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여성들 - 늑대를 타고 달리는
막달레나의 집 엮음 / 삼인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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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복잡한 문제였다. 성매매란 것은, 성산업이란 것은. 그런데도 이 복잡함은 역시 버겁다. 화마가 쓸고 간 자리에서 반쯤 타버린 일기장이 나오기를 벌써 몇 번째, 그 자리의 여성들은 갇혀있는 희생양이다. 명백히 사라져야 할 매춘과 나쁜 사람과 착한 사람의 대결구도를 책 속에서 찾을 수 없다. 그 지역으로 걸어들어가기로 결심한 연구자들처럼 책을 읽는 나도 당황한다. 내가 갇힌 이미지- 살아있을 때는 음탕하였다가 죽은 다음에는 창살에 갇힌 피해자가 되는 모순 같은 것-들이 깨어진다.

선량한 얼굴을 하고서는 매매춘여성에게는 바가지를 씌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나는 얼마나 다른가, '왜'를 연발하는 연구자와는 또 얼마나 다른가. 필리핀 여성이 카톨릭교도인 자신을 어떻게 납득시키면서 클럽에 일하는지, 그녀가 얻는 가족내 권력은 또 어떻게 기형적인지, 문제는 명료해지지 않고 더 복잡해진다. 아는 게 아니라, 이해하는 것은 여기에서 출발할 수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조각난 모습으로 아니라, 이상하게 변덕스럽고, 또 그럴 수도 있는 모습들을 보려고 마음먹는 것. 내가 복잡해지는 걸 버티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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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오브 스피리트
이사벨 아옌데 지음 / 지리산 / 199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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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 아옌데는 정말 탁월한 이야기꾼이고, 그러면서도 그 속의 삶들은 얼마나 진하고 짙은지 입이 떡 벌어진다구요. 다른 나라의 고통에 무지한 어떤 사람에게도 이건 칠레에 좌파정권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그 좌파정권이 어떻게 자유선거로 집권했는지, 어떤 사람들이 그들을 지지했는지,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삶의 모습으로 보여주지요.

그건 거대한 정권의 생성과 몰락에 대한 줄거리가 아니라, 그 속에 어떤 삶, 아버지는 군부정권에 복무하는 지주이고 손녀는 혁명가를 사랑하는 어쩌면 특이하고 어쩌면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통해 보여주지요. 고문이나 죽음도 또한 그 안에 있지만, 미로속의 방에서 나누는 사랑이나, 커다란 용서도 또 그 안에 있지요. 이 삶의 모습들은 마술적인 묘사들로 더욱 아름답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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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바트 비룡소 걸작선 16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 지음, 박민수 옮김 / 비룡소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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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사람은 가끔 당황하면서도 행복하겠지만, 내게는 좀 애석한 습관이 있다. 책을 것도 내게 정말 좋았던 책들을 가끔 즉흥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주어버린다는 거다. 이 책은 우리 집에 묵은 동료에게 주었다. 선물이예요. 아들에게 주세요. 책을 선물할 때 얼마나 기분좋은지 말로 못한다. 가끔 책장을 뒤지면서 그 책 어딨더라, 하고 찾을 때는 정말 애석하지만.

크라바트는 책의 처음에서 비루먹은 소년이었다가 책의 말미에서 멋진 청년이 된다. 그렇게 변모하는 것은 학생이 바글바글한 그러니까 호그와트식의 마법학교가 아니고, 음침한 중세의 외딴 방앗간이다. 난 사실, 학생들 하나하나의 묘사의 상투성에 화를 내고 있었다. 살림하는 방앗간의 일꾼묘사가 내내 '보잘 것 없다'거나 '고작'이거나 였으니까. 그렇지만 그건 조금은 기우다. 복선이고, 방앗간 마법사를 속이는 것처럼 나를 또 속인 거니까.

마법사는 착하지도 않고, 크라바트는 쉽지 않은 선택을 해야만 한다. 마법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삶과 자신의 삶을 의지대로 선택하는 친구의 죽음을 묵과하지 않아도 되는 삶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자기 대신 다른 이를 죽이는 나쁜 마법사에 대한 응징으로 마땅히 후자의 선택을 해야 하지만, 난 내내 생각하고 있었다. 아까운데, 둘 다 가능하면 안 되는가, 하고. 쉬운 선택이 결코 아니다. 사랑도 없고, 우정도 없어도, 가끔은 욕망이 크면 마법이 그 모든 걸 가능하게 한다는 거짓 믿음에도 속으니까. 내가 이런 유혹에 자신없으니까, 땀을 흘리기로 결심한 이 멋진 크라바트가 더 좋은 거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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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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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고 싶은 글은 이렇다. 간결하게 딱 필요한 만큼을 쓰고, 나는 잘 드러나지 않는 그런 글. 진심이 묻어나는 단문,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나는 내가 글을 쓸 때 더 이상 길게 쓸 수 없는 것이 나의 성품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읽는 동안 '아, 난 쓸 말이 없었던 거구나' 깨달았다. 군더더기 없는 글은 감동적이다. 젊은 날의 여행경험을 듣는 것과 오래 살아 겪은 일도 많은 사람의 여행에 대해 듣는 게 또 얼마나 다른지 깨달았다. 어디에도 친구가 있고, 역사 속의 인물을 나름대로 해석하여 숭배하게 되는 마음도 알 것 같고. 소를 몰아 밭을 가는 늙은 농부의 악의없는 헐뜯음도, 산골 작은 학교의 선망도 아주 가깝고 싱싱하게 다가왔다.

나 사실 편견이 있었다. 쾌도난담의 김훈은 뻔뻔한 마초 아저씨 같아서 그의 책은 읽지 않으리라 하기도 했나보다. 그런데, 한겨레의 기자가 되고, 발전노조 파업에 대한 기사를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나의 편견은 차라리 솔직한 투명때문에 생긴 거였다. 물론 책의 활자가 좀 더 작거나, 혹은 줄간격이 좀 더 조밀하거나, 용지가 덜 빳빳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이 글을 더 많은 사람이 읽으면 좋겠지만, 그 글의 좋은 냄새보다 포장의 뻣뻣함에 질려버릴까 겁이 나니까,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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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1 - 반지 원정대(상)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한기찬 옮김 / 황금가지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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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감에 익숙함을 우선 고백하고, 주구창창한 구절들을 많이 건너뛰었음을 또 고백하고, 영화가 오히려 계속 읽는데 도움이 되었음을 또 고백하고. 그런 내가, '판타지의 고전'을 읽는다는 건 다른 문학의 고전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려웠다. 놀랍고 참신하다는 경탄대신, 무언가 익숙한 모양새들이 끊임없이 떠오른다.이 책을 다시 집어든 것은 사실 두번째다. 판타지 장르 자체에 대한 낯설음도 물론 있었지만, 다른 방식 - 만화든, 게임이든-으로 이미 만난 것 같은 느낌에 느리고 장황한 묘사에 계속 읽을 수가 없었다. 처음 만들어진 이야기는 변형되고 재해석되고 끊임없이 다른 모양으로 내게 왔었을 것이기 때문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영화의 상상력들이 놀랍고, 영화속의 프로도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분명 잘 만들어졌으나, 원작은 그보다 방대하다. 영화가 포괄하지 못한 에피소드들도 흥미진진하다. 고전은 그런 것, 이란 약간의 인내심!만 있다면 문제없다. 시들은 영어로 읽는 것이 더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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