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에게 어깨를 잡힌 저는 정절을 잃은 것이옵니까?"라고 은애가 물었다. 

남연준은, 그렇다고, 어깨를 잡힌 여인은 자결했어야 한다고 대답한다. 아무 것도 속이지 않은 당신이 내게 그 얘기를 지금껏 숨겼다니 오랑캐를 용서할 수 없다고도 했지. 


남연준의 결벽적인 태도에 대해 생각하고, 젊은 유생들이 따르는 장철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아빠는 너무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 수 없다,라고 내게 이야기했다. 

교양수업으로 들었던 행정수업에서인가 교수님이 너희들이 알아들을 리 없다는 표정과 태도로 '부패란 게 절대 악처럼 보이겠지만, 그렇지만은 않다'라고 이야기하셨던 기억이 있다.

오염되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던 조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던 엄마 연구자의 말(돌봄과 작업, https://blog.aladin.co.kr/hahayo/14235302)도 떠오른다. 

충분히 좋은 엄마,를 읽을 때는 아이들의 타고난 도덕성이 얼마나 결벽적인지에 대한 묘사에 밑줄을 그었다.(사실 아이의 타고난 도덕성은 날것의 공포로부터 발달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엄마나 아빠의 도덕성보다 훨씬 더 강렬합니다. 아이에게는 오로지 진실되고 진짜인 것만이 중요합니다. 아이가 실제 감사함을 느껴서가 아니라 그저 예의로 감사하다고 말하게 하기 위해선 우리가 훨씬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p187~188 (https://blog.aladin.co.kr/hahayo/14013722)


극단적으로 흐르는 의견의 흐름은, 젊은이에 부응하는 사람들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세상에 나서지 않았고, 스스로 모순된 상황에 처해본 적 없는 젊고 어린 사람들이 세상의 일들을 보면서, 타고난 결벽적 도덕성으로 단죄하려 든다. 젊은이들의 태도에 부응해서 자신의 입지를 높이는 장철같은 사람들이 또 있다. 

너무 맑은 물에는 물고기조차 살지 못해서, 장철은 자기 아버지의 죄를 인정하고 스스로 오염되는 대신, 무고하게 노비가 된 정적의 자식을 때려죽이고, 자신의 딸을 스스로 죽도록 명령하고, 자신의 아들이 아비와 절연하도록 만들고, 결국 아들조차 죽게 한다. 

어깨를 잡히는 것조차 정절을 잃은 것이라 자결을 택했어야 한다고, 흔들리는 눈으로 질문하는 아내에게 답하는 남연준은 아내가 떠난 집에서 목을 멘다. 다시 돌아온 아내 품에서, '나는 여전히 당신의 남편이냐'고 묻는 남연준은 안쓰러웠다. 

겁에 질린 사람들은 잔인해져서 결벽적인 기준으로 사람들을 밀어낸다. 

겁에 질린 사람들의 결벽적인 기준은, 세상을 잔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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