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 1
프랑크 쉐칭 지음, 박종대 옮김 / 김영사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두껍다. 겨우 겨우 마쳤다. 바다를 얼마나 모르는지, 모르는 독자를 위해 작가는 바다에 대해 얼마나 많은 설명을 하는지 영화라면 건너뛰고 말 것을, 차곡차곡 쌓아올려 현실감을 주느라고 책이 정말 두껍다. 현실감을 쌓아올린 그 상황에서 블록버스터 재난영화나 인디펜던스 데이같은 SF물같은 폭풍전개로 넘어가서 급하다 싶은 결말에 이르기까지, 머릿 속에서 질문이 한가득이다.

인간은 과연 이러한 반격에, 대항할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을까? '대항'이라는 것을 할 수는 있을까? - 월등하게 이지적인 이런 전 지구적인 존재에, 우리는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결말이 무리한 전개라고 느껴지는 이유는 그래서,이다.

인간이 생태계에 담당한 역할은 무얼까? -  요한손이 리에게 항의하는 그 순간에, 우리가 모르는 '이르의 역할'을 들어 군사적 대응에 저항하는 요한손에 이입하지 못하던 나는 내 자신에 대해 스스로 생태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게 모순이었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나는 '이르'가 '인간의 멸종'을 결정하고 실행할 때, 이미 인간의 '계'안의 역할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건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인간은 '계'안에서 그저 유해균이나, 질병, 그렇다고 해서, 묘사 안에 '유해균'이나 '질병'은 그렇다면 '멸종', '박멸', '제거'되어야 하는 것일까?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까지, 개체로서의 하나가 아니라, 군집으로 전체를 사고할 수 있는 존재의 삶은 어떤 방식일까? - 인간인 나를 생각하는 내 삶은 인류 안의 나를 생각하는 내 삶과 얼마나 달라질까? 인간 개개인이 인류,에 대해 생각한다면 인간은 다른 방식으로 살까? 지금 인류,를 위해서,라고 행해지는 그 행위가 정말 인류,를 위하는 것일지 우리는 알 수 있을까? 

그 우월한 존재가 과연 '공격'을 택할까? 이런 상황을 '무언가'의 '적대적인 공격'이라고 상상하는 것이 인간중심적인 게 아닐까?- 인간은 인간에 의해 파멸의 상황에 처할 거라고 나는 언제나 생각하고 있다. 그 와중에 그런 모든 상황에서 피해자가 누가 되는가의 문제에 맞닥뜨리면 언제나 조금은 절망스럽지만-그런데, 정말 가장 문명화된 나라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만이 살아남을까?-, 이지적이고 과거와 현재 뿐 아니라 미래까지 생각하는 전지구적인 지적 존재는 '공격'을 택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깨달음의 끝에 '허무함'을 얻을 거라고 또 멋대로 생각하고 있다.

종말을 그리는 책이나 영화에서 내가 공감하는 어떤 장면은 이런 것이다. 이상한 일이 많이 일어났고, 누군가 정말 열심히 뛰고 무언가 했고, 다시 찾아온 평화의 뒤에 떠오르는 의문. 그 문제가 정말 그 행위때문에 풀린 것일까. 라는 것.  

가습기살균제,가 문제의 원인이라며 판매금지 신청이 내려진 날, 역시 답은 '더하는 게 아니라 빼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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