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시절 이야기다. 팀 버튼과 그의 아이콘이 온전하게 매혹 그 자체로 불릴 수 있었던 때가. 그는 마치 내가 만들어내고 싶어하는 것을 완벽하게 드러내보여주는 세계와의 통로 같았다. 나는 귀신이 된 광인이 튀어나왔던 슬랩스틱코미디 [비틀주스]에 열광했고 더없이 우울한 기운으로 가득했던 두 개의 [배트맨]의 태생적인 마초성과 우울함에 중독됐으며 그가 그려낸 에드워드 우드 주니어가 겪어야 했던 어느 짤막한 시간의 연대기에서 실패한 삶에 드리워지는 우울이 어떻게 관조적 페이소스와 만나 미래의 영광으로 드러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앞서 [가위손]에서 절절하게 확인할 수 있었듯이, 그는 우울한 동화와 풍자극의 일인자였다. 그것을 잊지 않았다면 모두가, 심지어 [가위손]과 [배트맨]에 눈이 익어버린 그의 지지자들마저도 [화성침공]을 낯설어하고 있을 때, 60년대식 [비틀주스]의 재림에 기뻐하는 것이야말로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그런 그가 순수하게 불온한 동화의 세계를 열어제끼기 위해 선택한 것이 너무도 팀 버튼 다운 설정으로, 또 너무도 팀 버튼 답게 아날로그적인(그래서 언제나처럼 돈이 많이 드는) 결과물로 드러난 것이 [크리스마스 전야의 악몽]이었다.
[크리스마스 전야의 악몽]은 성공적인 작품들이 가지는 공통된 조건들 중 하나이자 팀 버튼이란 인물의 본능적인 경지라고 불러도 좋을 이미지와 플랫폼의 절묘한 결합을 통해 독자적인 시너지를 자아낸다. 팀 버튼이 가지는 특유의 음울한 세계에서 수혈 받은 망가진 인형을 모티프로 삼아 그의 디자이너적 재능의 집적체로 창조된 감성적 열외자들을 대변하는 더없이 매력적인 캐릭터들은 그가 관여했던 어떤 작품들에서보다 영화 자체를 완전하게 관장하며 크리스마스를 악몽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다수의, 혹은 소수의 모든 어린이들 또는 어른들의 불온한 감수성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타고 완성됐다.
2004년 10월에 발매된 PS2용 [크리스마스 전야의 악몽 : 부기의 역습]. 애니메이션에서 1년이 흐른 뒤의 시점이 배경으로 잠시 여행을 떠났던 잭이 그가 없는 사이에 마을을 가로챈 우기부기와 맞서 싸우게 된다는 내용. 아트디렉터였던 딘 테일러의 참여 하에 액션게임의 명가 캡콤이 제작하여 상당한 호평을 받았었다.
실상 영화가 보여주는 플롯의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 전야의 악몽]이 만들어진지 벌써 13년이 되어 오는데도 수많은 파생물들(PS2, GBA용 게임, 보드게임, 피규어, 팬시 등등. 일본에선 무려 1년 하고도 2개월 전에 발매된 통상판 DVD가 여전히 주간 애니메이션DVD 판매량 20위권 안에 들어있다!)을 통해 아직도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팀 버튼이 고안해낸 세계의 매력과 그 모든 것이 조합되어 형성해낸 막강한 아우라 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새침한 우울증의 매력에 눈뜬 우리는 아주 오랜만에, 또는 어떤 이에겐 처음으로 자신의 틀에 꼭 맞는 봉제인형 수퍼스타를 만난 것이다. 당연히 이후의 크리에이터들에게 끼친 이미지적 영향력은 지대했다. 그들이 잭과 샐리의 응용판을 내밀면 내밀수록 팀 버튼이 원전에서 보여줬던 디자인적 탁월함은 확고한 클래식이 되어가고 있었다.
새 포스터.... 근데 영 황스럽다.... 우리나라에선 12월 초에 개봉 예정.
그런 [크리스마스 전야의 악몽]이 디즈니의 울궈먹기 전략에 의해서 기쁘게도 이번에 다시 찾아온다. 3D라는 타이틀이 붙은 새 버전 [크리스마스 전야의 악몽]은, 아무래도 색감이나 소소한 묘사의 부분에서 원작에 덧씌워진 기술력의 힘으로 업그레이드된 듯.... 이미 [화성침공] 이후 디지털과의 동거를 허락한 팀 버튼이 이번 버전에서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예고편만 봐선 변화된 부분이 잘 포착되지 않는달까.
http://adisney.go.com/disneypictures/nightmare/index.html
그러나 이번 개봉과 함께 무엇보다도 즐거운 것은 구하기 힘들었던 사운드트랙도 재발매됐다는 것. 그것도 2for1!
안녕하세요. 오늘 밤 어때?
헐리웃에서 가장 사랑하는 음악가인 동시에 팀 버튼 만큼이나 독자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대니 앨프먼의 존재감을 작곡 및 주인공 잭의 목소리 연기에 더하는 노래 솜씨의 출중함으로 인해 더없이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운드트랙은, 어쩌면 대니 앨프먼의 음악색깔에도 가장 잘 맞았던 영화 자체의 면모와도 완벽하게 어울리거니와 뮤지컬 형식이라는 장르를 소화하는데 있어서 하늘이 이 가뜩이나 재능 있는 양반에게 또 한 번 불공평한 손길을 내주고 있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
이번 [크리스마스 전야의 악몽] OST의 우선적인 메리트라면 원 사운드트랙의 리마스터링이란 점은 차치하더라도 무엇보다도 일단 절판된 사운드트랙을 다시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익성이 별로 안 좋았던 탓에 일찌감치 시장에서 사장되야 했던 이 비운의 사운드트랙의 재발매를 오매불망 기다렸던 '크리스마스 악몽' 매니아들의 손을 떨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추가된 CD 한 장에는 본사운드트랙에 실린 곡들을 소스로 한 뮤지션들의 어레인지들과 원곡의 데모들이 실려있는데, 참가한 뮤지션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너무나 딱 맞는 캐스팅의) 마릴린 맨슨의 'this is halloween'과 피오나 애플의 'sally's song'. 특히나 피오나 애플의 노래는 더도 말고 그녀가 불렀던 비틀즈의 'across the universe' 어레인지, 그 수줍은 듯 거침없는 몽환적 중독성의 깊이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