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게 하는 건 뭘까. 

나는 짐이라고 생각한다, 호수야.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죽고 나면 짐일 수 밖에 없는 물건들을 모으고, 식물을 키우고, 동물을 키우고, 돌멩이에도 이름을 붙이고 곁을 내어주는 인간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 

그렇지, 나의 이 몸조차 짐이야. 궁극의 짐, 최초의 짐은 바로 내 자신의 몸이지. 뭐 묘사가 그렇다는 거지. 네가 무언가를 짐이라고 한다면, 결국 그렇다고.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죽음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라고도 했다더라. 육신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영혼이 제약없이 풀려나는 게 바로 죽음이라고 했대. 

뭐, 영혼이 있던지 말던지. 그게 정말 자유인지 아닌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살고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나는, 몸뚱이조차 짐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바로 산다는 거라고 생각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몸,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랑, 내 뜻 대로 되지 않는 그 모든 것이 살아간다는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고 살아가는 삶에는 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누군가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너의 슬픔을 알 것 같으면서도, 나는, 네가 엄마인 염분홍 여사에게 너무 잔인하다는 마음이 되었어. 

엄마의 집에 있는 짐들을 하나씩 챙겨서 너의 집으로 옮기는 마음은 그래 네가 좀 더 허랑방탕한 아들이었다면 기특하고, 고마운 처사일 수도 있는데, 너는 그런 아들이었던 적이 없잖아. 엄마에게 그 간절함을 내 보인 적 없었던 아들이라서, 엄마를 외롭고 쓸쓸하게 만드는 거야. 엄마는 너를 사랑하고, 그 사랑은 엄마를 살게 하는데, 너는 그 사랑을 짐이라고 부르고,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엄마를 밀어내지. 미지 앞에서 울던 그 마음을 엄마 앞에서는 한 번도 보인 적 없으니, 엄마는 늘 네가 어렵고, 늘 너를 그리워하잖아. 

살아간다는 건, 짐을 지고 걷는 일이야. 내 자신을 겨우 짊어질 수 있을 때, 그 다음 짐들이 필요하지. 아니, 내 자신을 짊어지기 위해서도 다른 짐들이 필요해. 나만으로는 마른 나뭇가지처럼 서 있을 수가 없거든. 오히려 다른 어쩌면 짐이면서도 사랑인 것들이 나를 세우고 살게 하는 거거든. 

호수야, 사람은 누구나 다 약하고 어리석단다. 약하고 어리석기 때문에 버티고 살아가기 위해서 네가 짐이라고 부르는 그 사랑이 필요해. 너 혼자 짊어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너에게 짐인 누군가도 너를 떠받치고 있는 거야. 

네가 무얼 짐,이라고 부르는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 

그 짐,이란 게 어떤 건지도 생각해 봐. 그게 없으면 도대체 어떻게 계속 살아간다니. 아무 짐도 없는 삶이란 없고, 어리석은 사람은 짐이 무거울 수록 더 삶에 용맹해지기도 해. 살다보면 깨닫게 되기도 하고 말이지. 엄마에게 짐을 빼앗지 말아, 호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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