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기독교를 논하다
이제열 지음 / 모과나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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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독교가 편애하는 신의 차별적인 사랑을 구하는 종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독교가 베이스인 서양의 문명은 함께 어울려 사는 삶에 오히려 장애가 된다고도 생각한다. (https://blog.aladin.co.kr/hahayo/13639264)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서 이 책을 골랐지만, 또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책이 새삼스럽지 않았다. 

그런데다가, 나는 종교를 조금은 철학으로 접근하고 있어서, 종교적 방식으로 하는 설명에 삐딱한 태도도 있다. 나는 동서양의 인간이해,가 두 종교를 설명하는 방식이 좋았다. (https://blog.aladin.co.kr/hahayo/13903037 )

내가 싫어하는 친구긴 한데, 내가 보기에는 그래도 비슷한 애가 그 친구를 막 욕하는 걸 듣는 기분이 된다. 사실, 책에서 하는 말은 욕도 아니고, 기독교와 불교는 그리 가깝지 않다. 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두 종교의 입장을 불교의 입장에서 듣는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종교를 실용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는 중이라, 천국이나 지옥, 전생이나 내세, 환생이나 이적에 대해 말하는 데에 전혀 관심이 없다. 


만약 세상에 완전한 자가 있다면 그는 몸과 마음이 청정하여 언제나 평화로워야 하고 구하고 원하는 바가 없어야 한다. 완전한 자는 세상에 대한 희로애락을 일으키지 않는다. 완전한 자가 어떻게 세상에 대하여 이렇게 되었으면 또는 저렇게 되었으면 하는 욕망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욕망은 무엇인가 부족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고 부족하다는 것은 완전치 못하다는 증거이다. -p25


불교의 관점에서 인간은 신의 형벌이 있든 없든 생로병사를 비롯한 갖가지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인간은 애초부터 영생할 수 없는 존재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 아니다. '생으로 말미암아 사가 있는 것'이다. -p49


그러나 불교의 지옥은 그 본성에 있어 실제가 아니다. 마치 꿈의 세계가 진실이 아니듯 불교의 지옥은 미혹한 중생이 업으로 만든 환상의 세계이다. 꿈을 깨지 못한 상태에서는 꿈의 일들이 실재인 것처럼 보이지만 꿈을 깨고 나면 아무것도 없듯 지옥은 진리를 깨닫지 못한 중생이 업의 힘에 의해 꾸는 꿈이다. 지옥의 모든 형틀 기구와 참상과 전경 그리고 사자들의 모습은 그곳에 태어난 중생들의 마음이 만든 허상들이다. - p94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법(法, Dharma)이고, 바로 그 법 속에서 중생들이 업을 지어 태어나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숫타니파타》에 전하는 다음 말씀이 이를 뒷받침한다. "세계는 업에 따라 존재하고 사람 또한 업에 따라 존재한다. 수레바퀴가 쐐기에 얽혀져 돌아가듯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업의 속박 속에 굴러간다." -p127 -128


혹 불교 경전에서 세상을 구제하기 위해 나타난다는 부처님이나 보살도 인간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해준다거나 그들이 지은 죄를 씻어줄 수는 없다. 다만 그 길을 일러줄 뿐이다. 누가 누구를 대신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는 방식을 불교는 애당초 부정하고 있다. - p161-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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