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의 반어법 지식여행자 4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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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삶이 궁금해서 혼자 소설을 쓸 때가 있다. 그 속에서 나의 아버지는 독재에 항거해, 신문사를 그만 둔, 이리 저리 직업을 전전해야만 하던, 굉장히 잘 생긴 젊은 남자고, 엄마는 초등동창인 남자의 잘생긴 외모에 혹해, 이름을 위장하고 펜팔을 하던 젊은 여자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이야기가 한권의 책이 될 때까지 열심히 추적해 소설을 쓰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요네하라 마리는 소설을 썼다.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이 아닌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자신의 어린 날 만난 멋진 무용선생님의 삶을 다른 어떤 날 추적해가는 이야기. 자신이 만났던 그 사람이 정말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제 그 사람의 삶을 이해할 만큼 자라서 알아가는 이야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추억을 되짚고, 아픈 역사를 되짚는 이야기다.   

저자는 어린 시절을 냉전시대 체코의 소비에트 학교를 다닌 일본인이다. 그 학교의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지나치게 훌륭한 무용선생님이 올가,이고, 그 선생님이 구사하는 언어습관이 칭찬을 가장한 비난으로의 반어법이다. 올가는 완벽한 무용선생님이다. 작가가 무용수의 꿈을 꾸게 할 만큼 공연으로써의 무용을 통해 다른 세상을 열어보일 수 있는 그런 선생님. 그래서, 저자는 궁금했던 거다. 나이를 알 수 없는 이 탁월한 무용수가 어째서,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에서 선생님이 되었는지. 무용수의 꿈을 접고 번역가의 삶을 살면서 중년에 접어든 작가는 이제 지구 상에 사라진 소비에트가 아니라, 러시아에서 오래된 소비에트 학교의 기록들을 보면서, 친구를 만나고 이야기를 만난다. 

그런데,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나의 기이한 호기심에 놀란다. 어이없는 권력을 가지고, 거리를 걷던 어떤 소녀라도, 자기 집 침대 위에 부려놓는 권력자 남성에 대한 이야기나, 스파이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수용소에 감금된 여성들에게 자행된 폭력의 열거에 집중하고 있었다.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중학생일때, 아니 고등학생일때 교실을 돌던 마루타에 대한 이야기처럼, 기이하게 나의 호기심을 끌어당겼다. 그건 악취미라고, 그건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면서, 눈이 가는 이상한 상태. 도대체, 인간이 어떤 짓까지 할 수 있는지 놀라면서 궁금해지는 상태. 집중된 권력에 대해 생각한다. 일말의 동경을 품은 소비에트에서 탈출한 무용수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인간에 대해 생각한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상상 그 이상의 악행들을 벌이는 인간이란 존재가 너무나도 신기해서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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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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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읽힌다. 너무 너무 너무 안 읽혀서 괴로웠다. 그 와중에, 나귀님의 글을 읽었다-생태요괴전에 대한, 그러니까 늑대인간과 드라큘라를 언급했던-. 그래서 그런 것인가. 아 그 이전부터 나는 이 책이 앞으로 나아가지지 않았다. 문장 중간 중간 앞에서 무얼 읽었는지 잊었다. 조직의 재발견을 열광하면서 읽던 때와 무엇이 다른가. 촌놈들의 제국주의는 아직 시작도 못했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떠나버렸기 때문인가.  

내가 88만원 세대가 아니라서인가.   

계급을 언급할 수 없어 세대를 말했다는 논란을 이미 봐버렸기 때문인가.

스쿠루지 영감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섞이지 않고, 글 전체적으로 대신 변호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나는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는 지금의 이십대를 알고 싶었는데, 알 수 없었다.  

20대를 설명하는 무수한 근거들에 의심이 생긴다. 프랜차이즈에 대한 선호가 세대구분으로 설명되는가. 30대인 나도, 60대인 우리 엄마도 백화점과 마트에서 물건을 산다. SSM이 들어서면서 동네 슈퍼에 30년지기 이웃들의 발길이 끊어진다는 기사를 읽는데, 세대 구분이 무슨 소용인가 싶다. 모든 말들에 의심이 솟아나서, 독서를 방해하였다.  

참여정부 시절 경제정책 실패를 언급하는 말들은 조직의 재발견을 읽을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내 맘에 박힌다.  

그래, 겨우 겨우 새벽에 잠이 깨어 다시 잠들지 못한 어떤 날 다 읽었다.  

선택지가 많은 젊은이가 가장 반항할 수 있다,는 말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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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따 재밌다. 장근석, 좋아 죽겠다. 

