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중반에 번역되어 나온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는 그제껏 소모적인 담론으로만 탕진되고 있던 소위 '한국의 포스트모더니즘'이란 것이 얼마나 허무하고 쓸데없는 일인지를 단박에 깨닫게 해주는 물건이었습니다. 이미 옆나라에선 그 극단까지 달려가서 있는대로 부숴버린 다음 그 파편들을 수거하는 차원에 들어서 있는 판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선 그게 '최신 트렌드'였으니까요. 뭐 나아가서는 우리나라에서의 문학경험과 그 승화의 진부함에 대한 재확인이었습니다만. 암튼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는 그 파괴력에도 불구하고 별로 언급되진 못했고(않았고?) 먼훗날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벤치마케터로 의심되는 박민규라는 작가가 나타나서 한국문학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기이한 현상을 목도하게 만들 때까지(다카하시 겐이치로의 데뷔작 [사요나라 갱들이여]는 일본에서 1981년에 출간됐습니다) 그 절판된 책은 이곳저곳을 떠돌거나 언급되면서 독버섯처럼 열광적인 컬트팬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로인해 헌책방을 쏘다니거나, 도서관에서 훔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인간군도 형성해냈죠.

 

뭐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도 꾸준히 언급되던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결국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의 재출간, 이어서 끝내주는 출발점인 [사요나라 갱들이여]가 발간됐고, 그와 더불어 그럭저럭 팬들도 더 불고 토양도 생겼고.... 하다 보니 이젠 한꺼번에 튀어나와버렸습니다. [겐지와 겐이치로]와 [존 레논과 화성인]이라는 두 개의 책이 거의 시차를 같이 해서 이번에 나왔더군요. 뭐 일본문학이 돈이 되니까 이런 것도 나오네.... 싶기도 하고. 라이트노블쪽의 걸물들도 속속 출판되는 걸 보면 그래도 슬슬 자리가 잡혀가는 중인가... 싶기도 합니다. 뭐 이젠 이런 태도도 진부하긴 합니다만 예전에 데이빗 린치가 [광란의 사랑]으로 칸느에서 왕자리를 먹었을 때 그에 떨어진 때늦은 비판, 메이저가 된 컬트는 이미 컬트가 아니라는 오래된 코멘트가 생각납니다만,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컬트였던 건 우리나라에서였지 일본에서의 얘기는 아녔죠(데이빗 린치는 그 전에 [듄]이라는 돈 깨나 들인 SF물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시의성과 국지성으로서의 컬트는 단어 그 자체의 의미에 충실하게 한계를 상정하고 시작되는 법. 나의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이렇지 않아? 히히. 뭐 그래도 수용가능한 감수성의 한계란 건 여전한 것 같습니다....

[겐지와 겐이치로]가 꽤 관심이 갑니다. 일단 제가 마음먹고 있는(그러나....) 것이 손창섭 소설들을 다시 써내는 건데, 어느 정도는 롤모델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했습니다만. 그러나 좀 훑어봤는데 이 작품에서 그가 보여주는 다시쓰기의 방법론과 제가 생각하는 방법론은 다르더군요. 뭐 그런 요인은 생각 안한다 해도 관심이 가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아니, 확실히 읽고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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