릴러, 액션 등등 올리버 스톤만큼 장르를 넘나든 감독도 몇 없다. 다만 몇 개가 너무 쎄서 그리 각인된 것뿐이지) 올리버 스톤이라면 이제 슬슬 자기 리스트에 SF도 추가하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알렉산더]처럼만 안 만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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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7-04-06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참. 한참 웃었어요. 알렉산더처러만 안 만들면 되죠, 정말.
테드 창의 신간은 안 나오나 몰라요. 기다리고 있는데.

hallonin 2007-04-08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정도 퀄리티로 쓰는데 다작까지 한다면 뭐랄까. 억울한 사람들 많을 듯....
 

90년대 중반에 번역되어 나온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는 그제껏 소모적인 담론으로만 탕진되고 있던 소위 '한국의 포스트모더니즘'이란 것이 얼마나 허무하고 쓸데없는 일인지를 단박에 깨닫게 해주는 물건이었습니다. 이미 옆나라에선 그 극단까지 달려가서 있는대로 부숴버린 다음 그 파편들을 수거하는 차원에 들어서 있는 판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선 그게 '최신 트렌드'였으니까요. 뭐 나아가서는 우리나라에서의 문학경험과 그 승화의 진부함에 대한 재확인이었습니다만. 암튼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는 그 파괴력에도 불구하고 별로 언급되진 못했고(않았고?) 먼훗날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벤치마케터로 의심되는 박민규라는 작가가 나타나서 한국문학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기이한 현상을 목도하게 만들 때까지(다카하시 겐이치로의 데뷔작 [사요나라 갱들이여]는 일본에서 1981년에 출간됐습니다) 그 절판된 책은 이곳저곳을 떠돌거나 언급되면서 독버섯처럼 열광적인 컬트팬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로인해 헌책방을 쏘다니거나, 도서관에서 훔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인간군도 형성해냈죠.

 

뭐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도 꾸준히 언급되던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결국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의 재출간, 이어서 끝내주는 출발점인 [사요나라 갱들이여]가 발간됐고, 그와 더불어 그럭저럭 팬들도 더 불고 토양도 생겼고.... 하다 보니 이젠 한꺼번에 튀어나와버렸습니다. [겐지와 겐이치로]와 [존 레논과 화성인]이라는 두 개의 책이 거의 시차를 같이 해서 이번에 나왔더군요. 뭐 일본문학이 돈이 되니까 이런 것도 나오네.... 싶기도 하고. 라이트노블쪽의 걸물들도 속속 출판되는 걸 보면 그래도 슬슬 자리가 잡혀가는 중인가... 싶기도 합니다. 뭐 이젠 이런 태도도 진부하긴 합니다만 예전에 데이빗 린치가 [광란의 사랑]으로 칸느에서 왕자리를 먹었을 때 그에 떨어진 때늦은 비판, 메이저가 된 컬트는 이미 컬트가 아니라는 오래된 코멘트가 생각납니다만,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컬트였던 건 우리나라에서였지 일본에서의 얘기는 아녔죠(데이빗 린치는 그 전에 [듄]이라는 돈 깨나 들인 SF물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시의성과 국지성으로서의 컬트는 단어 그 자체의 의미에 충실하게 한계를 상정하고 시작되는 법. 나의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이렇지 않아? 히히. 뭐 그래도 수용가능한 감수성의 한계란 건 여전한 것 같습니다....

