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KBS 스폐셜에서 서번트 신드롬(savant syndrome)에 대해 나왔다. 아주 드물긴 하지만, 지능은 보통사람들보다도 떨어지는데 음악연주나 달력계산, 암기, 암산 등에 특별히 뛰어난 재능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idiot savant라 부른다. 프랑스어로 이 용어의 의미는 배우지 않고(바보 idiot) 터득한 기술(석학 savant)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발달장애나 자폐증 등 뇌기능 장애를 가진 이들이 그 장애와 대조되는 천재성이나 뛰어난 재능이 나타나는 현상.

특히 영화 「레인맨」의 실제 주인공 킴 팩의 기억력은 경이적이었다. 정말 부럽지만 그의 기억력은 자신 속에서만 갇혀져 있기에 창조적으로 활용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그것이 그들의 한계이리라.

기억력이라면 어렸을 때 내 등록상표였다. 그야말로 필름같이 생생한(?) 기억력이었다. 지금도 좋지만 단기 기억이 약화되어서 집중해서 외우려고 하지 않으면 깜빡할 때가 많아지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되넘겨 확인해야 하는 경우가 일상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책읽는 속도가 떨어지는 모양이다. 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바치는 정성은 변함없건만 쉽게 놓쳐 버리다니 허무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뇌의 용량이 다 차서일까?

그래서인지 책을 읽을 때 지식이나 정보를 얻는 것보다 지은 이가 그것을 어떻게 엮어내고 있는지를 감상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게 된다. 읽는 속도보다 폭과 깊이의 읽기를 통해 책 속에 감춰져 있는 구술들을 찾아내어 나의 안목으로 꿰어 보배로 만들어 가는 작업, 즉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해 내는 행위가 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하고 중요하다.

얼마 전에 끝낸 정옥분의 『아동 발달의 이해』(학지사)에서 “창의성이란 언뜻 보기에 관계가 없는 것들 간에 유사성을 찾아내는 능력이다.”라고 정의했는데 진정한 의미의 창조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하나님의 창조이고 인간의 창의란 기존의 것에 더하고 빼는 변형으로서의 창조라고 할 수 있다. "이 세상에는 완전한 창조도 완전한 모방도 없다"고 했듯이......

그렇기 때문에 사물과 사실들 사이에서 새로운 연관성을 발견해 기존의 지식을 확장시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 가고 삶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창의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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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년 시간 강사인 동생이 두 번째 책을 출간했다고 가져왔다. 혼자서 다 썼음에도 이번에도 두 명을 앞세우고 공저로 책을 내야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알라딘, 교보문고에서 검색해 보니 이름만 내건 한 사람의 저서로 나와 있다. 출판사의 홈페이지에는 3인의 공저로 나와 있는데도 말이다. 책을 고를 땐 저자를 중요하게 고려하는데 이렇게 이름만 내건 사람 따로 책 쓴 사람 따로 있다면 어떻게 믿고 책을 고를 있을까?

내가 고른 책 가운데 그런 책이 있을까 겁이 난다.

이름만 빌려 주고 받는 관행이 인제 끝내기를 학문의 양심에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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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2005-09-01 0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일도 있군요. 모두들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해요. 그것두 일종의 도둑질인데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부끄러운줄 모르고 그렇게 한다는건 참 어이가 없네요...
처음 뵙는것 같네요. 반갑습니다...

이로운삶 2005-09-01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처음 뵙는군요. 반가워요~
그게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합니다.
앞으로는 개선되어 가겠죠......
 
신화의 힘
조셉 캠벨 & 빌 모이어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이끌리오 / 2002년 7월
구판절판


캠벨
자연 위에서, 자연에 군림하는 것으로서의 초자연적인 존재라는 관념은 정말 몹쓸 것입니다. 중세에, 이 세상을 황무지로 만들어버린 것이 바로 이러한 관념입니다. 초자연적인 법률이 백성들에게, 관리가 시키는 대로 할 것을 요구했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참삶을, 자기가 하고 싶은 짓을 결코 하지 못하는 채 살아야 했던 중세는 바로 황무지나 다름없어요. 황무지에서 사는 사람들은, 자기의 것이 아닌 불가항력의 법이 설정한 목표를 좇았습니다. 초자연이라는 관념이 과연 이런 것이라면 이거야말로 사람을 죽이는 관념 아닙니까? 애인에게 아양이나 떠는 12세기의 서정시도 알고 보면 초자연적으로 정당화되어 삶의 환희에 가해지던 -188쪽

