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오브 스피리트
이사벨 아옌데 지음 / 지리산 / 199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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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 아옌데는 정말 탁월한 이야기꾼이고, 그러면서도 그 속의 삶들은 얼마나 진하고 짙은지 입이 떡 벌어진다구요. 다른 나라의 고통에 무지한 어떤 사람에게도 이건 칠레에 좌파정권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그 좌파정권이 어떻게 자유선거로 집권했는지, 어떤 사람들이 그들을 지지했는지,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삶의 모습으로 보여주지요.

그건 거대한 정권의 생성과 몰락에 대한 줄거리가 아니라, 그 속에 어떤 삶, 아버지는 군부정권에 복무하는 지주이고 손녀는 혁명가를 사랑하는 어쩌면 특이하고 어쩌면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통해 보여주지요. 고문이나 죽음도 또한 그 안에 있지만, 미로속의 방에서 나누는 사랑이나, 커다란 용서도 또 그 안에 있지요. 이 삶의 모습들은 마술적인 묘사들로 더욱 아름답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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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바트 비룡소 걸작선 16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 지음, 박민수 옮김 / 비룡소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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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사람은 가끔 당황하면서도 행복하겠지만, 내게는 좀 애석한 습관이 있다. 책을 것도 내게 정말 좋았던 책들을 가끔 즉흥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주어버린다는 거다. 이 책은 우리 집에 묵은 동료에게 주었다. 선물이예요. 아들에게 주세요. 책을 선물할 때 얼마나 기분좋은지 말로 못한다. 가끔 책장을 뒤지면서 그 책 어딨더라, 하고 찾을 때는 정말 애석하지만.

크라바트는 책의 처음에서 비루먹은 소년이었다가 책의 말미에서 멋진 청년이 된다. 그렇게 변모하는 것은 학생이 바글바글한 그러니까 호그와트식의 마법학교가 아니고, 음침한 중세의 외딴 방앗간이다. 난 사실, 학생들 하나하나의 묘사의 상투성에 화를 내고 있었다. 살림하는 방앗간의 일꾼묘사가 내내 '보잘 것 없다'거나 '고작'이거나 였으니까. 그렇지만 그건 조금은 기우다. 복선이고, 방앗간 마법사를 속이는 것처럼 나를 또 속인 거니까.

마법사는 착하지도 않고, 크라바트는 쉽지 않은 선택을 해야만 한다. 마법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삶과 자신의 삶을 의지대로 선택하는 친구의 죽음을 묵과하지 않아도 되는 삶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자기 대신 다른 이를 죽이는 나쁜 마법사에 대한 응징으로 마땅히 후자의 선택을 해야 하지만, 난 내내 생각하고 있었다. 아까운데, 둘 다 가능하면 안 되는가, 하고. 쉬운 선택이 결코 아니다. 사랑도 없고, 우정도 없어도, 가끔은 욕망이 크면 마법이 그 모든 걸 가능하게 한다는 거짓 믿음에도 속으니까. 내가 이런 유혹에 자신없으니까, 땀을 흘리기로 결심한 이 멋진 크라바트가 더 좋은 거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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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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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고 싶은 글은 이렇다. 간결하게 딱 필요한 만큼을 쓰고, 나는 잘 드러나지 않는 그런 글. 진심이 묻어나는 단문,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나는 내가 글을 쓸 때 더 이상 길게 쓸 수 없는 것이 나의 성품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읽는 동안 '아, 난 쓸 말이 없었던 거구나' 깨달았다. 군더더기 없는 글은 감동적이다. 젊은 날의 여행경험을 듣는 것과 오래 살아 겪은 일도 많은 사람의 여행에 대해 듣는 게 또 얼마나 다른지 깨달았다. 어디에도 친구가 있고, 역사 속의 인물을 나름대로 해석하여 숭배하게 되는 마음도 알 것 같고. 소를 몰아 밭을 가는 늙은 농부의 악의없는 헐뜯음도, 산골 작은 학교의 선망도 아주 가깝고 싱싱하게 다가왔다.

