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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게 나를 죽여라 - 이덕일의 시대에 도전한 사람들
이덕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모든 사서는 승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록이며 승자의 의도에 의해 왜곡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패자의 기록은 역사에 누락이 되거나 의도적 왜곡에 의해 훼손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의 패자를 추적하고 그들의 생을 재조명하는 것은
수많은 사서를 쫒아 승자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 보다 몇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그전에 패자의 입장을 고려해 보고 그들의 삶과 사상을 추적하고자 하는 의식이 전환이 필요하다.
이덕일 선생은 이미 '여인열전'을 통해서 유교적 사회속에 철저히 외면된 여인들을 데리고 나온 적이 있다.
이번에는 시대의 보편적인 진리(?)-그 시대 대다수가 믿고 있던 진실-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주체적인 사상과 신념을 밀고 나간 패자들의 이야기를 끄집어 냈다.
대다수가 믿고 따르는 사상과 체제를 거부했으니 그들의 결말은 패자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데려나온 패자들은 단순한 패자들이 아니다.
그들의 시대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한 패자로 남았으나 후세에 그 사상과 신념이 커다란 물결을 이루고
세상을 발전시키고 변화시키는 초석이 되었던 위대한 위인들이다. 패자이긴 하지만 그래서 승자의 이야기다.
보수와 사대를 시대의 이념으로 삼던 조선에서 중국을 부정하고 주체적인 조선을 추구했던 인물들,
지독한 신분제의 사회에서 서자로, 또는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나려 했던 인물들,
실학과 동학등의 새로운 사상으로 수명이 다해가던 조선의 마지막 부흥을 꿈꾸던 인물들,
시대가 인정하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길을 가서 후세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인물들.
26명의 인물들이 내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들의 삶이, 그들의 사상이, 그들의 신념이 나에게 전해져 왔다.
정도전, 허균, 허난설현 등 이미 이런저런 책으로 접했던 인물들도 있었고
이긍익, 이광사, 김창숙 등 내게는 생소했던 인물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세상과 불화하는 과정을 보면 오늘날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있다.
백성과 왕에 대한 충성보다는 자신의 이익과 자신이 속한 파당의 이익을 위하는 인간들.
끝내는 왕을 선택하는 '택군'의 경지까지 이르고 그들의 위치를 지키지 위해 발악하는 인간들.
그들의 모습은 어쩌면 온갖 욕을 다 먹으면서도 자신들의 이익만 생각하는 지금의 정치인들과
두렵고 섬찍하게 닮아있다. 그들의 그런 행동의 결과를 생각하면 더욱 더 무서워진다. 두려워진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이다.
너무도 작은 분량에 너무도 많은 인물을 실어서 일까? 그들의 삶이 너무 간략하다.
내가 알고 있던 인물들이라면 조금 덜했지만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인물들에 대한 호김심을 채워주기엔
이 책의 간략한 소개 만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조금 더 두꺼워 지더라도 자세히 실어주었으면....
형이상학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론이 많이 나온다.
교양역사서라면 일반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하고 부족한 부분은 친절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덕일 선생의 저서의 특징이 바로 그런 설명이 너무 잘되 있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나처럼 이론적이 기초가 부족해도 쉽게 접근할 수 있었고 팬이 되어 버렸는데 이 책은 예외다.
이론적인 내용에 대한 사서를 인용하면서도 그 내용에 대한 설명이 많이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너무 내용이 너무 어려워 져서 말하고자 하는 인물의 사상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마치 이덕일 선생이 아닌 다른 사람이 쓴 것 처럼 불친절한 책이 되고 말았다.
나름 이덕일 선생의 저서를 많이 읽었다고 자부하는데 이 책은 정말 아쉽다.
선생의 저서 중에서 감히 제일 어려웠다고 말할 수 있다. 아쉬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