[겐지와 겐이치로]가 꽤 관심이 갑니다. 일단 제가 마음먹고 있는(그러나....) 것이 손창섭 소설들을 다시 써내는 건데, 어느 정도는 롤모델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했습니다만. 그러나 좀 훑어봤는데 이 작품에서 그가 보여주는 다시쓰기의 방법론과 제가 생각하는 방법론은 다르더군요. 뭐 그런 요인은 생각 안한다 해도 관심이 가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아니, 확실히 읽고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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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년의 어느 날. 세계는 온통 어두운 기운으로 가득하다. 세계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태어난 아이가 고작 18년을 살고서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모든 인류에게 평등하게 내려진 끝이 안 보이는 불임은 지구상에서 인간이란 종을 서서히 죽음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세계 곳곳에서 서로를 죽여대느라 정신없는 분쟁은 끊이지 않고 있으며 그것은 테오도르 파론이 공무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런던에서도 마찬가지 얘기다. 전직 사회운동가였던 그는 꿈 많았던 시절을 버리고 희망 없는 세계에서 기계적인 관료직을 그럭저럭 수행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처지다. 그런 그에게 옛 연인이면서 반정부주의자들의 리더격인 줄리엔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녀는 그에게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기적을 보여주면서 간단한 모험을 제안한다. 아주 손쉬워보이는 모험이지만, 나중에 가선 결코 그렇지 못할 모험을.


[칠드런 오브 맨]이 그려내는 미래상은 인종차별과 사상의 차이들이 빚어내는 현재의 잦은 국지전들에 기반을 두고 더욱 진화하여 현대 문명의 시작이었던 런던 한복판에서 폭발로 터져나가는 식료품 가게가 일상이 되버린 디스토피아를 보여준다. 테러는 전세계에 만연하며 죽음과 증오 또한 가득하다. 그렇지 않아도 가만히 있어도 다 죽어버릴 운명인데도 인간은 서로를 지구에서 될 수 있는 한 빠르게 지워버리려고 노력한다. 우리 휴머니스트들은 그 지옥 속에서 피어난 단 하나의 희망을 위해 어떻게든 도망치고 도망쳐서 그 희망이 미래가 될 수 있는 곳에 안착해야 한다. 휴먼프로젝트라는 이름의 꿈에.


여기서 등장하는 휴먼프로젝트란 집단은 사실 스토리적으로 보면 조금 치사한 장치기도 하다. 휴머니스트들의 마지막 남은 순도 100% 희망덩어리인 휴먼 프로젝트는 어떤 이데올로기적 트러블도 발견되지 않는 이상향으로서 묘사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의 축을 단단히 잡아주고 있긴 하지만 동시에 그것에 의심을 품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걷잡을 수 없게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위태로운 지지대다. 물론 [칠드런 오브 맨]은 몇 부작으로 나뉜 드라마 시리즈가 아니며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현명하게도 그런 복잡한 모험을 감행하지 않는다. [칠드런 오브 맨]은 그에 맞춰서 완전하게 미래를 제시해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 뒤를 상상하는 것 또한 보는 이의 몫이다. 다만 휴먼프로젝트를 향한 맹목성 때문에 영화의 진지함이 다소 깎여 나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순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 맹목성이야말로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세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그 모든 자잘한 논란들을 잠재우고, 단언컨데 [칠드런 오브 맨]은 보지 않은 사람을 후회하게 만들 흔치 않은 영화다. 당신은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못했다는 것을 억울하게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내가 그렇다). 위에서 언급한 정도의 잡음을 빼면 스토리는 안정적이고 개개 연기자들의 연기는 적재적소에 자리하고 있으며 연출은 영화를 다루는 이로서의 알폰소 쿠아론이 어떤 경지에 도달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두 번에 걸쳐서 나오는 클라이맥스에서의 롱테이크 시퀀스는 가히 압권인데 특히 두번째 롱테이크는 그 기술적 완성도에 있어서나 감정의 승화를 노리는 드라마적 치밀함에 있어서나 보는 이로 하여금 숨막히는 영화적 경험을 선사해준다. [블랙호크다운]과 [스네이크 아이즈]의 첫 시퀀스와 [희생]이 뒤섞이면 어떤 장면이 나올 것 같은가. [칠드런 오브 맨]은 그 답을 보여주고 있다.

 


http://www.film2.co.kr/feature/feature_final.asp?mkey=4339


2006년의 시대정신은 온전히 멕시코 감독들의 것이었다. 세 명이 다같이 무슨 약이라도 먹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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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4-01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

hallonin 2007-04-02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