나 사실 편견이 있었다. 쾌도난담의 김훈은 뻔뻔한 마초 아저씨 같아서 그의 책은 읽지 않으리라 하기도 했나보다. 그런데, 한겨레의 기자가 되고, 발전노조 파업에 대한 기사를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나의 편견은 차라리 솔직한 투명때문에 생긴 거였다. 물론 책의 활자가 좀 더 작거나, 혹은 줄간격이 좀 더 조밀하거나, 용지가 덜 빳빳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이 글을 더 많은 사람이 읽으면 좋겠지만, 그 글의 좋은 냄새보다 포장의 뻣뻣함에 질려버릴까 겁이 나니까,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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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1 - 반지 원정대(상)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한기찬 옮김 / 황금가지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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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감에 익숙함을 우선 고백하고, 주구창창한 구절들을 많이 건너뛰었음을 또 고백하고, 영화가 오히려 계속 읽는데 도움이 되었음을 또 고백하고. 그런 내가, '판타지의 고전'을 읽는다는 건 다른 문학의 고전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려웠다. 놀랍고 참신하다는 경탄대신, 무언가 익숙한 모양새들이 끊임없이 떠오른다.이 책을 다시 집어든 것은 사실 두번째다. 판타지 장르 자체에 대한 낯설음도 물론 있었지만, 다른 방식 - 만화든, 게임이든-으로 이미 만난 것 같은 느낌에 느리고 장황한 묘사에 계속 읽을 수가 없었다. 처음 만들어진 이야기는 변형되고 재해석되고 끊임없이 다른 모양으로 내게 왔었을 것이기 때문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영화의 상상력들이 놀랍고, 영화속의 프로도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분명 잘 만들어졌으나, 원작은 그보다 방대하다. 영화가 포괄하지 못한 에피소드들도 흥미진진하다. 고전은 그런 것, 이란 약간의 인내심!만 있다면 문제없다. 시들은 영어로 읽는 것이 더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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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
다카기 진자부로 지음, 김원식 옮김 / 녹색평론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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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발전소에 다닌다는 이유로 '공존불가능한 사람'이란 대접을 받은 다음에, 반대하는 논리들은 무엇일까, 궁금하여 샀다. 이 책을 읽고 내가 설득된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고 했다. 그런데, 설득되지 않았다.

발전소에 다니는 나에게 원자력 안전성 신화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공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상식적인 수준에서 '없다'고 말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10의 마이너스 24승 따위를 계산하는 사람이 얼마를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얼마를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기술적인 설명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깨끗합니다', '절대 안전합니다'라는 말은 신화가 된다. 나는 발전소가 있으면 없을 때보다는 나오지만, 그건 연구한 결과에 비추어 정해진 법적 수준 이하라고만 말할 수 있다. 그러고도 또 주춤하는 것은 안전하다,는 식의 신화만큼 방사능에 관하여 형성된 위험하다,는 신화때문이라서, 또 '완전히' 안전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토를 달 것이다. 원자력이 안전하고 깨끗하다고 주장하는 신화만큼, 방사능은 눈꼽만큼도 용납불가능하다는 신화도 만만치 않으니까.

난 설득될 수가 없었다. 내게 원자력은 기술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 수준의 문제다. 새로이 발견될 새로운 유해성을 지금의 내가 알 수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쓸 수 있었다면, 앞으로도 이렇게는 쓸 수 있을 거라고, '안전하다'는 신화를 '위험하다'는 신화로 다시 덮어씌우는 것도 그리 미더운 처사는 아니라고, 대형산업단지의 입지에 대해서 개미지옥이라고 묘사하는 것에는 설득될 수 없었다고 고백하겠다. 작은 어촌마을에 발전소가 들어서고, 마을의 '순박'한 촌민들은 발전소의 '지원금'을 계속 받아들여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존재가 된다,는 시나리오에는 또 분개한다.

전기도 작게 쓰고, 물도 작게 쓰고, 그래서, 더이상 발전소도 짓지 않고, 댐도 짓지 않게 되면 좋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거짓말장이이고, 발전소자체가 악인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이해도 설득도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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