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묵시록 카이지 23
후쿠모토 노부유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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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이란 원래 공평하지 못하다. 그런 현실에 대하여 불평할 생각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세상은 네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세상이 너희들한테 기대하는 것은 네가 스스로 만족하다고 느끼기 전에 무엇인가를 성취해서 보여줄 것을 기다리고 있다. 
학교는 승자나 패자를 뚜렷이 가리지 않을지 모른다. 어떤 학교에서는 낙제제도를 아예 없애고 쉽게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사회 현실은 이와 다르다는 것을 명심하라. "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빌 게이츠가 마운틴 휘트니 고등학교(Mt.Whitney)를 방문하여 사회의 문을 밟기 시작하는 학생들에게 해준 인생 충고 중 일부다. 물론, 나는 이 충고의 유용성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충고가 카이지를 연상시켰다. 카이지를 쓰레기라고 칭하는 '주최측'과 '주최측'의 말들이 빌 게이츠의 충고와 닮았다. 주최측의 말들에 눈물을 흘리는 '쓰레기들'을 보는 것은 참 입맛 쓴 노릇이다. 빌 게이츠의 충고를 메일로 받아든 나는 그래서 선선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게다가, 빌 게이츠라니.

카이지는 미화하지 않은 날것의 자본주의를 가장 잘 묘사한 책이다. 이런 표현이 가슴이 조마조마하게 다음을 기다리는 이 만화의 매력을 잘못 전달할까 걱정이지만, 더 적절한 말을 찾을 수가 없다.

그림은 거칠고 누군가 줄거리를 묻는다면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는 지옥도와 다름없지만,  카이지에게 나름대로 영웅적인 면모가 있어서 전체적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카이지를 쓰레기라 부르면서 사기나 다름없는 도박으로 돈을 뜯어내는 '주최측'의 입에서도, 또는 카이지의 입에서도 가끔은 귀한 인생의 충고가 튀어나와 깜짝 놀란다. 사실, 주최측의 말들이란 악착스레 거부하게 되지만, 카이지가 이런 말을 할 때는 잘 깍아놓은 성공지침서를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모든 규칙을 말해주지는 않았어. 규칙을 오해한 사람과 이해한 사람이 같을 수는 없어." 같은.

이 놀라운 카이지가 나를 대신하여 이 교활한 '주최측'에 한 방 먹이기를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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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을 위한 노트법
히구치 타케오 지음, 윤정원 옮김 / 들녘미디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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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큰 활자의 '노트법'보다 '일하는 사람을 위한'이란 수식 때문이었다.

일하는 사람, 이 되고 싶어서,가 아마도 이유지 않을까.

일을 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든 책이고, 읽는 내내 노트를 써야겠다는 경각심이 들었으니 별이 넷이다.

다른 분들처럼 무얼 적을지 아직도 모르겠고, 반 이상은 이 놀라운 아저씨에 경탄할 뿐이지만 와 대단한 사람이다,에 더하여 나도 한번 해볼까, 싶은 마음이 되었다. 회의실에서 각 좌석에 누가 앉았는지를 표시하고, 그 사람이 무엇을 마셨는지도 적어 두고, 명함을 주고 받으면서 사진도 한 장 찍어서 붙이고, 출장보고서에 자신의 사진을 표정별로 박기도 하는 이 아저씨의 섬세함에 혀를 내두르는 것이다.

내가 참으로 무성의하게 일했던 것이다, 반성하고. 히구치씨가 출장보고서나 회의록처럼 상투적인 문서를 어떻게 쓰라고 쓸데없이? 자질구레하게 내게 설명하는 동안, 나는 상투적인 문서는 상투적으로 써주마, 하는 무감한 내 태도와 비교하면서 히구치씨의 그 순수한 태도에 감명받아 버렸다.

회사의 부속이라 느끼며 소모하는 나의 태도와 자신의 뇌를 대하듯 노트를 대하는 히구치씨의 태도는 얼마나 다른지. 회사일과 사생활을 굳이 분리하여 생각을 재단해서는 일을 그저 때우는 나의 태도는 또 얼마나 다른지. 히구치씨처럼 노트만 쓰기 시작하면 나도 그런 태도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쓰기만 한다면, 계속 생각해낸다면, 저절로 실현된다는 말도 믿어보고 싶고.

일을 하는 것은 노트 다음이 아닐까, 싶기도 한 것이. 자극 만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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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부를 못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
야마다 에이미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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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참 많은 울타리에 갇힌다.

나도 다르지 않아서, '불 좀 빌릴까요'라고 말했다가 지난 후에 '그런 말은 여자가 나이많은 남자에게 하는 게 아닌데'라는 조심스런 조언을 들으면 -나의 행동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머쓱해져서 다음에는 조심하게 된다. 내가 그 이유를 댈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그렇다니까.

너는 공부를 못하는 구나, 가 언제나 어깨를 움츠리게 하기 때문에 '나는 공부를 못해'라고 말하는 히데미가 참 멋있다. 히데미 말마따나 인생에는 공부말고도 많은 것이 있는데 나는 어떤 학창시절을 보냈었는지 기억해내려니 깜깜하기만 하다. 언제나, 다른 나이를 동경하면서 살다가 삼십대가 되려니 히데미가 부러울 밖에.

