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검객무정검 세트 - 전5권
고룡 지음, 최재용 옮김, 전형준 감수 / 그린하우스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중학교 때였던가, 사랑하는 여인의 결혼식에 웨딩드레스를 보내는 남자 이야기가 있었다. 여자는 너무 슬퍼서, 그게 발목이 다 나오는데도 고치지 않고 입었다던가, 그런데, 나중에 나중에 아주 나중에 그 드레스를 고치는데-잘 기억이 안 나는데, 딸의 결혼인가, 손녀의 결혼인가, 뭔가 이제 고칠 수 있는 사람이 그 드레스를 고치는 거지- 단을 풀었더니, 어디 어디로 언제 나오라는 쪽지가 들어있다던가, 하는 이야기였다. 누군가 아련아련하게 들려주던 그 이야기를 나는, 뭐야? 싶게 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게 뭐래, 그게 왜 아련아련이라니, 바보 멍충이들이구만. 뭐 인연이 아닌 거지. 

내가 이런 사람이라서, 나는 이 이야기가 그렇게 좋지 않았다. 우정과 사랑 가운데, 우정을 택한 남자가 자신을 사랑한 여자를 양보?한다? 와 역시, 여자인 나는 좋지 않다. 기둥 줄거리가 그런 거다. 읽은 거라고는 김용 뿐인 일천한 무협독자가 게다가 건조하기가 상상을 초월하는 여자인 내가, 이 책을 좋게 읽을 여지는 정말 여러모로 없는 거다. 무협영화의 쓸쓸한 아련함을 그래도 좋아하는 나에게, 남은 게 있다면 쓸쓸한 분위기다. 잔뜩 힘을 주고 묘사하는 문체를 탈탈 털고 나면, 여전히 칼을 잘 쓰는-이게 가능한가,라는 실용적인 질문은 항상 했다, 내가- 술꾼 아저씨가 십수년이 지난 사랑을 아쉽게 붙잡고 있는 이야기 가운데, 오래된 은원이 뒤섞여 다시 이야기가 펼쳐진다. 여자 악당들이 등장하고, 남자 악당들도 등장하고, 교활한 아이도 등장하는 이야기 안에서 나는 좋다던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무언가 '시동'을 보고 읽었을 때 느꼈던 거리감을 또 느끼면서 읽었다. 지나치게 수동적인 여성-그래서 사랑은 받지만, 사랑할 수는 없이 불행한-과 지나치게 능동적인 여성-사랑받고 있는 동안, 사랑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조종하려고 하는, 그래서 결국은 버림받는-이 등장한다. 남성들의 우정 가운데, 여성이 배경이나 악당으로 존재하는 이야기를 어렵게 읽으면서, 거대한 거리를 느낀다. 남성과 여성이 얼마나 다른 이야기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지 새삼 다시 한번 느낀다. 

십년이 굉장히 길게 느껴질 좀 더 어린 남자가, 사랑과 우정 가운데 고민하면서 읽는다면 아마도 좋으려나. 그렇게 어린 어떤 날 읽고 다시 읽으면 또 다른 기분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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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이유가 불편해서 아무 말도 못 남겼던 책이다. 다들 좋다는데, 나는 불편하네, 내가 뭐라고 나쁜 말만 남기나, 이러면서 남기지 않았었는데, 이제 내게 책이 없으니 뭐라도 남기기로.  


1.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되는 법


나는 왜 '주저하는 근본주의자'의 좋은 서평을 보고, 저자의 이 책을 사서 읽었을까. 이게 더 궁금했기 때문이었나. 

책을 읽고 무언가 앙상한 느낌이라 아무 말도 남기지 못했다. 

나는 이게 오리엔탈리즘, 처럼 느껴졌다. 

그 남자의 삶을 따라가는 것이 문학적인 느낌이 남았다기 보다, 서양이 동양을 보는 방식처럼 느껴졌다. 

뭔가 서양인이 부유해진 것은 달랐단 말이야, 싶은 반발심이 들었다. 

어디라고 달라? 싶은 반발심이다. 