저 무자비한 폭력에 대한 반작용 아니었습니까? 트리스탄 전설과, 적어도 중요한 성배(聖杯) 전설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볼프람폰 에센바하의 전설도 마찬가지이지요.
정신이라는 것은 삶의 향연입니다. 그것은 삶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모신(母神)을 섬기는 종교는 적어도 이것을 바로 보고 있어요. 모신을 섬기는 종교에서는 세상이 곧 여신의 몸이자 여신 자체이지요. 이 여신의 신성(神性)이라는 것은 타락한 자연 위에 군림하는 그런 신성이 아니었다고요. 중세의 성모 숭배 신앙 체계에도 이 정신이 있었어요. 바로 이 정신에서 13세기 프랑스의 성당 문화가 흘러나옵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서의 인류의 타락을 다룬 우리 이야기는 자연을 부패한 것으로 보고 있어요. 바로 이러한 신화가 우리를 대신해서 이 세계를 부패시키고 있는 겁니다. 자연 자체를 부패의 상징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비롯되는 모든 것은 죄악이고, 따라서 타기되어 마땅한 것으로 전락합니다. 신화가 자연을 타락한 것으로 보느냐, 아니면 자연 자체를 신의 현현으로. 정신을 자연의 본성인신의 드러남으로 보느냐에 따라 문화나 삶의 양식은 확연하게 달라집니다.
모이어스
오늘날 자연의 본성인 신성(神性)은 누가 해석합니까? 누가 우리의 샤만입니까? 우리를 대신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해석해주는 이는 누구입니까?
캠벨
그것은 예술가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술가들이야말로 오늘날에도 신화와 교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예술가는 신화와 인간성을 이해하는예술가이지 , 대중에게 봉사하기를 좋아하는 사회학자는 아닙니다.
모이어스
시인도 예술가도 아니고, 초월적인 접신 경험도 해보지 못한 보통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캠벨
방법을 가르쳐 드리지요. 아주 멋진 방법이랍니다. 방에 앉아서 읽는 겁니다. -189쪽

읽고 또 읽는 겁니다. 제대로 된 사람이 쓴 제대로 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읽는 행위를 통해서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마음이 즐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우리 삶에서 삶에 대한 이러한 깨달음은 항상 다른 깨달음을 유발합니다.
마음에 드는 작가가 있으면 붙잡아서, 그 사람이 쓴 것은 모조리 읽습니다. 이러저러한 게 궁금하다. 이러저러한 책을 읽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베스트셀러를 기웃거려도 안 됩니다. 붙잡은 작가, 그 작가만 물고 늘어지는 겁니다. 그 사람이 쓴 것은 모조리 및는 겁니다. 그런 다음에는, 그 작가가 읽은 것을 모조리 읽습니다. 이렇게 읽으면 우리는 일정한 관점을 획득하게 되고, 우리가 획득하게 된 관점에 따라 세상이 열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 작가 저 작가로 옮겨 다니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하면, 누가 언제 무엇을 줄줄 외고 다닐 수 있어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도움은 안 됩니다.-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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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1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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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일지-
고독은 '버지니아호의 침몰 이후 내가 빠져 있었던 요지부동의 상황은 아니다. 그것은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순전히 파괴적인 방향으로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부식성의 세계이다. 첫날 나는 마찬가지로 상상일 뿐인 두 개의 인간 사회, 즉 사라져버린 선원들과 섬의 주민들 사이를 옮겨 다였다. 나는 섬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때 나는 내항해의 동반자들과의 접촉감을 생생하게 지니고 있었다. 나는 재난에 의하여 끊어진 대화를 마음속으로 계속하고 있었다. 그 후 섬이 무인도라는 것이 밝혀졌다. 나는 살아 있는 영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풍경 속으로 들어갔다. 나의 등 뒤에서는 내 불행한 동료들의 무리가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가 잠잠해진 지 오래되었을 때 나의 목소리는 독백에 지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끔찍스러운 매혹을 느끼면서 나의 내부에서 착착 진행되고 있는 것이 느껴지는 비인간화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인간은 저마다 내부에-그리고 그의 외부에-습관 반응, 반사 작용, 메커니즘, 골몰한 생각, 꿈 등으로 이루어진 복잡하고 깨어지기 쉬운 장치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그의 등류들과 항구적인 접촉을 통하여-65쪽

