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중력가속도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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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명훈의 세 번째 소설집이다.  데뷔작 스마트 D를 포함해 특별히 엄선한 열 편의 소설을 싣고 있는 이번 작품집은 지난 십여 년 간 배명훈이 걸어온 문학적 행보를 한눈에 보여준다소재나 형식 측면에서 다양한 시도를 선보이고 있으며배명훈 작품들에 자주 등장하는 동명 인물들의 변천사를 확인하는 일 또한 잔재미를 준다.

 

   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 (...) 근사하지 않아? ‘간지러’ 조개 하나에 나도’ 840상상해봐그 잔잔한 바다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파도 하나그렇겠지그건 바람의 말일까바다의 말일까.

                                  ― <조개를 읽어요>(87) 중에서


   어릴 적 과외 교사 누나가 주고 간 조개의 메시지를 읽기 위해 조개의 언어를 해독하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를 속도감 있는 문장으로 들려주는 조개를 읽어요는 잔잔한 물결처럼 일렁이는 조개의 속삭임이 가슴을 치며 다가온다평생 딱 한 마디 말만을 하다 죽는 조개 하나하나의 말이 모여 이루는 하모니가 이상한 위안을 준다. <나도나도나도...>하고 공감의 말을 해주는 조개라니얼마나 근사한가.

 

   “D.” 언뜻 살펴보니 주변에 있는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몸 또한 온통 D로 뒤덮여 있었다원죄의 낙인처럼저격수의 표적이 된 것처럼무수히 많은 표적이 그의 몸에 내려앉아 있었다. (...) 온 세상이 D로 만든 모자이크처럼 보였다하늘에서 내려온 무수히 많은 D가 폭설처럼 온 세상을 덮고 있었다평지에 놓인 D는 곧게 펼쳐져 있었고삐딱한 곳에 놓인 D는 그림자처럼 일그러져 있었다그 모든 D가 똑같이 D였다스마트 D 3원칙 중 두 번째 조항의 구속을 받는 바로 그 D.               ― <스마트 D>(55) 중에서


   데뷔작 스마트 D는 알파벳 D, 한글로는 에 대한 이용료를 부가하는 스마트 D사와 연관된 연인의 죽음을 추적해 나가는 주인공을 통해 IT저작권이라는 개념을 재미있게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소재도 좋고 특정 문자를 배제한 채 씌어진 문장들도 흥미롭지만 다소 어수선한 느낌을 주는 전개가 아쉽다이밖에도 기계지성과 인간 간의 전쟁을 그리는 예비군 로봇핵전쟁으로 황량해진 지구의 모습을 담은 예언자의 겨울다른 시간의 문을 두드리는 소녀의 이야기 초원의 시간」 등 SF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각자의 개성을 뽐낸다.

 

   이제는 떨어지겠지이제는 떨어지겠지은경 씨는 그런 상식의 착각을 세 번이나 저버리고 계속해서 위로 솟구쳐 올라갔다등에 로켓 엔진이라도 단 듯누군가 위에서 끌어당기기라도 하는 듯아니처음부터 하늘에 속해 있던 사람이 온몸에 지워진 중력의 구속을 끊어내고마침내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ㅡ<예술과 중력가속도>(196중에서 


   인기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에 가기 위해 거의 사투 수준으로 매표 전쟁을 벌이는 핵잠수함 여직원들의 이야기 티켓팅 타겟팅라식 수술을 계기로 재회하는 연인을 그리는 홈스테이처럼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들도 있다. SF 하면 으레 떠올리게 되는 차가운 금속성과는 거리가 있는 배명훈의 소설들은 서정적이고 발랄하다장르 뼈가 여문 사람이라면 배명훈의 소설을 시시하다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작품 해설에서 정세랑 작가가 잠깐 언급하고 있는 <장르 뼈>라는 말은 장르 소설 또는 장르 영화 등에 대한 풍부한 견문과 애정을 이르는 말이다장르 뼈라는 표현조차 생소한 나 같은 사람에게 이 책은 돌연 무중력 공간에 내던져진 것 같은 망망함을 준다달에서 온 은경 씨의 무중력 공연을 지켜보는 <>의 심정이 그랬을까순수소설의 중력과 장르소설이라는 무중력그 아련한 경계에서 현기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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