2. 작은 것들의 신


슬픈 사랑이야기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의 배경이 껄끄러워서 집중하지 못했다. 인도를 배경으로 쓰여진 아픈 이야기가, 영국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나는 이 이야기의 어떤 면이 그럴 수 있었는지 생각했다. 이야기의 가장 큰 갈등은 전통적인 카스트제도에서 비롯된다. 카스트제도에 묶여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이 가장 나중에 드러나는 어떤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의심한다. 카스트,라는 절대 악이 존재했었던 과거의 세계를 결국 극복하지 못한 지금의 인도가 묘사되기 때문에, 영국인이 좋아했던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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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은 동경하게 되는 걸까. 자신이 가진 것, 자신이 하는 일에 뚱한 마음이 점점 커지고 다른 사람이 가진 것,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보는 마음이 자꾸 커지는 걸까. 자신이 가진 것에 행복할 수 있다면 더 좋을 텐데. 

삼시세끼 어촌편6을 보는데, 엄마 아빠 생각이 났다. 엄마랑 늘 가깝다고 생각했었지만, 회사에 들어가면서 아빠를 이해했다. 내내 학생이었다가 직장인이었던 그 순간에 아빠의 수고를 이해하면서 엄마를 조금은 노는 사람처럼 생각도 한 거 같다. 아이를 낳고 나서야, 아이를 기르면서야 엄마의 수고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랑 아빠가 얼마나 서로를 고마워했었는지도 떠올랐다. 가족들끼리의 원망이나 다툼이 없었다는 게 아니라, 그래도 그 안에서 서로의 역할을 존중했다. 

삼시세끼는 남자들만 나와서 그저 세 끼 밥을 먹는 거 뿐이지만, 보고 있으면 어떤 일이 더 가치있다 말하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가 생각하게 된다. 단순화시킨 하루의 일상이다. 무얼 먹을지 고민하는 삶. 고기를 잡았으면 그걸로 먹고, 못 잡았으면 다른 걸로 어떻게든 먹는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라는 말이 가지는 그 단순함이 눈 앞에 펼쳐지고 내가 하는 일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낚시를 나가는 유해진과 요리를 하는 차승원, 불을 피우고 요리를 보조하는 손호준은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모습으로 서로의 일들을 존중한다. 낚시를 같이 나갔다 들어온 저녁, 유해진을 고생했다면서 토닥이는 차승원은, 자신은 못 할 일이라며 고마워한다. 하나도 낚지 못한 어떤 날이나, 큰 고기를 잡고 어깨를 쫙 펴고 들어온 어떤 날이나, 그 사람에 대한 고마움이 다르지 않다. 늘 끼니를 걱정하면서 종종거리면서 요리를 척척 해내는 차승원에게 유해진이 전하는 고마움도 다르지 않다. 자신이 하지 못할 일을 해내는 서로에게 전하는 감사함이 전해졌다. 저녁 먹은 다음에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하다고 말하는 손호준에게서도 도움이 되고 있어서 좋은 그 마음이 느껴진다. 어떤 자신의 수고도 다른 사람에게 원망이 되지 않는다. 

더 중하고 덜 중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니고, 맡은 일 가운데 서로를 고마워하면서 함께 일할 수 있으면 좋다. 함께 살아가는데, 서로를 고마워하는 것처럼 중요한 게 어디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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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지니 광고( https://www.youtube.com/watch?v=isIGE_tudCo )를 보고 있었다. 

"엄마 말은 안 듣는 얘가 기가지니 말을 듣네"라는 내 말에 남편이 "어이구, 좋댄다"라고 추임새를 넣어서 빵 터졌다. 

엄마 말을 안 듣는 아이가 기계가 하는 말은 듣는가? 애초에 그 자체에 의문이 드는데 이런 광고는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사람과 말할 때는 눈을 보고 말하고, 화가 나서 말이 안 나올 때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 상대가 반응하는 걸 보면서 말의 톤을 조정하고, 말의 투를 조정하고, 이 설명하기 어렵고 복잡하고 감각적인 것들을 아이들은 어디서 배운단 말인가. 엄마가 이렇게 말할 때는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 거야,라는 다음의 예측이 일어나야 하지 않는가. 가족 안에서 배워야, 위험을 피하고, 위협을 감지하고, 상대를 분별하고, 가족 밖에서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아직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피곤한 나는, 기가지니에게 예절을 배우는 어린이가 걱정스럽다.


꽤 오래 전에 삼성의 패밀리 허브 광고를 보면서도 불편한 심사를 써놓은 게 있어서 퍼 놓는다. 기가지니와 대화하고 냉장고와 대화하는 것은 어쩌면 혼자 사는 쓸쓸함 가운데 필요할텐데, 아이와 엄마, 단란한 가족 가운데에서는 영 어색한 이야기만이 생긴다. 