형성되고 계속 변모한다는 사실을 이제 나는 알겠다. 수액이 없어지면 이 섬세한 화초는 잎이 떨어지고 시들어버린다. 내 세계의 가장 중요한 부품인 타인‥‥그에게서 얼마나 대단한 덕을 보고 있었던가를 나는 내 개인이라는 건물 속에 새로운 균열이 생기는 것을 보면서 매일같이 헤아려보게 된다. 나는 말의 용법을 잃어버릴 경우 내가 어떤 위험에 직면하게 되는지 알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내 뜨거운 고통의 힘을 다하여 그 극단적인 타락을 물리친다. 그러나 사물에 대한나의 관계 자체가 나의 고독으로 인하여 변질되어 버린다. 어떤 화가나 판화가가 풍경 속에 혹은 어떤 기념비 근처에 인물들을 놓고 구도를 잡는 것은 액세서리에 대한 취향 때문이 아니다. 인물들은 척도를 제공한다. 그 인물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감상자의 실제적인 관점에다가 필수 불가결한 잠재성을 추가하는 가능적인 관점들을 형성한다.
스페란차에는 오직 하나의 관점, 일체의 잠재성이 배제된 나의 관점이 있을 뿐이다. 이 철저한 헐벗음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무의식적인 자동성에 의하여 나는 언덕의 꼭대기에, 어떤 바위 뒤에 혹은 어떤 나무의 가지들 속에 가능한 관찰자들을-매개 변수들을-투영해 보곤 했다. 이리하여 섬은 내삽법과 외삽법의 망에 의하여 종횡무진으로 누벼지고 그로 인하여 모습이 바뀌며 어떤 인식 능력을 갖추는 것이었다. 정상적인 사람은 누구나 정상적인-66쪽

상황 속에서 이와 같이 형성되는 것이다. 나는 다른 많은 것들이 그러했듯이 이 기능이 나의 내부에서 쇠퇴함에 따라 그 기능을 의식하게 되었다. 이제 그것은 완전히 감퇴되고 말았다. 섬에 대한 나의 비전은 섬 그 자체로 축소되었다. 내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은 절대적인 미지의 세계일뿐이다. 내가 지금 있지 않은 모든 곳에는 측정할 길 없는 어둠이 덮여 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이 글이 재생시켜 주고자 하는 경험이 전례가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내가 사용하고 있는 말들을 본질적으로 거역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근본적으로 언어란 과연 그 내부의 모든 것이 이미 알려져 있거나 적어도 알 수 있을 터인 어떤 빛의 섬을 그 주위에 만들고 있는 등대들처럼 수많은 타인들이 가득히 들어 살고 있는 세계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영역으로부터는 그 등대들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나의 환상에 힘입어 그들의 빛은 오랫동안 나에게까지 이르고 있었다. 이제는 마침내 암흑이 나를 둘러싼다.
나의 고독은 사물들에 대한 감각 능력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물들 존재의 바탕 자체를 파괴한다. 점점 더 나는 내 감각이 증거해 주는 것에 대한 의혹에 시달린다. 내 두 발이 딛고 있는 땅은 그 땅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밟는 것을 필요로 함을 이제 나는 알 수 있다. 시각적 환상, 허깨비, 착란, 눈 뜨고 꾸는 꿈, 몽환, 광기, 청각의 교란 등에 대항하는 가장 확실한 성-67쪽

벽은 우리의 형제, 우리의 이웃, 우리의 친구 혹은 원수 하여간 그 누구, 오 하나님 그 누구인 것이다!-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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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 상상을 초월하는 33인의 유쾌한 발상
김용석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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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인의 에세이 모움 『 상상』을 재미있게 읽었다. 상상(想像)이란 말은 옛날 중국 사람
  들이 코끼리의 형상을 머릿속으로 그려봄(想象)에서 비롯된 단어라고 한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의 상상을 만나게 되었는데 물리학자 정재승의  꿈을 찍는 드림캠코드 ,
  개그맨 전유성의  내가 낸 세금의 10%는 내가 집행을 결정하자와 같이 현실에 없는 것을
  원하고, 또는 현실에 불만이기에 상상을 하게 된다.
 
  그런 상상들이 모여서 현실이 만들어져 왔다고 할 수 있으리라.
  나의 상상을 덧붙이고 싶어진다.
  지금의 내 생활이야말로 몇 십년 전의 나의 상상이었다고 할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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