그런데, 어제는 박신혜(고미녀 역)의 구두가 너무 너무 너무 거슬렸다. 고아원에서 자랐고, 견습수녀였다가, 우여곡절 끝에 쌍둥이 오빠대신 남장을 하고 아이돌그룹에 들어가 있는 그녀가 마침 서울에 올라오신 원장수녀님을 만나려고 간만에 여장을 하고 외출하는 장면이었다. 색은 까맣지만, 9센티쯤 되어 보이는 아슬아슬한 힐을 신고 있었다. 황태경을 기다리다가 옷을 사가지고는 늦게나마 온 황태경을 향해 뛰어오는 그 불편한 걸음걸이가 거슬렸다. 숙소로 돌아갈 때 다시 남장으로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그녀의 가방이 너무 작았던 데다가, 그런 복잡한 상황에서 역시 제일 심난한 것은 신발인데, 힐처럼 성별구분이 뚜렷한 데다가 부피도 꽤 차지하는 신발은 답이 안 나오니까.
기억에 옛날에도 박신혜의 구두가 거슬렸던 적이 있다. 그 때도, 극 중에서 어려서 부모를 잃고 늦은 나이에 입양된 여자-알고보니 입양한 사람이 친엄마였던가, 기억이-였는데, 내내 힐을 신고 출근해서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본 기억이 있다.
그래서, 어제는 이게, 박신혜의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인가, 생각하는 지경이 되었다. 연기도 출중하고, 얼굴도 예쁜 이 여자 연기자가 가진 극심한 콤플렉스로써 키 말이다. 충분히 예쁘고 사랑스러운 그녀가 그런 콤플렉스를 가졌다는 것도 안타깝지만, 그 콤플렉스의 크기가 극 중 상황이나,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데도 선택하게 할 만큼 어마어마하다는 게 더 슬프다. 그래도, 그래도,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연기자로써 고미남 역을 하는 고미녀로 자신을 설명해야 한다면, 힐을 포기해야 한다. 내가 '미남이시네요'에서 만나는 그녀는 '키 때문에 힐을 포기 못하는 배우인 박신혜'가 아니라, '절제의 미덕을 내내 학습했던 견습수녀 고미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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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이예요 2009-10-27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의 생각은 드라마의 흐름보다 그 컷에 비중을 두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그냥 이십대의 예쁜여자는 이러지 않을까? 라는 머~~

별족 2009-10-28 14:34   좋아요 0 | URL
음, 그럼 신혜양에게 미안하군. 그저 내가 힐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써놓고 생각을.

별족 2009-10-30 13:10   좋아요 0 | URL
그래, 나처럼 생각하면, 굳이 가발을 쓸 이유도, 치마를 입을 이유도 없구나. 머리가 길건,짧건, 치마를 입었건, 바지를 입었건, 힐을 신었건, 로퍼를 신었건, 여자는 여자, 남자는 남자긴 하구나.
 
자긍심 - 건강한 인간관계와 행복의 바탕
마릴린 소렌슨 지음, 진성록 옮김 / 부글북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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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너무 싫은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은 밥을 사도 싫고, 선물을 줘도 싫고, 말을 걸어도 싫어서,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식으로 감정을 낭비하는가 심난해져서, 이 책을 샀다.  그렇다. 초록불님의 블로그(orumi.egloos.com)에서 이 책을 소개하면서 이런 말을 인용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하고는 어울리지 말라"-그런 사람이란 자신의 자긍심을 갉아먹는 사람이다-. 나는 그 인용문을 읽는 순간, 나의 옹졸함, 나의 편협함, 나의 온갖 악덕들을 변명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래서 이 책을 사서 읽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내 자신에 대해 생각한다.  그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 혹은, 나를 대하는 남편의 태도, 오히려 나랑 가까운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나는 그 말에 왜 화를 내는가. 나의 어떤 면을 그 말들이 자극하는 것일까. 나의 나에 대한 자긍심은 어떤 성분들로 구성된 것일까.   

"있잖아, 그 사람이 그런 의도가 있는 것처럼 내가 느꼈어도, 그 사람이 그게 아니라고 하면, 믿어야 하잖아.  그 사람이 아니라고 했는데도, 내가 너는 그랬잖아,라고 인정하라고 할 수는 없는 거잖아."

내가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니까, 남편은 그 사람과 자신이 같냐면서 나에게 화를 냈다. 이 때 남편은 나의 어떤 행동이 자신을 무시해서 그러는 거라면서 내가 아니라고 하니까, 계속 인정하라고 했다. 가까운 관계에서 생기는 오해는 상대가 그렇게 느꼈다고 해서, 모두 인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책 속에는 타인의 반응을 끊임없이 오해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자신의 훼손된 자긍심때문에, 그저 단순한 거절에도 영원한 절교를 상상하는 사람들, 그래서 인간관계를 회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이 오해하는 상황들이 나의 무엇 때문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말을 오해하는 남편과 동료의 말을 오해하는 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 좀 더 단순해지기로 결심하였다.  나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상대를, 관계를, 확대해석할 필요는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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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1 - 개정판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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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한 여인, 미묘한 사랑의 감정, '바람의 화원'에서도, '커피프린스'에서도 익숙하다. 내년에는 이 책도 그런 드라마에 하나를 보탤 것이다.  

책은 재미있다. 그 상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여성적 활동으로는 돈을 벌 수 없는, 글쓰고 책읽는 재주만 있는, 병약한 남동생을 가진 소녀가장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것 뿐이었다고 절대 동의한다. 내내 책만 베끼던 이 소녀가 자신의 학문의 깊이를 알 수 없다는 것도, 남성들만의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이루어진 약속들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도, 그래서 오히려 배포 큰 남자 중의 남자로 인식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시대의 공기를 잡아내는 묘사도 좋다. 당파들 간 적개심, 과거시험장의 풍경, 

이야기에 거의 완전히 속을 뻔했는데, 나는 장르로서의 로맨스에 적응하지 못했다.  

내가 비극을 바랄 만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런 엔딩은 좋지 않다. 지금까지 잘 속았는데, 마지막에 이게 다 꿈이었다는 걸 깨닫는 결말처럼 허무하였다. 그렇지, 이건 로맨스였어,라고 되뇌게 하는 결말. 로맨스로서는 전혀 나쁘지 않다. 그저, 내가, 아직, 로맨스의 세계관에 적응하지 못한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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