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년의 어느 날. 세계는 온통 어두운 기운으로 가득하다. 세계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태어난 아이가 고작 18년을 살고서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모든 인류에게 평등하게 내려진 끝이 안 보이는 불임은 지구상에서 인간이란 종을 서서히 죽음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세계 곳곳에서 서로를 죽여대느라 정신없는 분쟁은 끊이지 않고 있으며 그것은 테오도르 파론이 공무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런던에서도 마찬가지 얘기다. 전직 사회운동가였던 그는 꿈 많았던 시절을 버리고 희망 없는 세계에서 기계적인 관료직을 그럭저럭 수행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처지다. 그런 그에게 옛 연인이면서 반정부주의자들의 리더격인 줄리엔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녀는 그에게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기적을 보여주면서 간단한 모험을 제안한다. 아주 손쉬워보이는 모험이지만, 나중에 가선 결코 그렇지 못할 모험을.


[칠드런 오브 맨]이 그려내는 미래상은 인종차별과 사상의 차이들이 빚어내는 현재의 잦은 국지전들에 기반을 두고 더욱 진화하여 현대 문명의 시작이었던 런던 한복판에서 폭발로 터져나가는 식료품 가게가 일상이 되버린 디스토피아를 보여준다. 테러는 전세계에 만연하며 죽음과 증오 또한 가득하다. 그렇지 않아도 가만히 있어도 다 죽어버릴 운명인데도 인간은 서로를 지구에서 될 수 있는 한 빠르게 지워버리려고 노력한다. 우리 휴머니스트들은 그 지옥 속에서 피어난 단 하나의 희망을 위해 어떻게든 도망치고 도망쳐서 그 희망이 미래가 될 수 있는 곳에 안착해야 한다. 휴먼프로젝트라는 이름의 꿈에.


여기서 등장하는 휴먼프로젝트란 집단은 사실 스토리적으로 보면 조금 치사한 장치기도 하다. 휴머니스트들의 마지막 남은 순도 100% 희망덩어리인 휴먼 프로젝트는 어떤 이데올로기적 트러블도 발견되지 않는 이상향으로서 묘사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의 축을 단단히 잡아주고 있긴 하지만 동시에 그것에 의심을 품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걷잡을 수 없게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위태로운 지지대다. 물론 [칠드런 오브 맨]은 몇 부작으로 나뉜 드라마 시리즈가 아니며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현명하게도 그런 복잡한 모험을 감행하지 않는다. [칠드런 오브 맨]은 그에 맞춰서 완전하게 미래를 제시해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 뒤를 상상하는 것 또한 보는 이의 몫이다. 다만 휴먼프로젝트를 향한 맹목성 때문에 영화의 진지함이 다소 깎여 나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순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 맹목성이야말로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세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그 모든 자잘한 논란들을 잠재우고, 단언컨데 [칠드런 오브 맨]은 보지 않은 사람을 후회하게 만들 흔치 않은 영화다. 당신은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못했다는 것을 억울하게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내가 그렇다). 위에서 언급한 정도의 잡음을 빼면 스토리는 안정적이고 개개 연기자들의 연기는 적재적소에 자리하고 있으며 연출은 영화를 다루는 이로서의 알폰소 쿠아론이 어떤 경지에 도달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두 번에 걸쳐서 나오는 클라이맥스에서의 롱테이크 시퀀스는 가히 압권인데 특히 두번째 롱테이크는 그 기술적 완성도에 있어서나 감정의 승화를 노리는 드라마적 치밀함에 있어서나 보는 이로 하여금 숨막히는 영화적 경험을 선사해준다. [블랙호크다운]과 [스네이크 아이즈]의 첫 시퀀스와 [희생]이 뒤섞이면 어떤 장면이 나올 것 같은가. [칠드런 오브 맨]은 그 답을 보여주고 있다.

 


http://www.film2.co.kr/feature/feature_final.asp?mkey=4339


2006년의 시대정신은 온전히 멕시코 감독들의 것이었다. 세 명이 다같이 무슨 약이라도 먹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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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4-01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

hallonin 2007-04-02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