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4분기 일본 TV 신작 애니메이션들의 달리기가 시작됐습니다.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신작들의 홍수 속에서 눈에 띄는 것은 상당히 고퀄리티를 지향하는 애니들이 다른 때에 비해서 다수 포진하고 있다는 건데 대체적으로 고른 완성도를 보이고 있는 초반이라 여느 때보다 전반적인 만족도가 높은 듯 합니다.
[나노하] 3기와 [하야테처럼]이 시작되서 사방에서 씹덕씹덕중이지만 마법변신소녀 따위는 [에스카레이어]로 날려버렸고 [하야테처럼]은 애초에 관심밖이었으니 뭐 패스.
일단 가장 기대했던 것은 곤조에서 만드는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는데, 뭐 워낙 쟁쟁한 스텝들이 대거 낑겨 들어간데다 1화 만큼은 최강인 곤조인지라 일단 그럭저럭. 캐플릿 집안을 제거하고 공중도시 베로나를 장악한 몬태규 조폭과 남장한 의적 줄리엣,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한 면상의 로미오가 에쿠우스 타고 등장하는, 곤조의 전작인 [암굴왕]과 궤를 같이 하는 고전 컨버전 애니. 나쁘진 않은데 생각외로 너무 심심해서 그냥 안 볼까 합니다. 곤조는 무슨 공장 찍어내듯 만들어대는군요 현재 진행중인 것만 해도 몇개더라.... 꿰냐 이름을 걸고 나온 레나팍 박정현이 부른 주제가는 일본인이 아닌 제가 듣기에도 뭔가 액센트가 강하게 찍히곤 하는... 암튼 외국인이 일본어로 노래 부른다는 걸 팍팍 느끼게 해줬음. 좋긴 좋네요.
언제나 기본은 해주는 본즈의 이능력자들 이야기. [흑의 계약자]도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어떤 조건을 수행함으로써 특정한 능력을 가지게 된 이들과 그를 사냥하는 이들, 그리고 그 사이에 낀 보통인간들의 이야기. 튼실한 작화와 적당한 긴장감을 수반하면서 진행되는 중인데, 뭐 워낙 뻔한 패턴이긴 해도 볼만은 하다는 생각입니다. 음악은 칸노 요코가 맡았는데 별 존재감이 안 느껴짐.
사실상 4월 최대어였던 건 [럭키스타]입니다. 4컷만화였던 원작이 2006년 애니업계를 하루히 하나로 말아먹은 교토애니에서 만든다는 것만으로도 프리미엄이 붙어버려서, 예전에 북박스에서 오퍼를 넣었던 것으로 기억하나 현재 판권은 대원에서 소유중(카도카와 계열이라는 메리트도 작용했을 듯), 4월 내로 단행본이 나온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올해 교토애니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꽉 찬 스케줄(카논-럭키스타-클라나드)을 짜놓고 진행중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교토애니답게 월등한 작화 퀄리티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소라빵을 위쪽부터 먹을 것인지 아랫쪽부터 먹을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하며 관련된 수다를 떠는 걸로 전체의 50% 가량을 소비합니다. 본편보다 파일럿으로 들어가있는 럭키채널이 훨씬 재밌음. 사실 정말 공감도 안되고 재미도 별로 없었던 원작을 보고선 교토애니에선 이걸 무슨 생각으로 만드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만.... 공들인 티가 나긴 하지만 4컷만화 포맷을 옮겨왔기 때문에 전작들에 비해 화려함보다는 소박함에 맞춰져 있는 소품인 느낌이라, 일단은 후속작인 [클라나드]를 준비하기 위한 쉼터라고 보입니다.
4월의 복병. 가이낙스가 드디어 한 건 터뜨렸습니다. 프로모션 포스터만 보고선 가이낙스도 이제 막장이군 이란 생각이 들게 만든 [천원돌파 그렌라간]. 정말 반포기한 기분으로 접했는데, 이건 뭐 정말 화끈하군요. 퀄리티도 TV판이라곤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출중. 전개는 시원시원. 방황하는 소년과 갇힌 세계에서의 탈출, 그리고 성장이라는 가이낙스 전통의 방향성이 [프리크리] 이후 각이 잡힌 특유의 활극형 연출과 더불어 그랑죠 디자인을 떠올리게 만드는 메카닉과 삭막한 지구에서의 모험이라는 고전적인 틀을 갖추고 나타나자 저 진부한 이미지들을 모조리 날려버리는 즐거움을 선사해주고 있습니다.
스폰서로 소니뮤직과 코나미, 그리고 저 'M'이 붙어있다는 점에서도, 빠방한 자금력을 앞세워 퀄리티가 저하될 가능성은 낮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