대학에 가는 것 말고는 이유가 없던, 공부만 잘하면 뭐든지 상관없다는 걸 알아버렸던, 모험심 따위 없던, 맞을 이유가 있었던 거라고 자신을 길들였던 내가 히데미에 겹친다.

행복하려면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하고, 행복할 수 있다면 뭐가 문제람. 히데미같은 고교시절을 보낼 수는 없더라도, 히데미의 엄마처럼-그녀 이름을 불러줘야 하는데, 히데미의 엄마라니 학부형처럼 멋대가리 없다,- 멋진 아줌마가 될 수는 있지 않을까, 격려의 말을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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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레시아스의 역사 - 서울대 주경철 교수의 역사 읽기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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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는 역시 꽃 구경이라는 언니의 주장에 따라, 경주에 갔었다. 이 책은 온통 꽃으로 환한 역사적인 소도시에 언니가 가지고 온 책이었다.  

어렵지 않다. 인터넷의 쪽글을 책으로 엮었다는 말 그대로, 쉽게 읽힌다. 저자는 막 입학한 대학 새내기들이 보았으면 한다는 바램이 서두에 비쳤는데, 그만큼 재미있고 부드럽다. 

세계사를 꼼꼼히 공부해 보자,는 목적이 아니라, 그저 세계사를 보는 다른 눈도 존재함을 알려주는 정도의 목적을 가진 책이다. 그래서,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현실사건을 대했을 때를 서술한 에세이들과 사람들을 세계사로 인도하는 책에 대한 서평,들이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해석이 어떤식으로 현실을 반영하는지도 보고, 제 눈의 티를 보지 못하는 우리도 보고, 크고 승리한 것들의 역사에만 집중되는 관심도 보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역사서(?)'에서 내비치는 위험함도 보고.

아주 참신하거나, 아주 놀랍지는 않지만, 따뜻한 봄날 왕릉들이 보이는 잔디밭에서 살금살금 읽기에는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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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농부가 세상을 바꾼다 귀농총서 13
요시다 타로 지음, 안철환 옮김 / 들녘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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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와의 FTA로 시끌시끌하던 무렵, 오마이뉴스의 농업기획기사에 쿠바의 이야기가 실렸다. 유기농이 대안이라는, 완벽한 구현이 쿠바에 있다는, 그 기사를 보고는 궁금한 마음에 이 책을 샀다. 궁금했다. 열려가는 시장 속에서 우리 농업이 어떻게 가야 하는지가.

책을 펼치고 읽어 가다가 기쁜 마음이 되던 것도 잠시, 나는 한참을 멈추어야 했다. 경제봉쇄에 처한 나라의 선택, 굶주린 북한과 건강해진 쿠바의 대비, 교육과 의료가 무료인 이 곳에 대한 묘사에 조금씩 의심이 솟는 것이다. 과연 가능할까, 과연 가능할까, 찬탄일색의 글에 마음이 동하기를 멈추고, 잠시 기다렸다. 자본주의에 길들어진 마음이 받아들일 준비가 될 때까지.

그리고, 이제야 겨우 다 읽었다.

쿠바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빼앗긴 자들'의 이오니안처럼 그 작은 나라는 그 안에서 자급해야 했다. 분담된 무역체계에 포함된 채로 이루어지던 대규모 단작은 고립된 순간 기능하지 못했다. 사탕수수를 기르느라고 식량이 될 곡류를 기르지 못한 나라는, 혁명 전의 상실감에 대한 보상심리로 고기와 우유만을 선호하던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느라 오래 고통받았다. 그리고, 여전히 그 그림자는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와 비교하게 되는 어떤 수치가 -국민소득 같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 나라가 못내 부럽다.  책과 같다면 역시 쿠바는 지상에 유일한 낙원일 것이다.

이 책은 나의 궁금증에 딱 맞는 주제를 다루고 있지는 않다. 나의 궁금증은 농업이라는 산업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 책이 다루는 것은 도시농업에 대한 것이다. 자급하는 도시의 실현,에 대한 이야기다. 자급하지 않는다면, 운송에 자원이 투여된다. 분업사회에서 자원은 낭비된다. 쿠바, 아니 아바나의 이야기는 어려움을 해쳐나가기 위해 머리를 모으고, 오래된 지혜로 도움을 구한 도시의 생존에 관한 이야기다. 농업이란 산업에 대한 답보다는, 삶에 대한 다른 길을 본다. 변변한 사회주의 정당을 가지지 못한 나라에서, 쿠바가 선의로 나아간 그 다음 단계 사회의 성장에 상호의 신뢰와 참여가 기능하게 되는 사회의 모습은 부럽다.

늘, 회의와 부정을 일삼는 내 길들여진 사고에, '반복되는 죄수의 딜레마'에 협력은 최선의 선택이라는 말은 '아, 여전히 사람들은 이상사회를 꿈꾸고 닥쳐오는 반박에 대답을 찾고 있구나'라는 새삼스러운 각성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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