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
마르탱 파주 지음, 김주경 옮김 / 열림원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역발상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 소설집은 놀랍고아름다우며기묘하다앞뒤가 뒤바뀌고 안과 밖의 경계가 허물어진 세계는 이상하면서도 이미 여러 번 꾸었던 꿈인 것처럼 이질감이 없다이야기 바탕에 깔려 있는 인간 본성과 실존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들이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정황들에 묘한 설득력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실은 살아 있지 않아요사진사로서그리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선생님께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무엇이든 눈에 보이는 대로 다 믿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 좀 웃어주시겠어요시체들은 대부분 너무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거든요앞으로는 그런 것도 차차 변하겠죠. (49~ 52)


   표제작 <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의 주인공 필립은 거리에서 만난 남자로부터 이상한 제안을 받는다. “당신이 되고 싶습니다.” 그 누구도 아닌 필립이 되기를 원한다는 낯선 남자의 제안은 이상하면서도 간단하다그 자신이 필립의 자리를 대신하려면 필립 또한 필립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어보라는 제안 앞에서 고민하던 필립은 마침내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기를 택하고 해방감을 얻는다.


 그는 이제 아무도 아닌 사람이었고, 왠지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87)

   

   자고 일어나보니 살해당한 시신이 되어 있는 남자호모사피엔스가 아닌 멸종 종족이라는 선고와 동시에 강제 보호를 받게 된 남자매순간 살인을 시도하는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야 하는 남자 등 자기 정체성과 실존을 위협 받는 상황에 처한 주인공들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소극은 가면적 자아라는 피곤한 책임감을 지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특별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마르탱 파주 특유의 감각적 화법과 블랙유머가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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