삼성 패밀리 허브 광고, 가
- 사람들 눈에 저게 행복의 묘사인가, 이런 생각을
남편이 산 비싼 글러브가, 아내를 화나게 한다. 화난 아내를 살피며 분리수거도, 청소도 열심인 남편이 묘사된다. 남편이 아니라, 냉장고에게 말 거는 아내는 남편이 거의 포기할 즈음, '칼국수 먹을래'라고 질문한다. 냉장고가 아니라, 아이가 아니라, 자신에게 질문했다는 게 기쁜 남편은 자기가 하겠다며, 냉장고의 설명에 따라 요리를 한다. 칼국수를 끓여 아이와 아내가 함께 먹는다. 나는 묘사 하나하나가 다 무섭다. 남편도 아이도 있는데, 냉장고에 말거는 아내-라디오 좀 켜 줄래-, 비싼 가격이 찍힌 영수증을 보면서 문을 쾅 닫고 들어가는 아내, 혼자 노는 아이. 그저 저런 묘사를 못 보겠다. 냉장고라니, 요리를 보여주고, 속을 보여주고, 라디오도 나오는 냉장고가 '가족을 이어주는'이라니 끔찍해서. 아마도 사물 인터넷으로 다른 것들까지 연결했겠지만 역시 나는 아주 끔찍해서 못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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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수업 - 행복한 나라 덴마크의 교사들은 어떻게 가르치는가 행복사회 시리즈
마르쿠스 베른센 지음, 오연호 편역 / 오마이북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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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이상적이라 의심이 생겼다. 책을 읽으면서 가진 의심은 이런 거였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교사에 자율권을 줄 수 있지? 입학하고 9년이나 같은 선생님이면, 좋은 선생님이라면 그 9년은 좋겠지만, 만약 독재자같은 선생님이라면 그 9년은 끔찍하지 않나? 시험도 없고, 경쟁도 없다지만 교사에게 주어진 자율권이 크면, 민원도 많을 텐데. 부모들이 항의하지 않나? 그게 가능한가? 나는 계속 생각했던 거다. 

그러다가, 덴마크에 여전히 왕실이 있고, 내가 드라마 '궁'-https://ko.wikipedia.org/wiki/%EA%B6%81_(%EB%93%9C%EB%9D%BC%EB%A7%88)-을 보다가 느꼈던 어떤 통쾌함이 떠올랐다. 그 때 드라마 속의 여주는 평범한 가문의 평범한 소녀인데, 하루아침에 황태자비가 되어가지고는 온갖 시샘과 질투 속에 있었다. 여주가 무슨 파티에서 명문가의 자제들 가운데서 무시당하는 와중에 짠,하고 등장한 황태자가 여주를 무시하던 재벌의 아들, 딸, 명문가의 아들, 딸을 납작하게 눌러주는 장면이었다. 내가 느꼈던 통쾌함은 어찌 보면 모순적일 수도 있는데, 결국 넘지 못하는 차이가 있다는 것에 있었다. 재벌의 자제가 가진 부유함도, 명문가의 자제가 가진 어떤 배경도, 결국 당해내지 못하는 다른 게 있다. 아무리 잘난 척 하고 발버둥쳐도 결국 넘어서지 못할 어떤 것이 있다는 것에 통쾌함을 느낀 거였다. 같은 사람이지만 같지 않은 존재, 노력으로 다다를 수 없는 지경의 존재가 있고, 그 존재를 수용한다는 것은 억울하고 분할 수도 있지만 편안하고 긍정적일 수도 있는 거지. 

교육을 통해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세계시민을 기른다는 덴마크의 선생님들이 딛고 선 사회는, 무엇으로도 넘지 못하는 왕가를 가진 입헌군주국이고, 바이킹의 후예, 식민지배의 과거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namu_min&logNo=221253929309 )가 있는 나라다.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고, 시민 봉기로 대통령을 끌어내릴 수도 있는, 식민 피지배의 과거가 있는 여기의 교육,은 딛고 선 삶 가운데 최선이 아닌가, 생각했다. 다른 걸 가르칠 수도 있고, 부모가 다른 태도를 가질 수는 있지만, 여기와 거기는 다르고, 한 장면만을 오려서 배우는 것은 역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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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6 15: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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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8 06: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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