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의 탑은 그 자체로 상징적이다. 테드 창은 여기서부터 읽기 시작하라고 한다. 그 결말을 생각해보건데, 이 작품은 확실히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대한 일종의 초석과도 같다. 탑을 올라가기 직전 스쳐지나가듯 볼 수 있었던 그 무언가의 돌덩어리. 이해는 여기에 실린 작품들 중 최고였다. 장르적으로 소설에서나 가능한 몇 안되는 기술적 독자성을 보여주는 이 이야기의 짜임은 정밀하고 세심하며 그 모든 의도된 장치들이 예정된 목적을 향해 예리하게 파고들어오지만 중심부에 자리한 것은 인간 감정에 대한 인문학적인 이해다. 영으로 나누면은 일종의 공포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단 하나, 축의 붕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그 두려움은 숫자가 바탕이 되어 구축된 모든 학문이 지닐 수 있는 무의식적인 심연일 것이리라. 네 인생의 이야기는 구조적인 면에서 어떤 탁월하고도 아름다운 경지를 보여준다. 닫힌 경험의 소유자라면 쉬이 다다를 수 없는 영역인 동시에 이 이야기는 테드 창의 설명에 더해져 커트 보네것이 그 인지적으로 더없이 잔인한 자신의 작품세계에도 불구하고 노구를 이끌고 이라크 반전 집회에 참석하며 마냥 회의론자이지 않을 수 있는 이유를 우회해서 알려준다. 일흔 두 글자가 보장하는 풍부한 함의들이 상대적으로 그토록 짧은 분량에서도 온전하게 살아있다는 걸 알게 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기호가 승리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인류과학의 진화는 [네이쳐]에 실렸다는 것으로 그 자체적인 함의의 기능을 수행한다. 이것은 소설이며 동시에 선언문이고 또한 위로이자 희망에 대한 이야기다. 지옥은 신의 부재는 아우구스티누스적 개념의 확장판이다. 허점이 아닌 응용할 부분으로서의 여력이 많이 보이지만 그것이 이 소설이 재미없다는 소리는 아니다. 천사의 강림이란 소재의 신선함은 이 이야기의 영화 시나리오화를 강력하게 욕구케 만든다.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소고 : 다큐멘터리는 올리버 스톤이 만들면 딱일 듯 싶다. 잘 들여다보면 사회파 드라마만이 아닌 온갖가지 장르를 다 만들어온(멜로, 서사, 스포츠, 스릴러, 액션 등등 올리버 스톤만큼 장르를 넘나든 감독도 몇 없다. 다만 몇 개가 너무 쎄서 그리 각인된 것뿐이지) 올리버 스톤이라면 이제 슬슬 자기 리스트에 SF도 추가하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알렉산더]처럼만 안 만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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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7-04-06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참. 한참 웃었어요. 알렉산더처러만 안 만들면 되죠, 정말.
테드 창의 신간은 안 나오나 몰라요. 기다리고 있는데.

hallonin 2007-04-08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정도 퀄리티로 쓰는데 다작까지 한다면 뭐랄까. 억울한 사람들 많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